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의 마지막 행보

사사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6 views
Notes
Transcript
제목: 입다의 마지막 행보
본문: 삿 12.7
(삿12.7) 입다가 육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였고 그때에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어서 길르앗의 도시들 중의 하나에 묻히니라.  
And Jephthah judged Israel six years. Then died Jephthah the Gileadite, and was buried in one of the cities of Gilead.
한 사람의 삶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입다가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은
그의 삶에 육신으로 인한 실수가 있었지만,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사사기 11장 34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삿11.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 And Jephthah came to Mizpeh unto his house, and, behold, his daughter came out to meet him with timbrels and with dances: and she was his only child; beside her he had neither son nor daughter.  
(삿11.35) 그가 그녀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네가 나를 심히 참담하게 하였으며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도다. 내가 주를 향해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매  
And it came to pass, when he saw her, that he rent his clothes, and said, Alas, my daughter! thou hast brought me very low, and thou art one of them that trouble me: for I have opened my mouth unto the LORD, and I cannot go back. 
입다와 그의 딸은 잘못된 서원에 대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취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배우지 못했거나
알고도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삿11.36)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를 향해 입을 여셨을진대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주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원수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And she said unto him, My father, if thou hast opened thy mouth unto the LORD, do to me according to that which hath proceeded out of thy mouth; forasmuch as the LORD hath taken vengeance for thee of thine enemies, even of the children of Ammon.
(삿11.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And she said unto her father, Let this thing be done for me: let me alone two months, that I may go up and down upon the mountains, and bewail my virginity, I and my fellows.
(삿11.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And he said, Go. And he sent her away for two months: and she went with her companions, and bewailed her virginity upon the mountains.
(삿11.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wo months, that she returned unto her father, who did with her according to his vow which he had vowed: and she knew no man. And it was a custom in Israel,
(삿11.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that the daughters of Israel went yearly to lament the daughter of Jephthah the Gileadite four days in a year.
자, 먼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 어디에 살고 있든, 여러분이 사는 사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는 사회라면 매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무슬림이나 유교문화의 지배아래 살았다면,
여자들은 많은 제약을 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파카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이라는 국가에가서
여성 인권을 주장한다면 여러분의 주장은 전혀 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벗어나지 않은 입다의 딸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잘못된 서원과 고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젊은 남자나 여자들이 자신들의 부모의 권위에 얼만나 순종할까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권위자의 뜻에 얼마나 순종할까요?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희생 제물로 바칠 것이다. 너를 번제로 드릴 것이다.” 
그러자 입다의 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달만 주세요. 두 달만 제게 주셔서 슬퍼하고, 통곡하고, 
이 일에 대해 마음껏 애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저 같으면 두 달 동안 멀리 도마쳐 숨을 궁리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의 딸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삿11.34절에서 입다의 딸은 매우 순종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삿11.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
¶ And Jephthah came to Mizpeh unto his house, and, behold, his daughter came out to meet him with timbrels and with dances:…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명령을 받을때
우리는 종종 어떤 명령을 받거나, 어떤 지시를 받을때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요구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머리로 계산을 하게 됩니다. 
‘왜 이걸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를 따져보거나, 
‘대신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나 
‘불순종했을 때의 결과가 어떤지’를 고려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다의 딸이 지금 놓인 상황과 
비교될 만한 일을 마주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그 상황을 피하지 않았고, 돌아와서 순종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생명을 내어 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이 상황을 실제로 적용될 수 있을 만한 경우에 대입해 봅시다. 
만약 의사가 여러분에게 “남은 시간은 두 달입니다.”라고 했다고 해보죠
그럼 여러분은 두 달 동안 여러분의 삶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을까?
남자들은 군대 영장을 받고 난후에는 
군대 가지 전에 총각 딱지를 떼자고 결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제한적인 기한이 주어졌을 때, 
그 사람의 본성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금이라도 오실 수 있다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어떤 자세로 보내야 할지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지금 여기 한 소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번제물로 바쳐졌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자녀도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그녀는 세상이나 육신, 악마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불평하는 에브라임
(삿12.1) 에브라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너와 네 집을 불태우리라, 하매  
And the men of Ephraim gathered themselves together, and went northward, and said unto Jephthah, Wherefore passedst thou over to fight against the children of Ammon, and didst not call us to go with thee? we will burn thine house upon thee with fire. 
또 에브라임 지파의 불평이 시작됩니다.  
8장에서 기드온이 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 입다가 크나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브라임은 절대 전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검을 들지도 않고, 전투에 나가지도 않고, 
승리의 기쁨에 동참하지도 않고,  항상 불평할 거리만 찾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에브라임은 서운해합니다.  
