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에 앉으실 주님 2025 0902 겔21: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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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24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의 악이 기억을 되살리며 너희의 허물이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 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
25 너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마지막 때이니라
26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2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세상의 보좌들을 내려놓고 영원하고 참된 주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의 보좌에 모십시다.
서론: 흔들리는 보좌들
서론: 흔들리는 보좌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참 어렵습니다. 어제까지 존경받던 기업 총수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정치인이 신뢰를 잃고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심지어 우리가 믿고 따르던 공동체의 리더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지 않는 리더, 안정적인 권위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그 어떤 보좌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깊은 허무함과 절망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어디 세상 이야기뿐이겠습니까.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건강'이라는 나의 보좌. 내 미래를 책임져 줄 것 같았던 '안정된 직장'이라는 보좌. 내 행복의 근원이라 믿었던 '관계'와 '사랑'이라는 보좌. 그것들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경험을 할 때, 우리는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해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바로 이런 절망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이 담긴 에스겔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울부짖었습니다. '왜 우리가 여기까지 끌려와야 했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는가?'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망한 것은 내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너희의 죄가 내 영광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너희를 심판해야만 한다.
오늘 본문 21장은 바로 그 심판의 메시지가 절정에 이르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왕을 '심판의 칼'로 삼아 예루살렘을 향해 겨누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칼날의 최종 목적지는, 백성들의 마지막 희망, 마지막 보루였던 다윗 왕조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였습니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입니다. 마지막 보좌마저 무너지는 그 절망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놀라운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의 거짓된 보좌들을 무너뜨리시는지,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어떻게 참된 보좌의 주인을 세우시는지 함께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 삶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1. 무너지는 보좌: 관을 벗고 갓을 벗으라 (25-26절)
본론 1. 무너지는 보좌: 관을 벗고 갓을 벗으라 (25-26절)
먼저 25절과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 악하고 속된 자 이스라엘 왕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하나님께서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향해 명령하십니다. "관을 벗어라. 왕관을 내려놓아라."
여기서 '관'은 히브리어로 '아타라'인데, 왕의 정치적 권력을 상징합니다. '왕관'으로 번역된 단어는 '미츠네페트'로, 본래 대제사장이 쓰는 관, 즉 종교적 권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왕 한 사람의 폐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지탱하던 정치와 종교, 그 시스템 전체의 완전한 종말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요? 25절은 그를 "악하고 속된 자"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속되다'는 말의 원어는 '할랄'(חָלָל)인데, 이 단어는 '더럽혀졌다', '죽임 당했다'는 뜻을 가집니다.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왕의 직분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이집트를 의지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죽음과 파멸뿐이었습니다.
신학자 대니얼 블록은 이것이 단순히 정치적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신성모독'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여러분, 이 시드기야 왕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습니까?
우리 삶에도 스스로 씌워준 '관'과 '갓'이 있습니다.
"나는 명문대를 나왔어." 하는 학벌의 관.
"나는 이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사람이야." 하는 직위의 관.
"나에게는 이만한 재능이 있어." 하는 능력의 관.
우리는 그것들을 내 머리에 씌우고, 그것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으며 살아갑니다. 내 인생의 왕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들을 내려놓아라."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의 보좌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 삶을 흔드십니다. 내가 왕처럼 붙들고 있던 그것들을 무너뜨리십니다. 왜일까요? 우리를 벌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된 왕좌에서 내려와 참된 왕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왕처럼 붙들고 있는 '나의 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실 때, 순종할 용기가 있으십니까?
본론 2. 뒤집히는 보좌: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추리라 (26b-27a절)
본론 2. 뒤집히는 보좌: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추리라 (26b-27a절)
인간의 보좌가 무너지는 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전이 시작됩니다. 2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역설'입니다. 세상의 질서와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선언입니다.
이 '신적 전복(Divine Reversal)' 사상은 성경 전체를 흐르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슬퍼하던 한나가 기도 중에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7)
그리고 이 노래는 신약에서 한 어린 시골 처녀, 마리아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울려 퍼집니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눅 1:52)
세상은 우리에게 '높은 자'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정반대의 원리로 움직입니다. 스스로 낮아지는 자가 높아집니다. 섬기는 자가 위대해집니다. 바로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전을 어떻게 이루실까요? 27절의 표현은 정말 무섭고 충격적입니다.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엎드러뜨리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와'(עַוָּה)입니다. '폐허', '파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단어를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이것은 히브리 문학에서 완전하고, 철저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의미하는 최상급 표현입니다. "내가 완전히, 깡그리, 흔적도 없이 무너뜨려 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선포입니다. 무엇을요? 인간의 교만과 죄악으로 세워진 모든 거짓된 보좌들을 말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이 '아와, 아와, 아와'처럼,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고통의 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것 같아 절망스럽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 절망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역설의 현장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이 무너질 때, 비로소 하늘의 것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본론 3. 세워지는 보좌: 마땅히 얻을 그가 오시리라 (27b절)
본론 3. 세워지는 보좌: 마땅히 얻을 그가 오시리라 (27b절)
모든 것이 무너지고 엎드러지는 이 잿더미 속에서, 하나님은 마침내 한 줄기 빛나는 소망을 선포하십니다. 27절 하반절입니다.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마땅히 얻을 자'. 히브리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그에게 통치권(혹은 권리)이 있는 그 사람"입니다.
역사 속의 수많은 신학자들은 이 구절이 단순히 시드기야를 이을 다른 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보좌에 대한 합법적이고 영원한 권리를 가지신 분, 바로 온 인류가 기다려온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입니다.
인간 왕 시드기야의 보좌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는 영원히 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약속은 신약에서 그대로 성취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가장 높은 보좌의 주인이셨지만, 가장 낮은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가장 비천한 죄수의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가장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아와, 아와, 아와'.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에게 주셨습니다(빌 2:9-11, 마 28:18).
그분이야말로 무너진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마땅히 얻을 자'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을 두어야 할 곳은 흔들리는 세상의 보좌가 아닙니다. 바로 영원히 굳건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입니다.
내 삶의 주권을 그분께 내어드릴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안정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주님이 다스리시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결론: 당신의 보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결론: 당신의 보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에스겔 말씀을 통해 세 종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첫째,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 반드시 무너지는 인간의 보좌.
둘째, 세상의 가치를 전복시키는 하나님의 뒤집히는 보좌.
셋째, 모든 것을 회복하실 메시아의 영원히 세워지는 보좌.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 마음의 보좌에는 누가, 혹은 무엇이 앉아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성공입니까? 여러분의 재능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과의 관계입니까?
그것은 영원합니까? 아니면 언젠가 '아와, 아와, 아와'처럼 무너져 내릴 것들입니까?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앞에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그것은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삶에 오실 길을 예비하는 소리일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의 거짓된 관을 벗어버립시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우리 삶의 왕권을, '마땅히 얻을 자'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내어드립시다. 그분이 다스리실 때, 우리의 삶은 가장 안전하고 가장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참된 왕이신 주님, 세상의 헛된 보좌를 의지했던 저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삶의 주권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리오니,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려 주옵소서.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오직 주님의 나라와 그 보좌만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