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1 청년 시시콜콜(마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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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과의 타이밍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시는 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시기 위해서는 적당한 때와 시기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부분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면 떠오르는 타이밍들이 있죠. 대부분 떠오르는 것이 있을 텐데요. 역동적인 성령집회와 기도원의 분위기가 그렇겠죠. 예수님을 믿는 삶의 부르심을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타이밍을 떠올리죠. 평소와 같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죠. 아침에 학교를 가거나 출근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본 경험 있는 분 계실까요? mp3를 꽂고 찬양을 신나게 듣다가 마음과 생각에 강렬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신 분 있을까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타이밍이죠. 적절한 때에 적절한 표현을 하는 것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고, 끊고,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타이밍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시작하고, 발전시키는 기회로 찾아오는 타이밍이 있고, 특정 시점에서 인간관계를 정리해야만 하는 타이밍이 있으며 쌍방의 노력을 통하여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하는 과정의 타이밍이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때,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찾아오신 예수님과 어떤 타이밍을 보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바라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타이밍에 주님과의 관계는 새롭게 맺고, 세상과 벗하며 주님의 관계에 방해가 되는 죄의 문제는 끊어내며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청년교구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2. 부르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왠지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고, 궁금하기도 하며 설레이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보시면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전해주고 있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이 시의 내용을 보면 어떤 한 이름없는 존재가 누군가의 부름을 받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없던 존재는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부름받은 꽃도 중요하지만 그 꽃을 부른 1인칭 관찰자의 마음의 변화와 관계의 변화가 중요한 것이죠. 내가 본 그 꽃은 여느 때처럼 지나가는 길 목에 피어있는 꽃들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모든 나무와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그와 같은 자연의 한 몸짓에 섞여 있는 꽃으로 지나쳤을 거에요.
하지만 나의 발걸음이 멈춰서서 그 꽃 앞에 서서 자연의 한 조각이었던 꽃에게 다가가 그 이름을 부르면 그 때부터 나의 세계에 그 꽃은 특별한 한 송이의 꽃이 되는 것입니다. 무의미했던 우리의 삶에 의미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부른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우와는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부르지 않았으면 하는 경우도 있죠. 태초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은 이후 자신의 벌거벗은 상태가 부끄러워서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 아담을 부르실 때, 그는 이전과 같이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죽인 이후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벨이 어디있느냐라고 묻자. 가인은 하나님께 대하여 짜증섞인 표현을 담아서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반문하죠.
이와 같이 더 이상 그 누구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으며 차라리 혼자 내버려 두기를 바라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때로는 그에게 휴식이 필요하거나 혼자 있어야 할 때도 필요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 세상과 타인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가받는 세상이 지겹고,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어서 초라하게 느껴지며 누군가에게 도움은 못될 망정 민폐라도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사회적인 문화는 계속해서 고립된 자리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언제나 부르신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를 향해 부르고 계시는 그 음성은 우리들의 삶에서 아주 특별하고, 귀한 메시지가 된다는 은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우리들이 어떻게 반응하면 주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특별하고, 귀한 것이 될 수 있는지 세가지 주제로 정리하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한 갈릴리 지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많은 랍비와 철학자들이 했던 것처럼 갈릴리 지역을 순회하시던 중이었습니다. 그 기간 중에 예수님께서는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두 척의 배가 있는 것을 보셨죠. 한 척의 배에는 베드로와 안드레, 또 다른 한 척의 배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물고기를 잡고 있던 중이었는데요.
그 당시 제자들은 누가복음 5장 5절에 기록된 것처럼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 수고를 했지만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한채 돌아온 상황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처지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배를 타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청년교구 여러분 이 상황을 주목해보시길 바랍니다.
