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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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 영광: 헛된 영광 2. 주님의 영광

Notes
Transcript

지난 주 복습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살펴본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기도는
첫번째로 ‘저희를 보존하여 주옵소서’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시게 되는데, 이 땅에 남아 있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운 손길로 보살핌을 받아서 한 사람도 멸망치 아니하도록,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보전해 주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의 중보는 ‘저희로 내 기쁨을 충만히 가지도록 기도’하신 일입니다.
제자들이 살아갈 세상은 미움을 받는 그런 세상입니다. 심한 고난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 고난과 고통의 세상 한복판에서도 제자들은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오히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도록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세번째로 예수님의 기도는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하신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성속의 이원론적인 시각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거룩이란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사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룩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거룩한 삶이란 빛과 소금의 삶이요, 또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3가지를 통해서 우리가 살펴본 바 있습니다.
네번째로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세상은 어떤 사람에게 또는 시스템이나 조직에 충성하는 것으로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가 된 모습은 아주 강력해 보이고 옳게 보이고 오래 갈 것만 같아서 정말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직폭력배도 공산당도 이단도 하나가 되어 잘 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가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17장의 마지막 중보기도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이제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중보 기도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본문 24절 중간에 보면은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그렇게 기도하셨어요.

이 구절에 보면은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될 궁극적인 삶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라, 세상 영광을 보기를 원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기를 원해요. 왜냐하면 세상 영광은 사람의 눈에 보이고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마치 선악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 영광에 열광해서 저것만 있으면 내 모든 것이 충족될 것 같아서 그것을 누리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또 그것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모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피 터지게 싸우고 있습니다.그렇게 되면은 북이 영화도 누릴 수 있고,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고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고, 사람들이 자기를 칭송하고 높은 자리에 어디 가든지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고 대접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거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고 세상 영광을 구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실제의 삶은 무엇인가 여러분들 사람이 이렇게 영광의 자리로 올라가게 되면은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거짓말도 해야 되고, 누군가를 모함하기도 해야 되고, 누군가를 짓밟기도 해야 되고, 누군가를 죽여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예화

여러분들 우리 한국 역사를 보면은 8살에 왕이 돼가지고 겨우 3년 동안 왕 노릇하다가 죽은 왕이 있어요.누군지 아시죠? 단종이죠. 단종 8살에 왕이 됐어요.3년 만에 죽었어요. 왜 죽었느냐 그의 삼촌이 왕이 되기를 원하는데, 어린 조카가 왕이 돼 있으니까 왕이 될 수가 없잖아요.그래서 그 어린 조카를 정말 비참하게 죽이고 그 자리에 삼촌이 올라가서 왕이 된 거예요.그러니까 이 세상 영광이라는 거는 누군가를 죽이고 짓밟아야 그 자리에 올라가는 거예요.우리 북한의 김정은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기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자기 삼촌을 곡사포로 그냥 죽여가지고 가루도 안 남게 뼈도 못 추리게 죽이고 그뿐 아니라 자기 권력에 방해되는 사람들은 다 총살을 하고 지금 권력을 장악하고 그러고 살고 있어요. 이 세상 영광이라는 것은 이처럼 조카도 죽이고 고모부도 죽이고, 심지어 형제를 죽이고 부모까지 죽이는 일도 가능한 겁니다.이게 세상 영광이에요.

여러분들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비참한 일을 해야 되는데도 그 영광을 추구하는 이유가 뭐냐 그거는 마태복음 4:8 에 보니까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높은 산에 올라가 가지고 천하 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가 이걸 줄 테니까 나한테 절하라 그런 유혹을 했잖아요.여러분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가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천하 만국을 보여주고 천하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영광을 한 번 바라보기 시작하면은 그다음에는 부모도 안 보이고 형제도 안 보이고 그 영광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죽이다가 결국 그 자리에 올라갔는데 자기도 죽음을 당하는 비참한 결과가 있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말씀 마태복음 26:52 절에 보면은 우리 예수님 말씀하셨잖아요.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세상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 검을 쓰는 자는 결국 그 검으로 자기도 죽임을 당하게 되는 비참한 결과가 있을 것을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아마 이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가르쳐주시고 훈련시킨 내용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마태복음 16장 24절 에 우리 예수님 분명히 말씀하셨어요.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그러셨어요.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길, 제자의 길은 이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로 가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그런데 이 시대에 심지어 많은 목사님들이나 교인들이 주님이 말씀하신 십자가의 고난의 길보다는 이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해서 살아갈 때가 너무너무 많아요.