심지어 그것이 나쁜 관심이든 좋은 관심이든 상관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평소에는 주님을 위해서 아무 헌신도 하지 않다가
자신이 끼어들 자리만 생기면 자신의 방법으로 계속 불평을하고
사람들 사이에 이간질을 시킵니다. 
에브라임은, 언제나 서운합니다.
기드온은 그를 달래주었지만 입다는 달랐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너의 집을 불태우겠다고 거칠게 나옵니다. 
외동 딸을 장사지낸 입다는 그들의 불평을 여유롭게 받아줄 여유가 없습니다. 
불평의 영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세계는 오직 “자기 자신”으로 시작해서 “자기 자신”으로 끝납니다.
그들은 아무리 많은 관심을 받아도,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원하는 그만큼의 관심을 줄 시간이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계신 여러분은 에브라임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라고 할때는 하지 않는 사람들
(삿12.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건져 내지 아니하므로  
And Jephthah said unto them, I and my people were at great strife with the children of Ammon; and when I called you, ye delivered me not out of their hands.
  
우리가 적들과 싸우고 있을때 너희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비판만 할 뿐 직접해보라고 말을하면 하지 않습니다. 
(삿12.3) 너희가 나를 건져 내지 아니함을 내가 보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주셨거늘 …
And when I saw that ye delivered me not, I put my life in my hands, and passed over against the children of Ammon, and the LORD delivered them into my hand: …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걸었고, 너희는 여기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불평하는 것이냐?'
(삿12.3) …너희가 어찌하여 이 날 내게로 올라와서 나와 싸우고자 하느냐? 하고  
…wherefore then are ye come up unto me this day, to fight against me?
(삿12.4) 그때에 입다가 길르앗의 모든 사람들을 함께 모아 에브라임과 싸웠더라.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로서 에브라임 사람들과 므낫세 사람들 가운데 있느니라, 하였기 때문이라.  
Then Jephthah gathered together all the men of Gilead, and fought with Ephraim: and the men of Gilead smote Ephraim, because they said, Ye Gileadites are fugitives of Ephraim among the Ephraimites, and among the Manassites.
  
만족하지 못하면 공격하는 사람들
보세요, 누군가가 불평을 하고 당신이 그들의 불평에 굴복하지 않거나 
그들의 기분을 만족스럽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당신의 인신공격이나 당신의 약점을 찾아서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이름을 부르며 인신공격을 시작했다는 건,  
그 사람이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는 증거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은 사실조차 아니었어요.  
길르앗은 에브라임 출신이 아니라 므낫세와 갓 지파 출신입니다.  
즉, 그들이 말한 건 애초에 틀렸어요.
(삿12.5)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보다 먼저 요르단의 통로를 점령하고는 도망한 그 에브라임 사람들이 말하기를, 내가 지나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말하기를, 아니라, 하면  
And the Gileadites took the passages of Jordan before the Ephraimites: and it was so, that when those Ephraimites which were escaped said, Let me go over; that the men of Gilead said unto him, art thou an Ephraimite? If he said, Nay;
길르앗 사람들이 통로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당신이 에브라임 사람이라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삿12.6) 그들이 그에게, 이제 쉽볼렛을 말해 보라, 하고 그가 능히 그것을 바르게 발음하여 말하지 못하므로 십볼렛이라 하면 그들이 곧 그를 붙잡아 요르단의 통로에서 죽였더라. 그때에 에브라임 사람들 중에서 쓰러진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Then said they unto him, Say now Shibboleth: and he said Sibboleth: for he could not frame to pronounce it right. Then they took him, and slew him at the passages of Jordan: and there fell at that time of the Ephraimites forty and two thousand.
에브라임 사람들은 ‘쉽볼렛’을 발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발음 하나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단지 발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중심, 그들의 정체성, 그들의 태도가 다 드러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참지 못한 입다
이제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딛3.8) 이것은 신실한 말이로다. 원하건대 너는 확고하게 이것들을 단언하라. 그 목적은 하나님을 믿은 자들이 조심하여 선한 행위들을 지속하게 하려 함이니 이것들은 선하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This is a faithful saying, and these things I will that thou affirm constantly, that they which have believed in God might be careful to maintain good works. These things are good and profitable unto men.
보세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좋은 행실에 대해 설교하지 않으면  
그들은 좋은 행실을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딛3.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와 논쟁과 율법에 관한 다툼들은 피하라. 그것들은 무익하고 헛되니라.  
But avoid foolish questions, and genealogies, and contentions, and strivings about the law; for they are unprofitable and vain.
(딛3.10) 이단인 자는 한두 번 훈계한 뒤에 거절하라.  
A man that is an heretick after the first and second admonition reject;
(딛3.11) 네가 알거니와 이러한 자는 타락하여 자신에게 정죄를 받아 죄를 짓느니라.  
