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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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빌립보서 1:1-11(신약 318쪽)
설교제목: 고난 중에도 감사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빌립보서는 함께 읽은 성경구절 1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요.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쓴 다른 편지들과 다르게 특징적인 것이 있는데요. 편지를 보내는 사람으로 바울뿐만 아니라 디모데를 추가하고 있어요. 이는 이 편지가 바울의 사사로은 생각을 담은 편지가 아니라, 바울과 디모데라는 교회의 지도자들의 생각 곧 교회의 목소리를 담은 공적인 이야기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편지를 받는 이에 ‘모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모든 이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는 특별한 것인데요. 이는 빌립보 교회에 있는 분열에 관해 암시해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관심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빌립보서는 바울의 다른 편지들과는 다른 어떤 위기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사실 이 편지를 쓸 당시에 7절에도 나오지만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를 대표하여 바울에게 찾아온 에바브로디가 큰 병에 들었습니다. 훗날 회복되어 바울이 쓴 빌립보서를 들고 빌립보 교회로 가는데요. 편지가 전해지기 전까지는 여러 안 좋은 소식들이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을 흔들 수 밖에 없었는데요. 바울은 이들의 믿음을 붙잡고자 편지의 시작부터 평소와는 다른 권위나 강조 등을 통해서 보다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요. 3절과 4절을 통해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태인데요. 자칫하면 바울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요. 이제 막 복음이 전해져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그 뿌리가 흔들리거나 위태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쁨으로 간구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처한 상황과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놓고 보면, 기뻐할 일은 전혀 없는데요. 그럼에도 바울은 감사와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통해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는데요. 하나는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참여하다는 것은요. 빌립보 교회가 재정적인 후원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위한 바울의 행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지지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다른 하나는 빌립보 교회를 세우시고 그들이 바울의 복음전파 사역에 참여하게 하신 이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마치신다는 뜻이고요. 쉽게 말하면, 바울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으면서도 감사와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과 11절을 통해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결국 선을 분별하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될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흔히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이는 빌립보서에서 ‘기쁨’이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울이 처한 상황은 사실은 그렇게 기뻐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혔고 언제 죽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요. 그로 인해서 바울의 복음전파에 힘써 돕던 빌립보 교회는 큰 시험에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바울이 죽음보다 더 두려웠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목숨을 내걸고 했던 복음전파의 결과가 허망하게도 사라질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요. 바울은 그 상황 속에서도 기쁨 또는 감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것은 바울의 믿음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된 일이기에 주께서 끝마치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고난이나 어려움이 복음전파에 혹은 그에 따른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 다음 이어지는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이 오히려 복음전파에 진전을 이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을 갖고 있음을 말해주는데요. 달리 보자면, 이와 같은 믿음이 우리의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제 시편을 통해서 찬송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도 나눴는데요. 우리가 기쁘고 좋을 때는 찬송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지만요. 반대의 경우에는 그것이 어렵다는 얘기를 하면서요. 시편의 시인은 고난중에도 찬송을 하는데, 이에 관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믿음이 결국 우리 삶의 모든 형편에서 찬송을 가능하게 함을 이야기했는데요. 오늘 사도 바울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또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는 위기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현재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지만, 과거부터 여러 교육부서를 담당해 보았는데요. 어린이부터 청소년 그리고 현재 청년부에 이르는 어찌보면 유치부를 제외한 모든 교육부서를 담당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그 교육부서들을 거쳐오면서 그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제가 좀더 능력이 좋아서 맡은 교육부서를 더 잘 섬길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하는 고민이요. 왠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처음에 가졌던 열정에 비해서 성장은 더디하거나 어떨때는 정체된 느낌을 받게되는 순간들을 마주하면서요. 참 훌륭하지 못한 교역자를 만나서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청년들이 고생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 한편으론 나름 최선을 다해 맡은 교육부서를 위해 봉사했는데, 그것이 내 기대에 충분히 닿지 않으니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교회를 거쳐오면서 처음의 열정이 몇 년이 경과하면서 사그러지거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와는 다르게 생각하며 사역에 임하는데요.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어쩌면, 제가 어리석게도 그 자리를 주제넘게 넘보거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자리에 앉았던 것은 아닌지를 반성해보게 되었는데요. 그것은 제 역할이 아님을 깨닫고요. 맡겨진 사역에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에 관해서는 욕심내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지만, 이를 자라고 열매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바울의 마음 또는 믿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바울 저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이라서 제가 감히 견줄 수 없지만요. 바울이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감사와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요. 어쩌면, 저와 같이 하나님이 이루시고 행하실 일을 믿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최선을 다해 행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오늘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음으로 그럴 수 있었는데요. 오늘 우리는 어떠신가요?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확고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지요? 쉽지 않은 일일겁니다. 제가 아까 요사이는 사역에 임하면서 저는 씨만 뿌리고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분께 맡겨드린다고 했지만요. 과거의 습성이 남아서 자주 왜 씨앗이 싹트지 않는지를 고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어쩌면 사도 바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어떤 훌륭한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믿음은 계속해서 상승하지 않고 나선형으로 자라간다고요.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을 처음으로 믿고 그분께서 주신 은혜 아래 살 때, 우리의 믿음은 급격히 자라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믿음이 이전보다 못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통은 그렇게 믿음이 떨어지면서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생겨나곤 하지만요. 이 구간을 잘 보내고 나면 이전보다 더 커진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경과하면서 믿음은 계속 도전받고 떨어졌다 자라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선형을 그리며 점점 커져가게 된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맞는 것 같아요. 위기의 순간들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더 깊어지고 더 강해지기 마련이니까요.
바라건대, 저는 오늘 우리가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어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때론 시련을 주지만 끝까지 인내하고 겸딤으로써 더욱더 큰 믿음으로 성장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