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제4장.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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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야 할 목소리

말씀에 귀 기울이는 예배입니까?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예레미야 7장 23절 말씀 아멘 청년들을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열심으로 이름난 형제가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눈길을 끈 것은 이 친구의 기이한 예배 태도였습니다. 그 형제는 찬양을 좋아하고 악기도 잘 다루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자주 찬양 인도자로 섰습니다. 찬양을 부르다가 종종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설교 시간에는 언제나 졸았습니다.거의 잠을 자다시피 설교 시간을 보내고서는 주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자 라고 제의하는 기도 시간에는 큰 목소리를 기도하곤 했습니다. 뜨거워지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신앙생활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머리가 혼탁한 사람의 뜨거운 가슴은 거의 가치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성숙한 견고함과 연단된 꿋꿋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삶
예레미야 7장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에 관해 말해줍니다.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사람과 짐승과 나무와 땅의 소산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들이 드리는 제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 재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제물에 대하여 관심이 없으셨습니다.예레미야 7장 21절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희생 제물 위에다 번재물을 올려놓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위해 제사를 드린다고 하지만 나는 너희들이 지내는 제사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바친 제물은 너희나 먹어라 이것은 예배자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배 드리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다면 이런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일 때 참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고 살기 위해 예배하는 사람들이다.교회에 나올 때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배 드리러 나오면서 한 주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참회가 있습니까?
삶을 돌아보라
젊은 시절 18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설교가 조지 휘필드의 생애를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초인적인 수고 속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을 소진하는 극심한 수고 속에서도 매일 15개 항목에 걸쳐 자신의 삶을 점검했다는 것입니다.조지휘필드의 개인 기도에 열렬하였는가 2 작정해 놓은 기도 시간에 기도하였는가 3 매 시간 부르짖었는가 4 자신이 행하려는 것이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 돌릴지 심사숙고하였는가 기쁜 일이 있을 때 즉시 하나님께 감사하였는가 이유 하루의 일과를 미리 계획하는 일을 잊지 않고 했는가 7 모든 일에 순수하였고 또한 반성해 보았는가 선한 일들을 감당하거나 행할 때 뜨거운 열심이 있었는가 구 말하거나 행함에 있어 온유하고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였는가 십 교만하거나 허탄하게 굴거나 참지 못하거나 투기하지는 않았는가 10일 먹고 마실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가 또 잠자는 일에 절제가 있었는가 윌리엄 로우의 규칙을 따라 감사하는 일에 시간을 들였는가 13 연구하는 일에 부지런하였는가 14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불친절하게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는가 15 나의 모든 죄를 고백하였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있습니까?요즘 성경 어느 부분을 읽고 있습니까? 거기서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진리를 깨닫고 죄를 이웃 진행 회계가 있습니까? 말씀 속에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교육의 유익함 유익을 찾았습니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 이 예배는 자기 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예배를 값싼 은혜의 도구로 여기는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순서에 따라 예배해야 하는지를 묻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무 날 무슨 순서로 예배하든지 너희 마음대로 해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오 주요 예배의 정신을 따라 살아온 사람들의 예배입니다. 그런 삶을 살지 못했어도 회개하는 사람의 예배도 받으십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에 뉘우치는 사람들의 예배를 받으십니다.감격이 있는 예배에는 자기 죄를 확신하는 예배자들의 예배자들이 있었습니다. 죄를 확신할수록 그들은 예수군소를 더욱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실패한 삶을 살았기에 더욱 주님을 찾았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갈망하였습니다. 예배를 통해 사제의 은총이 얼마나 큰 위로와 행복인지 알았습니다. 영혼의 안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배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삶의 정신으로 예배하였습니다. 주인임을 자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배신당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말씀을 깨닫고 싶어서 얼마나 강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만나기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습니까? 봄에 내리는 단비는 얼마나 복된 비입니까? 비가 없으면 봄이 되어도 새싹이 돋울 수 없습니다. 나뭇가지에 물 오를 수도 없고 아름다운 잎사귀를 피어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나무는 내리는 담비로 싹이 나고 푸른 빛을 더해 가지만 죽은 나무는 그 빛 때문에 더 빨리 썩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는 봄비와 같습니다. 예배자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예배 속에서 영원히 소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마음이 더욱 굳어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
