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바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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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목숨 바친 사랑
제목: 목숨 바친 사랑
본문: 요한복음 10장 11-18절
본문: 요한복음 10장 11-18절
찬송: 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찬송: 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증명될까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병간호를 하고, 자신은 굶어도 자식 먹을 것은 챙기며, 위험에 빠진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습니다.
소방관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이 난 현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구해냅니다. 자신도 다칠 수 있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합니다.
지난주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생명의 문을 열어주시는 분임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그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 보이셨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선한 목자 vs 삯꾼
선한 목자 vs 삯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1-13절)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두 종류의 사람을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11a절) - 이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중요한 자기 선언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선한'이라는 말은 단순히 '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완전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1b절) - 이것이 선한 목자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자기 희생적 사랑입니다.
실제로 목자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양들을 지키기 위해 밤새 깨어있고, 이리나 도둑으로부터 양떼를 보호하며,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습니다. 다윗이 어린 시절 양떼를 지키기 위해 곰과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목숨을 걸서라도 사나운 맹수들로부터 양떼를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희생은 그 어떤 목자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반면에 삯꾼은 어떻습니까? 삯꾼은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애정이 없습니다.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12b절) - 위험이 닥쳤을 때 삯꾼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안전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삯꾼이 도망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진정으로 양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어떤 사랑을 받고 있습니까?
세상에는 조건부 사랑들이 많습니다. 잘할 때만 사랑하고, 유익할 때만 돌봐주며, 위험하면 떠나버리는 사랑들입니다. 마치 삯꾼 같은 사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을 때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못했을 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에서 바울 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얻으려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목숨까지 버리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 아는 깊은 관계
서로 아는 깊은 관계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4-15절)
예수님은 다시 한 번 14a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시면서, 이번에는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14b절)라고 말씀하시며 목자와 양 사이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안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주님과 우리 관계 가운데 안다는 것 그저 한 사람의 이름만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관계 속에서 오는 친밀한 앎을 의미합니다.
저는 자녀들의 발 걸음 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압니다.
마찬가지로 목자는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개별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양이 겁이 많은지, 어떤 양이 자주 길을 잃는지, 어떤 양이 몸이 약한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양의 특성에 맞게 돌봐줄 수 있습니다.
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의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고, 목자의 음성을 듣자마자 안심하며 목자를 신뢰하고 따라갑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그렇게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도, 두려움도, 실패도 다 아시면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가 스스로도 잘 모르는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다 아시고 이해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을 알아갑니다. 처음에는 이름만 아는 정도였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성품과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말씀을 읽을 때,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점점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15a절)- 예수님은 놀라운 비교를 하십니다. 우리와 예수님 사이의 관계를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의 관계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완전한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요 17:24)라고 기도하셨을 정도로 영원 전부터의 완전한 사랑 관계 안에 계셨습니다. 서로를 완전히 알고, 완전히 사랑하며, 완전히 하나가 되어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수준의 친밀함을 우리와도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를 단순한 피조물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친밀한 관계로 초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로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님은 이 관계를 위해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17b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18a절)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인 희생이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못을 박고, 바리새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꺼이 선택하신 희생이었습니다.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18b절)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생명에 대한 완전한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죽음도 이기시고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사랑이 진짜라는 증명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냥 죽으시기만 했다면, 훌륭한 종교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향한 사랑이 진짜임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 주시고 돌봐주고 계십니다. 죽음도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와 주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한 목자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목숨까지 바치신 선한 목자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부모가 위험에 빠진 자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듯이, 소방관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생명을 구하듯이, 예수님은 죄로 멸망해 가는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과도 다릅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만 사랑하고, 소방관도 자기가 구할 수 있는 사람만 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 된 우리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 가운데 살 때에도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이것이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선한 목자만의 사랑입니다. 삯꾼들은 위험하면 도망가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심으로 이 사랑이 진짜임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름을 불러 사랑해 주고 계십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 사랑 앞에 무릎 꿇고 감사하며,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도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랑을 받은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사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못에 박힌 손과 발에서 피가 흘러내려도, 가시관이 머리를 찔러도, 그 고통 중에도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만 가득하셨던 주님...
주님, 이런 사랑이 세상에 있을 줄 몰랐습니다. 부모도 자기 자식만 사랑하고, 소방관도 구할 수 있는 사람만 구하는데, 원수 같던 우리까지 목숨 바쳐 사랑해 주시다니...
우리가 주님을 멀리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가 죄 가운데 살고 있을 때에도, 먼저 찾아와 주시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셨다는 그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주님, 저희는 정말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 드릴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저희를 위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랑을 주셨다니...
이 놀라운 사랑 앞에서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무릎 꿇고 감사할 뿐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말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주님, 받은 사랑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세상 살아가다 보면 이 감격이 흐려질 때가 있겠지만, 십자가의 그 사랑을 늘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웃을 볼 때마다 주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신 그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목숨까지 바치신 사랑을 받은 사람답게 살게 해주십시오.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 모두가 선한 목자의 사랑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그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해주십시오.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랑으로 저희를 사랑해 주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