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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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서론
서론
‘악(evil)’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인간 역사 속에서 이 중요한 철학적 주제는 철학자들에 의해 정의내려져오곤 했습니다.
플라톤은 악을 단순히 ‘선의 결핍’이라 했고, 칸트는 인간이 도덕을 알면서도 자기중심적 선택을 하는 ‘급진적 악’을 말했습니다. 아렌트는 심지어 악이 특별한 괴물의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순응 속에서 드러나는 ‘평범한 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악을 규정하려 했지만, 여전히 악은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철학자들의 통찰이 비추는 부분적 빛을 인정하면서도, 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악은 단순한 결핍도, 단순한 선택도, 단순한 구조도 아닙니다. 악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실재이며, 사탄이라는 인격적 존재를 통해 역사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마음속 타락한 본성으로 스며들어 선택을 왜곡시키고, 사회와 문화라는 구조 속에서 확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을 단순히 ‘피할 수 없는 현실’로만 둘 수 없습니다. 주기도문은 우리로 하여금 악을 분별하고, 그 권세에서 우리를 건지실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구해야 할 악으로부터의 구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본론
본론
1.악의 다차원성
1.악의 다차원성
성경이 말하는 악의 정체에 대해 파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분명히 ‘악’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악함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것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직면시키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악은 단순히 인간의 관점에서 ‘나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세 가지 종류의 ‘악’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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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격적인 악함 (사단의 존재)
(1) 인격적인 악함 (사단의 존재)
성경은 ‘사단’이라고 하는 인격적인 존재를 분명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런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악’인 사단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모든 초월적인 성경의 내용들을 대부분 ‘상징’으로 보려는 노력을 하죠.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인간성을 ‘초월’한 무언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으며 그것이 역사 속에서 존재해왔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적 존재 뿐만 아니라 ‘초월적 존재’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단’이라는 존재는 인간 초월적 존재로서 모든 악과 죄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한사도는 “악한 자”를 분명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한 자”가 사람일수도 있잖아요! 라고 질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으로 읽으면 여기서 ‘악한 자’ 앞에 호라는 헬라어 정관사가 붙습니다. 악한 사람들을 얘기하려고 했다면 ‘악한 자들’이라는 복수형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정관사 ‘the’에 해당하는 호가 붙으면서 이것은 분명히 당시 초대교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인격적인 악의 근원 즉 ‘사단’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요한 사도는 동일한 그 악한 자 안에 온 세상이 처해 있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바울 사도는 세상이 사단에 처해 있다라고 얘기한 것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표현합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즉 ‘죄인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 이라고 얘기하죠. 성경에서 ‘영’이라는 표현은 인격체에게만 쓰는 표현입니다.
분명히 ‘악’의 근원이 되는 어떤 ‘인격체’가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 등 다양하게 표현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이라고 얘기할 수 있죠.
이 사단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성도를 멸하려는 인격적 존재, 곧 사단’ 입니다.
그리고 이 사단에게 속한 ‘악한 영들’이 또 있습니다. 그들 또한 ‘악한 인격적 존재’로 분명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단을 비롯한 그의 세력을 성경에서는 ‘악’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격적 존재로서의 악’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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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적 악(죄성, 타락한 본성)
(2) 내적 악(죄성, 타락한 본성)
그러나 성경이 이런 인격적 존재로서의 악만을 얘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단이라는 인격적 악의 존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인격적 악의 존재인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에덴동산에서 유일하게 금하셨던 선악과 열매를 먹게 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이 뱀의 정체에 대해 밝힙니다.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이 뱀은 뱀의 모양으로 하와 앞에 나타난 인격적인 악의 존재 즉 ‘사단’입니다.
인격적 악인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의로움의 기준에서 벗어나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우리는 ‘죄’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 의로움의 기준에서 벗어나버린 인간들은 죄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선한 형상을 닮도록 창조된 인간에게 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가 찾아옵니다.
인간은 이제 어떤 행위를 하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 받지 못하는 ‘죄인으로서의 성질’ 즉 ‘죄성’을 가지게 됩니다.
