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26. 수요예배. 양과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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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63장
찬송가 563장
본문
본문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서론
서론
할렐루야. 수요 예배로 모이신 모든 성도님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비가 오고 난 뒤로 무더위가 한풀 꺾인 것 같지요?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서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슬슬 여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가시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합니다. 무더운 여름, 뜨거운 햇살이 있어야만 오곡백과가 여물게 익어가는 법이더라구요. 그리고 그 후에는 반드시 풍성한 추수의 시기가 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무더운 여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것 같은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를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여물게 익어가게 하시고,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번 가을이 모든 성도님들께 영적으로도 풍성한 추수의 시기가 되시길 우리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 제가 자주 되뇌이는 말이 있습니다. “제 상황과 형편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가장 귀한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참 멋있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렵고 힘겨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자 애쓰면, 언제나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응답해주시더라구요. 우리 중에는 분명 어렵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 예배에 자리에 나온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격려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이렇게 인사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시 한 번 앞뒤로도 이렇게 인사를 나눕시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를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교회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조직과 기관들, 공동체들에 속해서 활동해보았지만, 교회만큼 좋은 곳은 없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아니고 20대 초반이 되서야 신앙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모습을 가진 가장 매력적인 공동체입니다.
제가 신앙이 없었을 때에도 제게 교회는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의 초대로 가보았던 교회에는 세상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훗날 신앙을 갖고 나서야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분명히 교회에는 무언가 놀라운 것이 있고, 그게 참 매력적이라는 사실만큼은 신앙이 없어도 알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여느 공동체들과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가장 근본적인 부분부터 따져보자면 오직 교회만이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직접 세우셨을 뿐 아니라 직접 주관하시며, 직접 인도해가시기에,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공동체는 설립하고 주관하고 인도하는 것이 사람이기에 그것들의 주인은 분명히 사람이지요. 이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이해를 하시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공동체 중에 오직 교회만이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는 공동체이며, 오직 교회만이 그 사랑에 직접 응답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렇게 하늘에 속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 받는 교회는 천상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발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공동체가 어떻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품에 거하고 있는 교회는 밤하늘에 고고히 떠올라 그 순결한 빛을 세상에 비추는 달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하나님의 품에 거하고 있는 교회는 어둠이 아무리 삼키려 해도 삼키지 못할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교회가 언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시는 순간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성경은 교회가 사실 그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언제부터일까요? 정답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시지요? 몇가지 성경 구절을 들어 설명을 드려볼테니 한 번 잘 따라와 보십시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부부에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각각 남자와 여자인 둘이 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도 합하여 하나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인 셈이지요.
구약의 많은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하나됨에 대해, 이 사랑의 연합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두 구절만 한 번 함께 찾아볼까요?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이사야는 우리를 지으신 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교회의 남편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호세아는 우리에게 장가를 들어 영원히 함께 하실 그리스도의 음성을 대언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자신이 신부로 맞이할 교회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이미 그 마음에 신부를 품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아버지께서 가지신 계획과 섭리를 함께 공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자신의 신부의 모습을 바라보셨지요.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가 장차 아버지께 큰 은혜를 받아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되는 모습을 함께 꿈꾸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 교회를 자신에게 사랑의 선물로, 자신의 신부로 주고자 하심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버지의 계획 속에 있는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내다보신 미래 중에서 교회는 신랑의 품을 떠나 온갖 음행으로 자신을 더럽히게 될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류와 함께 그리스도의 신부도 부패하고 타락하여 더러움에 물들게 될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예수님이 내다보신 대로 신부가 타락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신부가 더럽고 추악함에 물든 것을 보셨을 때에도, 그들을 향한 긍휼과 사랑으로 마음이 타오르셨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그들의 모든 책임을 대신 지시고, 그들의 빚을 완전히 탕감해 주시고, 그들을 위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교회의 타락은 신부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무한하심과 변함이 없으심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신랑이 신부 곁으로 왔으나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 누구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깨어날 신부를 기대하며 홀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내다보신 신부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기에, 십자가를 지러 오셨음에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하실 수 있을까요? 끝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하실 수 있을까요? 즐거이 노래를 부르며 기뻐하셨다 하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깨어난 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셨다”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발견한 진정한 교회의 모습,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나타내야 할 아름다움에 대해 전하고자 합니다.
본론
본론
파라볼라노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초대교회 시절 그리스도인을 향한 별명 중 하나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향해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라 칭했던 장면이 나오는데, 이처럼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엄청나게 특별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 모습에 맞는 별명을 붙여주었던 것이지요. 이게 무슨 뜻인지는 잠시 후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세기와 3세기, 교회가 큰 박해를 경험하던 시기에 로마 제국에는 두 차례 아주 심한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2세기에 로마를 휩쓴 전염병은 안토니우스 황제 때 일어난 것이라 안토니우스 역병이라 불렸는데, 165년에 발생한 이후 15년 동안이나 창궐했기 때문에 피해가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 인구의 30% 즉, 약 1,800만 명이 이 전염병으로 사망했다고 하네요.