갈라디아서 5장 26절 에 보면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뭐라고 했냐 하면은 헛된 영광을 구하며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라 그랬어요.여기 이 헛된 영광이라고 하는 거는 세상 영광을 말하는 거거든요.갈라디아 교회 안에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헛된 영광, 이 세상 영광을 구하기 위해서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했다 그 말이에요.이 시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심지어 교회 안에서 세상 영광을 구하며 서로 싸우고 서로 투기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마지막 중보 기도로 이 세상 영광이 아니라 나의 영광을 보도록 기도하신 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보기 시작한다면 이 세상 영광은 더 이상 영광으로 보이질 않습니다. 그걸 추구할 마음이 없어져 버립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맛 보았는데, 세상 영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으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세상 영광을 바라보고 있다면은 그건 아직 주님의 영광의 맛을 못 본 사람이다.저는 그렇게 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보지를 못했어요. 왜냐하면은 주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당하신 일이 뭡니까?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예. 그리고 참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은 우리 예수님은 모습은 영광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비천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맛을 못 봤어요.

그런데 마태복음 17장을 보시면 어느 날 우리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갑자기 우리 예수님이 변화를 일으키시면서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휘어지는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를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때 처음으로 예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이 주님의 영광을 본다는 거는 내가 노력해서 보는 게 아니구나.

이 세상 영광은 사람들의 노력에서 얻을 수 있어요. 심지어 죽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 짓밟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수많은 방법,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해서 세상 영광을 잠깐씩 차지하고 누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주님의 영광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주님이 보여주셔야 보는 거예요.내가 보는 게 아니에요. 내가 노력하면 보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보여주셔야 돼요.

주님이 보여주지 않으면 제자들은 주님 보실 때, 주님 볼 때 무슨 느낌이에요?이분은 가난하구나, 이분은 힘이 없구나, 이분은 가은 핍박을 당하는구나 그런 모습밖에 안 보이죠.그래서 우리 주님이 새 제자들을 이끌고 변화산에 올라가서 놀라운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신 거예요.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본 사람이 있습니다. 그걸

여러분들 히브리서에 보면은 11장에 모세에 대해서 나와 있는데 그는 히브리인이지만 아기 일 때 나일강에 광주에 넣어가지고 나일강에 버려졌어요.왜냐하면은 그 당시에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 인구가 너무 많이 늘어나면 안 되니까 히브리인의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다 죽였어요.이 아기를 살리려고 갈대 상자에 담아가지고 나일강에 뛰었는데 그때 이 바로 공주 바로 왕의 딸이죠. 천하의 제국 바로 왕의 딸이 목욕을 하다가 그 광주리가 내려오는 걸 보고 보니까 애기가 들어 있는 거예요.그래서 그 아기를 자기의 아들로 삼고 모세를 궁전에서 호화롭게 왕족으로 키웠어요.

그런데 유모가 누구냐 하면 바로 자기 친엄마가 유모가 돼가지고 너는 히브리인이다.계속해서 가르쳐주면서 이집트인이 아니고 애굽인이 아니고 히브리인인 걸 알게 되었어요.그리고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그는 화려한 세상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사람이 그게 쉽지 않잖아요. 왜냐하면은 사람들은 세상 영광을 원하잖아요.그 호화로운 궁전에서 사는데 왜 그 영광을 버리고 가난한 길로 고난의 길로 가겠어요. 차를 새로 사도 작은 차를 타다가 큰 차를 타면 괜찮지만,

그런데 모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게 있어서 그래요.그게 뭐냐 하면 히브리서 11장 26절 여러분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거기 보면은 모세가 세상 영광을 버리고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로 가게 된 이유가 뭐냐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그랬어요.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바라보는 게 있었습니다. 모세가 바라보았던 상은 금은 모아인가요? 세상의 명예인가요?

