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으로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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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겸손으로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
본문 : 빌 2.9-11
(빌2.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Wherefore God also hath highly exalted him, and given him a name which is above every name:
(빌2.10)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of things in heaven, and things in earth, and things under the earth;
(빌2.11)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And that every tongue should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오늘은 9-11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높임을 받은 것은 겸손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벧전5.5) 너희 젊은 사람들아, 이와 같이 장로에게 복종하고 참으로 너희가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Likewise, ye younger, submit yourselves unto the elder. Yea, all of you be subject one to another, and be clothed with humility: for God resisteth the proud, and giveth grace to the humble.
(벧전5.6)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Humble yourselves therefore under the mighty hand of God, that he may exalt you in due time:
예수님은 왕좌를 받으셨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이런 위치를 받게 된 것은 그 자리를 받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겸손했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리를 찾아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을 해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광과 존귀를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오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영광과 존귀를 얻는 길은
오직 겸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영광과 존귀를 받을 것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겸손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교만과 오만으로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은 모두 고꾸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먼저 겸손하고, 그분이 우리를 높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간 사실에 앞서 그분은 무죄한 분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완전하시고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롬8.32)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He that spared not his own Son, but delivered him up for us all, how shall he not with him also freely give us all things?
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게 하셨을까요?
사실 십자가에 가실 필요가 없는 분이 있다면 예수님 한 분 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많은 아버지가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고, 
고통을 겪게 하시고, 죄인들의 손에 수염이 뽑히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악하고 불경건한 자들 앞에서
고난과 수치를 당하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상처를 줄만한 부정적인 말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경에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에게 매를 들고 징계하고 훈계하는 것도 꺼려합니다. 
성경은 매를 아끼는 자는 아들을 미워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잠13:24) 회초리를 아끼는 자는 자기 아들을 미워하거니와 그를 사랑하는 자는 어릴 때에 그를 징계하느니라.
He that spareth his rod hateth his son: but he that loveth him chasteneth him betimes.
징계하는 하나님 & 징계하지 않는 부모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께서 아무 죄도 없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징계했는지를 보면, 
오늘날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책망과 훈계를 하지 못하는 것과 비교되는 모습니다. 
부모가 약간의 잔소리만 해도 자녀들이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오히려 큰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면서 위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가 나서야 하는 이유는
자녀의 잘못을 방치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는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고, 
책망과 훈계가 없이는 올바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잠깐의 고통의 결과가 큰 유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겪어야할 일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아들 하나님 예수께서 겪어야할 십자가의 고난의 결과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기회와 영생을 얻을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보다 높은 지위를 얻게 되었고 
하늘로 올라가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어떤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영광과 이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를 얻기위해 주님은 시험을 겪어야 했고, 
시련을 겪어야 했고 등에 채찍을 맞기도 했습니다.
징계를 받지 않으면 사생아
(히12.7) 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대우하듯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가 무슨 아들이냐?
If ye endure chastening, God dealeth with you as with sons; for what son is he whom the father chasteneth not?
(히12.8) 모든 사람이 징계를 받으므로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너희가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
But if ye be without chastisement, whereof all are partakers, then are ye bastards, and not sons.
하나님은 우리가 징계를 받지 않는 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생아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매를 대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고 훈계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본이되는 삶을 살게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신 자신의 아들 조차도 이 말씀에 
예외로 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에게 본이 되셨습니다. 
아들의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고난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있을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지나치게 애지중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나친 사랑과 보호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아이들에게 좋은 인격을 형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초리를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인을 잘못 키운 아담 부부
(창4.1) 아담이 자기 아내 이브를 알매 그녀가 수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 하니라.  
And Adam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from the LORD.
사실 여기서 아담은 주로부터 남자를 얻은 것이 아니라 
주로부터 아이를 얻은 것입니다.
그 아이는 주님께 받은 아이로서 훈련을 받아야 하고, 
비판도 받아야 하며, 가르침도 받아야 하고, 징계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이 아이가 창3:15절의 그 약속된 씨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가인이 자라는 내내 애지중지 키웠고 껴안아주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인 것처럼 대접하며 그를 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가 틀렸으니 희생물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가져온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어린양을 가져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들은 가인의 반응
그 말을 듣고 가인이 보인 반응은 무엇이었나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친 동생을 죽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너무도 귀하게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잘못했을때 따끔하게 혼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녀를 책망하지 않은 엘리
(삼상3.11) ¶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서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두 귀가 그것으로 인해 울리리라.  
¶ And the LORD said to Samuel, Behold, I will do a thing in Israel, at which both the ears of every one that heareth it shall tingle.  
