참된 연보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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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9:1-5
“참된 연보”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2025. 8. 18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참된 연보”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이 계속해서 연보에 대한 말을 하는데요. 고린도후서 8장과 9장 전체가 연보에 대한 내용이에요.
8장에서는 마게도냐 교회들의 모범을 자랑하면서 너희도 그들의 본을 받아, 너희가 시작한 연보를 끝마치라는 권면을 했었죠. 그러면서 그 연보를 전달할 자 세 명을 소개했어요. 그리고 그 세 명에게 너희의 사랑과 증거를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인 9장으로 넘어갑니다. 9장은 다시 한번 연보를 권면하고, 그 연보가 어떠한 은혜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자, 오늘 본문 1절을 봐 볼까요? 1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아멘.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바울이 더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연보에 대해서 내가 더 잔소리하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이미 앞에 쓴 말로도 충분하니까 내가 더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2절에서 자랑에 대한 말을 해요. 8장에서는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들을 고린도교회에 자랑했었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고린도교회를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자랑했던 얘기를 합니다. 자, 2절도 같이 읽습니다. 2절 시작,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아멘.
이게 무슨 말이에요?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아가야를 자랑했다는 거죠. 아가야에서는 이미 일 년 전부터 연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을 했어요. 여기서 아가야는 그리스 남부 지방을 말합니다. 그리스 북부가 마게도냐고, 남부가 아가야예요. 아가야 지방에 있는 교회는 바로 고린도죠. 물론 이밖에도 여러 교회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지만, 이름이 나오지는 않아요. 그래서 아가야 교회라 그러면 보통 고린도 교회를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마게도냐인들에게 고린도 교회를 자랑했다는 겁니다. “야, 고린도 교회는 이미 일 년 전부터 연보를 준비하고 있어.” 이렇게 자랑을 한 거죠. 그랬더니 마게도냐인들이 열심을 품었어요. “아니,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를 한다는데, 우리도 연보를 시작해야 되지 않겠어?” 이렇게 열심을 품고 연보에 분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모으고 모아서 바울에게 전달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주객이 전도된 거죠. 일 년 전에 시작한 고린도교회는 중간에 멈췄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시작한 마게도냐는 이미 연보를 끝마친 겁니다. 바울이 자랑한 것이 무색하게, 일 년 전에 시작해 놓고도 아직까지 못 끝내고 있어요. 먼저된 자가 나중 된 자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 된다는 말이 딱 맞죠.
이러다가는 고린도교회가 놀림거리가 되게 생겼어요. 그래서 바울이 연보를 다시 시작하라고 권면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맡아서 책임질 사람 세 명을 보낸 거예요. 디도와 두 형제를 보내서 고린도교회가 부끄러움을 당하기 전에 얼른 끝마치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밑에 3절, 4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3절 4절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무슨 말입니까? 혹시라도 너희 연보가 끝마치지 못하면, 자랑한 것도 헛되고, 또 너희도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너희를 자랑한 우리도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거죠.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돼요.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마게도냐인들이 실망을 하겠죠. 이미 일 년 전에, 우리보다 훨씬 일찍 시작을 해놓고 아직까지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 걸 보면, 형편 없는 교회라고 여기게 될 겁니다. “고린도교회면 아가야 지방을 대표하는 가장 큰 교횐데, 야, 겉만 번드르르 하고, 속은 영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뿐만 아니라, 바울에 대해서도 의심을 할 수 있겠죠. 우리한테는 고린도교회가 일 년 전부터 연보를 시작했다고 자랑을 하면서 충동질을 하더니, 정작 고린도교회는 연보를 제대로 모아놓지도 않았으면, 우리가 속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여러모로 상황이 곤란해져요. 본래 연보는 어려운 교회를 돕기 위하여 서로 연합하고 돕는 것이 핵심인데, 오히려 연보 때문에 신뢰가 깨지고 의심을 하게 되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속히 연보를 재개하라고 권면하는 편지를 쓰고, 세 사람을 파견하는 거예요. 자, 5절 봐 볼까요? 5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아멘.
바울이 형제들을 보내는데, 보내는 이유가 연보를 준비하도록 권면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합니다. ‘왜 갑자기 세 명이나 왔지?’ 라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연보를 준비하고,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서 세 사람이나 왔구나’, 하고 생각을 하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어요.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내가 계속 권면하고, 부끄럼 당하지 않게 하자고 말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억지로 연보를 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억지가 아니니라.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꼭 억지로 연보를 시키는 것처럼 보이죠. 말은 억지가 아니라고 하는데, 계속 그렇게 압박을 하면 그게 억지로 시키는 거 아닌가요?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나, 무슨 떼인 돈 받아오는 일수꾼 보내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보내기까지 하고. 완전히 억지 같잖아요.
그러나 여러분, 고린도교회의 연보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바울이 먼저 연보를 하자고 말을 했던 것은 맞지만, 성도들이 마음에 원하여 자원을 한 겁니다. 연보는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감동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우리교회도 가끔씩 굿네이버스나 월드비전 같은 단체에서 후원을 해달라고 오는데, 불쌍한 아이들 영상도 보고, 설명도 듣고 해도, 감동이 오는 사람만 후원을 하지, 아무나 하지 않아요.
참고로 저는 한 달에 10만원씩 후원을 합니다. 월드비전 8만원, 적십자 2만원. 월드비전은 제 아내가 처녀 때부터 하던 거고요, 적십자는 제가 결혼한 뒤에 시작한 겁니다.
빠듯한 살림에 한 달에 10만원씩 후원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십일조 떼고, 주일헌금 떼고, 비전헌금, 선교헌금, 기름값, 통신요급, 식비, 다 떼고 나면, 두 달에 한 번 꼴로 마이너스에요.
그런데도 왜 제가 계속 후원을 할까요? 제가 처음에 시작할 때, 주님이 주신 감동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켜서 한 거면 한두 달 정도 하다가 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받은 감동을 따라서 시작했기 때문에, 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이전에 제 설교 제목이 “하던 일을 성취하라” 였죠. 한번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 되는 겁니다.
남들이 볼 때는 돈도 없으면서 남을 돕겠다고 허리띠 졸라매는 게 억지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저나 아내나 후원을 하면서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이신데,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채워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바울도 같은 생각이에요. 너희가 감동 받아서, 자원해서 시작했으면, 그 감동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끝까지 하라는 겁니다. 하기 싫은 걸 바울이 강압적으로 시키는 거면 억지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죠.
연보는 단순히 돈을 주고 받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고,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물질을 주지만, 나만 주는 게 아니라 사실은 나도 받아요. 나는 뭘 받습니까? 다음 시간에 이것에 대해서 나눌 텐데요. 내 것을 덜어내는 만큼, 채워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영적인 것이 될 수도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 됐든지간에, 충만하게 채워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5절 말씀에 “참 연보” 라는 말이 있는데, 이 참 연보가 헬라어로 “율로기안”이라는 말이에요. 이 말은 “축복”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물질을 베풀 수 있는 것이 축복이고, 또 베푼 만큼 나에게 은혜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에 축복이에요. 그래서 연보가 축복인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풀 수 있는 것이 축복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베풀 수 있는 감동 받은 것도 축복이고, 베풀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도 축복이고, 그래서 그 사람의 형편이 나아질 수 있는 것도 축복입니다. 이 아름다운 축복을 놓치지 않고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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