Knowing that he that is such is subverted, and sinneth, being condemned of himself.
이게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회들은  
연약하고 병들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합니다.
이단자는 단지 잘못된 교리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잘못된 교리를 믿을 수도 있겠지만, 
이단자란 큰 공동체 안에서 자신만의 분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의 목적은 가능한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서 붙잡아 두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의 목적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랄 수 있다록
자리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에 동의할 경우에만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에 동의하지 않아도 자리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그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와 다른 교리를 표출하면서
자신들의 작은 그룹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들은 떠나야 합니다.
저도 교회 성도수가 늘어나길 바라지만, 
살이 아닌 고름이나 종양으로 그 수를 늘리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미친 소리를 가르치거나
전단지나 비디오를 당신에게 타겟팅하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늑대들이 여러분을 뒤처진 양으로 보았거나
무리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양으로 본다는 것이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절은 입다가 에브라임에 대응한 것과 
평행을 이루는 신약성서의 가르침입니다.
(갈2.1) 그 뒤 십사 년이 지나서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도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라.  
Then fourteen years after I went up again to Jerusalem with Barnabas, and took Titus with me also.
(갈2.2) 내가 계시로 말미암아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포하는 그 복음을 그들에게 전달하되 명성 있는 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하였으니 이것은 어찌하든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And I went up by revelation, and communicated unto them that gospel which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privately to them which were of reputation, lest by any means I should run, or had run, in vain.
(갈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그리스 사람 디도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But neither Titus, who was with me, being a Greek, was compelled to be circumcised:
(갈2.4) 이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아 우리를 속박하려고 몰래 들어왔으나  
And that because of false brethren unawares brought in, who came in privily to spy out our liberty which we have in Christ Jesus, that they might bring us into bondage:
우리는 주님을 위해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누군가 몰래 와서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망치려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갈2.5) 우리가 그들에게 단 한 시간도 굴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  
To whom we gave place by subjection, no, not for an hour;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continue with you.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기독교를 가지고 
정치적 접근을 시도하게 만든다든지 
사회활동에 대한 접근 고리로 만든다는지 
여러분이 형성하려는 작은 단제에 명분으로 사용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헛된 용도에 기독교가 사용되는 것에 동의해서는 안됩니다.
(갈2.6) 그러나 무엇이나 되는 것같이 여겨지던 이 사람들에 관하여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지 내게는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시느니라) 무엇이나 되는 것같이 여겨지던 그들이 회의에서 내게 아무것도 더해 주지 아니하였느니라.  
But of these who seemed to be somewhat, (whatsoever they were, it maketh no matter to me: God accepteth no man's person:) for they who seemed to be somewhat in conference added nothing to me: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너희는 어디 있었느냐?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너희는 어디 있었느냐?
이제 내가 돌아왔을 때, 너희는 성경에도 없는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려 하느냐?
나는 너희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이 입다가 에브라임에 말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전쟁을 싸울 때 너희는 어디에 있었느냐?'
우리가 힘들게 시간과 물질을 드려 교회를 지켜왔는데 
누군가 와서 이 교회를 흔들어대기 시작하고
자신이 성도들의 신뢰를 받으려고 한다면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혼자 잘 할 수 있으면 나가서 자신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의미있는 숫자 사만 이천명
(삿12.6) … 그때에 에브라임 사람들 중에서 쓰러진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 and there fell at that time of the Ephraimites forty and two thousand.  
사십 이라는 숫자는 종종 죄에 대한 심판과 연관됩니다.
대언자 엘리사를 조롱하다가 곰에의해 죽은 아이가  42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안을 심판하셨을 때 
예후가 42명의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왕하10.12-14)
또한 대환난 시기에 42개월 동안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숫자 42를 만드는 7 곱하기 6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입다의 죽음
(삿12.7) 입다가 육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였고 그때에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어서 길르앗의 도시들 중의 하나에 묻히니라.  
And Jephthah judged Israel six years. Then died Jephthah the Gileadite, and was buried in one of the cities of Gilead.
여러분, 이건 예수님의 죽음을 언급하는 구절을 제외하면
성경에서 한 인간의 삶을 표현한 가장 슬픈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상속자도 없고, 유산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안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도 묻힌 성읍도 어디인지 모릅니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유산을 이어받은 아들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었지만 그는 홀로 살고 홀로 죽은 자였습니다.  
오직 짧은 시간 동안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했고,
그는 이 세상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옛날 위대한 부자들에대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전기를 만든 위대한 기술자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높은 산 정상에 먼저 오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든 기쁨의 연속인든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하십시오!
