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칼과 하나님의 말씀 2025 0818 렘36: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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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19 이에 고관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가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20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을 왕의 귀에 아뢰니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22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27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29 또 유다의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의 왕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냐 하도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파괴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반드시 성취됩니다.
설교문: 왕의 칼과 하나님의 말씀
설교문: 왕의 칼과 하나님의 말씀
중심 성경 본문: 예레미야 36장 19-29절
[도입] 질문의 제기
[도입] 질문의 제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건강검진 결과표에 좋지 않은 수치가 나오면, 애써 못 본 척 서류를 서랍 깊숙이 넣어두지는 않으십니까? 나를 향한 뼈아픈 충고가 담긴 메시지를 받으면, 읽고도 답하지 않거나 아예 삭제해 버린 경험은 없으십니까?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그것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림으로써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 착각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할 본문은, 한 나라의 왕이 바로 그런 선택을 하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때는 유다 왕 여호야김 제사년, 주전 605년경입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신흥 강대국 바벨론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격파하고 새로운 패권 국가로 떠오르던 살벌한 시기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십니다. 지난 23년간 선포했던 모든 심판의 메시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두루마리에 기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기록하라고 하셨을까요? 저주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 36장 3절 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것은 마지막 경고이자, 가장 절박한 사랑의 초대였습니다.
3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성전 출입이 금지된 예레미야는 그의 충실한 서기관 바룩을 통해 말씀을 기록하게 하고, 바룩은 목숨을 걸고 성전에서, 그리고 고관들 앞에서 이 두루마리를 낭독합니다. 말씀을 들은 고관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왕에게 보고해야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두루마리는 유다의 최고 권력자, 여호야김 왕 앞에 놓이게 됩니다. 때는 겨울, 왕은 겨울 궁전의 따스한 화롯불 앞에서 신하가 읽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진실과 마주한 왕, 그는 칼을 집어 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준엄한 사건을 네 개의 창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점검하고, 우리가 영원히 붙들어야 할 진리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각] 성서 (Scripture): 진리의 원천
[1각] 성서 (Scripture): 진리의 원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한 사람의 운명, 나아가 한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먼저, 말씀을 두려워하면서도 주저하는 고관들의 태도가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몸을 숨기라고 조언하며 최소한의 경외심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왕이 두루마리를 불태우려 할 때, 25절을 보면 몇몇 신하들은 “왕께 태우지 말라고 간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의 권위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두려워했고, 어떻게든 재앙을 막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외심은 왕의 권력 앞에서 무력했습니다.
반면, 말씀을 멸시하는 여호야김 왕의 태도가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신하 여후디가 두루마리를 서너 쪽 읽어 내려가자, 왕은 ‘서기관의 칼’로 그것을 베어냅니다. 여러분, 서기관의 칼은 본래 파피루스를 다듬고 말씀을 기록하며 보존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왕은 그 보존의 도구로 도리어 말씀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잘라낸 조각들을 ‘화롯불’에 던져 모두 태워버립니다. 온기를 주어야 할 불로 진리의 말씀을 소멸시키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24절입니다. “왕과 그의 모든 신하가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더라”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회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박한 경고 앞에서 그들은 완전한 무감각과 교만한 멸시로 일관했습니다.
그렇다면 왕이 말씀을 불태웠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무산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재가 되어 사라졌습니까? 천만에요.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이전 두루마리에 있던 모든 말을 기록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칼과 불로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영원불변의 권위를 가집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거기에 더하여, 말씀을 불태운 여호야김 왕과 그의 가문에 대한 더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추가하여 다시 선포하게 하십니다. 인간이 말씀을 거역하면 할수록, 그 말씀은 더욱 준엄한 심판의 말씀이 되어 그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2각] 전통 (Tradition): 역사의 증언
[2각] 전통 (Tradition): 역사의 증언
여호야김의 칼과 불은 단지 2,6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는 지난 2000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말씀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과 맞서 싸워왔습니다.
