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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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우리를 비추시는 하나님 어둠 속에서도 걸어갈 수 있는 이유 “작은누나”

Notes
Transcript

> 찬양 후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를 이 자리로 불러 주시고 찬양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입술로 드린 찬양이 온전히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고, 그 찬양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님께서 부르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기도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한 입술과 마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 주셔서 하늘 보좌 앞에 향기로운 기도로 올려지게 하옵소서. 오늘 이 시간,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우리의 간구를 통해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며, 무엇보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는 복된 기도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성경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21편 1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저 한 번 여러분 한 번 교독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 시편 121:1-8
Psalm 121 NKRV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에스더여전도회 특송

이 시간 에스더 여전도회 에서 귀한 찬양 올려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귀한 찬양해주신 에스더 여전도회 격려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 특송 끝나고 박수 후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 귀한 특송으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린 에스더 여전도회를 축복하여 주시고, 찬양을 통해 우리 모두가 은혜받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섬김의 수고를 기쁘게 받으시고, 삶 가운데 날마다 찬양과 감사가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이어질 시간, 주님의 말씀을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연약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깨우며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으로 나아가게 하시며, 말씀 붙들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시선 찬양

시선으로 하나님께 찬양 올려드립니다!

도입

사랑하는 우리 경신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금요일 밤, 하루의 마지막 시간, 일주일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바쁘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오늘 이 밤은 고요하게 나아갑시다. 이 조용한 밤, 우리는 오늘도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붙잡는 은혜의 자리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두려워하고, 지금 겪고 있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영혼이 점점 말라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21편은,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121:1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Psalm 121:1 NKRV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오늘 본문의 소제목을 읽어보면 어떤 노래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곧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절기를 맞이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언제나 쉽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밤에는 추위와 어둠이, 곳곳에는 도적과 맹수가, 언덕과 골짜기에는 예기치 못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 고단한 길 위에서, 순례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백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다른 것을 의지하고 싶을 만큼 상황은 힘들었지만, 그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오늘 이 밤, 우리도 그 길을 걷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어떤 이는 육체의 병과 싸우고, 어떤 이는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며, 또 어떤 이는 불투명한 미래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 모든 순례자들에게 이 시편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너의 그늘이시다. 졸지도 아니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네비게이션 꺼짐 예화> 여러분, 혹시 운전하시다가 네비게이션이 갑자기 꺼진 경험 있으신가요? 처음 가보는 길, 혹은 밤이 깊고 어두운 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던 길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주변 풍경도 낯설고,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조차 헷갈립니다.
차는 달리고 있지만, 도로는 낯설고 아무런 도움이 없을 때,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걸까? 나 어떻게 돌아가지?” 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운전 중이 아니더라도 우리 인생에서 이런 상황을 자주 경험합니다.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건강의 악화, 가정의 흔들림. 삶의 네비게이션이 꺼져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믿고 있던 길이 사라진 것 같고,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오늘 시편 121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고백은 마치 어두운 밤, 방향을 잃은 인생이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도와도 같습니다.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도움이 있다는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다시 ‘걸음’을 내딛는 고백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나누며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가족, 저의 삶에서 가장 특별한 빛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저의 작은 누나입니다. 작은 누나는 선천적으로 태어나자마자 시각장애로 인해 앞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눈을 감으면 어느정도 빛을 감지할 수 있지만, 누나는 빛도 감지할 수 없는 시각장애 1급 입니다. 제가 삼남매인데, 그 셋 중에서도 누나는 가장 밝고 활발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의 감사한 은혜로 춘천에 위치한 한 특수학교에서 특수교육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저의 가족들이 다니고 있는 모교회에서는 찬양팀 리더로 섬기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참 아름다워서, 찬양할 때면 그 울림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진심이 전해집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빛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누나의 삶을 보면 누구보다 따뜻한 웃음과 밝은 신앙으로 저와 우리 가족의 ‘영적 빛’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작은누나에게서 제가 배우고 바라보았던 신앙의 모습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나누며 시편 말씀을 같이 보길 원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 길이 보여야 걷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기에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삶. 작은누나의 삶이 바로, 시편 121편의 찬양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어두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걸어갈 수 있는 발걸음. 도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참된 도움이 어디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들 수 있는 눈. 그리고 마침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비추시는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1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1.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드렸으면 하는 첫 번째 고백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빛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은 순례자의 노래, 혹은 올라가는 노래라고 불립니다. 성전에 예배드리러 올라가는 길, 산으로 둘러싸인 유대 광야에서 누군가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편 121편 1절 함께 읽겠습니다.
Psalm 121:1 NKRV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그 질문은 단지 육체적 위험에서의 보호를 묻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현실 한가운데서, 정말 나를 붙들 수 있는 분이 누구냐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 어두운 현실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신앙

