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너머의 본질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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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0:7-11
“외모 너머의 본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2025. 9. 5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외모 너머의 본질”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무엇으로 사람을 분별하고 평가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슨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해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평가를 하죠. 사람의 외모. 이 외모는 단순히 그 사람의 생김새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잘생겼냐 못생겼냐. 예쁘냐 안 예쁘냐. 이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생김새와, 그 사람의 말솜씨와, 그 사람의 명성과, 그 사람의 사회적인 지위. 이러한 세상적인 모든 가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잘생기고, 말도 잘하고, 똑똑하고, 돈도 많고, 직장도 좋고. 그러면 그 사람은 높게 평가해요. 반대로, 얼굴도 못생기고, 말도 잘 못하고, 머리도 나쁘고, 돈도 없고, 직장도 변변찮으면 그 사람은 낮게 평가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평가기준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평가기준을 따라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이게 굉장히 심했어요. 특별히 헬라인들은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흠모했거든요. 그래서 철학자들도 체격이나 목소리가 약하면 제대로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데모스데네스’라고 하는 한 웅변가가 젊은 시절에는 체격도 빈약하고 목소리도 약해서 조롱을 많이 당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이 사람이 열심히 육체를 단련하고, 또 날마다 자갈을 물고 다니면서 발음 연습을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체격도 커지고 목소리도 크고 뚜렷해져서 유명한 웅변가가 됐습니다.
    이처럼, 헬라 사회에서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머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외적인 조건들이 받쳐줘야 돼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바울은 그 조건들이 미흡하죠. 바울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남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언변도 별로 좋지 않았어요. 밑에 10절에 보면, 바울의 대적자들이 이렇게 비난을 했거든요. 10절에 보니까,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이렇게 대놓고 비난을 할 정도로 바울이 언변이 약했습니다. 그러니까 헬라인들이 보기에는 바울이 열등한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어요. 이러한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바울은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를 해서는 안 되겠죠. 우리는 우리만의 평가기준이 있어요.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에 바울이 이렇게 책망을 해요. 7절 다같이 읽어볼까요? 7절 시작,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아멘.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이 말은 아예 외모를 보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외모도 물론 봐야죠. 만약에 제가 여기 단에 올라오면서 츄리닝게 쓰레빠 신고 올라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신경 쓰여서 설교가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우리가 외모도 당연히 중요하게 봐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외모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외모만 봐서는 안 돼요. 외모는 어떻게 보면 부수적인 거예요. 메인이 아닙니다. 여러분, 메인은 그 사람의 내면이에요. 
    예를 들어서 제가 츄리닝 입고 단에 올라와서 설교를 하는데, 복장은 불량해도 설교 내용이 좋다고 한다면, 이거는 그래도 용서가 되죠. ‘그래, 본질이 중요하지 비본질적인 것이 중요한가? 살짝 말을 해서 고치도록 하면 되지.’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옷은 단정하게 잘 차려입고 왔어요. 그런데 설교가 말씀은 없고, 30분 내내 드라마 얘기, 정치 얘기, 자녀 얘기, 순 이런 것만 하고 내려가면, 이것은 용서가 안 되죠. 당장에 데모 하고 난리가 날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본질을 바라봐야 합니다. 본질이 아닌 것은 이해하고 너그럽게 넘어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본질에 집중해야 돼요. 본질이 먼저고, 비본질은 뒤에 따라오는 겁니다. 
    바울이 지금 책망하는 게 이거예요. 고린도교회가 본질이 아니라 비본질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외모를 보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외모도 봐야죠. 그러나 외모에 앞서서 봐야할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8절에서 바울은 그것이 “주께서 주신 권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8절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아멘.
    주께서 바울에게 주신 권세가 있어요. 이 권세는 사도의 권셉니다. 누가 추천서를 써줘서 얻은 게 아니에요. 주님이 직접 바울을 지명하여 주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외모가 약해도 능히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겁니다. 
    외모까지 받쳐주면 좋겠지만, 그런 거 없으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외모로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사람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요. 내 능력으로는 택도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할 수 있게 하시니까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해요. 아까 10절 말씀에 봤지만, 사람들은 바울이 편지로는 힘이 있지만 면전에서는 약하다고 비난을 했어요. 이 말은 바울의 외모를 비난하는 말임과 동시에, 바울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진실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공격했어요. 
    바울은 이러한 공격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박을 합니다. 자, 오늘 본문 11절이 그 내용인데요. 1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아멘.
    이게 무슨 말입니까? 편지로 하는 말과, 함께 있을 때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말과 행동이 같다는 것이죠. “너희는 내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하는데, 다르지 않다. 말과 행동이 같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거야.” 이런 말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이에요. 물론 편지로 하는 말하고 실제로 대면했을 때 하는 행동이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바울이 편지로 하는 말과 만나서 하는 행동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따릅니다. 일관적으로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말을 하고 행동을 해요. 
    그 목적을 8절에서 말했죠.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바울은 오직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그의 말이 부드러울 때도 있고, 거칠 때도 있고. 또 그의 행동이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는 겁니다. 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세우기 위하여 바울은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그것을 세상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다보니까 오해를 하는 겁니다.
    만약에 교인들이 세상적인 기준이 아니라 바울의 내적인 본질과 그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놓고 평가했다면, 바울을 오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교회는 세상적인 기준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지,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은사를 사용하는지, 그 사람이 어떤 삶의 열매들을 맺어가는지, 이러한 본질적인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질을 따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외모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본질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고 진실된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최후에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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