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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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성경봉독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서론
서론
이석진 목사 설교
8월 초 주일예배
갈라디아서 3장 설교
제목 - “성령으로 남고 싶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갈라디아서 1장과 갈라디아서 전체를
십자가라는 주제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여러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들로 인해 수많은 사회적 폐해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러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려온다.
참 마음이 아프다.
이런 여러 사회적인 문제도 문제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들이 복음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고
다른 복음, 가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단(異端)이 무슨 뜻인가?
‘끝이 다르다’는 말이다.
사이비(似而非)가 무슨 뜻인가?
‘비슷해 보이지만 아니다’는 말이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비슷해 보이고 처음에는 같은 것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끝에 가서는 결국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단과 사이비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초대교회 시절부터 이단과 사이비는 존재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미리 경고하신 것이기도 하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쓴 편지이다.
갈라디아는 지금의 튀르키예 중앙 지역에 위치한 곳이다.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 여행때 이곳을 방문해서 교회가 세워졌고
그 이후 2차, 3차 전도여행 때에도 지속적으로 방문했다.
우리가 잘 아는 디모데가 바로 이 지역 출신이다.
이러한 갈라디아 교회에
어느날부터 다른 복음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사도 바울은 참된 복음, 진리의 복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다.
본론
본론
복음
복된 소식 = 기쁜 소식
우리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기쁜 소식이 무엇인가?
= 예수 십자가 복음
= 하나님이, 성경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
다른 복음
바울은 ‘다른 복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6절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그런데 무엇이라 이야기하는가?
이 세상에 다른 복음이 있는가?
없다.
7절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다른 복음은 없다.
이 세상에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은 단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상이 이야기하는 다른 복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변질이다.
음식 맛이 변했다. 상했다. 먹을 수 있는가?
먹지 못한다.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탈이 난다.
복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이다.
다른 복음, 변질된 복음을 받아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더 죽게 된다.
다른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인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8절에서 엄하게 경고한다.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절에서 한번 더 경고한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의 입에서 이런 험악한 표현이 두 번이나 연달아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당황스럽게까지 하다.
축복의 말만 나올 것 같은데
사랑하라, 온유하라, 자비하라, 용납하라… 이런 말만 나올 것 같은데.
너무 심한 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람 사이에 죄를 범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죄악이다.
복음 전파는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따라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모독하는 일이다.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는 일이다.
예수님은 엄히 경고하셨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바울은 저주 받을 대상을 누구라고 이야기하는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
갈라디아 사람들이 받은 복음 말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설사 그 복음을 전했던 바울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 자신이 전한 처음 복음과 내용이 변한 것을 전한다면
자신조차도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뿐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 온 천사라 할지라도,
다시 말해 신비한 영적 체험을 통해 무엇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처음 복음과 다르다면 그 또한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자리에서 설교하고 있는 저도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 또한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무슨 뜻인가?
복음은 영원불변하다는 것이다.
복음은 시대와 문화와 역사를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복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영원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11-12절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만약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라면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마다 복음이 달라질 것이다.
아니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10년전에 전한 복음과 10년 후에 전한 복음이 달라질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면 거기에 따라 복음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뜻을 드러내 보이시는 것을 말한다.
피조물인 인간은 결코 자신의 능력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알려 주셔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 그 뜻을 알 수 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하기에 감히 피조물인 사람이, 더 나아가 영적 피조물인 천사라 할지라도
그 복음을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 이유는
바울이 그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베드로가 그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울이 전하고 베드로가 전했기 때문에 그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 이유는
그들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의 계시, 즉 진리이기 때문에 그 복음을 믿는 것이다.
바울과 베드로는 분명 사도로의 권위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권위 때문에 그들이 한 말과 글과 행동이 무조건 맞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에서
게바, 즉 베드로가 복음을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책망한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언제든지 잘못될 수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갈라디아서를 비롯한 바울이 쓴 편지와
여러 사도들이 쓴 글과 편지를 통해 복음을 듣고 믿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바울과 사도들이 그 글을 썼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 가운데 그들이 글을 썼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는 것이다.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 된 것임을 알고 믿는 은혜가 있길 축복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토록 이야기하는
원래 복음, 바른 복음, 참된 복음이란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은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여러분이 다 듣고 알고 믿고 있는 그 복음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면서도
복음을 먼저 선포하며 시작한다.
1장 4절을 다시 같이 읽어보자.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진짜 복음, 참된 복음, 바른 복음이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이다.