하나님은 예배 형식보다 예배자의 중심을 중요하게 보십니다.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경위하는 마음 없이 제사를 드렸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예레미야 선제자의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국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범죄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아멘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물이 아쉬워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 뜻대로 살게 하려고 구원하셨습니다. 실제로 제사에 관한 규례는 출애급 사건이 있고 난 후에야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은 번제나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습니다.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이것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사건을 회상하게 합니다. 외국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시내 판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산에서 머물면서 애굽의 모든 구습을 떨쳐버려야 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보여주는 율법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막과 제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성막이나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들어라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라는 것은 예배자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일은 너무 중요합니다. 참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 있게 진리를 선포하는 설교자와 그 말씀을 받고자 하는 예배자 그리고 그들의 만남을 복 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가 끝난 후 질문을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씩 나와서 토론하고 다수결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만 설교하고 많은 사람이 앉아 설교를 듣는 예배 형식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어느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와 전도사가 언쟁을 했습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예배에서 중요한 순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서가 설교냐 찬양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가대 지휘자는 설교보다는 찬양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도사는 찬양보다는 설교가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논쟁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설교를 무엇으로 생각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만약 찬양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노래라고 정의하고 설교는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연설이라고 생각하면 성가대 지휘자의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이 같은 논리는 뒤집힙니다. 왜냐하면, 찬양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설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이 요구하는 유일한 오직 유일한 여호아이시니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선지자의 음성을 듣지 않은 것이 곧 당신의 말씀을 거절한 것이라고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라지자 그들은 마지못해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최대 관심사는 삶이어야 하고 삶을 살아갈 때 최대 관심사는 예배여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는 것도 결국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잘 살려고 애쓰는 것도 결국 잘 예배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설 때마다 결단해야 합니다. 예배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 뜻대로 살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졸고 있습니까?
오늘날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욕입니다. 이렇게 드리는 이 예배는 믿음으로 드리는 이 예배가 아닙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기에 너무 피곤하면 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면 이것은 단순히 육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의 문제입니다. 그런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 청교도들은 예배 시간에 조는 자들을 깨우는 사람을 배치했습니다. 작은 나무공을 매단 긴 막대기로 예배자 사이를 오가며 조는 사람들을 툭툭 쳐서 깨웠습니다. 그때도 예배 시간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나 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대신 졸음을 벗 삼아 드리는 이 예배를 하나님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토마스 왓슨은 말했습니다.말씀을 들을 때 졸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배 시간에 조는 것은 대단히 불경한 일이다. 세상에서 살 때에는 그렇게도 생기발랄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는 어떻게 졸 수 있는가 예배 시간에 조는 태도는 매우 죄된 것이다.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에 우리는 생명의 양식을 얻게 된다. 음식을 앞에 둔 사람이 잠들 수 있는가 어느 기도원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성도가 제게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남루한 옷에 털모자를 쓴 그는 병색이 깊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오래전 제가 말씀을 전하던 예배 공동체에서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자기의 처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병원에서도 손 쓸 수 없는 병세였고 그래서 죽음을 앞두고 기도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의 영혼의 권고와 육신의 질병을 보며 저의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오랜 생활을 함께 예배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축복해 주시는 예배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매주 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놀라운 은혜의 대에 거의 예배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가 예배 시간에 졸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렇게 예배하는 동안 그는 자신을 향해 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살아날 기회를 잃었습니다. 불과 몇 주 후 결국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졸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토요일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그날은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푹 쉬십시오.