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겨진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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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벌거벗겨진 예수님
본문: 요 19.23-24
(요19.23) ¶ 그때에 군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분의 옷들을 취해 네 몫으로 나누어 각 군사가 한 몫씩 차지하며 그분의 겉옷도 취하였는데 이제 이 겉옷은 이음새 없이 위에서부터 통째로 짠 것이더라.
¶ Then the soldiers, when they had crucified Jesus, took his garments, and made four parts, to every soldier a part; and also his coat: now the coat was without seam, woven from the top throughout.
(요19.24)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들끼리 이르되, 우리가 그것을 찢지 말고 그것이 누구의 소유가 될지 정하기 위해 그것을 두고 제비를 뽑자, 하니 이것은, 그들이 자기들끼리 내 옷을 나누며 내 겉옷을 두고 제비를 뽑았나이다, 하시는 성경 기록을 성취하려 함이더라. 그러므로 군사들이 이 일들을 행하였더라.
They said therefore among themselves, Let us not rend it, but cast lots for it, whose it shall be: that the scripture might be fulfilled, which saith, They parted my raiment among them, and for my vesture they did cast lots. These things therefore the soldiers did.
우리 눈에 보기 좋아 보이는 것들
(창3.6)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이므로 그녀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그가 먹으니라.
And when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make one wise,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gave also unto her husband with her; and he did eat.
우리는 항상 자신의 직관에 의지해서 무엇인가 좋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앞에 놓인 열매는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특히 킹제임스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책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이것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이 생각하는 논리로
이렇게 하는게 뭐가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여러분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눈이 열리고 보게 된 것
(창3.7)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리매 그들이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앞치마를 만들었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aprons.
그들의 눈이 열렸고,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들은 그 전에도 벌거벗은 상태였는데,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후 벌거벗음이 부끄럽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무화과잎으로 작은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창3.8) 그들이 그 날 서늘한 때에 동산에서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 앞을 떠나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으매
And they heard the voice of the LORD God walking in the garden in the cool of the day: and Adam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God amongst the trees of the garden.
(창3.9)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니
And the LORD God called unto Adam,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창3.10) 그가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거늘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창3.11) 그분께서 이르시되, 네가 벌거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타락의 첫 번째 결과는 이것입니다.
남자가 벌거벗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었고,
여자가 벌거벗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무언가를 했는데
하나님이 등장하시는 순간,
곧바로 자신들이 한 행위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인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신다거나, 목사님이 나타나셨을때
“아, 이건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느낀다면,
그 일은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아담과 이브 앞에 하나님이 오셨고,
그분의 임재가 모든 상황을 바꿔놓았습니다.
부드럽고 우아함을 잃어버린 딸
(사47.1) 오 바빌론의 처녀 딸아,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오 갈대아 사람들의 딸아, 왕좌가 없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부드럽고 우아하다고 불리지 아니하리라.
Come down, and sit in the dust, O virgin daughter of Babylon, sit on the ground: there is no throne, O daughter of the Chaldeans: for thou shalt no more be called tender and delicate.
오늘날 여성들이 속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일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여인들은 이제 더이상 여자를 부드럽게 묘사하고
우아하게 여기는 것을 범죄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허락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딸, 또 그 딸에게
‘부드럽고 연약한 존재’라는 복을 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 일하러 가라
(사47.2) 맷돌을 가져다가 곡식을 갈며 네 머리 단을 드러내고 다리를 드러내며 넓적다리를 드러내고 강들을 건너라.
Take the millstones, and grind meal: uncover thy locks, make bare the leg, uncover the thigh, pass over the rivers.
이전에 그녀는 왕좌에 앉아 있었고, 부드럽고 연약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다움을 원하지 않았고, 남성다움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좋다, 그럼 일하러 가라. 맷돌을 돌리며 살라."
성경적인 역할을 인정하지 못하고 여자가 여자 다움을 버리려고 하면,
여자는 남편의 역할을 빼앗게 되고 남자가 가정을 다르실 수 없게 되고
남편은 가정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여자가 남자의 역할을 대신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넓적 다리는 드러내지 말라
(사47.3) 네 벌거벗은 것이 드러나고 참으로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이리라. 내가 원수를 갚되 사람으로서 너를 만나지 아니하리라.
Thy nakedness shall be uncovered, yea, thy shame shall be seen: I will take vengeance, and I will not meet thee as a man.
(사47.4) 우리의 구속자로 말하건대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그분의 이름이니라.
As for our redeemer, the LORD of hosts is his name, the Holy One of Israel.
