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과 신약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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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신천지
최근에 신천지에서 이만희 교주가 경호차량을 수십대를 동원해서 차량을 통제하고 이동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셨을 겁니다. 무슨 대통령도 아니고 불법을 저지르면서 까지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모습을 보고 참 기가 막힌 장면이다 싶었는데요,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더욱더 안타까웠던 것이 거기다가 대고 무슨 북한에서 김정은 만난 사람들마냥 환호하고 하는 신천지 신도들을 볼때마다 너무나도 불쌍한 사람들이다 싶었어요.
아주 조금만, 아주 눈곱만큼이라도 사람이 생각을 해서 분별할 줄 안다면 그게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텐데,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하면서 마음이 참 안타까운데요. 더더욱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넘어가는 경우가 또한 많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단 문제는 그냥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른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사람의 분별력을 흐트려놓기 때문에 교회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오늘 저희가 알아볼 신약정경에 대한 내용도 역시 이런 이단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인데요, 교회가 이단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단에 대해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은 2세기 초반, 대략 기원후 100년 정도까지도 올라가게 되는데요, 오늘은 초대교회에 있었던 이단에 대한 문제와 그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신약 정경을 형성한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신약정경사
신약정경사
먼저 정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간단히 짚고 넘어가려고 하는데요, 제가 이번 성경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처음에 말씀드렸을 겁니다. 성경은 성스러운 경전이고, 정경은 수많은 성경들 중에 “이것을 우리의 성경으로 정합니다”하고 정한 것이 정경이라고 말씀드렸어요.
바울 서신
바울 서신
그럼 한번 생각해봅시다. 처음 교회에서, 유대인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으로 읽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처음엔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으니 구약이 포함되었겠지만, 처음 교회의 교인들은 신약 중에 가장 먼저 쓰여진 “바울 서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후서에서는 이미 사도 바울이 쓴 편지에 대해서 “우리 구주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명령하신 것”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베드로후서가 쓰여진 때는 이미 바울 서신이 성경으로서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요, 바울 서신은 말그대로 편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저희는 첫번째 편지가 고린도전서, 그리고 두번째 쓴 편지를 고린도 후서라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이런 편지들은 그냥 오늘날의 저희가 카카오톡이나 전화나 문자로 하는 “일회성” 편지가 아니었습니다. 한번 읽고 “아~ 그렇구나”하고 버리는 편지가 아니라 한번 받으면 그걸 손으로 다시 복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읽게 하고, 또 받으면 그걸 다시 복사해서 다른 교회에 보내고 하는 식으로 여러장의 사본이 만들어지고 또 “돌려 읽었습니다”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그래서 골로새서에서도 보시면 “이 편지를 받으면 다 읽고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읽게해라”라고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처음 세워지기 시작한 때는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도 바울의 편지가 여러 교회에게 읽혀졌고, 이것을 성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서
복음서
두번째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복음서 였습니다.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를 저희는 주로 마가복음으로 보고 있는데, 마가복음이 대략 기원후 70년경, 제2성전이 무너지기 직전 혹은, 직후에 쓰여졌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서신이 기원후 50년경 정도 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복음서가 굉장히 늦게 쓰여졌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에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으로 전해지는게 보통이었거든요.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 대해서 설명할때, “주께 받은 것을 전한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본인도 전해 들은 것을 전한다, 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또 보시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간다고 하죠. 이것 역시 초대교회에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으로 “전해 들은 것을 전해주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도 그 시작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 소식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하고 자신이 전해들은 것을 “보다 잘 전해주기 위해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복음서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이 쓰여지고 나서 이 마가복음을 읽었던 사람들이 한 10-20년정도 후에 마태복음, 누가복음을 쓰게 되는데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누가복음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목격자요 말씀의 일꾼되어서 복음을 말로 전했던 자들이 있었고, 그것을 듣고 쓰려고 붓을 든 사람이 있었다, 라고 하면서 자신은 그것을 살펴보고 데오빌로 라고 하는 사람에게 편지의 형식으로 차례대로 써서 보낸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도 건너 건너 듣고 읽고 한 것을 정리한 것을 쓴다, 라고 목적을 밝힙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복음서들 역시 한번 읽고 버려진게 아니라 계속해서 복사해서 넘겨주고, 복사해서 넘겨주고 하는 식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돌려서 읽었을 것입니다.