겉으로 아무리 선한 모습이어도 이 뿌리 깊은 내적 악은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줍니다.
아주 맑은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호수의 물을 마시는 자들마다 병에 걸리고 죽게되는 거에요.
맑은 호수인데 왜 죽을까? 그 깊은 바닥에 이미 오염된 토양이 있는겁니다.
위에 물은 아주 맑지만 그곳에는 병균과 각종 바이러스, 병을 유발하는 유해균들이 있습니다.
이 호수의 물이 맑다고 해도 그 호수가 깨끗한 호수인가요? 아무리 밖에서 좋은 것들을 부어도 안 됩니다. 그 근간이 부정하기 때문이죠.
인간의 내적 악은 이런 것이죠. 아무리 깨끗해보여도 근본이 타락하여 내적 악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내적 악이라고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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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조적 악 (사회적, 제도적 악)
(3) 구조적 악 (사회적, 제도적 악)
마지막으로 세번째 악은 ‘구조적 악’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 안에서, 제도 안에서 나타나는 악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조리함’이 바로 이런 악에 포함되는 것이죠.
여러분이 정치나 사회 등 모든 곳에서 느끼는 부조리함들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아무리 애써도 그것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인간 사회 속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고 파고 파도 또 악한 것들이죠.
공감이 많이 가실거에요.
이것이 바로 ‘구조적 악’입니다.
단순히 개인의 죄를 넘어서 사회 제도, 구조, 문화 속에 체계화된 불의함, 억압을 의미합니다.
군대에서 부조리라는 말 되게 많이 쓰거든요?
군대 다녀오신 분들 분명히 아실거에요. 예를 들어 폭력이라는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해 폭력을 금지합니다. 그러면 끝인가요?
폭력을 금지해서 폭력 부조리가 사라지면 그 사회적 악이 다른 면모로 나타나요. 아주 교묘하게 후임들을 괴롭히고 더 치밀하게 부조리가 일어나는 것들.
악이라는 것은 이렇게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구조적인 악도 존재하는 것이죠.
2. 악의 배후에는 인격적 악이 있다.
2. 악의 배후에는 인격적 악이 있다.
(1) 인격적 악인 사단의 존재를 믿어야하는 이유
(1) 인격적 악인 사단의 존재를 믿어야하는 이유
한번 정리해보면 악은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악, 인간 내적인 악, 사회적 악
여러분 그런데 이 모든 악의 배후에는 사실 어떤 악이 있는 것입니까?
‘인격적 악’이 가장 근원적인 배후라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성경의 렌즈를 끼고 바라보지 않아도 사실 ‘인간 내적인 악’, ‘사회적 악’은 우리가 느끼고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 세계를 초월한 인격적인 악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성경의 렌즈’를 껴야만 보게 되죠.
그 인격적인 악의 존재의 정체를 말해주는 것도 성경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의 내적인 악, 사회적 악의 배후에는 바로 이 인격적 악의 실체인 ‘사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격적 존재의 악’ 즉 ‘사단과 그의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단을 믿으라는게 아니라, 성경 말씀을 믿기 때문에 사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해요.
여러분 가운데 아마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서 이런 것들을 쉽게 믿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성경의 모든 내용을 은유, 상징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을 원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에요.
혹은 합리적인 것들만 믿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말씀은 사실입니다. 사단의 존재도 우리는 믿어야하는 것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과 그의 세력은 존재하며 언제든지 우리를 악으로 무너뜨리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악의 배후에 서서 인간 내적으로, 사회적으로 악을 퍼뜨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 구절이 말하는게 바로 배후에서 ‘악을 일으키려는 인격적 악, 사단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죠.
(2) 악의 세 가지 면모 중 어떤 한가지만 믿거나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의 위험
(2) 악의 세 가지 면모 중 어떤 한가지만 믿거나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의 위험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기도가 ‘사단만을 대적하는 기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악에 대하여 실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 가지 악의 정체들에 대해서 한 가지 악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아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런 태도들을 한번쯤 보셨을 수도 있어요.
