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에서 발견되는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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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느헤미야 1장 1-4절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진로 상담 :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진로 상담 :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대학생과 청년을 대상으로 사역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진로에 대한 상담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
대부분의 친구들은 몇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오는데,
그 선택지들을 요약하면… 더 잘하는 것 vs 더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이러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라기보다, 이런 고민을 가진 자녀를 두실텐데요, 여러분은 이러한 경우에 어떤 것을 선택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손을 들어본다)
각자의 생각들이 조금씩 다르시겠지만, 아마 이것이 여러분 나름의 경험을 통해 알게된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이해하기가 쉬우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삽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삽은 땅을 잘 팔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그 사람은 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덩이를 팔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럼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왜 계속 구덩이를 파십니까?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삽을 가지고 있어서요.
만약 인생의 방향을 잘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삽이 있기 때문에 구덩이를 파는 사람과 다를바 없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까 그 사람이 삽을 가지고 있지만, 구덩이을 파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고 생각합시다.
아까와 똑같이 구덩이를 팔 것입니다. 그래도 좀 전 보다는 많이 즐거운 구덩이 파기가 되기는 할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무엇이 남게 되겠습니까?
즐겁게 구덩이를 판 시간과, 잘 판 구덩이만 남을 것입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자신을 위해서 살아온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인생인 것이죠.
이런 인생을 뭐라고 하느냐, 삽질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무리 재능이 있는 일도 더 잘해지지 않는 정체기가 찾아오기도 하고, 좋아하던 일도 더 잘해내기 위해 괴로울 때까지 해야하는 순간들은 늘 찾아옵니다.
더 이상 열정이 생기지 않는 그 때 던져지는 질문,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을까? 앞으로 내가 달려가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전에 던져져야했을 인생의 목적에 대한 질문이 비로소 던져지는 순간입니다.
이에 대한 답을 우리는 ‘부르심’, ‘소명’이라고 부릅니다.
느헤미야의 부르심
느헤미야의 부르심
오늘 말씀에서 느헤미야가 맞이한 사건이 바로 이러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전까지의 느헤미야의 삶
이전까지 느헤미야의 인생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포로의 신분이었으나, 왕에게 인정받는 관리였습니다.
특별히 포로국 출신의 관리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성공이었습니다.
술관원이란 왕이 직접 마실 술을 관리하는 사람인데, 마음만 먹으면 왕을 독살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포로 출신의 신하에게 그것을 맡긴다? 사실상 왕이 목숨을 느헤미야에게 맡겼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느헤미야가 맡겨진 일을 잘했고, 또 사명감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으리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하나니의 방문
그런데 어느날 그의 형제 하나니가 그를 찾아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려줍니다.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아멘)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벽과 성문은 불에 타 무너졌습니다.
나라를 지킬 성벽이 무너지자 이웃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약탈하고 능욕 당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모습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4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아멘)
느헤미야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슬픔, 분노, 애통, 절망, 괴로움.
가장 잘하는 길에서 인정받으며 성공의 길을 걷고 있던 느헤미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쁘지 않은 만족한 삶을 살아가던 느헤미야는 이제 더 이상 없었습니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궁을 떠나 하루 빨리 그들 곁으로 가길 원하는 느헤미야,
좋아하던 일을 하면서도 왕 앞에서 조차 수심을 감추지 못하는 느헤미야만 남아있습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좋아하고 잘하던 그 일을 떠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결단합니다.
느헤미야를 움직인 것은 우리가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말하는 즐거움, 만족이 아닌 사랑하는 동포들을 향한 애통함과 안타까움이라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감정들었습니다.
이러한 감정들 또한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되었으며, 특별히 타락한 세상, 훼손되고 망가진 인간 세상에 대한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바로 ‘긍휼’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긍휼의 마음을 외면한다면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중요한 것은 내 손에 든 것이 삽인지 칼인지 상관없이 손을 뻗어 그를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내 손에 삽이 있다고 불쌍한 사람이 결국 죽어 무덤이 필요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고 지나치겠습니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긍휼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이스라엘의 환난을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했던 하나니는 그 곳을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니를 통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안락함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긍휼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외세의 공격에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헤미야와 함께 불과 52일만에 성벽을 완공했습니다.
이 놀랍도록 위대한 회복이 하나님이 주신 긍휼에 반응한 느헤미야를 통해 일어난 것입니다.
긍휼의 끝
긍휼의 끝
언젠가 긍휼의 마음도 끝이 찾아옵니다.
긍휼이 끝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인데, 그 중 첫 번째는 변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는 번아웃입니다.
누군가는 너희가 뭔데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냐며, 동정하지 말라고 질타할 것이고,
열심히 섬기고 도와도 다시 죄로 돌아갔던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소명의 의미보다 성과와 실적을 물으며 비웃을 것입니다.
그 때 찾아오는 번아웃.
그러나 여러분 괜찮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어갈 안식일과 안식년을 주셨고, 엘리야에게 로뎀나무를 주셨습니다.
긍휼은 우리의 지침으로 잠시 멈추더라도, 우리가 성령 안에 있을 때 결국 다시 작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긍휼이 끝나게 되는 두 번째 이유, 긍휼은 마침내 긍휼의 대상이 회복이 되며 마침내, 비로소, 결국엔 기쁨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 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마침내 성벽은 완성될 것이며, 마침내 눈물로 씨를 뿌린 자들이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십자가 끝에 마침내 ‘다 이루었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의 끝에서 마침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쫓다가 마침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던 솔로몬의 고백이 아닌, 예수님의 고백, 바울의 고백이 마침내 우리의 고백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긍휼
우리의 긍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긍휼은 무엇입니까?
손에 쥐고 있는 능력이 아닌, 좋아하는 사역이 아닌, 세상을 향한 애통이 향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곳으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세상의 구석 어딘가에서 숨어서 하나님은 없다,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없다고 외치며 울고 있던 스무살의 송정민과 같은 청년들에 대한 깊은 슬픔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제가 일일이 찾아다닐 수 없기에 그 옆에서 결코 아니라고 말해줄 청년 그리스도인들을 그들에게 보내기 위해 잘하던 것, 좋아하던 것이 아닌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선교단체 간사의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너무도 감사한 것은, 긍휼을 쫓아온 바로 그곳에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이 필요했고, 변화되는 청년들을 보며 이 일을 내가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 모든 성도님들의 사역과 삶 가운데 마침내 찾아오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감격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