몇십년만 지나도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고 먼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주님을 위해 하지 않은 모든 일들은 다 불타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 집이 얼마나 컸는지?  차는 얼마나 좋은 차였는지?
당신이 언떤 벼슬을 가졌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행한 모든 불의와 허물을 불태우실 것입니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 자랑도 다 불태워버리실 것입니다.  
헛되이 낭비한 시간들조차도 다 불태워버리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 만이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인생 전체가 연기처럼 사라지게 두지 마십시오.
입산과 엘론과 압돈의 삶
자, 그럼 기드온과 아비멜렉 이후로 두 명의 평화로운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삿12.8) ¶ 입다 이후에는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을 재판하니라.  
¶ And after him Ibzan of Bethlehem judged Israel.  
여호수아 19장 15절에 따르면, 이 베들레헴은 스불론에 있는 베들레헴입니다.
(삿12:9) 그에게 아들 서른 명과 딸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가 딸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아들들을 위하여 다른 곳에서 딸 서른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칠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니라.  
And he had thirty sons, and thirty daughters, whom he sent abroad, and took in thirty daughters from abroad for his sons. And he judged Israel seven years.  
(삿12:10) 입산이 죽어서 베들레헴에 묻히니라.  
Then died Ibzan, and was buried at Bethlehem.  
이 입산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의 삶에 대한 유일한 증언은 이것입니다:  
그가 한 일은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 뿐입니다. 
그는 큰 가정을 이루었고, 그의 자녀들은 모두 결혼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재판했고, 그 후에 죽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충실히 참석하고, 
시간과 돈으로 교회를 지원했으며, 선교사를 후원하다가 죽는다면
여러분의 삶은 괜찮은 삶입니다. 
(삿12.11) ¶ 입산 이후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을 재판하되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였더라.  
¶ And after him Elon, a Zebulonite, judged Israel; and he judged Israel ten years. 
(삿12.11)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어서 스불론 지방 아이얄론에 묻히니라.  
And Elon the Zebulonite died, and was buried in Aijalon in the country of Zebulun.  
어떻습니까? 그의 이름이 성경에 올라갔다면 괜찮은 삶입니다. 
(삿12.13) ¶ 엘론 이후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을 재판하니라.  
¶ And after him Abdon the son of Hillel, a Pirathonite, judged Israel.  
(삿12.14) 그에게 아들 마흔 명과 손자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어린 나귀 일흔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팔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니라.  
And he had forty sons and thirty nephews, that rode on threescore and ten ass colts: and he judged Israel eight years.  
(삿12.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어서 에브라임 땅 곧 아말렉 족속의 산에 있는 비라돈에 묻히니라.  
And Abdon the son of Hillel the Pirathonite died, and was buried in Pirathon in the land of Ephraim, in the mount of the Amalekites.  
압돈 재판관은 에브라임 땅 출신이었습니다.  
나중에 그와 같은 마을 출신으로는 브나야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다윗의 용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삼하23:30)
입다에 의해 에브라함이 징계를 받았지만 그 후로도
에브라임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에의해서 쓰임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입다의 냉정한 대응
그런데 왜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그렇게 냉정했을까요?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지 않으시면, 
그들은 결코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불평만 하던 지파에서
하나님께 유익을 주고 백성에게 복이 되는 
재판관들과 용사들을 배출하는 지파가 되었어요.
(잠19.18) 소망이 있을 동안에 네 아들을 징계하되 그가 운다고 네 혼이 아끼지 말지니라.
Chasten thy son while there is hope, and let not thy soul spare for his crying.
입다에게서 발견되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어디를 보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찾고자 합니다."
어떻게 입다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할 수 있겠습니까?
입다도 자기 형제들에게 버림받았고, 형제들에게 쫓겨났습니다.  
사생아라는 이유로 조롱당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음행으로 태어났다는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입다가 필요해졌을 때,  그들이 입다에게 돌아왔을 때,  
입다는 쫓겨났던 일, 거절당했던 일에 대해 쓰라림을 품지 않았고,  
그 과거의 거절을 원망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을 위해 나아가 싸웠고,  
그들을 구원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얼마나 닮았습니까!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 전, 우리가 그분을 몇 번이나 저주했습니까?  
구원을 부르짖기 전, 그분의 이름을 몇 번이나 헛되이 불렀습니까?
그런데도 그분은 쓰라림을 품지 않으셨고,  
그걸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셨으며,  우리를 위해 오셨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입다가 말하길,  
“너희가 단 한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너희를 위해 싸우고 승리를 주겠다. 
