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17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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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ekiel 18:21–32 NKRV
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25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26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27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29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요즘 청년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수저 계급론'이 있습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죠. 태어난 환경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어찌 보면 굉장히 슬픈 운명론입니다. '우리 부모님이 이래서', '내가 자라온 환경이 이래서', '과거에 내가 그런 실수를 해서' 내 인생은 이미 정해진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생각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오늘 우리가 읽은 에스겔서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도 팽배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런 속담이 유행했습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 (겔 18:2) 이게 무슨 말일까요? 조상들이 죄를 지어서, 우리 세대가 이렇게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고통받고 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조상 탓'입니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편리한 변명이지만, 동시에 모든 희망을 앗아가는 끔찍한 절망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런 절망적인 운명론에 갇혀 있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폭탄과도 같은 선언을 하십니다. "아니, 그건 진리가 아니다. 너희의 운명은 정해지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리셋 버튼'이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과거에 얽매여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주시는 이 놀라운 '리셋 버튼'의 비밀을 함께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1. 시대적 배경과 원뜻: 절망의 땅에서 외친 하나님의 공의

먼저, 이 말씀이 선포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시대적 배경: 이때는 남유다가 바빌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한 직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 낯선 땅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나라도 잃고, 성전도 파괴되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암흑기였죠.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고, 이 모든 불행이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체념하며 살았습니다. 바로 이 절망의 한복판에서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입니다.
하나냐라는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선포하였지만 예레미야 28:16에 하나냐의 죽음을 선포하였다. 예레미야 28:16
Jeremiah 28:16 NKRV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Jeremiah 28:17 NKRV
17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은 이 '신 포도' 속담을 정면으로 반박하십니다.
Ezekiel 18:4 NKRV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이것은 무서운 말씀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엄청난 해방의 선언입니다. 더 이상 조상 탓, 환경 탓하며 주저앉아 있지 말라는 겁니다. 너의 인생은 너의 선택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각자의 삶에 대해 책임을 물으시는 공의로운 분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2.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 '돌이키다'(שׁוּב)

하나님께서는 이 개인적인 책임을 두 가지 극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하십니다.
첫째, 악인의 '리셋'입니다. (21-23절) 21절을 봅시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돌이켜 떠나'**입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슈브'(שׁוּב)**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후회한다' 정도의 뜻이 아닙니다. 가던 길을 완전히 멈추고, 180도 돌아서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완전한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삶의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죄'에서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슈브'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우리의 과거 기록을 그냥 덮어두시는 게 아니라, 아예 '삭제'해 버리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인생의 리셋 버튼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하실까요? 23절이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길에서 멸망하는 것을 보며 고통스러워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둘째, 의인의 '경고'입니다. (24절)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평생 의롭게 살던 사람이라도, 그가 '돌이켜' 의를 버리고 죄를 따라 살면 과거의 의로움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경고를 줍니다. 우리의 신앙은 과거의 업적이나 경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닙니다. '나 왕년에 교회에서 봉사 좀 했어', '나 어릴 때 주일학교 개근상 탔어' 이런 것들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박제된 트로피가 아니라, 살아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3. 불공평하다는 외침, 그리고 새로운 마음

이 말씀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25절을 보면,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라고 불평합니다. '아니, 평생 악하게 산 사람이 마지막에 회개했다고 천국 가고, 평생 착하게 산 사람이 마지막에 실수했다고 지옥 가는 게 말이 됩니까? 그거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라고 항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도 품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25절)
하나님의 공평은 우리가 생각하는 '산술적인 공평'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공평은 **'생명을 향한 열망'**에 기초합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든,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으로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3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니요? 이게 우리 힘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마치 더러워진 내 심장을 내 손으로 꺼내서 깨끗하게 씻은 다음 다시 집어넣으라는 것처럼, 불가능한 명령처럼 들립니다.
맞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새로운 마음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구약의 한계를 느끼고, 신약의 복음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에스겔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필요성을 알려주지만, 그 '어떻게'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 해답은 에스겔서의 다른 장, 그리고 신약성경에 나옵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Ezekiel 36:26 NKRV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치르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우리가 '슈브', 즉 돌이키기로 결단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위대한 '리셋'을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므낫세 왕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왕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온갖 우상을 숭배하고, 자기 아들을 불살라 제물로 바치고,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렸습니다. (열왕기하 21장) 그의 죄악은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 정도였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삭제' 외에는 답이 없어 보였습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 왕의 아들로서 55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주전 697–642년).
그는 남유다 왕들 중 가장 오래 통치했지만, 동시에 가장 심하게 우상을 숭배한 왕이었습니다.
산당을 다시 세움(왕하 21:3).
바알과 아세라 숭배.
심지어 성전 안에 이방 신상을 세움.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하는 인신제사까지 행함.
성경은 그를 가리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보다 더 심하게 행하였다”(왕하 21:9)라고 평가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므삿세를 징계하셨다. 역대하 33:11
2 Chronicles 33:11 NKRV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그러나 그가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 쇠사슬에 결박당하는 최악의 절망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며 '슈브', 즉 돌이킵니다.
2 Chronicles 33:12 NKRV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역대하 33장)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 Chronicles 33:13 NKRV
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위를 되찾게 하셨습니다. 최악의 악인도 돌이킬 때,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결론 및 적용: 당신의 '리셋 버튼'을 누르십시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합니다. 당신의 과거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환경이 당신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리셋 버튼'이 있습니다.
어떤 죄악 속에 빠져 있습니까?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악인이라도 '슈브', 돌이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혹은, 과거의 신앙생활에 안주하며 교만해져 있습니까? '나 정도면 괜찮은 크리스천이지'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신앙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향해 돌이켜 서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당신의 '리셋 버튼'을 누를 시간입니다. 어떻게 누를 수 있을까요?
나를 묶는 '신 포도'를 인정하십시오. "부모님 탓에...", "환경 때문에...", "과거의 상처 때문에..." 내 삶을 운명론에 가두고 있는 핑계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선포하십시오. "나의 정체성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됨에 있습니다."
'슈브'(שׁוּב), 삶의 방향을 바꾸십시오. 구체적으로 돌이켜야 할 죄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음란한 생각, 미워하는 마음, 게으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세상의 가치들... 그 자리에서 일어나 180도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십시오. 회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결단입니다.
새 마음을 구하고, 믿음으로 받으십시오.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 힘으로는 이 굳은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제게 새 영과 새 마음을 부어주세요. 성령으로 저를 완전히 새롭게 해주세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32절은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이 담긴 최종 선언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제발 돌이켜서 살아다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절한 외침입니다. 과거의 실패와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은 '흙수저'로 끝날 운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는 언제나 인생을 역전시킬 '리셋 버튼'이 있습니다. 오늘 그 버튼을 누름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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