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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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를 주님의 전으로 불러 주시고,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한 주간도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은혜로 붙들어 주셔서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모아 주신 주님,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의 은혜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드려지는 예배가 형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입술로 드리는 찬양과 기도가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시고,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고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여 주셔서, 산만한 마음을 거두시고, 오직 주님께만 시선을 고정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임재 안에서 죄 사함과 회복과 은혜를 경험하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모든 순서를 주님께 맡겨 드리오니, 홀로 영광 받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요 8:21-30
요 8:21-30
오늘은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랜만에 주일 예배 시간에 뵈는 것 같은데요,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이렇게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시간 정말로 주님 안에 구원이 있음음 확인하고 확신하는 이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 가까이에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소식들을 우리는 많이 접하며 살아갑니다. 요즘 날이 더워서 그런지 화재사고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강원도에서도 모텔 화재 사건이 있어서, 사망사고가 있었고요, 부산에서도 고시텔에서 화재가 나서, 안타까운 청년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 있었어요. 또 이태원 참사 출동 소방관이 트라우마로 인하여, 사망하게 되는 그런 뉴스도 보았습니다. 이게 참 뉴스로 접하게 되면, 다른 사람 일이라 멀게만 느껴지는데요,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늘 이 생명과 죽음이라는 경계선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결혼하기 전에 종종 1년에 한 두번은 응급실에 꼭 간 기억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1년에 한 두번 배가 너무 아파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사실 배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잖아요. 가면 막 응급환자들이 급하게 오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떨어진 사람, 공사 일을 하다 크게 다쳤던 사람, 그곳에 가면 그 느껴지는 공기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돈, 명예, 경력,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죠.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만이 중요한거에요.
사실 성경에서는요 우리 인생 전체가 그런 자리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21절에 보면요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이 말은 우리가 계속 보았듯, 종교지도자들과의 갈등 가운데 나오는 말이 었는데요, 결국 죄 가운데 머무른 인생들에게 던지고 있는 말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절에 보면요, “너희가 만일 내가 그 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다시 말한다면요, 모든 인생은 예수님 없이는 죄 가운데 죽을 인생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복음이라는 것은요, 지금 우리가 듣는 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은요, 단순히 종교적인 이야기를 듣는 차원이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요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는 가장 엄중한 선택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주일날 목사님과 함께 요한복음 말씀을 살폈었는데요, 오늘 본문은 8장의 한 가운데에 있는 본문입니다. 초막절 때에, 12절부터 보면요,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빛으로 왔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힐 빛 말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 특별히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은요, 이 예수님을 받아들여요 안받아들여요? 안받아들였잖아요. 심지어 음행중에 잡혀온 여자를 데려오면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죽이려고 시험을 하는 장면도 보았잖아요. 세상에 빛이라고 해도, “네가 스스로를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않다”라고 예수님을 대적하며 공격했습니다. 즉 참 메시아되신, 참 생명이며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눈 앞에 보고 있음에도 그들은 믿지 못하였고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하신 말씀이 이어지는 거죠. 21절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요 8: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신다고 말씀하세요. 예수님이 어디로 가신다는거에요? 여기서 “내가 간다”라는 표현은요,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결국 어디로 가게 되어져요?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에요.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시는거에요. 그곳에 누구는 못와요?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심을 믿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들, 죄인들은 오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거에요.
그들은 이 말을 들으니깐 뭐라고 반응해요? 22절에 보면, 그가 자결하려는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다시는 못보게 되는 것을 말하나? 이렇게 생각했대요. 지금 예수님을 눈 앞에 보고 있고, 이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요? 그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라 생각했고, 하나님의 백성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예수님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요, 대부분은 한번도,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맞을까?라는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을 전면으로 대적했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요,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 누구보다 확신했을 겁니다. 그들 안에는 나름대로 믿음도 있었어요. 내가 죽으면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믿음 말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눈은 달랐습니다. 그들이 아직 어디에 머물러 있어요?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 지적하시는거에요.
24절에 이렇게 이야기하죠.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그들이 죄 가운데 머물러 있는 확실한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거에요. 예수님만이 그들을 죄에서 건져줄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들은 오히려 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배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게 현상일 순 있겠죠. 그런데 사실 죄의 근본적인 원인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죄 가운데 있다는 말은요,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죄는 우리를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결국 단절된 그 관계는 죽음과 영원한 심판으로 죄인을 이끄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다르게 표현한다면, 전혀 관심 밖의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들은 죄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십니까? 다르게 물어보겠습니다. 요즘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살고 계십니까? 현대시대는 너무나 바쁜 시대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빼앗는 것도, 관심을 기울일 것도 참 많은 복잡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서두에도 말했듯, 가장 중요한 가치는요, 다른 무엇도 이 생명과 죽음의 문제 앞에는 가치를 들이 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중요한 것들이 참 많지요. 사람들은 돈이 좀 있으면 살만하다고 생각해요. 몸이 좀 건강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아니면요 종교적 열심이나 선행이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수님은 정확히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는거에요. 24절, “내가 그 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내가 그 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바로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임을 믿지 아니하면 우리의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세요. 신앙이 형식입니까? 너무나 쉽게 우리는 신앙을 형식으로 생각합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옵니다. 매주 그랬듯이 말입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요, 기분이 좋으면 헌금도 하고요, 열심히 봉사하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정작 이 예수님을 그 인줄, 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거나 알지 못하면요, 그저 그 모든 행위가 종교적 행위에 머물 뿐이지, 결국 죄 가운데 머물러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생명과 죽음의 아주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지금 말씀드리는거에요.
