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7일 수요예배 설교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 views
Notes
Transcript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입니까?

욥기 17:3 NKRV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들어가며

우리는 지금까지 욥기를 함께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통제 할 수 있는 법칙을 원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죠.
인과응보의 법칙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전부 설명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명 성경은 다른 하나님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고 인생 가운데 다른 하나님도 만나지만 예외의 하나님은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예서 외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하나님께서는 방대하시고 측량이 안되는 분이신데. 인간은 늘 이러한 유혹을 받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대하여 잘 알고 있다. “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전부다.”
성경 66권은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계시해주신 것이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알려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 외에 더 알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그 지식이 인간에게 유익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는 예수님 믿은 후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이해되지 않고 예측이 안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자들에게 이러한 고난과 문제들이 더 고통스러운 것은 소위 신앙이 좋은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어김 없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욥이 왜 괴롭습니까? 왜 더 비참합니까? 경건한 자 중에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었기때문이 아닐까요? 친구들에게 이러한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닌데 이러한 수치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15장은 엘리바스가 다시 욥에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욥이 친구들의 충고를 거부하자 2라운드가 시작되는데 가장 먼저 욥에게 이야기했던 엘리바스가 다시 등장합니다.

엘리바스의 말

15장 1-16절은 욥의 발언에 대하여 엘리바스가 평가하는 부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욥에 대한 평가는 간단합니다. “너는 지혜자가 아니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도 아니며 계속해서 무지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악인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네가 스스로 특별한척 하고 있는데 너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7-20절의 말씀을 보면 이러한 표현이 있습니다.
욥기 15:17–20 NKRV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내게서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이는 곧 지혜로운 자들이 전하여 준 것이니 그들의 조상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므로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느니라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의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포악자의 햇수는 정해졌으므로
쉽게 이야기하면 어떤 이야기입니까? 17절에는 자신 직접 경험한 것을 설명한다고 하지만 18절 이하의 말씀을 읽어보면 자신의 조상들에게 배운 지혜입니다. 그리고 18절에 보면 그 때 그 땅에는 자신들의 조상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며 지금 자신이 말하는 지혜가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신은 특별한 지혜를 가진 자 이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가 무엇입니까? “악인은 아무리 잘난척하고 결국 망함으로 끝이난다는 것입니다.” 욥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네가 아무리 잘난척하고 지혜로운척해도 내가 보니 네가 악인이어서 이렇게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다. 교만함을 버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욥기를 읽어보면 참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용상으로는 다 옳은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 상황을 판단 받고 싶어하지만 친구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로 판단했을 때 하나님 앞까지 갈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말이 내용상으로는 맞지만 욥기의 앞 부분을 읽었다면 자동적으로 그들의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의 말이 틀렸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갈 것 없이 욥이 받고 있는 고난과 어려움이 하나님 앞에 잘못한 증거라고 말하지만 욥은 이 고난과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맞지만 내가 무엇인가 잘 못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며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욥기 설교 초반에 이야기 드렸던 부분입니다. “옳은 것”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옳은 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옳은대로 행하셨다면 - 인과응보 법칙대로 행하셨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었기에 예외의 법칙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엘리바스처럼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전부인줄 알고 사는 오류를 쉽게 범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배운 지혜” “이 것은 아주 특별한 것이다.” 아마도 욥도 이러한 사람을 살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고난이 찾아온 순간 그 세계가 깨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의 친구들과 욥의 대화를 대결의 구도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면 소수와 다수의 대결로 보며 욥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엄청난 반전이나 승리가 이루어질 것 같지만 욥기는 성장소설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이 세상을 살아가는 믿은 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그것을 봐야하고 .. 하나님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이 어떻게 깨어져가는지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주체가 누구인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요. 자연스럽게 그 주체가 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없이 우리 존재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경험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셨다고는 하지만 그 중심에 스스로가 서게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기도 하면, 내가 성실하게 주일 성수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 탄탄대로의 길을 가게 될 거야. 금식했더니 이러한 문제가 해결 되었어. 이렇게 새벽기도회 제단을 쌓았더니 이러한 복을 주셨어. 우리가 이러한 간증을 많이 듣잖아요? 그쵸?
그런데 실패한 이야기는 간증을 많이 하나요? 늘 성공의 간증만 듣기 때문에 예외의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신앙행위가 가져오는 결과가 주로 무엇인가 하는가 입니다.
바로 인간의 번영입니다. 신앙의 결과가 인간의 번영이라는 것이죠. 물질, 건강, 명예, 성공 등등 이러한 결과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가 죄를 지은 것이 혹시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체가 인간이 될 때 _ 복은 늘 번영이었습니다. 건강과 장수와 높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성공이 복이지 실패는 복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체일때는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욥을 통해서 듣고 싶은 고백이 무엇입까?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이 고백아닙니까?
엘리바스는 옳은 말은 하고 있지만 욥이 받고 있는 고난 앞에서는 겸손해야 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자꾸 자신들이 만든 세계 안에 하나님을 넣으려고 한는 교만을 범한 것입니다. 번영이 곧 복의 증거가 아니듯이 고난이 꼭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잘 못됨의 증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하 분이다.

