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자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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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오늘은 야고보서 네 번째 시간이죠.
오늘은 말씀에 앞서서, 여러분께 예화 하나를 들려 드리며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느 높은 언덕 위에…..오랜 세월 동안 꼿꼿하게 서 있는 참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덕 아래에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가 있었죠.
어느 날, 이 참나무가 갈대를 내려다 보면서, 이렇게 자랑을 했습니다.
"갈대야, 너는 참 가련하구나. 바람만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고 꺾일까 봐 안쓰럽다. 나를 한 번 봐라….나의 이 단단한 몸통과 우뚝 솟은 가지를 보란 말이다. 나는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끄떡 없단다. 봐라, 나는 이렇게 굳건하게 서 있지."
참나무의 우쭐대는 자랑이 끝나자…갈대는 조용히 이렇게 대답을 했죠.
"네, 참나무님은 정말 강하시네요. 참나무님에 비하면 저는 정말….너무나 연약한 존재가 아닐 수 없네요. 그래서, 바람이 불 때면….그저 몸을 낮추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답니다."
갈대의 대답을 듣고는, 참나무는 더욱 우쭐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참나무가 실컷 자랑질을 했던 그날 밤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거죠.
참나무는 폭풍이 몰아치자….자신이 말했던 대로….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폭풍에 맞서 더욱 굳건히 버티려 했습니다.
그러나 폭풍의 힘은 참나무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죠.
결국 참나무는 폭풍에 맞서 버티다가….뿌리째 뽑혀 땅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갈대는 폭풍이 불어오자, 자신의 몸을 최대한 낮추고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갈대는 폭풍이 잦아든 후 다시 천천히 일어섰죠.
비록 몸은 흔들렸지만, 갈대는 부러지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야고보서의 주제가 자랑에 관한 것인데요…..
방금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참나무의 자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참나무의 자랑은 어떤 자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헛된 자랑이라 할 수 있죠.
참나무의 자랑은 처음에는 갈대가 감히 넘 볼수 없고, 다다를 수 없는 근사한 자랑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랑의 결말을 보면 어떻습니까?
그 자랑은, 갈대 보다 못한 결말을 맞이하죠…..그것은 자기 도취에 빠진 헛된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이런 자기 도취에 빠진 헛된 자랑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의 재물과 명예, 자신이 소유한 것과 자신이 쌓아 온 업적에 도취되어 하는 자랑들이죠.
특별히, 이런 자랑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 있죠.
참나무가 갈대에게 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깔본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자랑을 비난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랑이 나쁘니까 하지 말라는 예화가 아닙니다.
자랑을 하되, 자랑을 잘 하라는 예홥니다.
참나무처럼, 자기 도취에 빠진 헛된 자랑, 남을 깔보기 위한 자랑을 하지 말고,
오히려 갈대처럼,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랑을 하라는 겁니다.
갈대는 자신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참나무는 폭풍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에 대해 착각했지만요, 갈대는 자신이 바람 앞에 얼마나 연약한지를 잘 알고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랑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이었죠.
오늘 야고보서가 말하는 자랑도 그와 동일한 맥락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헛된 자랑을 하지 말고 자랑을 잘 하라는 겁니다.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랑을 하라는 겁니다.
가난한 자의 자랑
가난한 자의 자랑
오늘 말씀에서, 야고보는 특별히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조하면서 자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한 부류는 낮은 형제이고, 또 한 부류는 부한 자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이 두 부류는요…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대조를 이루는 두 부류를 말합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들의 위치가 대조를 이루는 두 부륩니다.
한 쪽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낮은 자들, 곧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입니다.
다른 한 쪽은 반대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부한 자들, 곧 부자들입니다.
야고보는 그 당시, 부자와 가난한 자를 대조하면서, 그들이 해야 할 마땅한 자랑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가난한 자들에게 하는 권면을 보겠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야고보는 그들에게 어떤 자랑을 하라고 합니까?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이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가난한 자들이 세상에서 높임을 받습니까?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보고, 존경하고, 부러워합니까?
아니죠?
가난한 자들은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외면 당하고, 멸시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야고보가 하는 말이 역설적입니다.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랍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세상에서는 가장 낮은 곳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라니요?
여러분….야고보의 이 말에는 사실….중요한 전제가 하나 깔려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여져야 한다는 전제죠.
왜냐면, 그 높음이 육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영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의 눈으로는 이 땅에서의 가난한 현실만을 보지만요.
영의 눈으로는 내게 주어진 새로운 신분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떤 신분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죠.
여러분, 이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 신분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받는 신분입니다.
야고보는 바로 이 것을 자랑하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요즘 시대의 가난은 야고보 시대의 가난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야고보 시대에는 절대적인 빈곤이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상대적인 빈곤이 있습니다.
상대적인 빈곤이 무엇입니까?
먹을 게 없는 빈곤이 아니라, 먹을 게 있어도, 남들처럼 못 먹는 빈곤입니다.
월세 50만원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월세 100만원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보며 빈곤을 느낍니다.
5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10억짜리 아파트 가진 사람을 보며 빈곤을 느낍니다.
특히, 요즘 청년 세대는…상대적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평생 모아도, 가질 수 없는 집, 가질 수 없는 직장을 보면서,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죠.
크리스챤이라고 해서 다를까요?
뭐…다른 사람들도 있지만…. 다르지 않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에 시달립니다.
이들이 다름아닌, 야고보가 말하는 가난한 자들이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 땅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영적인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현실을 보며 박탈감에 사로잡혀 살게 아니라,
자신이 누구보다 고귀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그것을 자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나 이런 상대적 빈곤이나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눈을 하늘의 가치로 향하시길 바랍니다.
또,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영적인 눈이 뜨여지기를 기도하십시오.
지난 시간에 배웠죠?
무엇을 구해야 한다고요?
지혜를 구해야 한다고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늘의 지혜가 열리면요, 그들은 자신을 영적으로 바로 보게 됩니다.
세상의 가치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가치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의 자랑이 바뀌게 되죠.
세상에서 소유하고 성취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소유하고 성취한 것을 자랑하게 되는 겁니다.
야고보의 두 번째 권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권면은 부자들에게 하는 권면입니다.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야고보는 첫 번째 권면에서 가난한 자에게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자에게도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부자가 세상에서 낮은 위치에 있습니까?
아니죠?
부자는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데, 그들에게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이것 역시, 영적인 눈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세상에서 부러움을 사고, 우러러 보게 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그들도 낮고 낮은 죄인에 불과한 존재들이죠.
자신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한낱 죄인에 불과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러면, 그들의 영적인 눈이 뜨여져야만 하죠.
여러분,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 주님을 찾게 되지 않습니까?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오늘 말씀은 비단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죠.
특별히 부자와 가난한 자를 예로 든 것은 … 그 당시도 그랬지만,
세상에서는 물질이 우리의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우리 눈을 가려서, 정작 봐야할 것을 못 보게 하고, 정작 자랑할 것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죠.
오늘, 야고보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자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함 갈 6:14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늘의 가치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릴 보시는 가치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개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하지만, 교회 공동체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아니, 교회 공동체 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세상에서 속하는 모든 공동체에서도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모임, 어떤 단체에 속해 있든지….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에서 적용해야만 합니다.
자랑은 결국….우리의 주어가 바뀌어야 합니다.
나라는 주어에서 주님이 주어가 되는….
주님이 하셨습니다!
요즘…유투브를 보면요… 많은 영상 중에 국뽕에 관한 영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인이란게 자랑스럽죠…
그런데…여러분…..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란게 자랑스러우십니까?
능곡명성교회 교인이란 것이 자랑스럽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