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의 눈물을 닦으시는 하나님 2025 0822 렘50: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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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7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사자들이 그를 따르도다 처음에는 앗수르 왕이 먹었고 다음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뼈를 꺾도다 18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앗수르의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의 왕과 그 땅을 벌하고
19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를 것이며 그의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 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하나님의 구원은 억압하는 세상 권력의 심판을 넘어, 그의 백성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시는 은혜로 완성됩니다.
설교문: 포로의 눈물, 용서의 약속
설교문: 포로의 눈물, 용서의 약속
중심 성경 본문: 예레미야 50장 17-20절
[도입] 질문의 제기
[도입] 질문의 제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때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바벨론’이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그것이 끝나지 않는 빚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끊어내지 못하는 중독의 사슬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에게는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깨어진 관계, 혹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녀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절망 앞에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이 고통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바벨론 제국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약속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약속을 통해, 고난의 현실을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중심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1각] 성서 (Scripture): 진리의 원천
[1각] 성서 (Scripture): 진리의 원천
오늘 본문은 짧지만,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가 세 단계로 선명하게 펼쳐집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정확히 아십니다.
17절은 이스라엘을 “흩어진 양”이라고 말합니다. 힘없이 흩어져 사나운 “사자들”에게 쫓기는 신세라는 뜻입니다. 첫 번째 사자는 그들의 뼈를 꺾었던 앗수르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자는 그들을 완전히 삼켜버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겪어온 고통의 역사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불의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내가 앗수르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 왕과 그 땅을 벌하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갚아주십니다. 억압하는 세력은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공의의 원칙을 보여주십니다. 세상의 불의한 권력이 영원할 것 같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그 끝을 정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완전한 회복과 용서를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심장입니다. 19절은 먼저 물리적인 회복을 약속합니다. 흩어진 양 떼를 다시 그들의 목장으로 인도하여, 배부르게 먹이시겠다고 하십니다. 평화와 풍요의 회복입니다.
그러나 진짜 회복은 20절에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2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놀라운 약속입니다. 진정한 회복은 단순히 포로 생활의 끝이 아닙니다. 좋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회복은 죄의 뿌리가 완전히 뽑히는 ‘완전한 용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죄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2각] 전통 (Tradition): 역사의 증언
[2각] 전통 (Tradition): 역사의 증언
하나님께서 강대한 압제자를 꺾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이 이야기는, 예레미야 시대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의 가장 오래되고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패턴의 가장 위대한 시작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당대 최강의 권력이었던 애굽과 바로 왕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질 때,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로마 같은 땅의 나라는 흥하고 망하기를 반복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속한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구원의 약속과 패턴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정점을 이룹니다. 출애굽이 애굽이라는 권력을 심판한 사건이라면, 십자가는 이 세상의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권세, 곧 죄와 사망의 권세를 심판하신 하나님의 최종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그 압제에서 영원히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레미야 50장 20절의 약속처럼,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지워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용서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3각] 이성 (Reason): 논리적 탐구
[3각] 이성 (Reason): 논리적 탐구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징계의 도구로 쓰셨다면, 왜 그들을 다시 벌하시는 것일까요?
쉬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의사가 암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용 칼’을 사용합니다. 그 칼은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만약 의사가 교만해져서, 그 칼로 암뿐만 아니라 건강한 살까지 마구 찌르고 환자를 학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의사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바벨론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라는 선을 넘었습니다.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백성을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짓밟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도구의 교만과 죄악을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그냥’ 용서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죄를 반드시 벌하셔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길 원하십니다. 이 두 가지 성품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위대한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아무 죄 없으신 아들 예수님께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믿는 우리에게는 값없이 용서와 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완벽하게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예언한 “죄를 찾을지라도 찾지 못하게 되는” 완전한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신적인 논리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4각] 경험 (Experience): 삶의 증언
[4각] 경험 (Experience): 삶의 증언
이제 이 말씀은 2,600년 전의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제게는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던 ‘바벨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저지른 한 가지 큰 실수로 인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이 죄책감은 기도할 때마다 저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보게 했습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제 귀에 속삭였습니다. “너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 넌 자격이 없어.” 저는 죄책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완전히 지쳐버린 마음으로 성경을 읽다가 예레미야 50장 20절 말씀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이 말씀이 제 심장에 박혔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붙들고 울부짖었습니다. “주님, 정말입니까? 주님이 제 죄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고 약속하시는 겁니까?”
그날 밤, 십자가의 보혈이 단지 개념이 아니라, 제 모든 실패와 죄의 기록을 실제로 지워버리셨다는 사실이 믿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제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사라지고,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보다, 저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더 강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한 것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 그 은혜가 오늘 나를 살게 한다.
[결론] 통합과 적용
[결론] 통합과 적용
오늘 우리는 네 개의 창을 통해 분명히 보았습니다. 성경은 억압의 끝과 완전한 용서를 약속합니다. 교회 역사는 그 약속이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음을 증언합니다. 우리의 이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용서의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은 그 용서가 오늘 나의 삶을 자유케 하는 능력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을 짓누르는 바벨론의 힘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 바벨론보다, 죄와 사망의 권세보다 더 강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희망은 단순히 원수가 무너지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참된 희망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예레미야의 예언을 온몸으로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당신의 죄와 절망을 향해 십자가의 능력을 선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하나님은 나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지 못할 것이다!” 이 위대한 용서의 복음을 붙들고, 죄책감의 포로에서 걸어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