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종이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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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스로 종이되는 삶
본문: 고전 9:19-22
오늘 아침에 읽을 구절은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27절입니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For though I be free from all men, yet have I made myself servant unto all, that I might gain the more.
(고전9: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며
And unto the Jews I became as a Jew, that I might gain the Jews; to them that are under the law, as under the law, that I might gain them that are under the law;
(고전9:21) 율법 없는 자들에게 (내가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그리스도께 율법 아래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To them that are without law, as without law, (being not without law to God, but under the law to Christ,) that I might gain them that are without law.
(고전9: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찌하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To the weak became I as weak, that I might gain the weak: I am made all things to all men, that I might by all means save some.
오늘 읽은 구절도 다른 곳에서 처럼 자발적 헌신을 요구하고 있고,
더 나아가 스스로가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되어 살기를
원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고전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이것을 행함은 너희와 함께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자 함이라.
And this I do for the gospel's sake, that I might be partaker thereof with you.
(고전9:24) 경주할 때에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한 사람이 상을 받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Know ye not that they which run in a race run all, but one receiveth the prize? So run, that ye may obtain.
(고전9:25)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관을 얻고자 그 일을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하느니라.
And every man that striveth for the mastery is temperate in all things. Now they do it to obtain a corruptible crown; but we an incorruptible.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정해진 것이 없는 것처럼 하지 아니하고 또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하지 아니하며
I therefore so run, not as uncertainly; so fight I, not as one that beateth the air:
(고전9:27)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But I keep under my body, and bring it into subjection: lest that by any means, when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should be a castaway.
싸움과 경주
지금 읽은 구절들에서 경주(24)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또한 싸움(26)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경기 또는 종합 격투기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싸움과 경주는 따로 있습니다.
잃어버린 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혼을 사탄에게서
빼앗아 오는 싸움이 바로 그것입니다.
싸움을 위한 준비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복싱 경기를 앞두고 있다면
이기기 위해 몸을 만들 것입니다.
몸을 만들기 위해서 먹는 것을 주의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연습하고 강도높은 훈련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혼을 구하는 싸움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절제하고 포기해가며 준비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죽지 않는 혼을 가진 사람들
여러분의 가족과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혼은
이 땅에서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혼은 어디에선가 영원을 보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혼이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영원을 보내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그런 사실을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지난 몇년간 코로나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습니다.
그들이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죽고 싶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고 나서 어떻게 될지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마귀가 계속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락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마귀
오늘날 사탄의 가장 큰 전략은 사람들을 오락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게임에 몰두하게 만들기도 하고, 숏츠를 보며 시간을 보내게 만듭니다.
자신이 지옥불에 들어가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운명에 놓여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조차도 속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잃어버린 혼들에게 전하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은혜를 입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정치 뉴스에 빠져있고, 교회에 불평 불만만하며서
그리스도인들이 달려야할 경주를 시작하지 못하고
영적인 싸움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얻게 되는 갈등과 비난과 오해를 견디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싸움을 피하고 싶어만 합니다.
전체 삶을 정비한 바울
지금 바울은 자신의 전체 삶을 완전히 새롭게 정비해서
경주와 싸움에 철저히 준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해야 할 것은 더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고, 무시해야 할 것은 무시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이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서, 이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혼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할 일을 하면서 경주하라”
바울은 다른 운동선주가 경기를 준비하는 것처럼
자신도 모든 헌신과 열정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섬기고 혼을 구원하는 일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도전이 있습니다.
올림픽 메달 선수들을 태능 선수촌에 들어가서
모은 일을 내려놓고 훈련에 집중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정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혼을 구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과 부모를 섬기는 일과
책임져야할 수 많은 일들을 다 감당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주를 뛰고 이 싸움을 이기는 동안에도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일상이 되어야 한다
이 싸움은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챔피언십 경기가 아닙니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경기가 아닙니다.
매일이 경기장이고, 매 순간이 링 위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과 경주는 일요일과 수요일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싸움의 본질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저는 링 위에 서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저는 믿음의 트랙 위에 서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마음자세였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누군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부모의 권위나, 하나님의 권위을 거부하고,
본능적이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자유를 포기한 이유”
그런데 바울이라는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선망하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걸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전부를 이 경주에 쏟았고,
복음을 위한 싸움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자로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로마 시민권자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특권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일하지 않고 성도들에게 월급을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바울은 그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바울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인입니다.
