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는 자에게 주시는 복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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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9:6-15
“심는 자에게 주시는 복”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2025. 8. 22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심는 자에게 주시는 복”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연보를 권면하면서 연보에 대한 열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요. 바울은 먼저 연보를 끝마치지 못했을 때 일어날 불상사를 말하면서 책망을 했습니다. 너희보다 늦게 시작한 마게도냐 교회들은 이미 끝마쳤는데, 너희가 아직도 못 마치고 있으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책망을 했어요.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세 사람을 보냈습니다. 꼭 억지로 시키는 것처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어요.
그러나 바울이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니죠.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자원하여 시작한 일을 스스로 끝마칠 수 있도록 권면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이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이 다른 교회와 연합을 이룰 수 있도록, 이 일을 끝마치게 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연보는 단순히 베풀기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베푸는 만큼 받는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것에 대한 내용인데요. 하나님은 베푸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공짜가 없는 거예요. 반드시 대가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상급이라고 그러죠.
상급은 상 상, 줄 급.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상이에요. 수고한 자에게 그만큼 상을 주십니다. 자, 오늘 본문 6절 봐 볼까요? 6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아멘.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이것은 상식이죠. 당연히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둬요. 씨를 백 개 심은 것하고, 씨를 백만 개 심은 것은 차원이 다른 겁니다. 아무리 농사를 망해도 백 개 심은 것하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많이 심으면 그만큼 많이 남기는 겁니다.
이러한 농사의 원리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자원하여 후한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은 뿌린만큼 거두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뿌려야 될까요? 한정없이 계속 뿌릴 수는 없잖아요. 돈이 없는데 빚을 내면서까지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7절에 바울이 어느 선까지 심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7절도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아멘.
바울은 연보에 어떤 금액적인 선을 정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고 했어요. 이 말은 내가 얼마를 낼 것인지, 각자가 알아서 정하라는 겁니다. 자기 형편에 맞게, 자기 스스로 금액을 정해요. 고린도전서 16장 2절을 보면, 이미 바울이 자기 형편대로 하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했어요.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아멘.
무엇에 따라 모으라고요? 수입에 따라. 많이 버는 사람은 그만큼 많이 모으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모으고. 각자 수입에 따라서 하라는 겁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은 자신의 전재산을 바쳤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적당한 선이 필요해요. 그 기준을 수입에 맞춘 겁니다. 많이 버는 자, 적게 버는 자. 각자 수입에 맞게, 형편에 맞게 스스로 마음을 정하라는 겁니다.
물론 이것도 강요하는 것은 아니에요. 나는 많이 벌지만, 그래도 더 적게 하고 싶어. 그러면 적게 하면 돼요. 반대로 나는 수입이 적지만, 그래도 많이 하고 싶어. 그러면 많이 하면 됩니다. 바울은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 것뿐이지, 꼭 그대로 따라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감동이에요.
그래서 ‘조지 거스리’ 라고 하는 신학자는 각자 그 마음에 액수를 정했다면,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결정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하여 생긴 마음은 누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그 마음을 주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당연히 내가 정한 액수도 성령께서 감동 주셔서 정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정했으면, 그때부터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돼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7절에, 즐겨 내야 된다 그랬어요.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아멘.
여기서 즐겨 라는 말이 헬라어로 “힐라로스” 라는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의 기쁨을 의미합니다. 욥기 33장 26절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니까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친다는 것입니다. 이 ‘기뻐’ 라는 말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즐겨’ 라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기쁜 것과, 연보를 즐거워하는 것이 같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연보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만큼 즐겁다는 거예요. 남을 돕는 것이 즐겁고, 내가 도울 수 있을 만한 형편이 되는 것도 즐겁고. 연보가 그만큼 즐거운 일이라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지만, 베풀 수 있는 것이 축복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공짜가 없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 8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8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우리가 착한 일을 할 때, 그 일을 넘치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넘치게 주십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내가 남을 위해서 베푸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내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거예요. 남들에게 베풀라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죠.
그런데 얼마나 주시냐면 넘치도록 주셔요. 또 밑에 10절도 보면, 같은 말씀입니다. 10절에 보니까,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아멘.
우리가 심을 것을 주신다는 겁니다. 내가 심을 연보의 씨앗을 하나님이 미리 나에게 주셔요. 조금도 아니고 풍성하게 주십니다. 그리고 심는 것으로부터 의의 열매를 얻게 하십니다. 이 의의 열매는 풍성한 선행, 특히 넘치는 연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공동체에 유익을 가져오는 영적인 결실을 의미합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거든요. 그러니까 많은 연보를 할수록, 나의 신앙이 성숙하고, 공동체가 더욱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물질적인 풍요를 얻을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유익을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핵심은 뭐냐면, 우리가 남을 위하여 베풀 때, 그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15장 1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5장 10절에 보니까,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아멘.
우리가 남에게 베풀 때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반드시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약속이지만, 오늘날에도 효력이 있습니다. 아까 본문 7절에서 말씀했죠.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고,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즐겨 내는 자는 곧 내가 은혜를 받는 것만큼이나 내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에요. 내가 받을 것을 기대하고 내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내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기꺼이 내어놓고, 그것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복을 받는 그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구원의 은총은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주시는 복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을 따라 나의 것을 베풀기로 마음에 정하고, 그 정한대로 즐겨 내는 사람만이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 나의 것을 통하여 이웃을 돕고, 교회를 돕고, 지역사회를 돕고, 이 나라 민족을 도움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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