여성이 ‘부드럽고 연약한’ 자리에서 떨어져 나갈 때
그녀가 취하게 되는 일은 ‘자기 넓적다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공공장소에서
허벅지를 드러내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패션 잡지가 그들의 삶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선포하고 있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제시하는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의 기준이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합당한 옷차림으로 복된 삶을 살도록 알려주실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떠나
음란한 문화를 조성하는 연애인이나 모델을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창녀의 삶을 본받아가며 살게 될 것입니다.
벌거벗음으로 멸시를 받게 됨
(애1.8) 예루살렘이 심하게 죄를 지었으므로 옮겨졌도다. 그녀를 존귀히 여기던 모든 자들이 그녀의 벌거벗음을 보았으므로 그녀를 멸시하는도다. 참으로 그녀가 탄식하며 뒤로 물러가는도다.
Jerusalem hath grievously sinned; therefore she is removed: all that honoured her despise her, because they have seen her nakedness: yea, she sigheth, and turneth backward.
이것이 성경의 관점입니다.
출근할 때 가슴이 절반쯤 드러난 옷을 입고
남성들에게 존중받기를 기대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살을 노출하고 직장에 나타났다가,
당신이 원하던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가 그 유혹에 반응했을 때,
당신은 그 남자를 고소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 오를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은 결국 이 여자를 멸시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을 싸구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과감한 노출로 시선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사람들의 좋은 환심을 사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여자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여자는 욕이나 저질 스러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연약한 존재로 내가 도와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여자들은 존중받아야 하고, 문을 열어주어야 매너있는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자신의 몸을 드러내며, 남자와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요?
한 나라의 모든 남자들이 그 나라의 여자들을 멸시하게 되었고,
더 이상 존중하지 않게 되었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진영을 이루어 다툽니다.
남자가 여자 경기에 참여한다면
남녀 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이제 남자가 여자 운동 종목에서 경기를 같이 합니다.
여자 복싱선수와 남자 성전환자가 같이 싸웁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남자 농구 여자 농구를 따로 만들 필요도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여자를 남자와 ‘같은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고,
남자와 ‘같은 여자’와 결혼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금 모든 여자가 거의 다 벗고 다니고, 모두 노출하고,
모두 레깅스를 입고 다닌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여성의 가치는 점점 낮아지게 되고 아무 존중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여자들은 점점 남자들의 존중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변태적인 음란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언젠가 나는 동성애자 같다는 고백을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여자가 지겨워진 것이고, 그다음엔 남자도 지겨워질 겁니다.
그리고 결국 당신은 아이들을 건드리기 시작할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감추고 다니라고 한 것들을 드러내고 다녔기 때문에
여라들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벌거벗음을 모르는 사람들
(계3.17) 이는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내가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면서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Because thou sayest, I am rich, and increased with goods, and have need of nothing; and knowest not that thou art wretched, and miserable, and poor, and blind, and naked.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자신이 벌거벗었는지도 모른다.”
미스 코리아 대회, 운동 선수들의 옷차림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벗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본질적 이유는 TV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계3.18)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너는 내게서 불로 정제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고 또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며 또 네 눈에 안약을 발라 볼지니라.
I counsel thee to buy of me gold tried in the fire, that thou mayest be rich; and white raiment, that thou mayest be clothed, and that the shame of thy nakedness do not appear; and anoint thine eyes with eyesalve, that thou mayest see.
주께서 여러분이 아담과 이브처럼 내게 오기만 한다면,
내가 너희들을 위해 옷을 마련해 주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네 시야도 더 명확해질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오면 너희를 벌거벗은 채로 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무덤 속에서 귀신 들린 사람
너는 무덤 속에서 귀신 들려 뛰놀던 그 사람과는 다르다.
(막5.1-5) (눅8.26-29)
그는 무덤 사이를 뛰어다니며,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고,
완전히 현대적인 차림, 즉 나체 상태로 다녔습니다.
누구도 그를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자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심리 세미나나 정신과 상담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옷을 입으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상황을 통제하자마자 그는 옷을입고 앉아있게 됩니다.
아내를 버려야 하는 호세아
(호2.1) 너희 형제들에게는 너희가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Say ye unto your brethren, Ammi; and to your sisters, Ruhamah.
(호2.2) 너희 어머니와 변론하고 변론하라.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도 그녀의 남편이 아니니라. 그런즉 그녀가 자기 눈앞에서 행음을 버리게 하고 자기 젖가슴 사이에서 간음을 버리게 할지니라.
