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빛,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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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된 세상엥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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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12절 말씀.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이 작성한 책으로, 이 책을 쓴 목적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함이니라“

요한이 요한복음을 쓴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의 시작은 다른 복음서들과 다르게 시작합니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해 소개하며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을 이사야 말씀을 이야기하며 세례 요한의 사역에 이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들을 이야기하며 마가복음을 시작합니다. 누가 또한 세례 요한의 출생에 이어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누가복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며 예수님이 인간의 자손이 아닌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라고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던 태초에 관련된 내용은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장과 창세기 1장에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어떤 날에 어떤 것들을 어떤 방법들로 창조하시는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면, 빛이 생겼습니다. 물 가운데 있는 궁창을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면 그대로 물이 나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과 권위가 있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면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을 이루어 갔습니다.

1. 말씀, 생명, 빛이신 예수님

그리고 오늘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내용으로 요한복음을 시작합니다. 요1:1 태초에 계셨던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요1:3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말씀이신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그(말씀)가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누구입니까? 요한은 요1:14에서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입니다. 요한은 3년 동안 자신이 따라다녔던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자, 태초에 이 세상을 만드신 말씀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요한은 이야기 합니다. 요1:4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창조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생명이자, 사람들의 빛이십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말씀이자, 창조주이시자, 생명과 빛이십니까?

2.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요한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해 설명한 후에 이 세상에 발생한 긴장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요1:9-10에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 빛이 있었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세상은 말씀이자, 생명이자 빛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어졌는데, 모든 것이, 만물이 그로부터 나왔고 말씀으로 인해 작동되어지고 있는 세상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근원, 곧 창조주이신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긴장은 요1:11에서 더 고조됩니다. 사람들이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하길래 말씀이자, 창조주, 생명과 사람들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자기 백성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신 그 분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10절과 같이 알고 모르는 것처럼 ‘지식’의 차원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지가 아닌 ‘죄’입니다. 능동적인 행위, 의지로서의 예수님을, 창조주를 거절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이야기하는 죄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의도적인 거부.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자기 땅, 이 사람들을 자기 백성이라 부르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그 분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모든 것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였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던 이 세상이 이제는, 창조주이시자 주인인 그 분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요한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천년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사역하실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당시의 종교 권력자였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의 삶과 하신 일들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 중풍병자, 맹인, 혈루증을 앓던 여인 등 오랫동안 아무도 고칠 수 없어 오랫동안 고통 받으며 살아가고 있던 수많은 이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거라사 지역에서 지내던 걸인, 군대 귀신으로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던 그에게 참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귀신들린 아이 또한 자유케 하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셨습니다. 또한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 죽었던 나사로까지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러한 예수님의 기적들을, 행하신 일들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에 이들이 몰라서 믿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하였고 거절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없는 듯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우리 아이들이 받는 교육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시작을 이야기 할 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이 세상이 움직이는 시스템을 설명할 때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하나님 없이 만들어진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교육 뿐만이 아닙니다. 정치, 사회, 외교 등 우리의 삶 수많은 영역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한번 상상해볼까요? 이 나라의 위정자가 어떤 일을 훌륭하게 잘 수행했을 때, 이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합니다. 나라에 어떠한 불상사가 발생했거나 커다란 위기가 닥쳤을 때, 이 상황이 발생한 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서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켜야만 합니다! 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의례적인 표현으로써가 아닌 정말로 그렇게 믿고 국가를 운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합리적이고 이성적, 논리적인 이 시대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믿음을 드림으로 살아가고 행동한다는 것은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서는 미신을 믿는 것과 비슷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가 아닌 사람이 이성을 통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배제시킨 세속화된 세상에서 태어났고, 세속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던 2천년 전에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이 세상과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이 세상을 운영해 가시는 주권자 되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 분을 영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예수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이십니까?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분이 우리의 주인이자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 또한,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하나님을 배제시킨 세속화된 세상에서 태어나, 세속화된 교육을 받고 세속화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세속화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에 부딪히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의 입장에서 다시 재해석하고는 합니다.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다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관여하지 않는 분이기를 원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두고 어떻게 나를 쳐서 복종하게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이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이번만큼은 내가 이 일을 결정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의 나의 주인이시자 구원자 창조주가 아닙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 곧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 역시 이 세상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조차 세속화의 영향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 분일까요?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보며, 사람들을 보며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찾아 오십니다.

성경을 보면, 특히 구약에서는 동일하게 반복되는 패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십니다. 모든 것을 누리고 다스리게 하셨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그것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움에 숨어있는 아담과 하와를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지어 부끄러워 나뭇잎으로 가리고 있는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1장을 보면 패역한 이스라엘의 모습에 대해 나옵니다. 2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들으라. 명령하십니다. 그 다음에 하시는 말씀은 양육한 자식이 나를 거역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피조물이 듣고 반응하여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에서 하늘이여, 땅이여 들으라 명령하신 다음에 하시는 말씀이 내가 지은, 내 백성이 나의 자식이 나를 거역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창조주,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을 하늘에게, 땅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죄를 짓고 거역하는 이스라엘을 그대로 낙인 찍으시고 그 상태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1:18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이 변론하자고 하십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는 이러한 패턴들이 계속 나옵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 죄 짓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낙인 찍고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어떻습니까? 했던 잘못을 또하고 또하며 반복하는 사람을 보며 그 사람은 어떠어떠한 죄를 짓는 사람이라고 규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러한 시선은 웬만하면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신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5장 1절, 요한복음 7장 37절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와서 마시라고 하십니다.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사 먹으라고, 마시라고 합니다. 물은, 음식은 누구에게 필요한 겁니까? 목마르고 배고픈 사람입니다.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이 가서 물을 좀 주십시오, 먹을 것 좀 주십시오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목마르고 굶주린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와서 값 없이 먹고 마시라고. 구원하시는 구원자와 죄인이 있습니다. 구원자에게 죄인이 필요합니까? 죄인에게 구원자가 필요합니까? 죄인에게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죄인이 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가 찾아오십니다. 아담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님 공생애 시대, 지금까지도 우리는 항상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멀리하지만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항상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10절에서도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자 11절, 자기 땅에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자기 백성을 향해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12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함께 한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보았고, 만졌던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수많은 기적들을 봤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얻고 귀신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던 수천명의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시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수많은 무리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셔서 대제사장 무리와 종교인들에게 멸시와 모욕,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았던 자입니다. 성경 말씀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고난 당하실 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십자가를 지실 때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던, 예수님을 찬양했던 군중들의 모습은 나오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한 그들은 침묵하였고 도망쳤습니다. 호산나 외치던 무리들은 불과 며칠 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은 이 모든 것을 바로 눈 앞에서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한 요한이 오늘 말씀을 통해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시자 말씀, 생명,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지만!, 영접하지 않은 것을 넘어 그를 배신하고 침 뱉으며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지만! 그러한 자들에게 요한은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요한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또 짓는 우리들에게, 세상을 향해, 너희가 죄를 지어도 나를 거절하였어도, 나를 모욕하고,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지워버렸을지라도! 나를 영접하면,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담 때에도, 이스라엘 시절에도, 예수님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이 세상은,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거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이라고 낙인 찍지 않으시고, 정죄하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 가운데 찾아 오십니다. 목마른 자들, 굶주린 자들 모두 내게로 와서 값없이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름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그 주님 앞에 나아가 그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는 한분 한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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