4세기 초,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를 완전히 말살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는 제국의 모든 성경을 수거하여 불태우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수많은 성경이 불탔고,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기독교인의 이름을 소멸시켰다’고 새긴 기념비를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는 기독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입니다. 황제는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저와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16세기, 윌리엄 틴들이라는 한 위대한 믿음의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평범한 농부들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게 해야 한다는 거룩한 열망에 사로잡혀, 목숨을 걸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당시 교회 권력은 이를 신성모독으로 여겨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가 번역한 성경들도 함께 불태워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뿌린 말씀의 씨앗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의 번역은 훗날 수억 명의 영혼을 구원으로 이끈 킹제임스성경(KJV)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역사는 증언합니다. 수많은 독재자와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없애려 했지만, 그들은 모두 사라졌고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힘있게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교회가 대대로 고백해 온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앙고백은, 바로 이 진리를 지키기 위한 거룩한 싸움의 증거이자 승리의 선포인 것입니다.
[3각] 이성 (Reason): 논리적 탐구
[3각] 이성 (Reason): 논리적 탐구
그렇다면 말씀을 거부하는 여호야김의 행동은 단지 영적인 교만일 뿐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기도 합니다.
의사가 어떤 환자에게 암 진단서를 주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진단서를 받아 든 환자가 의사 앞에서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 불태워버린다면, 그의 몸에 있는 암세포가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제 손으로 없애버리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경고는 우리를 저주하기 위한 ‘사형선고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살 길을 찾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적 진단서’이자 은혜의 초대장입니다. 여호야김은 지금 자신과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처방전을 제 손으로 불태워버린 것입니다. 이보다 더 비이성적인 행동이 어디 있겠습니까?
건축가가 건물의 설계도를 무시하고 자기 감과 경험에 의존해 기둥을 세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건물은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완벽하고 안전한 ‘인생 설계도’입니다. 그 설계도를 무시하고 내 생각과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내 인생의 집을 짓는 것은, 결국 내 삶을 붕괴로 이끄는 가장 비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4각] 경험 (Experience): 삶의 증언
[4각] 경험 (Experience): 삶의 증언
우리는 “나는 성경을 불태운 적이 없으니 여호야김과 다르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매일 우리만의 ‘칼’과 ‘불’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라내고 불태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불편함’이라는 아주 날카로운 칼이 있습니다. 설교를 통해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이 들려올 때, ‘다른 건 몰라도 저 사람은 절대 용서 못 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그 말씀을 잘라내 버립니다.
우리에게는 ‘합리화’라는 교묘한 칼도 있습니다. “네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구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라”는 도전에, ‘지금은 내 살기도 바빠.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라며 말씀에 ‘예외 조항’을 만들어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우리에게는 ‘바쁨’이라는 이름의 차가운 화롯불도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해야 함을 알지만, 너무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성경을 덮어둡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 말씀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무관심의 재만 남게 됩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용서하라’는 말씀이 제 마음을 찔렀지만, 저는 매번 제 상처와 억울함이라는 칼로 그 말씀을 잘라냈습니다. ‘하나님, 이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거역하는 제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미움이라는 감옥에 갇혀 고통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없어,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전화를 걸어 먼저 용서를 구했을 때, 놀랍게도 제 안의 미움이라는 감옥 문이 활짝 열리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말씀을 거역할 때는 고통뿐이었지만, 제 칼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제게 참된 평안과 회복을 주셨습니다.
[결론] 통합과 적용
[결론] 통합과 적용
오늘 우리는 네 개의 창을 통해 분명히 보았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말씀을 파괴하려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증언합니다. 역사는 그 증언이 사실임을 피로써 증명했습니다. 우리의 이성은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기 파괴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은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가 얼마나 다른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앞에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손에는 ‘나의 생각, 나의 경험, 나의 상처, 나의 편견’이라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여호야김처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을 잘라내고 무관심의 불로 태워버리시겠습니까? 아니면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말씀을 받아 내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칼을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굳은 마음을 쪼개고, 우리의 상처를 수술하며,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도록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립시다. 그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교만했던 여호야김 왕처럼, 우리 역시 얼마나 많이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과 경험이라는 칼로 잘라내고 무시했는지 모릅니다. 이 시간 우리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의 칼을 내려놓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생명의 말씀을 받게 하옵소서. 말씀이 우리 삶의 유일한 기준이요, 능력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말씀에 순종함으로 얻는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