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4:1-5 신0820)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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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회사에서 승진이 결정되는 순간을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선택받을까요? 대부분 능력 있는 사람, 성과를 많이 낸 사람, 눈에 띄게 자신을 어필한 사람이 선택받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잘하는 사람, 찬양을 잘하는 사람, 큰 헌금을 하는 사람들이 주목받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측정 가능한 것, 드러나는 결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평가할 때도 이런 기준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것임을 배웠습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 심지어 세상이나 생명이나 사망까지도 우리 것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일꾼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대답은 충격적입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능력이 아니라 충성입니다. 성과가 아니라 신실함입니다.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직함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청지기의 정체성 - 주인이 아닌 관리자로서의 삶 (1-2절)
청지기의 정체성 - 주인이 아닌 관리자로서의 삶 (1-2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여기서 일꾼은 갤리선의 맨 아래층에서 노를 젓는 종을 의미합니다. 선장의 북소리에 맞춰 묵묵히 노를 젓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교사라고, 지도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갤리선의 노 젓는 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정체성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즉 청지기입니다. 큰 집의 주인이 자신의 재산과 살림을 전권위임하여 관리하게 하는 자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전적인 신뢰를 받는 위치에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는 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내 능력과 은사, 시간과 기회, 심지어 내 생명까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주인 행세를 합니까? 내 은사를 자랑하고, 내 수고를 내세우고, 내 성과에 도취됩니다. 마치 모든 것이 내 소유이고, 내가 만들어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서 '충성'이 핵심입니다. 이는 단순한 성실함을 넘어서는 개념입니다. 믿을 만하다는 뜻이고, 신실하다는 뜻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미쁘심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미쁘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변함없으시고, 약속을 지키시고, 끝까지 신실하신 분입니다.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충성은 바로 그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는 화려한 실적이나 남들의 인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한결같이 맡은 일을 감당하는 믿음의 자세, 결과에 상관없이 끝까지 신실하게 서 있는 마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기억하십시오. 주인이 칭찬한 것은 많이 남긴 종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도,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를 남긴 종도 똑같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성과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충성입니다.
판단의 주권 - 사람의 평가가 아닌 주님의 심판 (3-5절)
판단의 주권 - 사람의 평가가 아닌 주님의 심판 (3-5절)
"내게는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매우 작은 일이라"
이 말씀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판단을,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매우 작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말씀입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자기 자신조차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책임한 태도일까요? 자기성찰이 없는 교만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판단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깊은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여 살아갑니까? 상사의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고, 동료의 시선에 위축되고, 작은 인정에도 자존감이 흔들립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염려하며 위축되거나 과시하려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그 모든 평가와 판단이 "매우 작은 일"이라고. 왜 그럴까요?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판단의 최종 주권자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은 한계가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당장의 결과만 보고, 드러난 것만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하나님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동기를, 숨겨진 수고를, 은밀한 헌신을 다 보고 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내 마음이 진정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꿰뚫어 보시는 분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위해 흘린 눈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섬김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묵묵한 헌신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그것들이 어둠에 감춰져 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다 드러날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들 앞에서 화려하게 드러나는 것들이라도, 만약 그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면, 마음의 뜻이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 역시 주님 앞에서는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에 각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으리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각 사람이"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은 상대평가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더 잘해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맡겨진 것에 대해 얼마나 충성했는가, 그것이 유일한 기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누가 더 많이, 더 크게, 더 화려하게 하는가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맡기신 것에 대해 각자의 충성도를 보십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다섯 달란트에 대한 충성을,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두 달란트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실 뿐입니다. 그리고 둘 다 똑같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 온 가치관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할 때입니다.
믿음과 신실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미쁘시듯이, 우리도 주의 일을 믿음으로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충성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성과와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합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화려하게를 외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충성과 변함없는 신실함 위에 세워집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나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어. 남들처럼 큰 은사도 없고, 화려한 섬김도 하지 못하고..."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남과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만 맡겨주신 그 고유한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이 맡겨졌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묵묵히 뒤에서 섬기는 일이 맡겨졌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몸이 불편한 이들을 돌보는 일이 맡겨졌을 것입니다.
크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화려함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알아보는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그 일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분량에 따라 맡겨지는 일도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분량에 대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맡겨진 그 작은 일, 그 숨겨진 섬김, 그 묵묵한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값진 충성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사람의 판단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때로는 오해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잠시 감춰져 있을 뿐입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신실하게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의 충성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날까지, 오늘 하루도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한 청지기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