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31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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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ekiel 24:15–27 NKRV
1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6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17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18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19 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너는 우리에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1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 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22 너희가 에스겔이 행한 바와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지 아니하며 사람의 음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23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로 두고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 패망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 24 이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니 그가 행한 대로 너희가 다 행할지라 이 일이 이루어지면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25 인자야 내가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이 기뻐하는 것과 그 마음이 간절하게 생각하는 자녀를 데려가는 날 26 곧 그 날에 도피한 자가 네게 나와서 네 귀에 그 일을 들려 주지 아니하겠느냐 27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16절 네 눈에 기뻐하는 것 : 에스겔의 눈의 욕망의 대상, 사랑 또는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곳 에스겔의 아내를 지칭한다. 당시 에스겔의 나이는 34살 이다.
아내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그 슬픔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가혹한 명령을 듣는다. 16절 과 17절에서 절대 금지의 의미를 강조하는 ‘로’가 이끄는 금지 어구가 6번이나 사용되어 에스겔의 슬픔의 표현이 극단적으로 제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여기서 슬퍼하다로 번역된 원어의 의미는 “너무나도 크나큰 슬픔을 경험ㅎ나 사람이 그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머리카락을 뒤어뜯고 가슴을 치는 행위를 나타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17절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겪으면서도 고통스런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지 못하고 내적으로만 삼켜야 함을 의미한다.
입술을 가리지 말라는 것은 당시 문둥병자가 자신의 문둥변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알리는 때에, 또한 민족적 고난의 때에 취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아내의 죽음의 순간에 입을 가리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이역시도 아내가 죽은 처절한 슬픔을 맞이했으면서도 그 자신의 슬픔을 외부로 알리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은, 유가족을 위로하고 동정하는 표시로 사람들이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렇게까지 하라고 말씀하셨을까?
먼저는 이렇게까지해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길 원하셨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길 원하셨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신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본문 27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에스겔 24:27
Ezekiel 24:27 NKRV
27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는, 그가 사랑하는 에스겔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시면서까지 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알아 다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으신 것이다.
그래서 27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 날은 ‘예루살렘이 함락’한 날이다. 그 날에 하나님이 에스겔의 입을 열어 심판을 해석하게 하시고, 그때부터는 침묵이 아니라 회복과 소망을 끊임없이 선포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함께 나누고자 하는 메시지는 에스겔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것인가? 이다.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내가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뜻으로 인해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슬픔과 애통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것이 명령이었다. 어떻게 에스겔은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 있었느냐 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관계이다. 에스겔과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1 Corinthians 10:13 NKRV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시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편 103:13-14
Psalm 103:13–14 NKRV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에게 그 어려운 사명을 지어주신 것은 에스겔을 아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이와같은 어려운 사명을 맡기신 것은 에스겔의 능력을 보신 것이 아니다. “에스겔 너는 강하니깐 이정도쯤은 견뎌라” 하시면서 에스겔에게 사명을 맡기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의 힘을 본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은 에스겔과 맺은 관계를 보신 것이다.
다시말해 에스겔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말 했듯이 친밀한 관계의 기준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얼마만큼 알고 있느냐 이다. 그래서 흔히들 남들이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하거나, 남들이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할 때 친밀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에스겔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친밀함이 에스겔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먼저는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에스겔 1:1
Ezekiel 1:1 NKRV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에스겔은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찾아 오신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
Ezekiel 2:8–3:3 NKRV
8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하나님을 직접 만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두루마리를 먹게 하셨다. 두루마리를 먹은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었기에 에스겔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에스겔을 붙드셨다.
Ezekiel 2:2 NKRV
2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그러기에 에스겔의 순종은 에스겔의 강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붙드심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명령만 주신 것이 아니라, 감당할 힘도 공급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에스겔의 마음을 굳게 하셨다. 에스겔 3:8-9
Ezekiel 3:8–9 NKRV
8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네 이마를 굳게 하셨다는 말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대상 다시말해 완악하고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데 그들을 대하기에 부족함없이,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셨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에스겔의 순종은 하나님이 주신 담대함인 것이다. 겉으로 보면 에스겔의 능력이 훌륭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게 하신 것임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것은 우리가 얼마나 강한 능력이 있는지가 아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강한 사람이라 오늘 본문의 요구를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에스겔의 능력, 힘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 말씀을 먹은 사람,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그와 맺은 관계 안에서 이 메시지를 맡길 수 있다고 보신 것이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이 있다. 요셉의 삶은 너무나도 어려웠던 삶이다. 어떻게 요셉의 삶을 감히 우리가 살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39:2-3
Genesis 39:2–3 NKRV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늘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그의 주인은 보디발인데, 이방사람인 보디발이 어떻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는가? 요셉의 삶을 보고 알지 않았겠는가? 요셉은 그 안에서도 구별된 사람이었다. 마치 다니엘 처럼 말이다. 다니엘은 왕이 기도 금지령을 내린 것을 알면서도 하루 세번 그것도 분을 열어놓고 기도를 하였다. 그것은 삶으로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요셉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써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억울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팔아 넘긴 형들에게 복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것은 요셉은 하나님과 친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형들에게 이야기한다.
Genesis 45:5 NKRV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래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이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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