집중된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예배에 나올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다 하십시오. 진리를 깨닫는 예배의 감격을 위해서는 이런 준비가 필수적입니다. 언젠가 조지 휘필드가 설교를 할 때에 한 사람이 강단 앞에서 열심히 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조지 히필드는 즉시 설교를 멈추었습니다. 이거는 진지한 표정과 음성으로 이렇게 책망하였습니다. 만약 내가 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하러 온 것이라면 두 팔은 무릎을 무릎에 대고 그리고 두 손은 머리를 괴고 쉬거나 잠들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이름으로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만군의 주의 이름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말씀이 들리도록 해야겠고 또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말씀을 기억하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최상의 육체와 최적의 마음 그리고 최고의 정신을 예배에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졸지 않고 깨어만 있다고 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예배를 마치고 흩어지는 사람들을 교회 앞 골목에서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오늘 설교가 어땠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세 가지 중 하나로 답할 것입니다. 은혜로웠습니다. 괜찮았습니다. 지루했습니다. 그 이상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방금 예배 드리고 나온 사람들 중 절반은 설교 본문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만나는 감격을 누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오늘 교회에서 강의하던 때 일입니다. 맨 앞에 앉은 교인들에게 지난 주일 낮 예배 설교에 관해 질문하였습니다.앞줄에 앉은 10여 명의 교인들 중 단 한 사람만이 지난 주일에 들은 설교의 제목과 성경 본문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대부분 허공을 응시하며 마치 가방 싼 채 종래를 종래가 마치기를 기다리는 중고등학생들처럼 앉아 있지 않았을까요? 설교를 듣고 나서는 오직 예화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 법무가 메시지는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나중에 교인들의 마음속에 남은 것이 예화 밖에 없다면 그것은 설교를 잘 못 들은 것입니다. 말씀은 예배자들의 영혼과 골수를 찔러 전해져야 합니다. 설교가 강연과 같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왓슨은 말했습니다.차려진 음식보다 함께 나온 그릇 장식을 더 기뻐하는 것은 영적으로 줄인 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표시다 이런 자들은 설교를 들을 때에 설교가 전달하고자 하는 진중한 내용보다는 얼마나 고상하게 표현하는지 얼마나 세련된 느낌으로 전달하는지에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리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이미 자기가 듣고 싶은 말씀을 정해놓고,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자는 자기가 듣기 좋아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야겠다는 갈망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예배의 자세가 필요합니다.하나님 무엇이든지 말씀하시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선도들에게는 핑계거리가 있습니다. 설교자의 인격적인 흠입니다. 그것을 별미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설교자들은 말씀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매우 특별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특히 신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만 영광 돌릴 뿐 아니라 모든 사람 앞에서도 잘 살아야 합니다. 순종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빌미는 설교자의 인격적인 흠입니다. 그것들이 발견될 때 그들은 이때다 하고 떠벌립니다. 세상에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그 사람에게 너무 실망했어. 여태껏 은혜 받은 거 다 헛것이었어 나는 이제 그 사람의 설교는 듣지 않을 거야.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은 설교자가 아니라 설교의 내용입니다. 물론 설교의 내용이 순진한 말씀이고 설교자가 흠없이 정결한 삶을 살고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말씀으로 만들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이 아닌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듣지 말아야 하고 말씀이라면 들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일제 강점이 끝나고 해방되었을 때 일입니다. 교회가 커다란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세례의 유효성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왕실의 조상신인 천조대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미소기에 하라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천조 대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심사 참배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강요되었습니다.문제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온 목회자가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미소기 하라위를 받았다면 이전에 그가 준 세례가 유효하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쪽에서는 그가 배교했기 때문에 그가 베푼 세례의 행위는 모두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일은 교회사에서 때때로 있었습니다. 배교한 사람들의 성직 임명 행위나 세례 행위가 유효한가 그들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모든 설교자가 흠없는 인격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들은 설교나 이미 받은 세례가 유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나 실망 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야 할 의무를 면제시켜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예배 정신이 아닙니다.어떤 상황이든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 정신입니다.

맺음 말

맺음말 하나님이 깨닫는 것을 예배의 중심에 두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배를 통해 무엇을 들으셨습니까? 설교를 통해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이제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유이고 예배하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십시오. 순종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예배 정신은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통해서 예배에 감격이 있습니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당신의 태도는 어떻습니까?정말 거룩한 감화를 사모하는 예배자의 마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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