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26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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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09장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은혜의 주님 오늘도 새벽을 깨워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게 드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저희임을 고백합니다. 어제까지 지켜주신 은혜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음을 믿습니다. 이 새벽, 주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육신의 병으로 고통하는 이들을 주님 고쳐주시고,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깨어진 관계 가운데 평강을 부어 주시고, 시험과 유혹 가운데 흔들리는 이들을 굳게 붙들어 주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가정을 지켜 주셔서 가정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일천번제와 감사의 예물을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드리오니, 주님 나라와 뜻을 이루는 귀한 씨앗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드린 손길 위에 은혜를 더하셔서, 주님의 공급하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Corinthians 13:4–7 NKRV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 교회에는 성령의 은사가 풍성 하였습니다. 방언, 예언, 지식등 모든 성도들이 부러워할 만한 영적인 능력이 가득한 교회 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로 가득한 그 교회안에서는 파벌이 나뉘어 있었고, 자신이 받은 은사가 더 대단하다고 뽐내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속에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방언을 하고 심지어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있으며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 하는 사랑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 하는 것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사랑” 이라고 하면 보통 가슴이 두근거리는 감정이나, 설레는 순간이나, 누군가에게 강하게 끌리는 느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사랑의 본질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과 완전히 다름을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나열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랑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시기하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4절 후반절에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고전 13:4, 개역개정)
여기서 **‘시기하다’**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단순히 부러워하는 것을 넘어, 남이 가진 좋은 것을 보며 배 아파하여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다른 사람이 가진 은사를 보며 바로 이 ‘시기하는’ 마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의 예언보다 내 방언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시기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성공과 은사를 보고 질투하는 감정이 아니라, 그의 잘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며 진심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가진 것을 뽐내는 자랑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자랑이란 “내가 너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 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마음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결국 남을 부러워하는 시기와 나를 뽐내는 자랑은 사실 뿌리가 같습니다. 둘 다 나를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깍아내리는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버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둘째, 사랑은 교만하고 무례하며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5절).
본문에서 말하는 교만은, 스스로를 실제보다 부풀려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다른 사람을 깔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무례함은 바로 그 교만한 마음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모습니다. 그래서 무례함이란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 생각하지 않고 한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교만과 무례함 두가지 행동 모두 가장 깊은 곳에는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욕심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과 무례함과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그 마음을 버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셋째, 사랑은 성내지 않는것이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내지 아니하며의 원어의 뜻은 격분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해 사소한 일에 발끈하거나, 자기 중심적인 이유로 쉽게 흥분하여 폭발하지 않는 것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내지 않는 것은 활를 전혀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쉽게 짜증을 내거나 분노로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기서 생각하다의 원어의 뜻은 ‘계산다하, 장부에 기록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구절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사랑은 다른 사람이 내게 저지른 악한 일을 마음의 장부에 기록해두지 않는것이다” 입니다. 쉽게 말해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넷째,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6절).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 13:6, 개역개정)
많은 이들이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죄와 잘못을 보고도 눈감아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불의, 즉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보고 기뻐하거나 동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가 승리하는 것을 함께 기뻐합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아프더라도 돌이키도록 훈계하는 부모의 마음이 바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정의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았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오래 참고 온유한 것이 사랑입니다 (4절 초반).
본문 4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바울은 선언합니다. (고전 13:4, 개역개정)
본문에서 말하는 ‘오래 참음’은 단순히 고통을 참는 소극적인 인내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분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대신, 의지적으로 분노를 늦추고 기다려주는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숙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할때 그 사람을 보며 짜증을 내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이 자라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오래 참음의 의미입니다.
또한 ‘온유함’은 수동적인 부드러움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행동입니다. 그러기에 온유함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입니다.
둘째, 사랑은 모든 것을 덮고, 믿고, 바라며, 견디는 것입니다 (7절).
본문 7절 입니다.
1 Corinthians 13:7 NKRV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먼저 참으며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지붕으로 덮어 비바람을 막아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래참음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들추어내고 소문을 퍼뜨리며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덮어주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또 ‘믿으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맹목적으로 속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가장 선한 면을 신뢰하고,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예로 “어떤 사람이 약속시간에 늦을 때, 이 사람은 시간관념이 없어 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늦을 만한 무슨 일이 있겠지’ 하고 먼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이 사랑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상대방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에도,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며 그가 변화될 것이라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견디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기서 견디며로 번역된 원어의 의미는 전쟁터에서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군인의 모습을 의미하는 군사 용어 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단순히 고통을 참아내는 것을 넘어, 사랑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모든 시련과 고난, 심지어 배신과 같은 아픔까지도 정면으로 맞서며 그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내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랑은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 하는 사랑은 선택입니다. 사랑은 끌림이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그래서 매순간 우리는 히야 할 것을 하는 선택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할 때 우리의 삶속에 사랑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속에서 해야 할 것을 선택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것입니까?
창세기 37장부터 요셉이 등장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요셉의 삶을 아실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 때문에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기에 요셉의 마음속에 형들을 향한 분노와 배신감, 복수심이 불타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적인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수십 년이 흘러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은 굶주림 때문에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 앞에 섭니다. 모든 것을 복수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그 순간, 요셉은 무엇을 선택했습니까? 그는 미움이 아닌 사랑을, 복수가 아닌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까? 세월이 흘러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에 사랑을 선택 한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형들을 향한 요셉의 용서와 사랑은, 감정적인 화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 의지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창세기 45장 5절에서 그는 두려움에 떠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개역개정)
요셉은 자기 삶에 일어난 힘들고 아픈 일들의 중심을 ‘형들’이나 ‘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보았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해친 것은 분명 악한 일이었지만, 요셉은 그것을 단순히 “사람들의 배신”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사용하셔서 더 큰 선과 구원의 길을 이루신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꿔서 바라본 것이 요셉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던 자리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들어오면서 결국 용서와 사랑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요셉은 그의 삶의 순간순간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은 나의 노력이나 감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이 함께하심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감정을 넘어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임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불가능하지만,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을 때, 그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요셉과 같이 주님과 동행함으로 매순간 사랑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선택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쉽게 시기하고 자랑하며, 분노하고 원한을 품을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이 새벽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요셉이 미움 대신 용서를 선택했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 주님의 사랑을 선택하기 원합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붙들며 용서하고 축복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사랑으로 세워지게 하시고, 매 순간 주님 안에서 사랑을 선택하는 삶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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