제자들은 그 당시 어부의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던 이들이었습니다. 사적 자료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갈릴리 지역의 어부는 그 주변 지역 산업 구조에서 중산층에 해당하는 직업군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던 국가들은 토지에서 노동을 하는 경우 제국의 토지를 경작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어부의 일을 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이처럼 전문적인 일을 감당하던 어부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낚시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장면이 예수님과 이후에 제자들이 될 사내들과의 첫 만남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능력에 훨씬 부족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는 때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중에 그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약속하시는 말씀을 따라서 그의 발걸음을 옮길 때,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들의 일상 생활 가운데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5장 6절의 사건과 같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물을 내렸을 때, 어부들은 그물이 찢어질만큼 가득한 물고기를 거두어 들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특별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실 수 있으시죠.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살아가던 삶의 자리에서 그의 삶의 방향은 이제 황실이 아니라 저 광야 한복판으로 옮겨야만 했을 때, 주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실 때가 되자 하나님의 산으로 불리는 호렙산에서 불붙은 가시떨기 나무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죠.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순간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시시콜콜’ 시시하고, 오래된 것을 구태여 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시는 ‘때 시’를 따라서 모든 시간이구요. 콜콜은 영어로 ‘부르고, 부른다’라는 의미로 시시콜콜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오래된 옛 말이 아니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기는 하지만 정말 나를 부르면 어쩌나 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죠. 주님의 부르심은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리라 약속하신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생명의 빛으로 돌아와야 하는 영혼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돌아와야 하는 영혼들이 넘쳐나기에 주님의 마음을 나누기 위한 주님의 사람들을 매 순간마다 부르고, 또 부르고 계시는 주님이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4. 당장 버려라

두번째로 살펴볼 말씀의 은혜는 ‘지금 당장 버려라’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부르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그런데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부름에 지금 당장 발이 떨어지지 않고, 마음과 생각에 조금 더 있다가 가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번째로는 우리들의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주저함 때문입니다. 취업과 장래의 소망이 불투명하고, 현실로 다가오는 경제적 어려움이 우리들 가운데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와 같은 내재된 두려움은 마치 식사시간이 되면 허기를 느끼고, 식사를 해야만 정신과 육체적 건강에 이로운 것처럼 우리는 그와 같은 불확실에 대한 염려를 정기적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염려를 잊기 위해서 실제적인 삶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죠. 그와 같은 삶이 결코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게 아닙니다.
평생 그렇게만 살 수 없다는 것이죠. 주님께서는 지금도 나를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라. 믿음으로 나가라. 내 말과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우리는 지금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물을 버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내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과감히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주님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합니까? 내 경험과 능력과 예측 가능한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어요. 나의 편안함과 안락함과 익숙함과 예상 가능한 나의 삶에서 벗어나서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내 손에 엉켜있던 그물이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주님을 닮아가는 청년교구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5. 따르다

세번째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는 ‘예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직자이자 기도의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앤드류 머레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첫번째로 중요한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가도록 가르치시고, 전해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곧 분리될 것을 앞두고 전해주시는 말씀인 것이죠.
이 말씀은 제자들과 함께하는 실제적인 시간이 끝나갈 즘에 전해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첫 만남을 갖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여러분 이와 같은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이죠. 예수님은 당신의 사람을 부르실 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시며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삶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은 실제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하나의 포커스를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의 은혜는 우리의 직업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우리들의 현실의 삶에서 마주하는 영혼을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을 따르길 원하십니까? 나의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지 확인하고 싶으신가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예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어떤 삶입니까? 로마서 8장 28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삶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제는 우리들을 서로 합력하게 만들고, 주님의 부르심으로 합력하는 우리들의 삶이 선을 이루는 역사가 되어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최초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자들이 지내던 상황은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고, 일상적인 것 같지만 여전히 한계를 마주하면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제한적인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상황에 들려온 부르심에 제자들은 반응하였습니다. 당장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발걸음을 내딛었던 제자들의 걸음은 불확실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걸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순종과 믿음의 도전은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며 이루어가는 선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청년교구 예배를 드리고, 살아가게 될 삶의 모든 자리에서 ‘시시콜콜’ 모든 때와 장소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저와 우리 청년교구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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