(삼상3.12) 그 날에 내가 엘리의 집에 관하여 말한 모든 것을 그에게 행하리라. 내가 시작하면 또한 끝을 내리라.  
In that day I will perform against Eli all things which I have spoken concerning his house: when I begin, I will also make an end.  
(삼상3.13) 그가 알고 있는 불법으로 인하여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리라고 그에게 말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들들이 스스로를 더럽혔으나 그가 그들을 억제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For I have told him that I will judge his house for ever for the iniquity which he knoweth; because his sons made themselves vile, and he restrained them not.  
지금 일어나는 문제는 엘리가 자녀들에게 책망하지도 않고 훈계하지도 않고 
매를 들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들은 성전에서 여인들과 음행을 했고
주님 앞에서 악한 불법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결과로 하나님은 그들은 죽이셨습니다.
아들을 바로잡지 않은 다윗
(왕상1.5) ¶ 그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자신을 높이며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해 병거들과 기병들과 자기 앞에 달려갈 사람 오십 명을 예비하니라.  
¶ Then Adonijah the son of Haggith exalted himself, saying, I will be king: and he prepared him chariots and horsemen, and fifty men to run before him.
(왕상1.6)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는 또한 매우 잘생긴 자로서 그의 어머니가 압살롬 다음에 그를 낳았더라. 
And his father had not displeased him at any time in saying, Why hast thou done so? and he also was a very goodly man; and his mother bare him after Absalom.
  
학깃은 다윗의 아내입니다. 
다윗이 자기 아들을 훈계하려 하지 않고, 
아들을 비판하려 하지 않고, 한 번도 기분 나쁘게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아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해를 입히고 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아도니야는 왕국을 차지하려 하다가 
결국 그의 형 솔로몬 왕에게 처형당하고 맙니다. 
이런 결과는 그의 아버지가 그를 바로잡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어머니는 그를 오직 애지중지하며 키웠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셨던 아들, 자신의 독생자이신 아들을 
십자가고 향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고통과 고난과 시련을 통해 앞으로 어떤 유익이 올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미리 보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한 남자(사람)가 만들어지는 방식입니다. 
한 사람의 성장은 시련을 통해서 오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시련을 통해 우리를 다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로 연단하심으로써 사용 가능한 그릇으로 만드시고, 
우리 자녀의 삶에 복이 되는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즉시 다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자녀에게 해를 끼칠 뿐입니다.
그들은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가 그러면 안된다고 조언을 하는 것도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자녀를 보호막 속에 가두어 성장하지 못하게 한 것은 
자녀에게 오히려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훈계를 해주고, 비판을 해주는 것은
여러분을 깍아내리려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세우기 위해 겪게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가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가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시여,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아니야. 너는 그 잔을 마셔야 한다. 너는 그걸 마셔야 해, 아들아.”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왜냐하면 그 고통의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께서 아들을 크게 높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있게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전파하고, 그분을 찬양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경건한 압박(godly pressure)이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과 존귀를 얻으신 방식
예수님께서 그 영광과 존귀를 얻으신 방식은 
고난의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얻게 된 것입니다. 
겸손을 유지해야 하는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그리고 아버지의 진노를 받아내는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받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십시오.
우리가 자녀를 가를칠때 너무 극단적으로 가서도 안됩니다. 
틀렸다고 해서 틀린 것만을 너무 과대하게 지적만 해서는 안됩니다. 
침례인 요한도 예수님이 자신이 기다렸던 분인지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대해 
“여자에게서 난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칭찬과 책망을 지혜롭게 그리고 균형있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존재에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빌2.10)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of things in heaven, and things in earth, and things under the earth;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으라”고 하시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이런 생각은 성경과 모순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된 신이 아닙니다. 
(골1.15) 그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  
Who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
여호와의 증인은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 난 자’라는 표현을 
문맥 속에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창조된 신으로 이해합니다. 
(골1.17) 또 그분께서는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And he is before all things, and by him all things consist.
이사야 45장을 보십시오.  
(사45.21) 너희는 알리며 그들을 가까이 데려와 참으로 그들이 함께 의논하게 하라. 누가 이 일을 옛적부터 밝히 알렸느냐? 누가 그때부터 그 일을 말하였느냐? 나 주가 아니냐?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의로운 하나님이며 구원자니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  
Tell ye, and bring them near; yea, let them take counsel together: who hath declared this from ancient time? who hath told it from that time? have not I the LORD?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 me; a just God and a Saviour; there is none beside me.
(사45.22) 땅의 모든 끝이여, 나를 바라보라. 그리하여 너희는 구원을 받을지어다. 나는 하나님이요,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  
Look unto me, and be ye saved, all the ends of the earth: for I am God, and there is none else.
