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면서 살아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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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어가면서 살아가는 삶
본문: 고후 4.11
(고후4.11)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For we which live are alway delivered unto death for Jesus' sake, that the life also of Jesus might be made manifest in our mortal flesh.
4장 3절부터 5장 8절까지 읽고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고후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자들에게 가려졌느니라.
But if our gospel be hid, it is hid to them that are lost.
(고후4.4)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In whom the god of this world hath blinded the minds of them which believe not, lest the light of the glorious gospel of Christ, who is the image of God, should shine unto them.
(고후4.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선포하지 아니하며 오직 주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또 예수님으로 인하여 너희의 종 된 우리 자신을 선포하노니
For we preach not ourselves, but Christ Jesus the Lord; and ourselves your servants for Jesus' sake.
바울은 자신을 선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선포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후4.6)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
For God, who commanded the light to shine out of darkness, hath shined in our hearts, to give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God in the face of Jesus Christ.
여러분이 믿지 않았을 때 사탄이 여러분 안에서 했던 일(4절)이,
이제 여러분이 믿는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하시는 일(6절)로 대체되었음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후4.7)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earthen vessels, that the excellency of the power may be of God, and not of us.
(고후4.8)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나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난처한 일을 당하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We are troubled on every side, yet not distressed; we are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고후4.9) 핍박을 받으나 버림받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나 망하지 아니하고
Persecuted, but not forsaken; cast down, but not destroyed;
(고후4.10)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Always bearing about in the body the dying of the Lord Jesus, that the life also of Jesus might be made manifest in our body.
(고후4.11)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For we which live are alway delivered unto death for Jesus' sake, that the life also of Jesus might be made manifest in our mortal flesh.
(고후4.12) 그런즉 이처럼 사망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일하느니라.
So then death worketh in us, but life in you.
(고후4.1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We having the same spirit of faith, according as it is written, I believed, and therefore have I spoken; we also believe, and therefore speak;
(고후4.14) 또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도 일으키사 너희와 함께 드러내 보이실 줄 우리가 아노라.
Knowing that he which raised up the Lord Jesus shall raise up us also by Jesus, and shall present us with you.
(고후4.15)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하여 있나니 이것은 많은 사람의 감사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넘쳐 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함이라.
For all things are for your sakes, that the abundant grace might through the thanksgiving of many redound to the glory of God.
(고후4.16)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For which cause we faint not; but though our outward man perish, yet the inward man is renewed day by day.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For our light affliction, which is but for a moment, worketh for us a far more exceeding and eternal weight of glory;
(고후4.18)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하니라.
While we look not at the things which are seen, but a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for the things which are seen are temporal; bu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are ete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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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For we know that if our earthly house of this tabernacle were dissolved, we have a building of God, an house not made with hands, eternal in the heavens.
(고후5.2)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For in this we groan, earnestly desiring to be clothed upon with our house which is from heaven:
(고후5.3)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If so be that being clothed we shall not be found naked.
(고후5.4)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For we that are in this tabernacle do groan, being burdened: not for that we would be unclothed, but clothed upon, that mortality might be swallowed up of life.
(고후5.5)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다듬으시고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Now he that hath wrought us for the selfsame thing is God, who also hath given unto us the earnest of the Spirit.
(고후5.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확신에 차서 우리가 몸 안에서 집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로부터 떨어져 있는 줄을 아노니
Therefore we are always confident, knowing that, whilst we are at home in the body, we are absent from the Lord:
(고후5.7)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For we walk by faith, not by sight:)
(고후5.8)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We are confident, I say, and willing rather to be absent from the body, and to be present with the Lord.
지금 읽은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올바로 알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만사형통을 이룬다고 말하는 기복적 신앙은
교회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선포하는 일은
지금도 안전하지 않은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과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고난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8절부터는 고난과 핍박과 죽음이 위협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어려움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구원은 여러분을 위해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여러분을 바꾸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신이 구원받았을 때 얻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위로자, 그리고 하늘의 소망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삶은 다른 사람과 같은 삶입니다.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구원받은 시점부터 육체를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육신적인 것들 대신 영적인 열매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 모두와 함께 삽니다.
여러분이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람 뿐 아니라 구원받지 않은 사람도 치료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전자 제품 수리 기사라면,
구원받은 사람이 가져오는 제품 뿐 아리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가져오는
제품까지 고쳐주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여러분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동일한 삶의 환경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구원받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힘과 능력과 긍휼에 힘입어서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고후4.7)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earthen vessels, that the excellency of the power may be of God, and not of us.
우리 모두는 연약한 질그릇에 해당하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보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고후4.15)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하여 있나니 이것은 많은 사람의 감사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넘쳐 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함이라.
For all things are for your sakes, that the abundant grace might through the thanksgiving of many redound to the glory of God.