나를 너희의 머리로 삼으라.”(삿11:9)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죄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성경은 그가 교회의 머리로 세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입다처럼 기구한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서조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미덕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래 전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에게도 한때는 외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부를 때, 그분은 와서 싸우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그 승리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끝-제목: 입다의 마지막 행보
본문: 삿12.7
(삿12.7) 입다가 육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였고 그때에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어서 길르앗의 도시들 중의 하나에 묻히니라.  
And Jephthah judged Israel six years. Then died Jephthah the Gileadite, and was buried in one of the cities of Gilead.
한 사람의 삶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입다가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은
그의 삶에 육신으로 인한 실수가 있었지만,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사사기 11장 34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삿11.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 And Jephthah came to Mizpeh unto his house, and, behold, his daughter came out to meet him with timbrels and with dances: and she was his only child; beside her he had neither son nor daughter.  
(삿11.35) 그가 그녀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네가 나를 심히 참담하게 하였으며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도다. 내가 주를 향해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매  
And it came to pass, when he saw her, that he rent his clothes, and said, Alas, my daughter! thou hast brought me very low, and thou art one of them that trouble me: for I have opened my mouth unto the LORD, and I cannot go back. 
입다와 그의 딸은 잘못된 서원에 대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취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배우지 못했거나
알고도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삿11.36)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를 향해 입을 여셨을진대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주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원수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And she said unto him, My father, if thou hast opened thy mouth unto the LORD, do to me according to that which hath proceeded out of thy mouth; forasmuch as the LORD hath taken vengeance for thee of thine enemies, even of the children of Ammon.
(삿11.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And she said unto her father, Let this thing be done for me: let me alone two months, that I may go up and down upon the mountains, and bewail my virginity, I and my fellows.
(삿11.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And he said, Go. And he sent her away for two months: and she went with her companions, and bewailed her virginity upon the mountains.
(삿11.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wo months, that she returned unto her father, who did with her according to his vow which he had vowed: and she knew no man. And it was a custom in Israel,
(삿11.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that the daughters of Israel went yearly to lament the daughter of Jephthah the Gileadite four days in a year.
자, 먼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 어디에 살고 있든, 여러분이 사는 사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는 사회라면 매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무슬림이나 유교문화의 지배아래 살았다면,
여자들은 많은 제약을 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파카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이라는 국가에가서
여성 인권을 주장한다면 여러분의 주장은 전혀 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벗어나지 않은 입다의 딸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잘못된 서원과 고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젊은 남자나 여자들이 자신들의 부모의 권위에 얼만나 순종할까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권위자의 뜻에 얼마나 순종할까요?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희생 제물로 바칠 것이다. 너를 번제로 드릴 것이다.” 
그러자 입다의 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달만 주세요. 두 달만 제게 주셔서 슬퍼하고, 통곡하고, 
이 일에 대해 마음껏 애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저 같으면 두 달 동안 멀리 도마쳐 숨을 궁리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의 딸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삿11.34절에서 입다의 딸은 매우 순종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삿11.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
¶ And Jephthah came to Mizpeh unto his house, and, behold, his daughter came out to meet him with timbrels and with dances:…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명령을 받을때
우리는 종종 어떤 명령을 받거나, 어떤 지시를 받을때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요구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머리로 계산을 하게 됩니다. 
‘왜 이걸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를 따져보거나, 
‘대신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나 
‘불순종했을 때의 결과가 어떤지’를 고려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다의 딸이 지금 놓인 상황과 
비교될 만한 일을 마주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그 상황을 피하지 않았고, 돌아와서 순종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생명을 내어 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이 상황을 실제로 적용될 수 있을 만한 경우에 대입해 봅시다. 
만약 의사가 여러분에게 “남은 시간은 두 달입니다.”라고 했다고 해보죠
그럼 여러분은 두 달 동안 여러분의 삶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을까?
남자들은 군대 영장을 받고 난후에는 
군대 가지 전에 총각 딱지를 떼자고 결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제한적인 기한이 주어졌을 때, 
그 사람의 본성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금이라도 오실 수 있다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어떤 자세로 보내야 할지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지금 여기 한 소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번제물로 바쳐졌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자녀도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그녀는 세상이나 육신, 악마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불평하는 에브라임
(삿12.1) 에브라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너와 네 집을 불태우리라, 하매  
And the men of Ephraim gathered themselves together, and went northward, and said unto Jephthah, Wherefore passedst thou over to fight against the children of Ammon, and didst not call us to go with thee? we will burn thine house upon thee with fire. 
또 에브라임 지파의 불평이 시작됩니다.  
8장에서 기드온이 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 입다가 크나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브라임은 절대 전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검을 들지도 않고, 전투에 나가지도 않고, 
승리의 기쁨에 동참하지도 않고,  항상 불평할 거리만 찾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에브라임은 서운해합니다.  