삶은 우리를 종종 어둠 속으로 밀어넣습니다. 경제적 불안, 건강의 위협, 관계의 어려움, 그리고 아무도 몰라주는 고단한 신앙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가끔 묻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가?”
시편 기자는 그 질문에 분명하게 응답합니다. 시편 121편 2절 함께 읽겠습니다.
Psalm 121:2 NKRV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의 도움이 되신다. 이 확신이, 현실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근거입니다.
시편 121편을 보며 생각해보면,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험준한 산들, 도적의 위협, 더위와 추위, 불확실한 길… 모두가 순례자를 위협하는 현실의 어둠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산을 바라보는 눈은 단지 경치를 보는 눈이 아니라,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오는가?”를 묻는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렇게 절박한 외침에도 현실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산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높았으며, 길은 여전히 험해 넘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오히려 질문만 더 깊어집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침묵 속에서 빛을 찾길 원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빛’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 고난이 끝나는 것,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자금이 생기거나, 어렵고 힘들었던 문제가 사라지거나, 간절히 원했던 소원이 성취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우리가 아는 빛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산을 바라보던 나의 눈”에서 “하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으로의 변화를 말합니다.
영적인 빛은 문제의 제거가 아니라,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생길 때 시작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2절)
창조주 하나님, 지금도 세상을 주관하시는 그분, 무질서한 현실 위에 질서를 부여하시는 그분이 내 도움이시다.
이 고백이 바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입니다.
신앙의 어둠은 고난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커서 어두운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작아 보일 때 우리는 어둠에 잠깁니다.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면 우리는 버팁니다. 실패가 있어도 하나님이 보이면 다시 일어섭니다. 반대로 아무리 밝은 대낮 같은 삶을 살아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캄캄한 영적 밤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편 121편의 첫 고백은 ‘시선을 돌리는 신앙’의 시작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믿음의 빛을 품는 시작입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볼 수 있어야 안심합니다. 앞이 보이면 걸을 수 있고, 길이 보이면 계획할 수 있고, 결과가 보이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누나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완전히 보이지 않는 빛 조차 감지할 수 없는 시각장애를 가진 채 세상을 살아가야 했고, 날 때부터 짙은 어둠을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낯선 공간을 이동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고, 누나의 하루는 ‘보이지 않는 어둠’이라는 현실과의 끊임없는 씨름입니다.
어떤 날은 단지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조차도, 길을 건너는 일조차도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상이 그녀에게는 끊임없는 인내와 용기, 그리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의 연속입니다.
그녀는 글자를 보지 못하니 점자를 통해 손끝으로 더듬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적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기도로, 삶으로 살아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자신의 장애를 결코 신앙의 걸림돌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다고 믿고, 그 일을 위해 매일 아침 성실히 준비하여 특수학교 교사로서의을 성실히 살아냅니다.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마음을 나누며 자신이 받은 위로와 은혜를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희 누나는 자신의 눈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 신뢰하며 살아가겠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너를 지키리라.”는 말씀을, 눈이 아닌 믿음으로 붙잡고,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노래하며 살아갑니다.
그 모습은 저에게 감동 이상의 메시지를 줍니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시편의 고백이 단지 시적인 위로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역사하는 진리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빛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 그 빛이 우리 안에서 꺼지지 않는 이유는 주님이 우릴 지키시고 도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빛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앞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힘든 결정의 순간, 육체의 아픔이 다가오고, 신앙의 벽 앞에서 캄캄함만 가득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눈으로 빛을 찾으려 하지 말고, 말씀을 통해 빛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드릴 두 번째 고백은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시편 121편 3절과 4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Psalm 121:3–4 NKRV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 말씀은 두려움에 가득 찬 순례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가능성을 선언합니다.
불가능한 상황은 언제나 우리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를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불가능’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너집니다. 육체적 한계, 정신적 고통, 사회적 제약 등 우리의 연약함은 현실이라는 벽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성경이 선포하는 복음은 인간이 해낼 수 있다거나 우리가 강해지는 방법이라거나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인간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 아래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백합니다.
2 Corinthians 12:10 NKRV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여기서 핵심은 ‘약함’ 자체가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과 결핍, 그 모든 연약함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한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런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아브라함 - 믿음의 여정 속에서 불확실함과 기다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지만, 그 삶의 시작은 의심과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다”고 약속하셨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고령이었고, 자식이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가능성은 0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약속을 25년이 지난 뒤에 성취하셨고, 그들에게 귀한 이삭을 주셨습니다.
모세 – 실패자의 자리에 임한 부르심
모세는 애굽에서 왕자처럼 자라났지만, 자신의 혈기를 이기지 못해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40년 동안 그는 이름도 잊힌 채, 양을 치며 살아갑니다. 왕자의 신분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광야의 노인으로, 그의 인생은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나는 말이 둔한 자입니다”라며 자신이 없다고 외치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애굽기 4:11–12)
하나님은 자신감 있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고, 민족을 이끌어낼 리더로 세움 받았습니다.
바울 – 약함과 고난을 자랑한 사도
바울은 본래 강한 자였습니다. 학식도, 신분도, 열심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심 이후, 그는 철저히 낮아졌고, 끊임없는 고난 속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굶주리고, 위험 속에 수없이 노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자리가 되도록 내어놓았습니다.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도우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약함도, 우리의 불가능함도, 하나님은 가능으로 바꾸시는 분이다.”
시편 121편의 고백은 먼 과거 시편 기자의 시적 언어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기다림 속에, 모세의 광야에서, 바울의 고난 가운데 그리고 우리의 삶에
살아서 역사한 하나님의 손길을 오늘 우리도 동일하게 붙잡을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약함을 절망의 이유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크고 화려한 무대보다 한 사람의 진실된 삶 속에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가능은 없다”하나님의 메시지를 들려주십니다.