Plead with your mother, plead: for she is not my wife, neither am I her husband: let her therefore put away her whoredoms out of her sight, and her adulteries from between her breasts;
한 남편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 입니다.
> “너희 어머니는 이제 내 아내가 아니다.
> 그녀는 나가서 음행하는 여인이 되어버렸다.”
호세아는 그런 상황을 직접 겪어야 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가정이 점점 늘어가고 세상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스니다.
(호2.3)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녀를 벌거벗기고 그녀가 태어나던 날에 했던 것 같이 그녀를 볼거리로 세우며 또 그녀를 광야같이 되게 하고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마름으로 그녀를 죽이리라.
Lest I strip her naked, and set her as in the day that she was born, and make her as a wilderness, and set her like a dry land, and slay her with thirst.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너의 인생에서 나를 원치 않는 구나! 삶에서 나를 지우고 살고 있구나?”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결국 너는 결혼의 거룩함과 영원한 기쁨을 잃어버릴 것이며,
네 몸은 온 세상 앞에 노출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너를 진심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난 그 교회를 떠나고 싶어요. 그 설교 듣기 싫어요.”
> “그 규칙들은 나를 너무 속박해서 싫어요”
결국 자신을 최저 수준으로 낮추고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만이 여러분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기쁨과 평안과 만족을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어 하는 그리스도인 일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크리스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눈에 긴 치마를 입은 여인이
이상해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술과 담배에 빠져있고 당신 곁에는 남자도 없고,
아이들은 보육원에 빼앗기고 술집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그리스도인 여인이 이상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벌거벗었을 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거부했을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거룩하신 분이 벗겨짐
(막15.21)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에서 와서 지나가매 그들이 그에게 억지로 그분의 십자가를 지게 하고
And they compel one Simon a Cyrenian, who passed by, coming out of the country, the father of Alexander and Rufus, to bear his cross.
(막15.22) 그분을 골고다라 하는 곳으로 데려가는데 이것을 번역하면 해골의 장소라는 뜻이라.
And they bring him unto the place Golgotha, which is, being interpreted, The place of a skull.
(막15.23) 그들이 몰약을 섞은 포도즙을 그분께 주어 마시게 하였으나 그분께서 그것을 받지 아니하시더라.
And they gave him to drink wine mingled with myrrh: but he received it not.
(막15.24) 그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분의 옷들을 나눌 때에 저마다 어느 것을 가질지 정하려고 그 옷들을 놓고 제비를 뽑더라.
And when they had crucified him, they parted his garments, casting lots upon them, what every man should take.
이들이 그의 옷을 두고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그의 몸에서 옷을 벗겼다는 의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부끄럽게 하신 거룩하신 분이 바로 이분입니다.
바벨론과 갈대아 사람들의 여성들에게서 부드럽고 우하한 아름다움을 잃고
자신을 드러내는 뻔뻔한 모습이 되었을 때
그들을 책망하신 그 거룩하신 분이 바로 이분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서 문을 두드리시며
“내가 들어가 너를 입히겠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 바로 이분입니다.
그들은 그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군사들에 의해 완전히 옷이 벗겨져, 자신의 어머니 앞에서 매달려 계십니다.
이것은 도덕적 양심이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가장 극단적인 수치의 행위입니다.
누군가 침을 뱉고, 몸에다 채찍을 때리고 수염을 뽑는 일도
견디기 힘들 일들이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거 벗겨지는 것을
참으로 견디기 힘든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그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 앞에 벌거벗겨지셨습니다.
왜 그렇게 당하게 두셨을까요?
왜냐하면 그분이 그렇게 낮아지셔야,
그분이 그 창녀를 들어 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낮아지셔야, 음녀를 들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낮아지셔야, 여장을 한 남자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간이 타락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분의 수치는 인간의 가장 깊은 타락까지 도달했기에,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혼들을 구원해 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러고 다닐 수 있어! 부끄럽지 않나!”
하지만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그 만큼 멀리 멀어지셨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아담아, 가만히 있으라.
> 내가 너를 위해 옷을 만들겠다.”
> “이브야, 가만히 있으라.
> 내가 너를 위해 가리개를 만들겠다.
> 내가 너희를 이런 상태로 내보낼 수는 없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이십니까!
이제 성경 세 곳을 보겠습니다.
(겔16.1) 주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Again the word of the LORD came unto me, saying,
(겔16.2) 사람의 아들아,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자기의 가증한 일들을 알게 하고
Son of man, cause Jerusalem to know her abominations,
(겔16.3)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예루살렘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네 태생과 출생의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족속이며 네 어머니는 헷 족속이었노라.