심지어 그것이 나쁜 관심이든 좋은 관심이든 상관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평소에는 주님을 위해서 아무 헌신도 하지 않다가
자신이 끼어들 자리만 생기면 자신의 방법으로 계속 불평을하고
사람들 사이에 이간질을 시킵니다. 
에브라임은, 언제나 서운합니다.
기드온은 그를 달래주었지만 입다는 달랐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너의 집을 불태우겠다고 거칠게 나옵니다. 
외동 딸을 장사지낸 입다는 그들의 불평을 여유롭게 받아줄 여유가 없습니다. 
불평의 영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세계는 오직 “자기 자신”으로 시작해서 “자기 자신”으로 끝납니다.
그들은 아무리 많은 관심을 받아도,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원하는 그만큼의 관심을 줄 시간이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계신 여러분은 에브라임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라고 할때는 하지 않는 사람들
(삿12.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건져 내지 아니하므로  
And Jephthah said unto them, I and my people were at great strife with the children of Ammon; and when I called you, ye delivered me not out of their hands.
  
우리가 적들과 싸우고 있을때 너희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비판만 할 뿐 직접해보라고 말을하면 하지 않습니다. 
(삿12.3) 너희가 나를 건져 내지 아니함을 내가 보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주셨거늘 …
And when I saw that ye delivered me not, I put my life in my hands, and passed over against the children of Ammon, and the LORD delivered them into my hand: …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걸었고, 너희는 여기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불평하는 것이냐?'
(삿12.3) …너희가 어찌하여 이 날 내게로 올라와서 나와 싸우고자 하느냐? 하고  
…wherefore then are ye come up unto me this day, to fight against me?
(삿12.4) 그때에 입다가 길르앗의 모든 사람들을 함께 모아 에브라임과 싸웠더라.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로서 에브라임 사람들과 므낫세 사람들 가운데 있느니라, 하였기 때문이라.  
Then Jephthah gathered together all the men of Gilead, and fought with Ephraim: and the men of Gilead smote Ephraim, because they said, Ye Gileadites are fugitives of Ephraim among the Ephraimites, and among the Manassites.
  
만족하지 못하면 공격하는 사람들
보세요, 누군가가 불평을 하고 당신이 그들의 불평에 굴복하지 않거나 
그들의 기분을 만족스럽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당신의 인신공격이나 당신의 약점을 찾아서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이름을 부르며 인신공격을 시작했다는 건,  
그 사람이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는 증거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은 사실조차 아니었어요.  
길르앗은 에브라임 출신이 아니라 므낫세와 갓 지파 출신입니다.  
즉, 그들이 말한 건 애초에 틀렸어요.
(삿12.5)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보다 먼저 요르단의 통로를 점령하고는 도망한 그 에브라임 사람들이 말하기를, 내가 지나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말하기를, 아니라, 하면  
And the Gileadites took the passages of Jordan before the Ephraimites: and it was so, that when those Ephraimites which were escaped said, Let me go over; that the men of Gilead said unto him, art thou an Ephraimite? If he said, Nay;
길르앗 사람들이 통로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당신이 에브라임 사람이라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삿12.6) 그들이 그에게, 이제 쉽볼렛을 말해 보라, 하고 그가 능히 그것을 바르게 발음하여 말하지 못하므로 십볼렛이라 하면 그들이 곧 그를 붙잡아 요르단의 통로에서 죽였더라. 그때에 에브라임 사람들 중에서 쓰러진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Then said they unto him, Say now Shibboleth: and he said Sibboleth: for he could not frame to pronounce it right. Then they took him, and slew him at the passages of Jordan: and there fell at that time of the Ephraimites forty and two thousand.
에브라임 사람들은 ‘쉽볼렛’을 발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발음 하나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단지 발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중심, 그들의 정체성, 그들의 태도가 다 드러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참지 못한 입다
이제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딛3.8) 이것은 신실한 말이로다. 원하건대 너는 확고하게 이것들을 단언하라. 그 목적은 하나님을 믿은 자들이 조심하여 선한 행위들을 지속하게 하려 함이니 이것들은 선하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This is a faithful saying, and these things I will that thou affirm constantly, that they which have believed in God might be careful to maintain good works. These things are good and profitable unto men.
보세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좋은 행실에 대해 설교하지 않으면  
그들은 좋은 행실을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딛3.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와 논쟁과 율법에 관한 다툼들은 피하라. 그것들은 무익하고 헛되니라.  
But avoid foolish questions, and genealogies, and contentions, and strivings about the law; for they are unprofitable and vain.
(딛3.10) 이단인 자는 한두 번 훈계한 뒤에 거절하라.  
A man that is an heretick after the first and second admonition reject;
(딛3.11) 네가 알거니와 이러한 자는 타락하여 자신에게 정죄를 받아 죄를 짓느니라.  