바울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을 만나면 기꺼이 그들의 율법 아래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들을 얻기 위해 기꺼이 이방인들의 관습을 따랐습니다.
바울은 얼마든지 편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런 권리와 자유를 모두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기 위해서
그들이 처한 위치까지 기준을 낮추며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내 자유와 풍요와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사람들의 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허공을 치며 챔피언이라 외치는가?”
만약 당신이 혼자서 말하고, 혼자서 논쟁하는 사람을 본다면,
그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마약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혼자서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서
내가 이겼다고 말을 한다면 여러분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꽤 괜찮게 살았어. 하나님도 내 삶에 만족하실 거야.”
“그냥 이정도로만 살면 되지 뭐”
그건 마치 혼자 달리고서 금메달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분대로 사는 삶은 경주가 아니다.”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삶은 영적 전쟁이 아니다.”
사람들이 지금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청첩장 보다는 부고장을 더 많이 받는 나이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주님을 알지 못한채 죽으면 그들의 끝이 어떤 곳인지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마귀는 링 위에 올라와 있고,
잃어버린 혼들의 눈을 가리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빛을 비출 선수는 아무도 링에 오르지 않습니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For though I be free from all men, yet have I made myself servant unto all, that I might gain the more.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입으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거라는 생각으로 지켜마보는
실천없는 칼빈주의자 처럼 행동합니다.
스스로 종이 된 바울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한 번도 억지로 설교하라 하신 적이 없다.
한 번도 강제로 어떤 도시로 보내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다.
그냥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에만 안주하고
나름 자신은 괜찮게 살았다고 말하면서
허공을 치면서 나는 이겼다고 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넌 진짜 경주를 뛰었느냐?”
“넌 정말 복음을 위해 싸웠느냐?”
바울처럼 오늘,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자가 되기로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슬로 묶어서 배에 태워 고린도로 보내신 게 아닙니다.
수레에 매달아 억지로 빌립보로 끌고가신 것도 아닙니다.
그는 납치되어 에베소에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바리새인의 편안한 삶을 버렸습니다.
스스로 로마 시민권자가 누릴 자유를 포기했습니다.
스스로 한 도시에서 안정적인 사역을 하며 편히 살 기회를 내려놓았습니다.
그가 원했다면, 한 도시에서 교회를 세우고, 후원을 받고,
편하게 살며 성도들을 가르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 다른 도시에 갔습니다. 그리고 채찍에 맞았습니다.
- 또 다른 도시에 갔습니다. 그리고 돌에 맞았습니다.
- 또 다른 도시에 갔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 또 다른 도시에 갔습니다. 그리고 쫓겨났습니다.
왜 바울은 그렇게 힘들게, 고통스럽게, 멸시받으며 살았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 그 도시의 사람들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고전9: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며
And unto the Jews I became as a Jew, that I might gain the Jews; to them that are under the law, as under the law, that I might gain them that are under the law;
어떤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자신도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행동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전9:21) 율법 없는 자들에게 (내가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그리스도께 율법 아래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To them that are without law, as without law, (being not without law to God, but under the law to Christ,) that I might gain them that are without law.
즉, 이방인을 만났을 때도, 바울은 그들의 문화와 삶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논쟁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앙 방식이 다르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바울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사람과 공통점을 찾고 자신이 함께 나눌 수 있는 부분을 찾았고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가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 해준 것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접근, 그리고 복음의 지혜”
바울이 이방인을 만났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조차 모르고,
성전도, 제단도, 성경도, 희생제사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나 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의 별들도 훌륭한 창조물입니다.
이런 창조물이 있으려면 그것을 만드시 창조주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 전파는 단지 강단에서 외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고,
그가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이해한 뒤,
그를 한 걸음 더 진리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의 현재 입장을 비난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그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그가 가야 할 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가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갔을때
바울이 한 마을에 가서 유대인들에게 다가가고 싶을 때,
그는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처럼 옷을 입고, 유대인처럼 행동하며
회당으로 갔습니다.
그는 예배를 방해하지 않았고, 모임의 신성함을 침해하지 않았으며,
조용히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 "누군가 증언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바울은 증언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설교하러 갔을 때는,
그는 유대인의 옷을 벗고, 유대인의 용어를 버리고
아테네에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는 율법이나 희생제사, 예언의 성취에 대해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고전9: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찌하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To the weak became I as weak, that I might gain the weak: I am made all things to all men, that I might by all means save some.