진짜 중요한게 무엇입니까? 지금 나에게 이 예수님은 누구냐는거에요. 여러분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세요. 나에게 이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저는 이 본문이 우리에게 경고의 말씀이기도 하지만요, 다른 의미로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교회를 열심히 다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를 열심히해라 말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정말로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으로 믿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거 하나면 됩니다. 그거 하나면, 죄 가운데 머무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 될 수 있는거에요. 이곳에 나아온 모든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결단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서 건짐을 받는 참된 성도로 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 살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드려야 할까요? 도대체 그분을 받아들일만한 근거가 무엇일까요? 이 말을 듣고 있던 종교지도자들과 사람들은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25절 말씀보세요.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님이 방금 말했잖아요. 이 반응이 너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니가 누구냐는거에요. 니가 뭔데, 도대체 당신이 누구길래, 이런 말을 하고, 당신을 안 믿으면 영원히 죽을 것이라 말하냐는거죠. 이 질문은요, 어떻게 보면요, 아주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질문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그 사람들의 의도와 상관 없이 아주 중요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그 질문이 신앙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하십니다. 25절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이 말을 직역해보자면 이런 말이에요.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한 그대로다” 내가 처음부터 뭐라고 했냐. 예수님은 자신이 늘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내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라는 말을 계속했다는거에요. 그들은 질문했죠. 니가 뭐냐? 니가 누구냐? 도대체 니 정체가 뭐길래 그런 말을 하냐, 예수님은 답하고 있어요.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내가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이라니깐? 여기서 문제가 뭐에요. 예수님이 계속 말을 해도, 눈 앞에 보여줘도, 말을 들려줘도, 깨닫지 못하고요, 듣지도 못하고요, 믿지 못하는데 있는거잖아요.
26절에 계속해서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다. 내가 그에게 들은 것을 세상에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을 만한 이유와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분의 출처가 누구에요? 그 하나님, 세상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기에, 그분을 참 메시아로, 참 구원자로 믿을만한 이유과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이나, 바리새파나,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뭐였습니까? 바로 출처에 문제지요. 쉽게 말하면 니가 누구 밑에서 배운 사람이냐는거에요. 요즘 말로 한다면, 너 어느 대학 출신이냐는거죠. 너 뭘 전공했냐는거에요. 너 어느 라인이야? 이런 것을 따지고 들었겠죠. 예수님은 어느 지역 출신이에요? 나사렛 출신이죠. 어디 저기 시골 출신인거죠. 누구 밑에서 배웠어? 예수님에게는 스승이 없는거에요. 왜요?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이에요. 사실 그분의 출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이 아닙니다. 이 땅이 아닙니다.그분은 진짜 하늘의 출처를 가진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세요. 따라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분이시다” 이게 우리가 믿어야 될 참 중요한 진리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 후편 ‘나는 생존자다’라는 다큐 프로그램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자신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지요. 이 땅에 사이비와 이단이라는 세력이 얼마나 크고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게 단순히 종교적인 이야기를 넘어서서, 우리나라의 정치계와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연류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예전 비선실세 최순실씨 그 아버지 최태민씨 영생교 교주부터 시작해서, 신천지도 정치권 유착 의혹이 있고요, 통일교도 마찬가지이고요, 하나님의 교회, 전광훈씨, 최근에는 뭐 건진법사 참 이 땅을 덮고 있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내가 하늘로 부터 왔다. 내가 신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이 나라를 뒤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정도로, 너무 많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 충격입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사이비 교주들만 다 잘못됐다’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맞아요 거짓 구원자들이 맞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삶 역시 마찬가지에요. 여전히 다른 것들을 마치 하늘에서 온 참 구원자처럼 붙잡는 것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거에요. 여러분 돈과 재물이 우리의 삶의 구원자입니까? 이런 착각을 하며 삽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만 있으면 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강지키는 일에, 자신의 몸 관리 하는 일에는 온 마음과 정성은 쏟지만요, 정작 영원한 것, 참으로 하늘에서 온 구원자인 예수님을 위한 것은 관심조차 두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돈을 모으는 일, 자신의 명예와 성공을 위해서, 자녀의 성취를 마치 자기의 미래를 구원해줄 절대 가치처럼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지만 성도로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구원줄, 하늘로부터 온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요,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지켜내도, 결국은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이죠, 돈은 병 앞에서 힘을 잃고, 건강은 시간 앞에 무너지고, 성공과 명예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요, 예수님은 달라요.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참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세요. 이 말슴을 통해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가 의지하는 유한한 것들도, 나를 구원할 수 없는 깨닫는 지혜가 있길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수님만을 참 구원자로 여기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살펴볼 부분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참 구원을 베푸실까요? 오늘 말씀 28절 말씀인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리라,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하는 줄도 알리라” 여기서 인자를 든다라는 표현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바로 십자가 사건을 가르키죠. 참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죄에 머물러 죽는 인생이 아니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방법은 바로 십자가라는 것을 통하여, 구원을 베푸심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당시에 아주 잔혹한 사형틀입니다. 지금 우리가 대하는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당시에 이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요. 잔인한 형벌의 상징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알다시피, 사람을 매달아 놓고 말려 죽이는 아주 잔혹한 형벌입니다. 십자가는 쉽게 말하면 본보기 같은 것입니다. 예전에 전쟁에서 이기고나면, 지배한 마을에 자신들을 대항한 사람들의 목을 잘라서 걸어놓는 경우를 우리는 보곤 합니다. 쉽게 말하면 본보기죠. 십자가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강력한 로마 제국의 통치와 지배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형인 것이죠.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너희도 이 사람들처럼, 우리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면 죽을거라는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한 사형제도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이렇게 말씀하시는거죠. 내가 십자가에 들려야 하나님이 보내신 참 구원자인지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십자가라는 것은요 세상적 시각으로는 죽음의 자리이자 저주의 자리였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있어서 십자가는 생명의 자리요, 구원의 자리요 영광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 구원자라는 그 사실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 확증되는 것이죠.