나는 고난과 시험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시험을 뛰어넘는 풍성한 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당신을 악하게 대했던 사람을 친절하게 잘 대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기 위함 때문입니다.”
(고후4.8)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나 … /We are troubled on every side, …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들과 잃어버린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고후4.8) …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 / … yet not distressed; …
잃어버린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괴로워합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지만 은혜가 넘칩니다.
(고후4.8) ... 난처한 일을 당하나 … / ...we are perplexed,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릅니다.
전에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고후4.8) ... 절망하지 아니하고 / ...but not in despair;
감사하게도 새로운 문제에 직면할 때 마다
나는 다시 난처해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절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4.9) 핍박을 받으나 버림받지 아니하며 … /Persecuted, but not forsaken; ...
복음을 전하다가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선교사들이
모든 어려움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힘과 위로였습니다.
이 기독교적 삶이 박해를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은혜로운 능력의 임재가
항상 함께할 것이라는 약속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후4.9) ...거꾸러뜨림을 당하나 망하지 아니하고
...cast down, but not destroyed;
성도의 수가 얼마 되지 않고 재정도 어려운 교회로 시작해서
곧 망할 것 같지만 망하지 않고 6년을 버텨오고 있습니다.
나는 절망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모르지만,
나와 함께 계신 분이 나를 이끌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고후4.10)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
Always bearing about in the body the dying of the Lord Jesus, …
10절은 우리의 역할이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부분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읽은 말씀은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매일 우리는 무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고후4.10) …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that the life also of Jesus might be made manifest in our body.
이제 당신 어려움, 괴로움, 시련, 어려움, 심적 고통 등
모든 것을 겪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러한 것들을 겪을 때
그리스도가 당신의 삶에 드러나도록 할 것인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당신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타날 수도 있다(might be)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성령, 예수님, 성경, 진리, 빛, 화평 소망)을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통해서 보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당신의 눈물, 슬픔, 불만, 문제, 불행을 보게 할 것인지,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고후4.11)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짐은 ...
For we which live are alway delivered unto death for Jesus' sake, ...
초대교회부터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로
매주 죽음에 넘겨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위협을 피하기 위해 온라인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이기를 힘썼고, 그러다 정부에 의해 잡혀가서 죽기도 했습니다.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래,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나고 있어.”
(고후4.11) ...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that the life also of Jesus might be made manifest in our mortal flesh.
여러분은 성경을 좋아하십니까?
이 성경은 영어로 번역했다는 이유로
누군가 화형을 당하며 우리 손에 주어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주님을 위해 그렇게 죽는다면,
주님을 위해 소리 높여 말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입니다.
(고후4.12) 그런즉 이처럼 사망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일하느니라.
So then death worketh in us, but life in you.
(고후4.1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We having the same spirit of faith, according as it is written, I believed, and therefore have I spoken; we also believe, and therefore speak;
(고후4.14) 또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도 일으키사 너희와 함께 드러내 보이실 줄 우리가 아노라.
Knowing that he which raised up the Lord Jesus shall raise up us also by Jesus, and shall present us with you.
부활의 믿음
지금, 이 말씀을 실현해 내는 것은
저에게나 여러분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부활의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이 몸은 죽고나면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일으켜질 것입니다.
이 몸은 부활할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와 마음으로 믿는 교리적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서 끝난다면,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러분이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부활이 실제 믿음으로 적용될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약 부활과 영생의 교리를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인 진리로 삼게 된다면,
고난과 괴로움, 마음의 아픔과 실망이 찾아올 때,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 병도 없고,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는 상태가 영원히 유지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은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훨씬 견디기 쉬워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는 눈 앞의 상황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저 이론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 다른 반응
지금 읽은 고린도후서 4장 13절과 14절 말씀과 비교해 볼 말씀이 있습니다.
(시116.8) 주께서 내 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For thou hast delivered my soul from death, mine eyes from tears, and my feet from falling.
이 사람은 울고 있고, 흔들리고 넘어지고 있으며, 죽음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시116.9)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주 앞에서 걸으리이다.
I will walk before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시116.10)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거니와 내가 심히 고난을 당하여
I believed, therefore have I spoken: I was greatly afflicted:
(시116.11) 황급히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I said in my haste, All men are liars.
여기 구약의 사람은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신약에서는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나는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같은 상황에 대한 얼마나 다른 태도인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 보십시오! 저들이 저기서 뭘 하는지 보십시오!
이들은 미친 집단입니다. 이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들입니다.”
혹은 우리는 함께 모여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것을 보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았고,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어떤 일이 닥치든, 그분은 우리를 헤쳐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것은 환경의 차이가 아닙니다.
이것은 환경에 대한 우리가 선택한 반응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그 순간에 진정으로 믿는 것을 우리가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믿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후4.15)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하여 있나니 이것은 많은 사람의 감사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넘쳐 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함이라.