✨ 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무엇입니까?

오늘, 여러분에게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있습니까?
몸이 아파서, 혹은 가족 때문에, 혹은 경제적인 상황이나 힘듦 때문에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은 마음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을 다시 마음으로 붙잡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쉬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위대한 신학자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손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심이요, 우연한 일조차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이 전 인생의 여정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다시 저의 누나 이야기를 하자면,
저의 작은 누나는 빛도 감지할 수 없는 어둠 가운데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혼자 직장을 다니는 것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찬양을 인도하는 것도 모두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며’ 살아갑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믿음의 눈으로는 볼 수 있다 말합니다.
매일 교실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찬양팀을 이끌며 예배의 자리에서 노래할 수 있는 것은, 강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다른 능력이 아닌, 오직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합니다.
그 모든 어려움이 인간으로서는 한계의 벽이었을지라도, 주님의 품 에서는 믿음의 도약대였습니다.
누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애로 인한 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와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드라마틱한 기적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사는 것도,
힘겨운 몸을 이끌고 매일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찬양을 인도하는 목소리도
주님과 함께라는 확신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 용기가
바로, 이 모든 일상이 믿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누나의 삶을 보며 저는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 어떤 장애와 멈춤과 방해보다, 우리 하나님이
크신 분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으로 사는 자의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 모두가 그 진리를 삶으로 증명해 보이며, 불가능을 가능케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진짜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우리가 드릴 세 번째 고백은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주 ‘눈에 보이는 것’보다 ‘믿음으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Hebrews 11:1 NKRV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것은 단순한 시각적 개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의 너머를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종종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먼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은 제한적이어서, 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하고, 타인의 마음을 볼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섭리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근거하여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걸어가게 합니다.
<누나의 걸음은 확신의 걸음> 예화
가족들과 함께 산책을 걷다보면, 특별한 상황을 경험합니다. 혼자 걷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 가족 혹은 보호자의 팔을 붙잡고 이동합니다.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동합니다.
어떤 길은 울퉁불퉁했고, 어떤 길은 경사가 있었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인도도 있었지만, 작은누나는 한 번도 “무서워”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인도하는 대로 따라 걸어갑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그 장면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 바라보니, 참된 우리 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두려움이 없을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누군가를 신뢰하면 어둠 속에서도 확신 있게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보지 못해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걷는 사람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눈’이 되고 ‘길’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은 종종 어둡고, 불확실하며, 위험해 보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해하고 멈춰서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Psalm 121:5–6 NKRV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고대 근동 문화, 특히 히브리 전통에서 오른쪽은 힘과 보호, 신뢰와 동행을 상징합니다. 전쟁터에서 전사가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싸울 때, 그의 오른편은 가장 약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동료, 방패를 든 전우가 오른쪽에 섰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그 상징을 빌려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취약한 자리에 함께 서 계신 분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네가 가장 약한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위험한 순간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너를 지켜주신다.”
또한, 팔레스타인 광야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그늘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그늘이 없으면 생명에 위협이 오는 기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광야와 같은 인생길 위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존의 그늘, 쉼의 그늘, 은혜의 그늘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학적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멀리 지켜보는 초월자 뿐만아니라, 우리 옆에서 그늘이 되어 함께 걸어가시는 동행자라는 겁니다.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 그리고 위대한 동행의 증거로 해석합니다.
이 하나님은 필요할 때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임시 방편의 신이 아니라, 항상, 늘, 가장 가까이, 그림자처럼 우리 옆에 계신 분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분을 느끼지 못해도, 그분은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실제로, 우리 삶의 대부분의 위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는 은혜’로 채워집니다.
우리가 그분을 보지 못해도, 그분은 언제나 우리 옆에 계십니다.
우리 곁에 계신 하나님은 길이 밝을 때뿐 아니라, 길이 어두울 때에 더욱 가까이 계신 분입니다.
작은 누나가 가족의 손을 붙잡고 두려움 없이 걸어가듯, 우리도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걷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아니라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말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Isaiah 41:10 NKRV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랑하는 우리 경신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잡고, 어떤 것에 의지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은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에 집중합니다. 성과, 결과, 외모, 위치, 숫자, 데이터…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부르십니다.
지금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그늘 아래 우리는 쉼을 얻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오늘도 걸어갑니다.
믿음은 맹목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가장 분명한 확신입니다. 그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가장 바른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는 것을 넘어서는 힘”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현실 너머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용기”입니다.
우리의 눈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어둠 속에서도, 주님은 빛이 되십니다”