영지주의
영지주의
그리고 사실 복음서는 네 개가 아닙니다. 2세기 전반까지 도마복음, 마리아 복음, 진리의 복음 등등 아주 많은 수의 복음서가 있고, 사도행전처럼 사도들의 일을 담은 안드레아 행전, 요한 행전,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라고 하는 일화가 등장하는 베드로 행전등등 아주 많은 수의 행전들도 있구요, 저희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아주 많은 수의 경전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경전들은 저희가 외경이라고 안하고 “위경”이라고 하는데요, 외경은 바깥 외자를 써서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정도로만 인식하지만, 위경이라고 불리는 경전들은 아예 대놓고 “거짓 위”자를 써서 이건 “가짜다”라고 정의하는 경전들입니다.
이런 경전들은 왜 배제되고, 오늘날 저희가 읽는 27권의 신약 성경만이 정경으로 인정이 됐을까요?
먼저 예수님시대, 그리고 초대 교회 시대를 포함하는 헬레니즘 시대에는 하나의 거대한 철학적, 종교적 흐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지주의”라고 하는 것인데요. 영지주의는 쉽게 말씀드리면 동방과 서방의 종교와 철학이 혼합된 일종의 혼합주의입니다. 이쪽 종교에서 이거 좋아서 가져오고, 저 종교에서 저게 좋으니까 가져오고 하는 식으로 짬뽕이 된 여러 학파를 일컫는 말인데요,
사진을 보시면 등장하는 것이 영지주의의 대표적인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보시면 오른쪽에 있는 것이 물질 세계, 저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와 같이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인데, 어떤 사람이 머리를 내밀어서 그 바깥에 무슨 환상적인 세계를 향해서 나가고 있죠? 영지주의는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 세계를 악하다고 정의하고, 금욕적이고 지식적인 활동을 통해서 이 물질세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구원이라고 믿었습니다.
문제는 이 영지주의가 교회 안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 라고 하는 영지주의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무슨 일이 발생하냐면,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 즉 구약의 하나님은 악한 신이다”라고 하게 되고,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오신게 아니라 그냥 육체처럼 보이는 껍데기만 입고 오신 것이다, 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르키온 주의와 정경의 필요성
마르키온 주의와 정경의 필요성
이러한 영향을 받은 대표주자가 바로 시노페의 마르키온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마르키온이라고 하는 사람은 구약의 하나님이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과 보복의 신이고, 예수님의 아버지인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신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마르키온은 유대인들이 읽는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악한 신으로 규정하고, “우리는 이것을 읽어야합니다”라고 하면서 누가복음의 일부와 바울서신 10권의 목록을 정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단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 정한 이 “읽기 목록”이 최초로 정리된 “기독교 정경”입니다.
이전까지는 신약성경에 어떤 “읽기 목록”이 없었어요. 누군가가 쓴 편지, 복음서 등을 교회가 돌려 읽고, 복사하고 나눠주고 굉장히 다양한 책들을 산발적으로만 읽기 시작하다가, 이 마르키온이라고 하는 사람이 “누가복음과 바울서신 10권만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정한것입니다.
정경을 영어로 Canon이라고 하는데, 이것의 그리스어가 카논(κανών)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원래의 뜻은 막대/자라는 뜻으로 길이를 측량하는 도구를 뜻하는 단어였다가, 나중에는 읽기 목록/규범 다른 말로 “이것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하는 리스트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마르키온이 정하게 된 것이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마르키온은 교회에서 쫓겨납니다. 나름 교회에 헌금도 했었는데 그것도 다 돌려주고 쫓아내버렸어요. 근데 여전히 문제가 하나 남아있죠. “분명 저 읽기 목록이 잘못된건 알겠는데, 그럼 우리의 읽기 목록은 어떻게 정해야하지?”라고 하는 의문이 교회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파피아스와 사복음서
파피아스와 사복음서
그래서 교회에서는 “읽기 목록”을 찾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를 합니다. 몇가지만 소개해드리면,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 사람은 사도들을 알고 있는 장로들을 찾아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대해서 물어보고 다녔습니다. 그리고서는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였고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했다 마태는 히브리어로 쓰고 나중에 그리스어로 번역했다”등등의 말을 남겼는데, 이것이 나중에 마태복음 마가복음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기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전까지는 이름이 없었는데 저희가 읽고 있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에 “사도적”인 권위를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사도와 관련이 있으니 충분히 읽을만하다 라는 방식이죠.