3세기에 로마를 휩쓴 전염병은 키프리아누스 역병이라 불렸습니다. 키프리아누스라는 당시 카르타고 지역의 주교가 설교를 통해 이 전염병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하게 되면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데, 251년에 발생한 이후 12년 동안이나 창궐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역병은 로마 시대에 일어났던 많은 전염병 중에 치사율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평가되는데, 특히 로마시의 인명 피해가 심각하여서 하루에 5천명 씩 사망자가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한 역사가들은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PPT 1) “무서운 전염병이 발생하여 그 놀라운 파괴력이 각 집마다 파고들어 가서 각 집마다 한 명씩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매일 갑자기 죽어갔다. 모두가 두려워 떨며 도망하여 전염되는 것을 피하려 하였다”(카르타고의 폰티누스).
(PPT 2) “전례 없는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했다. 또 전쟁에서 로마가 패하면서 재난은 가중되어,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죽어갔다, 한편으로는 물가가 너무 올라 양식을 사기 위해 재산을 다 팔고도 부족해 굶어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에는 벌거벗은 시체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으며, 개에게 뜯기기도 하였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이런 상황에서 로마 시민들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PPT 3) “로마인들은 질병이 처음 발생하자 아픈 자들을 내쫓았고 가장 가까운 자부터 도망쳤으며 병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다 버리고 매장하지 않은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습니다” (디오니시오스의 서신).
사회의 고위층이었던 사제들과 권력가들과 부자들이 앞다투어 로마를 떠나 피신하는 바람에 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으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의사들도 역병에 손쓸 방법이 없어 환자를 버리고 도망쳤고, 심지어는 가족마저도 역병에 걸린 자신의 피붙이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달랐습니다. (PPT 4-5) “대부분의 우리 형제들은 자신을 아끼지 않는 사랑과 헌신으로 서로를 돕고, 두려워하지 않고 병자를 돌보았으며, 그러다가 자신도 질병에 감염되면 이 세상을 기쁘게 떠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해준 사람 가운데 다수가 죽었습니다. 장로, 집사, 평신도를 막론하고 우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잃어갔습니다. 강한 믿음과 경건에서 나온 이런 형태의 죽음은 순교에 못지않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성도의 눈과 입을 감기고 다물게 하고 어깨에 업고 시신을 옮긴 다음에는 안아서 정성을 다해서 씻기고 수의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곧 자기 자신도 같은 의식을 제공받게 되었습니다(즉 죽었다는 의미).” (디오니시우스의 서신).
디오니시우스 주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한 사람도 몸을 사리지 않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돌보았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이 서신을 작성했습니다.
로마 시민들과 그리스도인의 반응이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습니까?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병자는 친구에게도 버림받았던 상황이지만, 그리스도인들만큼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이렇게 기록을 남겼습니다.
(PPT 6) “끔찍한 전염병이 창궐하는 중에도 형제애와 동정심을 행동으로 보여준 자들은 그리스도인들 밖에 없었다. 매일 죽어 나가는 자들을 매장해 주느라 바빴을 뿐 아니라,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자신도 위험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사랑을 실천한 자들을 향해 (PPT 7) “파라볼라노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에게 이런 별명을 붙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이단이자 아주 저급하고 사악한 사이비라고 취급하던 자들에 의해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너무 놀라운 일 아닙니까?
초대 교회의 자료들을 살펴보니,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 자”로 이웃들에게 소문이 났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이웃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PPT 8) “기독교인들은 마음에서 우러난 헌금을 하여 이를 먹고 마시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특히 고아와 가난한 노인,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죄목으로 온갖 어려움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돕는 사람들’, 혹은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로 불리었다(Tertullianus, De Patientia. 39).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 내가 넉넉하지 않다면 이틀이나 사흘씩 금식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음식을 마련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처음 세상에 등장한 교회는 이렇게나 매력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매력으로 교회가 세상을 물들이자 곧 박해가 끝나고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313년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고, 380년에 이르러서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유일한 종교로 공포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음에도 이런 놀라운 부흥을 일궈낸 것입니다. 역병이 도는 것은 로마의 신들이 노해서라고, 로마의 신들을 섬기지 않는 자들을 벌해야 한다고 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온갑 고문과 핍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겨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전하며 다닐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으로 시작한 교회는, 4세기 중반에 이르러 약 3천 2백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공동체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숫자가 전부 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숫자 보다는 이런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초대교회의 놀라운 매력에 집중해보십시오. 초대교회는 당시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며, 온갖 최첨단의 유행과 사치와 향락이 가득한 로마가 보기에도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귀한 것들을 교회가 가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초대교회는 로마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종교와 사상과 철학이 거짓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부라 불리는 교회가 가진 천상의 아름다움이요 능력입니다.