사랑하는 우리 경신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 121편의 말씀은, 순례자의 고백이자 우리 모두의 인생 여정 속에서 드릴 수 있는 신앙의 노래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삶의 여정에는 수많은 고개가 있습니다.
인생의 밤, 실패와 절망,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 그때마다 우리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을 단순한 푸념으로 두지 마십쇼. 그것은 신앙인의 탄식이자 고백이 되어야 하며, 우리에게 주시는 대답은 너무나 확고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사랑하는 경신의 모든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단지 순례자의 고백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순례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바로 내 오른편에서 그늘이 되어 주신다는 것. 그분이 우리 인생의 밤에 밝은 빛이 되신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며 영원에 이르기까지 보호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너무 어두운 현실 앞에서 빛이 정말 있는가를 의심하지만 믿음은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빛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그분을 향해 걸어가는 것. 답이 들리지 않아도, 여전히 남아서 기도하는 것. 현실의 문이 닫혀 있어도, 그분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우리를 놓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지칠 때에도, 우리가 흔들릴 때에도, 우리가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 곁에서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삶의 한복판에서 버거운 어둠을 지나고 계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건강의 문제, 관계의 아픔,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과 무게.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그늘, 여호와는 나의 보호자,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십니다.
이제 이 밤, 우리는 기도 가운데로 나아가려 합니다. 그분의 그늘 아래서 다시 한번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며 삶의 여정을 걸어가기로 결단합시다.
지금 이 어둠이 끝이 아니다. 주님은 나의 그늘이 되셔서, 내 모든 나날을 지키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라는 믿음을 품고, 함께 기도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지성소 기도회로의 초대

오늘 지성소 기도회로 각자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강단에 올라오셔서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함께 찬양 부르실 때 기도의 자리로 올라오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 찬양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지성소 기도회 인도인후 기도