Knowing that he that is such is subverted, and sinneth, being condemned of himself.
이게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회들은  
연약하고 병들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합니다.
이단자는 단지 잘못된 교리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잘못된 교리를 믿을 수도 있겠지만, 
이단자란 큰 공동체 안에서 자신만의 분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의 목적은 가능한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서 붙잡아 두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의 목적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랄 수 있다록
자리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에 동의할 경우에만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에 동의하지 않아도 자리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그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와 다른 교리를 표출하면서
자신들의 작은 그룹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들은 떠나야 합니다.
저도 교회 성도수가 늘어나길 바라지만, 
살이 아닌 고름이나 종양으로 그 수를 늘리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미친 소리를 가르치거나
전단지나 비디오를 당신에게 타겟팅하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늑대들이 여러분을 뒤처진 양으로 보았거나
무리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양으로 본다는 것이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절은 입다가 에브라임에 대응한 것과 
평행을 이루는 신약성서의 가르침입니다.
(갈2.1) 그 뒤 십사 년이 지나서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도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라.  
Then fourteen years after I went up again to Jerusalem with Barnabas, and took Titus with me also.
(갈2.2) 내가 계시로 말미암아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포하는 그 복음을 그들에게 전달하되 명성 있는 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하였으니 이것은 어찌하든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And I went up by revelation, and communicated unto them that gospel which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privately to them which were of reputation, lest by any means I should run, or had run, in vain.
(갈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그리스 사람 디도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But neither Titus, who was with me, being a Greek, was compelled to be circumcised:
(갈2.4) 이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아 우리를 속박하려고 몰래 들어왔으나  
And that because of false brethren unawares brought in, who came in privily to spy out our liberty which we have in Christ Jesus, that they might bring us into bondage:
우리는 주님을 위해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누군가 몰래 와서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망치려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갈2.5) 우리가 그들에게 단 한 시간도 굴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  
To whom we gave place by subjection, no, not for an hour;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continue with you.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기독교를 가지고 
정치적 접근을 시도하게 만든다든지 
사회활동에 대한 접근 고리로 만든다는지 
여러분이 형성하려는 작은 단제에 명분으로 사용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헛된 용도에 기독교가 사용되는 것에 동의해서는 안됩니다.
(갈2.6) 그러나 무엇이나 되는 것같이 여겨지던 이 사람들에 관하여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지 내게는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시느니라) 무엇이나 되는 것같이 여겨지던 그들이 회의에서 내게 아무것도 더해 주지 아니하였느니라.  
But of these who seemed to be somewhat, (whatsoever they were, it maketh no matter to me: God accepteth no man's person:) for they who seemed to be somewhat in conference added nothing to me: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너희는 어디 있었느냐?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너희는 어디 있었느냐?
이제 내가 돌아왔을 때, 너희는 성경에도 없는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려 하느냐?
나는 너희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이 입다가 에브라임에 말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전쟁을 싸울 때 너희는 어디에 있었느냐?'
우리가 힘들게 시간과 물질을 드려 교회를 지켜왔는데 
누군가 와서 이 교회를 흔들어대기 시작하고
자신이 성도들의 신뢰를 받으려고 한다면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혼자 잘 할 수 있으면 나가서 자신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의미있는 숫자 사만 이천명
(삿12.6) … 그때에 에브라임 사람들 중에서 쓰러진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 and there fell at that time of the Ephraimites forty and two thousand.  
사십 이라는 숫자는 종종 죄에 대한 심판과 연관됩니다.
대언자 엘리사를 조롱하다가 곰에의해 죽은 아이가  42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안을 심판하셨을 때 
예후가 42명의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왕하10.12-14)
또한 대환난 시기에 42개월 동안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숫자 42를 만드는 7 곱하기 6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입다의 죽음
(삿12.7) 입다가 육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였고 그때에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어서 길르앗의 도시들 중의 하나에 묻히니라.  
And Jephthah judged Israel six years. Then died Jephthah the Gileadite, and was buried in one of the cities of Gilead.
여러분, 이건 예수님의 죽음을 언급하는 구절을 제외하면
성경에서 한 인간의 삶을 표현한 가장 슬픈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상속자도 없고, 유산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안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도 묻힌 성읍도 어디인지 모릅니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유산을 이어받은 아들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었지만 그는 홀로 살고 홀로 죽은 자였습니다.  
오직 짧은 시간 동안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했고,
그는 이 세상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옛날 위대한 부자들에대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전기를 만든 위대한 기술자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높은 산 정상에 먼저 오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든 기쁨의 연속인든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하십시오!
몇십년만 지나도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고 먼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주님을 위해 하지 않은 모든 일들은 다 불타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 집이 얼마나 컸는지?  차는 얼마나 좋은 차였는지?
