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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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현재와 미래
본문: 고후 5.1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For we know that if our earthly house of this tabernacle were dissolved, we have a building of God, an house not made with hands, eternal in the heavens.
오늘 읽게될 5장 1-11절까지의 본문은
인간의 몸, 즉 우리 혼이 거주하는 이 일시적인 육체의 상태와
이 육체를 떠난 후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5장을 이해하기 위해 배경이 되는 구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고후4:16)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For which cause we faint not; but though our outward man perish, yet the inward man is renewed day by day.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For our light affliction, which is but for a moment, worketh for us a far more exceeding and eternal weight of glory;
(고후4:18)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하니라.
While we look not at the things which are seen, but a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for the things which are seen are temporal; bu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are eternal.
아마도 우리 중 누구라도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일 겁니다.
잠깐의 것들에 우리의 주의를 빼앗기지 않는 것은 큰 도전입니다.
“... 줄 우리가 아느니라.”
이 구절을 읽은 사람은 이전에는 몰랐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모른다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순간 성령께서 바울에게 주셨던 지식에
우리가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
물론, 만약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께서 공중 재림하시면
우리의 육체가 해체되는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처럼,
그들의 육체를 떠나는 동일한 과정을 겪게 될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세상에 들여오고,
죄로 인해 죽음이 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 3:19)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지으셨고,
흙으로부터 우리가 살아가고 움직이는 육체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육체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시고 나면,
이 육체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몸은 내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 몸을 '이 땅에 있는 장막 집' 이라고 부릅니다.
이 몸이 집이라면, 이 몸은 내가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거하는 장소입니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을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사간 것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했던 구원받은 자들이 죽으면,
그것은 죽어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집이 철거되고 세로운 곳으로 이사를 간 것입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제 혼이 거할 육체가 있었듯이,
하늘에서도 제 혼이 거할 몸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방금 여러분이 읽으신 말씀입니다.
이 몸은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닙니다.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몸은 공장에서 생산된 모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중에서 형성하신 것입니다. (시139편)
하지만 이 몸은 죄로 인해 이 몸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육체 속에 살고 있는 동안,
내가 나중에 거하게 될 또 하나의 집을 짓고 계십니다.
그 집은 지금의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영원한 거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돌던 때를 생각해 보세요.
1절의 표현을 보세요: "이 땅의 장막 집" 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들은 장막, 즉 임시 거처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단지 몇 개의 기둥과 동물 가죽으로 이루어진 거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약속의 땅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거대한 돌로 지어진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금으로 덮이고, 장식으로 꾸며져,
다른 어떤 건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장막 속에 있습니다.
몇 개의 뼈대에 낡아가는 살과 피부를 걸쳐 놓은,
오래 유지될 수 없는 임시처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도착하면,
우리는 비할 수 없이 더 좋은 영원한 처소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고후5:2)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For in this we groan, earnestly desiring to be clothed upon with our house which is from heaven:
자, 여기서 엄청난 축복이 있습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이 육체에 나타나는 고통, 통증, 골절, 질병 등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도 역시 이 육체 안에서 신음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몸을 붙듭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든 기적의 치료법을 찾으려 합니다.
그들의 모든 노력은 자신의 몸을 좀더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이 시간이 끝나는 그 즉시,
어디로 가게 될지 너무나도 분명히 알고 있고,
그리고 그곳이 얼마나 놀라운 곳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음조차도 소망 가운데 있는 신음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을 간절히 사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적으로 끝까지 살기 위해 싸웁니다.
우리의 육체는 살기 위해서 끈질기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원래 죽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의 희망을 붙들고 있는 반면,
믿는 사람은 항상 바래왔던 소망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고후5:2)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For in this we groan, earnestly desiring to be clothed upon with our house which is from heaven:
(고후5:3)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If so be that being clothed we shall not be found naked.
이제 아담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수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했을 때,
그는 자신이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일부만 덮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자신들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고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가죽옷으로 온전히 덮였습니다.
이제 그는 그의 벌거벗음을 덮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읽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몸은 당신의 혼을 덮는 옷이다.”
저는 신음하지 않고 아프지 않는 몸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짓지 않고 욕망에 빠지지 않는 몸을 원합니다.
(고후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For we that are in this tabernacle do groan, being burdened: not for that we would be unclothed, but clothed upon, that mortality might be swallowed up of life.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큰 물고기가 와서 작은 물고기를 먹는 모습은
우리가 생선을 발라 먹듯이 조금씩 씹어 먹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입안으로 삼켜버립니다.