For all things are for your sakes, that the abundant grace might through the thanksgiving of many redound to the glory of God.
우리가 불평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께 감사드릴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For our light affliction, which is but for a moment, worketh for us a far more exceeding and eternal weight of glory;
가벼운 고난
이 사람은 너무 많이 맞아서 죽은 줄 알고 버려지기 까지 했습니다.
그는 굶주렸고, 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난파를 당했고, 해변에 살아남아 독사에 물렸고,
살아서 로마에 도착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처형될 때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가 우리의 고난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 것이 맞을까요?
우리는 정말 우리의 고난을 침소봉대해서 크게 만드는데 능숙합니다.
아주 작은 문제만 있어도 그것을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고 말을합니다.
이 교회는 에어컨도 없어서 싫고, 히터가 작동이 안되서 싫고
커피머신이 없어서 싫고 냉장고가 없어서 싫다고 합니다.
여기 암 투병을 하는 자매님이 계시지만 잠시 서있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교회에 와서 앉아 계실 수 있는 이유는
그분에게는 바울 안에 계셨던 동일한 성령님이 그분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멍에를 메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말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내 멍에를 메라. 내 멍에는 쉽고...내 짐은 가볍다.”
그분은 멍에를 없애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내가 너와 함께 멍에를 메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너무나 강하셔서 우리가 이 짐을 함께 질 때,
여러분의 무거운 짐이 가벼운 짐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을때
나에게 알 수 없는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서 슬픔을 기기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과 함께 멍에를 맨 분이계셨기 때문입니다.
잠시 분인 가벼운 고난
17절에서 우리는 잠시 가벼운 고난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힘들죠? 하지만 잠시뿐입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50년 동안 마비된 상태로 살았고 있습니다.
네다섯 번, 여섯 번의 암 치료를 받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원이 시작 되게 되면 여러분의 50년 70년의 고통은
잠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휴거에 관한 구절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Behold, I shew you a mystery; We shall not all sleep, but we shall all be changed,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살전4.17)
이것이 공중에서 주를 만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전 생애를 돌아보시며,
영생에 비하면 그것을 '순식간'이라고 부르십니다.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For our light affliction, which is but for a moment, worketh for us a far more exceeding and eternal weight of glory;
그것은 정말 크고 뛰어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포 표현할 수 없으니 와서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
그 영광의 무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벼운 고난이… 영광의 무거운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지금까지 겪은 모든 고통, 아픔, 실망, 상처를 왼 손에 올리고
오른 손에는 영원이 시작하고 단 1분의 무게만 올려 놓는다면,
영원에 속한 1분이 여러분의 모든 아픔을 압도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겁니다.
(고후4.18)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하니라.
While we look not at the things which are seen, but a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for the things which are seen are temporal; bu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are eternal.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당신의 예쁜 얼굴, 은행 계좌, 차, 집, 가족, 친구, 교회 건물.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지속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들, 당신의 혼, 구원,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영원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당신이 집중해서 보고 있는 것이 어느 쪽에 있냐는 것입니다.
현재 잘못되고 있는 이 땅의 일에 집중하는 대신,
영원히 계속될 옳은 일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도전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고후4.16)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For which cause we faint not; but though our outward man perish, yet the inward man is renewed day by day.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이것은 사실의 진술입니다.
약도 없고 주사로도 안되고 아무것도 소용없습니다.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딛3.4) 사람을 향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친절과 사랑이 나타난 뒤에
But after that the kindness and love of God our Saviour toward man appeared,
(딛3.5)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Not by works of righteousness which we have done, but according to his mercy he saved us, by the washing of regeneration, and renewing of the Holy Ghost;
제가 태어난 날부터 이 겉사람은 조금씩, 때로는 많이,
무덤에 점점 더 가까워져 왔습니다.
결국 언젠가는 무덤 속으로 바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거듭나고 주님이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이후로는
계속해서,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저를 처음 구원하셨을 때 처럼 나를 새롭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죽을 수 없고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항상 주행거리가 “0”이 되는 차
만약 당신이 새 차를 사서 집으로 가져갔는데,
시동을 끌 때마다 주행거리가 0으로 리셋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
이 차를 30년 동안 타도 이 차는 주행 거리가 “0”인 새차인 것입니다.
이 차의 엔진도 타이어도 부품도 항상 새거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당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나는 고린도후서와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일은
바울은 평생 매일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읽어본 바로는 그가 치유되었다는 기록은 없고,
매일 고통 속에 살았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는 내면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슬픈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우리의 삶 전체가 슬픈 이야기들로만 채워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것들을 이용해서 우리의 삶에 멋진 이야기로
가득채워서 사람들에게 멈추지 않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ㅣ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