먼저 인격적 악인 사단만이 악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신앙은 완전히 ‘미신적’이거나 ‘이분법적’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죄를 저지르고 악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건 제 ‘내적 악’이고, 만약에 제가 그것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져야한다면 저는 그것을 져야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사단만 악이다라고 하면 제가 잘못한게 아니라 누가 잘못한겁니까? 사단만 잘못한겁니다.
내 책임은 전혀 없는 것처럼 되는 것이죠.
혹은 이럴 수도 있어요.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의 문제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이 하는거니까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단이 다 조장한거니까요. 근데 사실 사회적 악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을 때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 일하시고 사람을 통해 일하셔서 해결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어요.
근데 그렇지 않고 앉아서 기도만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게 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악만 존재하기 때문이죠.
두번째로 내적 악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어떨까요?
신앙을 완전히 ‘개인 내면의 도덕성’의 문제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내적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힘 쓰는 것은 개인 성결의 문제에서 중요한 모습입니다. 이건 필수적이에요.
그러나 그것만이 악에 대항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로서 사회구조적 악에 대하여 저항하고, 이 악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기도 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책임이 있습니다. 악에 대항할 책임이죠. 그 악에 대항하는 교회의 책임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그리고 회복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구조적 악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있죠.
주로 자유주의적 신학 혹은 일명 해방신학이라고 하는 사회참여적 신학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회 구조적 악만을 강조해서 그 구조적 악을 해결하는데만 실천하는 것이죠.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내적 악에 대한 성찰이 없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구조적 악을 부수고 사회구조를 바꾸고 건설하는 것만이 목적입니다.
이런 경우 큰 문제 하나가 생기는데 인간 사회의 특징은 ‘변화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악인가?’라고 물으면 변화하느 시대, 사회, 문화, 정치적 기준에 따라 상대주의적인 악의 정의를 내리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악에 대한 절대적 정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시되는 것이죠.
해방신학이라는 신학이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교회가 억압된 사회 구조 속에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편’이라는 구호 아래 사회 구조 변혁을 복음의 핵심으로 삼은 신학이죠.
물론 아주 긍정적인 모습이 있었으나 악을 사회구조의 문제로만 환원하여 결국 복음이 ‘사회운동, 사회혁명’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편, 약자의 편에 서시지만, 가난한 자, 약자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악에 대한 이 세 가지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해나가며 악에 대하여 승리해야 합니다.
3. 기도의 의미 -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께
3. 기도의 의미 -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께
그러면 이제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의미가 새롭게 와닿게 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하죠.
여러분 이 기도문의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이 기도문을 고백하는 사람은 분명한 믿음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의 모든 악의 면모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죠.
사단이라는 악이든, 내 안의 내적 악이든, 사회구조적 악이든 그것을 해결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그 모든 악으로부터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이 그것들을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격적 악, 사단에게 어떻게 승리하셨습니까?
공생애 중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그 모든 시험을 완벽하게 이겨내셨습니다.
승리한거죠.
그리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곳에서 사단에게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부활’을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죠.
내적 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승리하세요?
주님이 살아계실 때 내적 악이 없이 살아가셨습니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 당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내적 죄가 없으니 내적 악도 없죠.
그리고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들의 내적 악을 해결할 조건을 성취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내적 죄와 악에 대하여 그것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있는 속죄의 조건을 성취하셨습니다.
구조적 악에 대하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인간들의 구조적 악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 아시죠?
예수님이 무결하셨으나 로마의 정치적 억압과 유대 지도자들의 종교적 부패라는 구조적 악에 의하여 십자가 형을 받게 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모든 구조적 악도 예수님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부활하셔서 보여주시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구조적 악을 해결하는 복음이 예수님을 통해 선포된다고 말씀하시잖아요.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이요. 이 모든 악의 문제들에 대하여 완벽하게 승리하셨습니다.
사단? 예수님이 승리하셨어요.
여러분의 안에 있는 모든 악들? 예수님이 승리하셨어요.