And say, Thus saith the Lord GOD unto Jerusalem; Thy birth and thy nativity is of the land of Canaan; thy father was an Amorite, and thy mother an Hittite.
(겔16.4) 네 출생으로 말하건대 네가 태어나던 날에 사람들이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고 너를 물로 씻어 부드럽게 하지 아니하며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고 또 너를 포대기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And as for thy nativity, in the day thou wast born thy navel was not cut, neither wast thou washed in water to supple thee; thou wast not salted at all, nor swaddled at all.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원치 않는 출생, 가장 돌봄 받지 못한 아이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관심 없고,
완전히 버려진 존재입니다.
그들은 아기를 낳고 그대로 버립니다. 죽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겔16.5) 아무도 눈으로 너를 불쌍히 여겨 이것들 중의 하나라도 네게 행하며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였고 네가 태어나던 날에 사람들이 너를 빈 들판에 버려 너라는 자를 심히 싫어하였느니라.
None eye pitied thee, to do any of these unto thee, to have compassion upon thee; but thou wast cast out in the open field, to the lothing of thy person, in the day that thou wast born.
(겔16.6) ¶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며 ...
¶ And when I passed by thee, ...
주님은 아버지나 어머니조차 원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생명조차 거절당한 자를 찾아오셨습니다.
(겔16.6) ¶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며 네가 네 피로 더럽게 된 것을 보고 네가 네 피 속에 누워 있을 때에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는 살라, 하였으며 참으로 네가 네 피 속에 누워 있을 때에 내가 이르기를, 너는 살라, 하였느니라.
¶ And when I passed by thee, and saw thee polluted in thine own blood, I said unto thee when thou wast in thy blood, Live; yea, I said unto thee when thou wast in thy blood, Live.
(겔16.7) 내가 너를 들의 싹같이 번성하게 하므로 네가 자라고 크게 되어 뛰어난 장식품이 되었으며 네게 젖가슴이 생기고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벌거벗은 알몸이었느니라.
I have caused thee to multiply as the bud of the field, and thou hast increased and waxen great, and thou art come to excellent ornaments: thy breasts are fashioned, and thine hair is grown, whereas thou wast naked and bare.
(겔16.8) 이제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며 너를 보니, 보라, 네 때가 사랑을 할 때더라. 내가 내 옷자락을 네 위에 펴서 너의 벌거벗은 것을 덮어 주며 참으로 내가 네게 맹세하고 너와 함께 언약 속으로 들어가매 네가 내 것이 되었느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Now when I passed by thee, and looked upon thee, behold, thy time was the time of love; and I spread my skirt over thee, and covered thy nakedness: yea, I sware unto thee, and entered into a covenant with thee, saith the Lord GOD, and thou becamest mine.
주께서 뭐라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너를 버려두고 죽게 내버려뒀다.
너는 벌거벗은 채, 절망 속에, 완전히 외로웠다.
그런데 내가 왔다.
내가 너를 씻겼다.
너의 벌거벗음을 가리울 옷을 입혔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인가!
다음에 누군가 여러분에게 촌스럽게 옷을 입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과 유행이나 패션 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그저 이렇게 말하세요:
>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입히셨어요.
> 주께서 나를 덮으셨어요.”
우리가 가릴 수 있게 된 이유
당신이 가릴 수 있게 된 것
당신이 버림 받지 않고 주님 안에서 가족이 된 것은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당신의 벌거벗음, 당신의 버림받음,
당신의 천대받던 지위를 자신이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 지은 최초의 사람에게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를 가려주셨습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당신을 가려주셨습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For we know that if our earthly house of this tabernacle were dissolved, we have a building of God, an house not made with hands, eternal in the heavens.
(고후5.2)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For in this we groan, earnestly desiring to be clothed upon with our house which is from heaven:
(고후5.3)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If so be that being clothed we shall not be found naked.
(고후5.4)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For we that are in this tabernacle do groan, being burdened: not for that we would be unclothed, but clothed upon, that mortality might be swallowed up of life.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성도들이 간절히 바라는 일이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그분은 십자가로 가셨고, 그들은 그분의 옷을 벗겼습니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다리, 넓적다리가 드러났고, 겉옷은 벗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을 덮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혼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자기와 같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덧입히실 것이며,
당신을 자신 앞에 세우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셔야만
나를 만나실 수 있었는지 생각할 때, 정말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그 일을 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그분은 기꺼이 그 일을 하셨고,
그 어떤 분도 감당하고 싶지 않은 방식으로 모욕을 감당하셨습니다.
단지 우리 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