당신이 언떤 벼슬을 가졌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행한 모든 불의와 허물을 불태우실 것입니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 자랑도 다 불태워버리실 것입니다.  
헛되이 낭비한 시간들조차도 다 불태워버리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 만이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인생 전체가 연기처럼 사라지게 두지 마십시오.
입산과 엘론과 압돈의 삶
자, 그럼 기드온과 아비멜렉 이후로 두 명의 평화로운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삿12.8) ¶ 입다 이후에는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을 재판하니라.  
¶ And after him Ibzan of Bethlehem judged Israel.  
여호수아 19장 15절에 따르면, 이 베들레헴은 스불론에 있는 베들레헴입니다.
(삿12:9) 그에게 아들 서른 명과 딸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가 딸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아들들을 위하여 다른 곳에서 딸 서른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칠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니라.  
And he had thirty sons, and thirty daughters, whom he sent abroad, and took in thirty daughters from abroad for his sons. And he judged Israel seven years.  
(삿12:10) 입산이 죽어서 베들레헴에 묻히니라.  
Then died Ibzan, and was buried at Bethlehem.  
이 입산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의 삶에 대한 유일한 증언은 이것입니다:  
그가 한 일은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 뿐입니다. 
그는 큰 가정을 이루었고, 그의 자녀들은 모두 결혼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재판했고, 그 후에 죽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충실히 참석하고, 
시간과 돈으로 교회를 지원했으며, 선교사를 후원하다가 죽는다면
여러분의 삶은 괜찮은 삶입니다. 
(삿12.11) ¶ 입산 이후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을 재판하되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였더라.  
¶ And after him Elon, a Zebulonite, judged Israel; and he judged Israel ten years. 
(삿12.11)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어서 스불론 지방 아이얄론에 묻히니라.  
And Elon the Zebulonite died, and was buried in Aijalon in the country of Zebulun.  
어떻습니까? 그의 이름이 성경에 올라갔다면 괜찮은 삶입니다. 
(삿12.13) ¶ 엘론 이후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을 재판하니라.  
¶ And after him Abdon the son of Hillel, a Pirathonite, judged Israel.  
(삿12.14) 그에게 아들 마흔 명과 손자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어린 나귀 일흔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팔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니라.  
And he had forty sons and thirty nephews, that rode on threescore and ten ass colts: and he judged Israel eight years.  
(삿12.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어서 에브라임 땅 곧 아말렉 족속의 산에 있는 비라돈에 묻히니라.  
And Abdon the son of Hillel the Pirathonite died, and was buried in Pirathon in the land of Ephraim, in the mount of the Amalekites.  
압돈 재판관은 에브라임 땅 출신이었습니다.  
나중에 그와 같은 마을 출신으로는 브나야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다윗의 용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삼하23:30)
입다에 의해 에브라함이 징계를 받았지만 그 후로도
에브라임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에의해서 쓰임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입다의 냉정한 대응
그런데 왜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그렇게 냉정했을까요?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지 않으시면, 
그들은 결코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불평만 하던 지파에서
하나님께 유익을 주고 백성에게 복이 되는 
재판관들과 용사들을 배출하는 지파가 되었어요.
(잠19.18) 소망이 있을 동안에 네 아들을 징계하되 그가 운다고 네 혼이 아끼지 말지니라.
Chasten thy son while there is hope, and let not thy soul spare for his crying.
입다에게서 발견되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어디를 보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찾고자 합니다."
어떻게 입다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할 수 있겠습니까?
입다도 자기 형제들에게 버림받았고, 형제들에게 쫓겨났습니다.  
사생아라는 이유로 조롱당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음행으로 태어났다는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입다가 필요해졌을 때,  그들이 입다에게 돌아왔을 때,  
입다는 쫓겨났던 일, 거절당했던 일에 대해 쓰라림을 품지 않았고,  
그 과거의 거절을 원망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을 위해 나아가 싸웠고,  
그들을 구원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얼마나 닮았습니까!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 전, 우리가 그분을 몇 번이나 저주했습니까?  
구원을 부르짖기 전, 그분의 이름을 몇 번이나 헛되이 불렀습니까?
그런데도 그분은 쓰라림을 품지 않으셨고,  
그걸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셨으며,  우리를 위해 오셨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입다가 말하길,  
“너희가 단 한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너희를 위해 싸우고 승리를 주겠다. 
나를 너희의 머리로 삼으라.”(삿11:9)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죄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성경은 그가 교회의 머리로 세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입다처럼 기구한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서조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미덕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래 전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에게도 한때는 외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부를 때, 그분은 와서 싸우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그 승리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끝-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