우리는 혼을 구하는 전도를 가서 불필요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너희들은, 패배자들이야 너희는 도대체 뭐가 문제길때
그런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사는거야?
나를 봐! 나는 너희와 다르게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잖아!
나는 승자고 너희는 패배자야!”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말해야 할 것은
“지금 나는 여러분과 같은 죄는 아니었지만
저도 한때 여러분과 같이 죄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죄의 종이었고,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었고, 아무 소망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의 위치에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낮아져야 합니다.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험하지 않은 걸 지어낼 필요도 없습니다.
나도 당신보다 나을게 없는 사람이고
지금 내모습은 지옥에가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셔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한 번도 죄이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렸던 자였습니다.
죄로 가득 찬 자였고 지옥을 향해 가던 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도 다른 이들을 그 자리에서부터 진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성경은 다시 말합니다. 19절을 보세요.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For though I be free from all men, yet have I made myself servant unto all, that I might gain the more.
(고전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이것을 행함은 너희와 함께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자 함이라.
And this I do for the gospel's sake, that I might be partaker thereof with you.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하고,
부모의 잔소리도 듣기 싫어서 따로 살고 싶어합니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싫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인터넷에서 친구가 됩니다.
그들이 원하는 독립과 자유는
사실 스스로의 고립이고 외로움 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반대였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나는 스스로 종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 바울이 얻게 된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의 교제,
에베소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과의 사랑과 동행을 얻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진짜 자유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해방은 내가 주인 되는 삶이 아닙니다.
진짜 자유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복음을 위해 헌신하며 함께 동행하는 삶입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기 위해 죄수로 끌려간 바울.
그가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집에 가둬져 있는 상태(가택 연금)였지만,
사람들은 매일같이 그를 찾아와 교제했습니다.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바이블 스터디가 그 집에서 계속되었습니다.
바울이 독립과 자유를 포기해서 얻은 것은
수 많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모로부터 벗어났다고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복종해야할 직장의 사장과 상사가 있고,
집과 건물을 임대해 살고 있다면 그 건물의 주인에게
계약된 월세를 지불하며 살아야 합니다.
은행에 가면 은행에서 시키는대로 해야하고,
경찰서에 가면 경찰이 시키는대로 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에게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직장에서나 회사에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열심히 만들어 전하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이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처럼 많은 증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보라"고 말합니다.
(히12.1)
자기 멋대로 사는 독립의 길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원하여 주님의 종이 된 삶에는 수백만의 성도들이 함께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24절에서 말합니다.
(고전9:24) 경주할 때에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한 사람이 상을 받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Know ye not that they which run in a race run all, but one receiveth the prize? So run, that ye may obtain.
(고전9:25)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관을 얻고자 그 일을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하느니라.
And every man that striveth for the mastery is temperate in all things. Now they do it to obtain a corruptible crown; but we an incorruptible.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정해진 것이 없는 것처럼 하지 아니하고 또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하지 아니하며
I therefore so run, not as uncertainly; so fight I, not as one that beateth the air:
(고전9:27)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But I keep under my body, and bring it into subjection: lest that by any means, when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should be a castaway.
이 경주는 그냥 열심히만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주는 방향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절제가 있어야 하고 복음을 향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자유를 내려놓으십시오.
혼자 달리는 외로운 경주를 그만두고,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영원한 상을 향해 달려갑시다.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도,
언젠가는 '전 대통령'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고(故)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의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행한 일은, 썩지 않는 영원한 상으로 남는다!”
그 상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절대 줄어들거나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정해진 것이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9:26)
여러분이 주식을 사 놓았다면,
그 주식이 값이 오를지 값이 내려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들의 혼을 구하기 위해서 싸운 일들은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바울은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고 했습니다.
(고전9:27)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But I keep under my body, and bring it into subjection: lest that by any means, when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should be a castaway.
바울은 자신에게 시킨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효화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려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뒤에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키지 못한 자신의 삶으로 인해
누군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내가 받을 면류관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억제 시키고 복종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자신의 삶을
자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복종시킨 것입니다.
왜요?
그것이 올림픽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챔피언 벨트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상’이기 때문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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