만약 제가 땅에서의 마지막 5분을 보내는 중이라면,
제가 쓰러지고 곧 숨이 멎게 될때,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저 안에 있던 혼이 무언가에 의해 순식간에 삼켜지게 됩니다.
제 혼은 지금 이 몸 안에 있었다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몸 안으로 순식간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제 혼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다른 몸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그 몸은 병들지 않고, 욕망에 빠지지 않고, 신음하지 않으며,
싸우거나 유혹과 악을 대적할 필요가 없는 몸입니다.
그 몸에는 아담의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후5:4) ...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 that mortality might be swallowed up of life.
(고후5:5)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다듬으시고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Now he that hath wrought us for the selfsame thing is God, who also hath given unto us the earnest of the Spirit.
하나님께서 이 몸을 태중에서 형성하셨습니다. (시편 139편)
이 구절을 올바르게 읽어본다면,
하나님께서 이 몸을 단지 태중에서 나와서 이 땅에서 걸어 다니다가
죽도록 만드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몸 안에 있는 혼을 구원하시고,
그 혼에 성령을 주어 구속의 날까지 인치시며,
결국 그 혼을 하늘로 데려가 자신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을 만드신 이유입니다.
어떤 “영원한 정죄의 선언”을 이 구절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고후5:5)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다듬으시고 ...
Now he that hath wrought us for the selfsame thing is God, ...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죄가 가져온 죽음을 극복하시고,
우리 안에서 거듭나게 하시는 능력을 통해
결국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즉,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되었을 상태처럼 말입니다.
(고후5:5) ...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 who also hath given unto us the earnest of the Spirit.
“보증” 이라는 말은 계약금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나쁜 습관과 나쁜 언어구사,
쉽게 분노하는 감정들을 성령님께서 고치고 없애주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보증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내가 바뀐 것들을 통해
내가 언젠가는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꿔낼 수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당신 안에서 일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결국 당신을 예수님처럼 완전하게 변화시키실 수 있음을
보이는 증거입니다.
(고후5:6) 그러므로 …
Therefore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죄 없는 상태로
그의 임재 안에서 살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고후5:6) … 우리가 항상 확신에 차서 우리가 몸 안에서 집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로부터 떨어져 있는 줄을 아노니
… we are always confident, knowing that, whilst we are at home in the body, we are absent from the Lord:
몸 안에서 집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로부터 떨어져 있는 줄을 아노니
제가 이 몸에 머물러 있는 동안,
저는 어디엔가 있고, 예수님은 다른 어딘가에 계십니다.
제가 이 몸에 있는 한,
저는 아직 하나님께서 저를 데려가실 그곳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왜 이게 중요한가요?
많은 종교들이 말하기를,
“기도를 통해 오래된 본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다른 말로, 우리가 완전히 성화되어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루게 될 완전한 성화는
죽음의 문을 통과하거나 휴거를 경험하기 전에는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확신합니다.
그 확신은 나로 하여금 죄 짓고 싶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죄를 지었을 때 계속 나아가게 해줍니다.
내가 죄를 지었을때 내가 병들고, 몸이 부서졌을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의심을 하지 않게 만듭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 몸이 나의 집입니다.
만약 당신이 21살이라면,
오늘 거울 앞에 서서 여러분의 몸에 만족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45살이나 50살 즈음이 되면,
집을 고치고 유지하기 위해서 비용이 들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몸을 떠나야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다치거나,
교회에서 소중한 사람이 죽음의 문을 통과하더라도,
저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고후5:7)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For we walk by faith, not by sight:)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고난의 삶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까?
이 땅에 머무는 동안 구원받은 사람이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죄로인해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몸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일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성경에서 말한 것과는 다르게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성경에서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 소망이 우리를 하늘나라까지 인도해 줄 것입니다.
(고후5:8)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We are confident, I say, and willing rather to be absent from the body, and to be present with the Lord.
이건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리입니다.
(엡5.29)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 육체를 미워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양육하고 소중히 여기기를 주께서 교회에게 하신 것 같이 하나니
For no man ever yet hated his own flesh; but nourisheth and cherisheth it, even as the Lord the church: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 네가 아프면, 낫기 위해 노력하길 원하신다.
- 네가 다치면, 그 상처를 치료하려 애쓰길 원하신다.