결론
결론
주릴 때 먹이는 것, 목마를 때 마시게 하는 것,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 헐벗은 자를 입히는 것, 병든 자를 돌보는 것, 옥에 갇힌 자를 섬기는 것. 하나같이 오늘날에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살펴본 시대에서는 주님의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주린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를 마시게 하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헐벗은 자를 입힌다고 해서 내가 먹고 사는데에 큰 지장이 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내가 먹고 마실 것이 없음에도, 내가 나그네와 별반 다름없이 헐벗었음에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병든 자를 돌본다고 해서 내 생명에 크게 위협이 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니었습니다. 병든자를 위해 손을 내밀다가 내가 함께 역병에 감염이 될 수 있었음에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옥에 갇힌 자를 섬긴다고 해서 내 신변에 크게 위협이 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잡혀 들어간 형제를 돌보러 가는 것은 그와 함께 죽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음에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였기 때문입니다. 신랑과 사랑에 빠져있는 신부라면 신랑이 마음을 쏟는 곳에 함께 마음을 쏟게 되는 법입니다. 신랑과 사랑에 빠져있는 신부라면 신랑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가꾸고 그것을 갖추는 것에 노력을 쏟게 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신랑이 어디에 마음을 쏟고 계신지 압니다. 그분은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마음을 쏟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신랑이 내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계신지 압니다. 그분은 신랑을 닮아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위해 기꺼이 생명까지 바쳐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원하십니다. 신부는 신랑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 일을 감당합니다. 내 사랑하는 신랑이 바라는 것이니까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소유의 넉넉함이 순종을 낳지 않습니다. 환경의 여유로움이 순종을 낳지 않습니다. 사랑이 순종을 낳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부들이라면 당연히 기꺼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소유가 넉넉하지 않아도, 환경이 여유롭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부들이라면 주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순간은 화려한 건물을 세웠을 때도, 숫자가 늘어났을 때도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도망치던 자리에서 오히려 달려가 아픈 자를 돌보고, 버려진 시신을 장례해주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아버지와 함께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 아버지의 계획 속에서 보았던 자신의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교회는 너무 매력적이기에 세상을 물들이고,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만듭니다. 이런 교회는 자신이 순종하는 신랑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삶으로, 열매로 증명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모습을 한 번 돌아봅시다. 과연 우리 교회는 여전히 매력적일까요? 아니면 매력을 잃어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고 있을까요?
교회 이전에 우리 한사람 한사람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의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 마음을 쏟는 곳에 함께 마음을 쏟고, 그리스도께서 기대하시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기꺼이 내 삶을 드려 순종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사실은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과 함께 마음을 쏟고, 세상이 제시하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날마다 죄악에 내 삶을 팔아넘기고 있을까요?
우리의 삶이, 그리고 이 시대의 교회가 이토록 세상에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도록 약해지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신부로 살아가기를 포기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세상도 가지고 있는 힘이나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매력을 두고 고함을 치는 것도 허사입니다. 고함치는 소리가 크다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세상이 만들어낼 수 없는 매력을 갖추면 말 없이도 설득할 수 있다.
세상이 만들어낼 수 없는 매력, 그것은 바로 지극히 작은 자까지도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초대교회는 그것을 삶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교회를 보며 “교회엔 확실히 무엇인가 있구나” 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질 때, 성도가 성도다워질 때, 다시 세상은 교회의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건물의 크기나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의 순종에서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깨어나셔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준엄한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날이 오면 주께서는 양과 염소를 나누실 것입니다. 그 기준은 그저 입술로만 고백하는 거짓된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사랑의 순종으로 열매맺는 진실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 각자는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살고 있는가? 내 신랑 되신 주님이 마음을 두고 계신 지극히 작은 자에게 나도 마음도 두고 있는가?” 물어야 합니다.
신부로 살아온 자는 그 날에 신부를 위해 예비된 천국으로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신부로 살아오지 않은 자는 그 날에 사탄과 그 수하들을 위해 예비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평생을 신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해서 심판을 통과할 수 있는게 아님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신부로 살아오지 않은 자는 무늬는 신부와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아니라 사탄과 연합한 자였던 것임이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주신 말씀을 다 같이 한 번 봉독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주님 다시 오실 그 날,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께서 양의 무리에 속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서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지금이라도 깨어나 남은 인생을 사랑의 순종으로 가득 채워가게 하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기도
예수님만을
축도
축도
이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신부로 맞아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더럽고 추악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고 끝까지 품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이 없는 사랑과,
항상 우리를 도우셔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시고 역사하심이,
이 시간,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하며, 평생에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대로 살아가겠다 결단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이들의 가정과 생업과 모든 삶의 지경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