그리스도, 즉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우리가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구원하시려고
우리 죄값을 대신 갚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셨다. 십자가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씀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다시 말해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주셨다’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이다.
한 단어로 말하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드는가?
혹시 식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언제나 들어도 가슴이 뛰고 설레는 단어가 ‘십자가’가 되길 원한다.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을 때 우리는 복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 복음의 은혜를 늘 누리며 살 수 있다.
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길 축복한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어떤 곳인가?
십자가 : 예수님이 못 박힌 곳
십자가 : 예수님이 못 박힌 곳
첫째로 십자가는 예수님이 못 박히신 곳이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그 대신 내가 산 곳이 바로 십자가이다.
4절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잘 아는 것처럼
십자가는 로마 시대 때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을 죽이기 위한 사형 형틀이었다.
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그런데 복음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주셨다고 말씀한다.
원치 않는데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예수님 스스로의 의지와 뜻 가운데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한다.
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순종하신 결과가 바로 십자가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토록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뜻을 정하신 것일까?
복음은, 4절은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하나님께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기 원하시기 때문이라 말씀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자, 즉 죄인이다.
나도 악한 자, 죄인이었다.
여러분도 악한 자, 죄인이었다. 인정하는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김으로
죄인이 되었다.
그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도 이 악한 세대에서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그 죄에서 건져내시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구원하시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어떻게’ 죄인인 인간을 이 악한 세대에서 구원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이 무엇인가?
아무리 좋은 뜻과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악한 세대 가운데 살아가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런데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다.
죄에 대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값을 반드시 치루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 비밀이 바로 십자가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복음은 말씀한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죄인인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죄값을 치루는 수밖에 없다.
죄값은 생명값이다.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 죽음이다.
그런데 내가 치루어야 하는 죄값을 예수님이 대신 치르신 것이다.
내가 내어 놓아야 하는 생명값을 예수님이 대신 자신의 생명으로 값을 치르신 것이다.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인 것이다.
십자가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예수님의 죽음의 자리가 우리에게는 구원의 자리가 된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심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은 그 모든 뜻을 완전히 이루셨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야, 즉 구원자이신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다.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오직 십자가 밖에 없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밖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이것이 복음의 진리이다.
다른 복음이란 무엇인가?
십자가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원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이단과 사이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다른 복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구원의 길은 없다.
구원의 문제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다.
십자가에 구원이 있다.(갈 1:4)
십자가에 자유가 있다.(갈 2:4)
십자가에 의로움이 있다.(갈 2:16)
십자가에 하나님의 자녀됨이 있다.
십자가에 아브라함의 자손됨이 있다.(갈 3:7)
십자가에 하나됨이 있다.
십자가에 하나님의 유업과 복받음이 있다.
십자가에 성령받음이 있다(갈 3:5)
이 모든 것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이 못 박히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축복한다.
십자가: 내가 못 박힌 곳
십자가: 내가 못 박힌 곳
두번째로 십자가는 내가 못 박힌 곳이기도 하다.
내 육체의 정욕을 죽이고 성령 충만함으로 사는 곳이 바로 십자가이다.
바울은 2장 2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한다.
왜 이렇게 고백하는가?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나의 죄값을 치루어 주셨다.
그러하기에 내가 내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하는가?
바로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죽이고 성령을 따라 살아간다는 말이다.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나와 함께 살고 계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실뿐 아니라
그 구원의 확실한 보증으로 아들의 영이신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4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하기에 우리는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5장 24-25절에서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한다.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께 순종하며 산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성령충만으로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고 구원받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서 죄의 정욕이 남아 있다.
그대로 놔두면 우리는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적극적으로 성령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다시 말해 우리의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우리는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풍성한 인생을 살게 된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 자신의 죄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충만함으로 살아감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복된 저와 여러분의 인생 되기를 축복한다.
십자가: 세상이 못 박힌 곳
십자가: 세상이 못 박힌 곳
마지막으로 십자가는 세상이 못 박힌 곳이다.
바울은 6장 1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바울에게 있어 세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다시 말해 이제 더 이상 바울은 세상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의 자랑과 명예와 권력과 부를 위해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 바울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바울은 십자가를 통해
보이지 않던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었다.
썩어져 가는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
이 세상, 이 땅에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 천국에 있는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보이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은혜가 있길 축복한다.
결론
결론
우리를 구원하는 참된 복음, 진짜 복음, 바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 밖에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나의 정욕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가 성령으로 살게 되었다.
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게 되었다.
이 놀라운 십자가 능력을 깊이 묵상하며 은혜 받는 여러분 되기를 축복한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