(사45.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의로움 속에서 말이 나갔은즉 그것이 돌아오지 아니하리니 이로써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I have sworn by myself, the word is gone out of my mouth in righteousness, and shall not return, That unto me every knee shall bow, every tongue shall swear.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모든 무릎이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해석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42.8) 나는 주니라. 그것은 내 이름이니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며 내 찬양을 새긴 형상들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I am the LORD: that is my name: and my glory will I not give to another, neither my praise to graven images.  
하나님은 우리가 하늘과 땅 그리고 땅 아래 어떤 피조물에게도
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이 말씀의 법칙을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님 앞에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석가모니도 마리아도 마귀도
모든 존재가 예수님 앞에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복종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나보다 위에 계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예수님을 높이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위치를 어떻게 얻게 된 걸까요?
예수님은 전쟁과 폭력을 통해서 이런 위치를 얻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겸손으로 얻으신 것입니다.
그는 희생을 통해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순종을 통해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every knee should bow” (빌2.10)
“모든 무릎이 엎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1절로 이어지면서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빌2.11)
우리 모두는 결국 언젠
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늦기 전에 
지금 예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이 후회 없는 일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고 의로운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분은 완벽하시고 그분은 거룩하시고 
그분은 결코 시험에 실패한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항상 진정한 친구로 우리를 대하고계십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선하게 대하시고 섬겨주셨던 분이십니다.
모든 통치권은 주님께 주어집니다. 
우리가 그분께 엎드려 경배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께 모든 통치권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능이 주어질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의 본을 따르게 될 것이고
그런 세상은 낙원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과 같아진다면 이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가진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니 다른 것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을 향해 정욕을 향해 야망을 향해
자신의 자존심과 육신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 앞에 경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자신의 원수를 용서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겸손해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랑스러워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은혜를 입고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노하고 싶어하고 복수할 방법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굽히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둠에 있는 것을 더 편안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둠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사악한 우리 육신이 어둠입니다.
예수님의 길이 우리의 길 보다 뛰어납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은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엎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길이 우리의 길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제시하는 길이 더 나은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복종해야 합니다.
(롬14.11) 기록된바,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하나님에게 자백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For it is written, As I live, saith the Lord, every knee shall bow to me, and every tongue shall confess to God.  
우리가 어짜피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면 
이 땅의 삶에서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삶이 끝난 뒤에는 너무 늦어서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석에서는 그 어떤 긍휼도 베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폭력으로 왕국을 차지했던 사람들
(마11.12) 침례자 요한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하늘의 왕국은 폭력을 당하며 폭력배들이 강제로 그것을 빼앗느니라.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느브갓네살
그들은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가지고 영광과 명예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처음이 되고자 하면 말째가 되어라
(막9.33) ¶ 그분께서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때에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너희끼리 논쟁하였느냐? 하셨으나  
¶ And he came to Capernaum: and being in the house he asked them, What was it that ye disputed among yourselves by the way?
(막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그들이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가 하는 일로 자기들끼리 논쟁하였기 때문이라.  
But they held their peace: for by the way they had disputed among themselves, who should be the greatest.
(막9.35) 그분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첫째가 되고자 하면 바로 그 사람은 모든 사람의 말째가 되며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지니라, 하시고  
And he sat down, and called the twelve, and saith unto them, If any man desire to be first, the same shall be last of all, and servant of all.
(막9.36)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의 한가운데 세우시고 그를 팔에 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And he took a child, and set him in the midst of them: and when he had taken him in his arms, he said unto them,
(막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아이들 중의 하나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받아들이며 또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느니라, 하시니라.  
Whosoever shall receive one of such children in my name, receiveth me: and whosoever shall receive me, receiveth not me, but him that sent me.
예수님께서 지금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나요?
영광을 쫓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일을 쫓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가장 큰것에 대해서 논쟁하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 지려고 노력한다면,
합당한 때에 너희를 높여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원했습니다. 
솔로몬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오. 
그는 하나님께 백성들을 올바로 판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영광과 존귀와 부와 왕국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가 원하지 않은 모든 것들까지도 솔로몬에게 주셨습니다.
스스로 영광을 원하고 권력을 원하고 존경받기를 원했던 사람들은 
모두 영원히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복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아직 구원을 받지 않았다면
이번 생을 마치기 전에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삶을 사시길 권면드립니다.
그러는 것이 심판석에서 그분 앞에 엎드리는 것 보다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그분께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한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분의 이름이 모든 것들 위에 있는지를 잘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분이 왕좌에 앉아계신지 잘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예수님과 같지 않은지를 잘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롭고 순결하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친구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영광과 존귀를 드려야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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