그거는 이미 모세가 바로 궁전에서 다 보고 경험한 거잖아요.그걸 버린 사람이에요. 그 금은보화를 버리고 세상에 영광을 다 버린 사람이 또 그런 영광을 추구한다면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그게 아니고 그 바로 궁전에서 볼 수 없었던 세상 영광 가운데 있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상을 바라보게 되었다.그 상이 뭔가 그럴 때에 저는 출애굽기 33장 17절 을 보면은 그 답이 나와 있어요.출애굽기 33장 17절에 보면은 우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상이 뭐냐 하면은 너는 내 목전에서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있다.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상은 하나님의 은총이에요.은총의 상을 받은 거예요.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고 있다.그게 바로 모세가 바라보는 상이라고 저는 생각이 됩니다.근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출애굽기 33장 18절 을 보면 더 놀라운 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여러분들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출애굽기 33장 18절에 보면은 모세가 기도하는데 뭐라고 기도하냐 하면은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니까 지금 모세가 구하고 있는 게 뭐예요?세상 영광이 아니고 주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그 주의 영광을 보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는 세상 영광을 버렸어요.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잖아요.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 이 모세가 세상 영화를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을 보면 죽음을 당하니까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모세를 반석 틈에 이렇게 세우시고, 그리고 내 영광이 지나갈 때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어가지고 그다음에 손을 거두리니 니가 내 등을 볼 것이오.내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은 모세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 죽음을 당하는 거예요.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모세를 바위 틈에 두시고 손으로 덮으셔서 영광이 지원하도록 하시고 그 영광을 바라볼 수는 있게 했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지는 않도록 하신 거예요.그래서 모세는 주님의 영광을 보았던 사람입니다.그 주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세상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이 말이야.

본문 24절에 우리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뭐라고 합니까?아버지께서 창세부터 나를 사랑하사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이 있는데 그것을 저희로 보게 하기를 원합니다.따라서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면 그건 우리의 노력이 아니고 우리 주님이 복 기도하신 결과예요.

그러면은 좀 구체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영광을 볼 수 있는가 본문 24절 다시 보세요.초두에 보면은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있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 그 사람은 반드시 주님 계신 곳에 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영광은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에게서 잘 드러납니다. 그래서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라고 한 것이지요.

그럼 주님 계신 곳이 어딥니까? 제자들은 곧 예수님이 잡혀가시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면은 그 영광을 우리 눈으로 마음껏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 승천하신 그 주님께서는 내 안에도 계시잖아요. 내 마음에 그 주님을 영접하면 그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거예요.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 계신 곳은 내가 주님을 영접한 내 마음이고 그렇게 주님을 모신 사람은 주의 영광을 보게 될 줄로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세상 영광만을 추구하는 이유는 주님의 영광을 본 일도 없고, 주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 그래서 세상 영광이 전부야.

그러다가 그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의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고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서서 그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거예요. 그거밖에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요한복음 1장 14절 우리 요한복음 처음 강의할 때 다 살폈습니다.거기 한번 보세요. 거기 보면은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네.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오.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그랬어요. 여기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잘 보시면 독생자의 영광이라는 말이 여기 나와 있잖아요.그리고 우리가 그 영광을 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분명히 보세요. 요한복음 1장 24절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고 있다고 그랬어요.그러니까 말씀이신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하고 그분을 모시고 살면 우리는 독생자의 영광을 본다 이 말이에요.이 영광을 보는 사람은 마귀가 와서 세상 영광, 천하 만국을 보여주면서 내가 너한테 줄 테니까 나를 경배하라.

여기에 굴복하지 않아요. 주님의 영광을 본 사람이 세상 영광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겠어요?그러니까 저는 예수를 믿는다. 뭐 주님을 섬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보지 않습니다.왜 그런 세상 영광이 보이겠어요? 왜 주님은 있는데도 여전히 세상 영광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겠어요 그렇지 않습니까?주일날 주님 앞에 나오는 예배는 못 나와도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오라고 그러면 당장 달려갈 거 아니에요.

여러분들 우리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나는 주님께 예배하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당신하고 만나는 건 좀 뒤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거예요.저는 오늘 이 주님의 기도가 너무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은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데 주님이 안 계시는데 그들은 주님의 영광이 어디 있어?세상 영광 추구하자. 그래서 저는 이 교회 역사를 보면요.주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그것을 바라보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있고 이 교회 안에 한 교회 안에 여전히 세상 영광을 바라보고 세상 권력을 추구하는 무리가 있어요.여러분 카톨릭의 교황 보세요. 겉으로는 주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세상 권력을 추구하고 있어요.그래서 이 서양 역사를 보면 교황권과 세속의 왕권이 충돌하는 일들이 많아요.왜 서로 권력을 차지하고 서로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아직도 그 전통을 못 벗어나고 있는 거예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 마음에 모셨기 때문에 주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그리고 그 영광은 점점 분명해지고 뚜렷해질 것입니다.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는 우리 눈으로 환하게 그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그날이 올 때까지는 주님의 영광의 맛을 본 자로서 세상 영광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기도처럼 주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소망 가운데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저와 여러분들이 이렇게 사시다가 언젠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그 영원한 영광 속에서 기뻐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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