무라토리 정경
무라토리 정경
기원후 200년 경 즈음에는 무라토리 정경이라는 정경 목록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신약 성경에서 히브리서, 야고보서와 요한 2-3서 일부가 빠졌구요. 베드로의 묵시록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위경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타나시우스의 367년 부활절 서신
아타나시우스의 367년 부활절 서신
이처럼 정경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위해 이러이러한 책을 읽어야 합니다”라는 목록이고, 굉장히 다양한 교회들과 사람들에 의해서 이 목록이 다양했습니다. 오늘날의 저희가 읽는 27권의 목록을 처음 언급한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라고 하는 사람이 쓴 부활절 서신인데요, 367년에 쓴 이 편지 안에 저희가 알고 있는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27권의 목록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아타나시우스는 특히 배척해야할 책들, 외경과 위경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하는데요, “이단자들의 발명품”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하면서 “읽지 말아야할 목록”도 어느정도 정리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27권
오늘날의 27권
그럼에도 계속해서 여러가지 논쟁이 있고, 서로 다른 견해차이를 보이다 히에로니무스, 성 제롬이라고도 불리는 사제 겸 학자가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 성경을 405년에 완성하고서 이 불가타 성경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주로 사용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신약 27권의 정경으로까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정경사는 이단과의 싸움, 분별
정경사는 이단과의 싸움, 분별
이것이 저희가 살펴본 신약성경의 정경 역사인데요, 굉장히 길었지만 따져보면 이 역사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정경역사는 “이단과의 싸움”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 올바른 믿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아까전에 영지주의라고 하는 종교 혼합주의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들어왔을 때,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부정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부터 이런 이단에 대한 경계가 등장합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셨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그래서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지 않는 이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다, 분별하여 배제해야할 이단이다 라고 하는 것을 본문말씀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경, 곧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이것을 읽어야합니다”라고 하는 읽기 목록을 정했던 역사속 인물들 처럼 본문말씀에서는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세상에서 영적인 것이라고 다 믿지 말아라. 그 영적인 일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분별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영지주의자들도 영적인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많은 이단들도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신천지도 심지어 영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방언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좋다하는 것, 영적인 것, 신비로운 것, 뭔가 괜찮아보이는 것이라고 다 믿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아닌지 잘 분별해서 신약성경 27권을 정했던 역사와 같이 오늘날의 저희도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잘 분별해야만 합니다.
분별의 지혜는 사랑의 공동체에서
분별의 지혜는 사랑의 공동체에서
그럼 어떻게 우리가 이런 것들을 분별해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본문말씀 6절은 갑자기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으니 우리의 말을 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자다”라는 말을 합니다. 영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 무엇이 진리의 영이고 미혹의 영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속한 우리”에게서 나온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떤 “공동체”에 속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공동체일까요? 대체 이 “우리”가 누구길래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성경을 잘 해석하는 공동체일까요?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일까요? 신비로운 일이 막 일어나는 공동체일까요?
본문말씀 이후에 등장하는 두 구절 요한1서 4장 7-8절 말씀을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는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는 머리가 좋아서 막 성경을 연구해서 이 말씀 저 말씀을 현란하게 연결하고 해석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말을 뛰어나게 잘해서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설득하고 이끄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예배를 세련되고 멋있게, 막 엄청난 미디어를 쓰면서 드리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성도 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사람이 바글바글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구별하는 지혜는 “사랑의 공동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한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것입니다. 반대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야말로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인 줄 알 수 있는 것이고, 바로 그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통해서 가짜가 구별되고 진짜 하나님께 속한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반대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공동체가 하나님께 속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교회에 “몰래” 침투해서 교묘하게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분란을 일으키고 사람을 빼가는 신천지가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공동체입니까? 아니기 때문에 신천지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똑바로 안하면 앞에 나와서 엎드려뻗쳐 시키는 전광훈 같은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만듭니까? 아니기 때문에 거기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결론
결론
저희 교회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저희도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교회가 이단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수백년동안 고민해서 저희는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받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서를 통해서 성경이 역사도 이야기도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살펴보았고, 예언서들을 통해서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신약성경 27권의 말씀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사랑의 공동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 66권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뛰어난 지식이 아니고, 그냥 달달달 외우거나 그냥 많이 읽기만 하는 열정이 아니고, 바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사랑의 공동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형제자매를 사랑하기에 힘쓰고 하나님께 속한 영을 지혜롭게 분별해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