이 시간 기도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는 지성소 기도회의 시간입니다.
성막의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던 거룩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우리 모두가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각자 강단 앞으로 나오셔서 무릎 꿇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제목을 올려드리길 바랍니다.
개인의 기도, 가정의 기도, 교회의 기도, 민족과 세상을 위한 기도까지— 우리의 모든 제목을 하나님 앞에 정직히 올려드립시다.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우리 함께 주님의 이름 크게 부르짖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이 밤, 우리를 말씀 앞으로 불러주시고, 주님의 도우심을 다시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종종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 앞에서 두려움에 멈춰 서기도 하고, 무엇을 의지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우리의 도움이시고,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분이심을 다시 붙잡습니다.
하나님,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믿음으로 걷는 작은 한 사람을 통해 진정한 ‘보는 것’은 시력이 아닌 믿음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 어둠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사람이 아닌 주님의 손을 의지하게 하소서. 환경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에 반응하는 믿음을 주소서.
이제 우리가 다시 일어나,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하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걸음마다 지켜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하소서.
이 밤, 주님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의 평안과 위로와 능력을 부어주시고, 말씀이 생명 되어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 움직이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눈이 어두운 세상만을 바라볼 때, 희망 없는 뉴스와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 속에서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무너질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121편의 말씀처럼,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믿음으로 붙듭니다.
주님,
우리의 삶을 넘어뜨리려는 유혹과 절망의 그림자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시며 그늘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지 않아도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붙들고 계신 주님의 손길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의 오른편에서 그늘이 되어 주신다는 그 말씀처럼,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성도들의 삶의 걸음걸음에 주님 친히 동행하여 주시고, 낮에도 밤에도 지키시는 완전한 보호하심을 체험하게 하소서.
우리가 무너졌을 때, 다시 일으켜 주시고, 우리가 지쳤을 때, 쉼이 되어 주시며, 우리가 눈물 흘릴 때, 그 눈물을 닦아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을 이 밤에 만나게 하소서.
지금 이 시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무릎을 꿇습니다. 이 밤,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고, 만져주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 저희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눈을 들어 산을 바라봅니다.” 주님, 우리의 시선이 문제와 상황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향해 고정되게 하소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말씀께로 돌리게 하소서.
하나님,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저희를 지키소서. 불안한 세상 속에서 두려움과 걱정이 엄습할 때 “네 발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며” “졸지도 아니하시며”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 이 밤에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소서.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
가정과 삶의 자리마다 주님의 그늘이 되소서.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신다” 하셨으니, 우리 각자의 삶에 주님의 그늘을 덮어 주옵소서. 질병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에게, 외롭고 지친 마음 속에 주님의 평강이 임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 가정과 교회를 지켜주소서. 우리의 자녀들을, 부모님을, 가족을 주님 손에 올려드립니다. 우리 교회를 지켜주시고, 주님의 뜻 안에 바르게 서게 하소서. 분열이 아닌 연합하게 하시고, 두려움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이 밤,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회복과 소망, 기쁨과 평안을 부어주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을 깊이 경험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의 삶이 때로는 너무 지치고 무거워 기도의 자리조차 멀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마음의 무거운 짐들을 주 앞에 내려놓습니다. 염려와 두려움, 분노와 낙심을 주께 맡기며 성령으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현실에 휘둘리고, 불안해하고, 주님의 약속을 놓치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다시금 주님의 말씀을 붙잡게 하소서. 시편 121편의 고백처럼 주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진리를 믿게 하소서.
주님, 우리 가정을 붙들어 주소서. 이 시간, 가정마다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다. 병든 가족을 위해, 믿음에서 멀어진 자녀를 위해, 관계의 어려움과 경제적 위기 앞에 서 있는 이들을 위해 주님, 친히 간섭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주님의 그늘 아래 회복시키시고 은혜의 울타리로 지켜 주소서.
하나님, 이 교회를 새롭게 하소서. 주님의 몸된 이 교회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공동체 되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되게 하시고, 이 도시의 등불이 되게 하소서. 주의 성령으로 채워주시고, 믿음의 다음 세대가 일어나게 하소서.
주님, 이 밤이 회복의 밤 되게 하소서. 이 밤, 우리의 눈에 눈물이 있어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회복의 손을 내미셔서 쓰러진 자를 일으켜 주시고, 고통 가운데 있는 심령에 위로를 부어 주옵소서.
오늘의 찬양의 고백이 우리 삶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나이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주님은 결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낮의 해도, 밤의 달도 해치지 못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금도 지키심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각자의 삶을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 가정, 자녀, 교회, 일터, 병든 몸, 흔들리는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아뢰며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지켜주소서.” “주님, 저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여 함께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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