우리를 둘러싼 사회구조적 악들? 예수님이 승리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주기도문의 이 기도를 해야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어서 예수님이 하셨으니 예수님께 구하는 거에요.
보이지 않는 사단으로부터 승리하신 예수님. 우리를 구하여주세요.
내 안의 모든 악함으로부터 승리하신 예수님. 우리를 구하여주세요.
나를 둘러싼 구조적 악함으로부터 승리하신 예수님. 우리를 구하여주세요.
우리는 이 기도문을 고백할 때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4. 종말론적 의미 - 이미와 아직
4. 종말론적 의미 - 이미와 아직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는데 왜 악이 여전히 존재할까요?
예수님이 그 모든 악에 대해서 승리하셨다고 성경이 증언하는데 왜 여전히 우리에게 혹은 우리 곁에 악이 존재합니까?
예수님은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승리가 성취되었습니다.
그 조건이 완성되었고, 하나님이 그 조건을 인정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의 창조주이신 절대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 예수님의 승리를 인정하셔서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적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판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판정이 났어도 계속해서 불법적으로 발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악은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미 패배한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발버둥치는 악함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발버둥치는 악함도 아예 존재하지 않을 때가 오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 이후 부활과 마지막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거든요? 그때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온전히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악은 존재하나, 온전히 임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모든 악함의 통치, 악함의 권세, 악함의 능력을 멸하시고 주님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는 완성됩니다.
그때의 성도들은 악함으로부터 고통받고 힘들어하던 나날을 버리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미와 아직’
제가 정말 많이 얘기하지 않습니까? 악의 관점에서 ‘이미와 아직’은 어떻습니까?
이미 예수님이 악에 대해 승리한 것이 선언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며 악이 존재하는 것이죠.
그러나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그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는 심지어 존재하는 악 까지도 완전히 소멸되고 예수님의 의로우심만이 우리 안에, 우리 바깥에 편만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 기도를 해야합니까?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께 기도하지만 아직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아서 존재하는 악들로부터 우리가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결국 이 땅에서 만들어져가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백성들은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통해 나와 사회를 하나님 나라로 세워갈 뿐만 아니라 완성될 하나님 나라까지 소망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적용
적용
악함으로 인해 눈물 흘리는 청년 여러분들. 눈을 들어 이제 이 기도문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악함들을 넘어가지 마시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운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승리하신 예수님께요.
내 안의 악한 것들. 탐욕, 교만, 음란함. 그것으로 고통받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주기도문의 내용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둘러싼 구조적 악들이 있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래요.
경쟁중심 문화, 물질만능주의, 정치적 문제들, 부정부패, 기득권의 부패 다 기도하세요.
그러나 동시에 이것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승리하신 예수님께 기도하는 자들은 그 악에 대하여 승리하였다는 마음으로 대항하고, 싸워나가야 한다는 사실을요.
사단에 대하여 기도로 저항하고, 여러분의 내적인 악인 죄성에 대하여 이겨나가기 위해 싸워가고, 구조적 악들에 대해서 해결할 지혜를 구하고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이 기도와 함께 싸워나가시는 가운데 승리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악은 단순히 하나의 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격적 악, 곧 사단이 있고, 우리 안의 죄성으로 인한 내적 악이 있으며, 사회와 문화 속에 뿌리내린 구조적 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악 앞에서 연약하여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모든 악에 대해 승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고,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을 깨뜨리셨으며, 부활로 모든 구조적 억압을 뒤엎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물론 아직 세상은 악의 발버둥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주님은 모든 악의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며,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우리에게 선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지만, 이 기도를 드릴 때마다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기도를 드릴 때, 단순한 형식이나 습관이 아니라 악에 대항하는 승리의 기도로 올려드리십시오.
보이지 않는 사단의 공격 앞에서, 승리하신 예수께 의지하며 기도하십시오.
내적 악 때문에 무너질 때,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구조적 악에 눌릴 때에도, 정의와 사랑을 이루실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십시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는 곧 승리하신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기도이자, 아직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드리며 오늘도 싸워 나가십시오.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