- 네가 문제를 겪으면,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를 원하신다.
몸을 아끼고 건강을 지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음으로 걷고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따라 살고 있다면,
네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그곳으로 가는 걸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기꺼이 그곳으로 가고 싶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1:21)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말하죠:
“그는 더 좋은 곳에 가 있습니다.”
그럼 그곳에 가고 싶습니까? 라고 물으면 오늘은 아니라고 말할겁니다.
(빌1:22) 그러나 내가 육체 안에 산다면 이것이 내 수고의 열매이니라.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택할지 알지 못하노니
But if I live in the flesh, this is the fruit of my labour: yet what I shall choose I wot not.
(빌1:23)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느니라.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
For I am in a strait betwixt two, having a desire to depart, and to be with Christ; which is far better:
(빌1: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해 더 필요하니라.
Nevertheless to abide in the flesh is more needful for you.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정말로 하늘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또한 여기에 머물고 싶기도 합니다.”
하늘이 더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을 더 좋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바울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 “나는 몸을 떠나 황금 거리와 천사들를 보고 싶다.”
“나는 하나님 앞에가서 궁금한 것을 다 물어보고 싶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을 기대한다.”
우리의 소망은 장소(location)가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인격(Person),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기다리던 것이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 그게 하늘의 핵심입니다.
(고후5:9)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있든지 떨어져 있든지 그분께서 받아 주시는 자가 되려고 수고하노라.
Wherefore we labour, that, whether present or absent, we may be accepted of him.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일하고 싶다, 일하고 싶다, 계속해서 일하고 싶다.”
그 이유를 10절에서 설명합니다:
(고후5:10)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that every one may receive the things done in his body, according to that he hath done, whether it be good or bad.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몸 안에 있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살피십니다.
그 결과, 우리가 했던 선한 일들에 대해 상을 받을 수 있고,
악한 일들은 불타 없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은 것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불에서 타버릴 것이다.”
(고전3:12-15)
우리가 죽으면 이 땅에서 행했던 일들을 모두 가져가서 평가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현재의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을 때,
그곳에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자, 내가 너를 구원한 이후에 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펴보자.
내가 너에게 준 손과 눈과 재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한번보자
이제 그것들을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는지,
악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는지 알아보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를 저울질하여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영원한 보상입니다.
(고후5:11) 그런즉 우리가 주의 두려움을 알므로 사람들을 설득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께 밝히 드러났고 또 너희 양심에도 밝히 드러난 줄로 나는 확신하노라.
Knowing therefore the terror of the Lord, we persuade men; but we are made manifest unto God; and I trust also are made manifest in your consciences.
이제 이 말씀이 문맥 속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분명한지 보이시죠?
“나는 구원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주의 두려우심(the terror of the Lord)” 앞에 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은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구원받기전에는
여러분은 예수님이 아닌 여러분 자신을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던지실 분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자신의 모습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 두려움이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께 이끌어 간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나아간 이유는
“그분과 함께 정원에서 걷고 속삭이며 동행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단지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일에 수고하는 이유는
우리는 주의 두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지옥에 갑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나는 보상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구원을 얻기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예수님께 빚진자 이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예수 없이 죽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고후5:11) … 우리가 하나님께 밝히 드러났고 …
… we are made manifest unto God; …
"드러난다" 는 것은 "보이게 되다, 분명하게 나타나다" 라는 뜻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보십니다.
내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며,
나는 하늘나라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보십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후5:11) ... 또 너희 양심에도 밝히 드러난 줄로 나는 확신하노라.
... and I trust also are made manifest in your consciences.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같은 것을 보게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걸 아십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통해 그걸 볼 수 있느냐?”
하나님께 드러난 그 진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드러난 그 진리가, 즉
“내가 하늘나라의 시민이고, 나는 거기에 가는 것이 기대되고,
나는 그곳이 너무나 좋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 진리가 고린도 사람들에게도, 낮은마음침례교회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여러분이 거주하는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도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몸이 그 사명을 다 마치면, 우리는 이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게 바로 기독교의 위대함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때는 지금의 몸을 가지고 살지만,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광스러운 곳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곳이 어떤 모습일지 여러분 나름대로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상을 하던
그곳에 도착하면 여러분의 상상과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여러분이 그 "저택"을 어떻게 생각하든,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이 낡은 몸에 비해
정말 놀라운 업그레이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