16장에서 욥을 보십시오. 욥의 친구들과 욥의 세계. 그것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욥기 16:1–6 NKRV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
16장 1절에 보면 이렇게 답을 합니다. “엘리바스, 너희가 말하는 그 특별한 지혜. 내가 많이 들어봤다.” 너희는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위로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오히려 고통을 더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내가 너희들에게 무슨 잘 못을 했길래? 이렇게 나에게 상처를 주는가?”
4절 이하에서는 입장 바꿔서 엘리바스나 친구들이 욥과 같은 상황에 있고 욥이 친구들의 입장이라면 얼마든지 옳은 말. 그럴싸한 말을 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친구들이 이러한 비참한 친구 앞에서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고난 자리에 있지 않고 고난 가운데 있는 친구 욥의 상황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6절에 말합니다. “말이 많다고 나에게 뭐라고 하는데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고통은 없어지지 않으며 입을 다물고 있다고 가만히 있는다고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고난 가운데 욥은 탄식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르짖지 아니할 수 없으며 침묵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제 7절부터는 그 탄식이 하나님을 향합니다. 7절부터 14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욥기 16:7–14 NKRV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서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고난 받는 상태를 심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내가 이러한 상황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탄식하며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7절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11절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13절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모든 장기들이 쏟아졌다.”
“14절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신다.”
하나님께서 직접 징계하시고 표적을 삼으셨는데 누가 이러한 고난과 고통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일까요? 아니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황인데.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는 판단이 안 서기 때문에 하나님께 그 원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것. 때로는 그것이 날카로운 것으로 내 몸을 찌르는 아픔을 줍니다. 시간이 지나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쉽게 회복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백성이라면 그 고난은 징계가 아닙니다.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내리는 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든지 그러한 고난은 찾아 올 수 있고 .. 그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고요. “그래도 주님만으로 만족합니다.” 라는 고백을 듣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면서 고난은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게 하고 무지함을 다시 생각하며 하나님을 깊이 알게 하는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혹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고난은 축복이라고 말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나 납득이 안되는 고난은 너무나 아픕니다. 그냥 축복이라기 보다는 인의 연약함에서부터 나온 도구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기에 겪는 필연적인 경험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다시 보게 하게 깊이 알게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지 축복이라고 하기에는 인간이 겪는 고난은 너무 다양하고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욥기 16:15 NKRV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15절의 말씀을 볼까요? 얼머나 고통이 심한지 상이날 때 입는 그 베옷이 욥의 피부가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이러한 표현이 있는데요. 땅에다가 머리를 처박은 모습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욥이 지금 얼마나 괴로운 상태인지 아시겠죠? 고난이 축복이라는 것은 자신의 겪은 고난에 대하여 나중에 나중에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표현이지 절대로 남에게는 해서는 안되는 옳말입니다.
그리고 17절의 호소가 오늘 본문의 말씀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 고난의 이유를 그동안 가지고 있던 신앙관으로 이해 할 수 없지만 욥은 자신을 도우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죄를 저지른 일이 없다.” “나는 언제나 진실했다.”
19절 “하늘에 내 증인이 계시고 높은 곳에 내 변호인이 계신다.”
즉,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시며 하나님 앞에 서면 모든 것이 풀려질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장 22절과 17장 1절을 보면 욥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 받고 있다고는 인정하지 않지만 더이상 이 고난을 이겨낼 힘조차 없는 상태인듯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욥기 17:3 NKRV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죄가 없다고 보증을 해주고 그 손을 잡아 주실분이 누구뿐입니까? 누구도 알 수 없는 이 고난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실 분은 누구 뿐이십니까?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하지만 또한 이 문제 해결되기를 원하고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하나님도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모른다고 할때가 있습니다. 물론 속상함과 힘든 마음 때문에 하는 투정이겠지만 하나님이 진정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라면 그렇게 고백해서는 안됩니다.
그래도 주님만은 나를 잘 아시죠? 그래도 주님만은 이 모든 상황을 잘 아시죠? 제 억울함 아시죠? 저 진짜로 성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한것 아시죠? 이 고난이 나의 잘 못때문에 온 것이 아닌 것이 맞죠? 다른 뜻이 있어서 이 고난을 주신 것이죠? 이 고백이 바로 욥의 고백고 같은 기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욥기는 여기에서 멈추면 안됩니다. 욥과 욥의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칫하면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자신의 주인이되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보증 되어주셨습니다.
히브리서 7:22 NKRV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디모데전서 2:5–6 NKRV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욥,욥의 친구들, 그리고 저와 성도님들 누구도 인간의 한계와 근본적인 악함. 원죄에서 자유울 자들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은 우리가 범죄했기 때문에 찾아온 고난은 아니지만 원죄로 인한 - 혼란과 악으로 인한 결과로 찾아온 고난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악함이 그 원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이라 하지만 어떠한 사고를 만나는 것. 갑작스럽게 큰 병에 걸리는 것. 급작스런 사건 사고로 힘들게 되는 것.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거부한 결과로 인한 것 아니겠습니까? 범죄의 결과가 아닌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 세상에서 그리고 그 사람들과 살아가는 중에 일어날수 있는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이러한 고난 속에서 어찌 할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우리가 왜 이러한 고난 속에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더 고통스러운 중에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때 담보로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에 모든 수치를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원죄의 문제가 끝날 것이라는 그리고 이 인생의 연약함과 고난이 우리의 범죄때문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담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신 것입니다.
고난 중에 우리에게 주신 보증. 그 십자가를 바라 보십시오. 아. 이 고난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구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 돈.건강.명예.성공 이 모든 것들이 복의 증거라고 하는 생각을 뛰어넘어. 복의 증거는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