당대에 사람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십자가를 져서는 안될 인물인거에요. 강력한 힘과 통치를 통하여, 자신들을 구원할, 다윗과 같은 왕을 기대했죠. 강력한 힘을 통한 구원, 그게 바로 사람들이 기대했던 구원자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 예수님의 구원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십자가라는,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내어줌을 통하여, 죽기까지 낮아지심을 통하여, 십자가에 자신의 아들을 버리심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공의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 방법은 주님이 지신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심을 믿으십니까? 아멘
십자가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떠나서는 결코 예수님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처음 믿을 때도 마찬가지구요. 믿어가는 과정 가운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신 그 십자가의 자리를 기억하며 그 길을 쫓아갈 때에, 그분이 참 구원자되셨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살리신 방법은 십자가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무엇을 믿는거에요?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거에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있다. 십자가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거에요.
여러분 제자는요 스승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이 제자에요. 스승이 보여준 삶을 따라가는 사람이 제자에요.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은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도 전에, 자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는 것은 좋다. 다만 주님을 따르려면 뭐가 필요해요? 주님이 지신 십자가, 그것을 자신도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이곳에 모여 주님을 예배하지만요, 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할 때에요. 그분께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주셨는지는 몰라도요, 십자가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삶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인생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남들이 다 가는대로 넓은 길로, 형통한 길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려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주님은 이 길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정말로 이 예수님의 제자로 십자가를 지는 삶, 비록 협착하고 좁고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생명이 있는, 구원이 있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겠습니까? 바라기는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믿고, 주님의 제자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죄 가운데 머무른다. (첫째)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시다. (둘째)
그리고 그 사실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리가 바로 십자가이다. (셋째)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죄와 생명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머무를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살리신 방법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이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 나는 이 예수님을 참 구원자로 믿고 있습니까?
👉 나는 여전히 세상의 것들을 붙잡으며 그것이 나를 지켜줄 것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나는 정말로 주님의 제자로,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세상은 넓은 길로 가라 말하지만, 주님은 좁은 길을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그 길은 쉽지 않고, 많은 이들이 가지 않는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길에는 구원이 있습니다. 그 길의 끝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 앞에 선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받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이미 우리를 위하여 지신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고, 그 길을 끝까지 따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마침 기도문
마침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말씀 앞에 세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 가운데 머물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구원해 주신 그 크신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의 눈이 흐려져 세상의 것들을 구원자인 양 붙들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만을 나의 주님, 나의 구원자로 믿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붙들게 하시고, 그 은혜 안에 굳건히 서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나의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결단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자기 부인과 희생과 섬김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주님의 제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오늘 예배드린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위에 서서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주님의 복음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기도문
헌금 기도문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불러 주시고, 한 주간도 지켜 주셔서 오늘도 예배드리며 주 앞에 나올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예물을 드립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며, 믿음과 감사로 이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기쁘게 받으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예물이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이게 하시고,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선교의 현장에 흘러가게 하옵소서. 또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구제의 손길로,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사랑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예물을 통하여 우리 다음세대가 복음으로 자라나게 하시고, 청년들과 아이들이 믿음 안에서 꿈을 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가는 세대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드린 손길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주님의 자녀들의 가정을 복되게 하시며, 삶의 필요를 넉넉히 채워 주옵소서. 물질을 드리지 못한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의 삶을 지켜 주시고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가 되게 하시고, 드려진 우리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확장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홀로 주님께 올려드리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