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5장

이주혜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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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257장, 283장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레위기 5장이죠. 저희가 그동안 계속해서 1장부터 5장까지가 전부 제사에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전에는 성막(회막)을 지었고, 이제는 그 성막 안에서 드려지는 제사에 대해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먼저 아주 짧게 정리하고 갈게요.
레위기 1장 — 번제 제물을 전부 불에 올려 드리는 제사예요. 피로 속죄를 받고, “제 삶을 전부 주님께 드립니다” 하고 헌신을 고백합니다.
레위기 2장 — 소제 피 대신 곡식(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올립니다. 우리의 손길과 정성이 하나님께 향기로 올라갑니다.
레위기 3장 — 화목제 감사·서원·자원으로 드리는 친교의 제사예요. 하나님과 이웃이 함께 평안의 밥상을 나눕니다.
레위기 4장 — 속죄제 부지중에 지은 죄를 깨달았을 때, 각 신분에 맞게 제물을 드려서 피로 씻어내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덮어 주시고, 돌아올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제 5장은 느낌이 조금 달라요. 마치 법정 이야기 같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앞부분에 증언/증인(말해야 할 때 말하는 일), 부정(부지중에 부정한 것에 닿는 일), 맹세(함부로 약속하는 일)이 차례로 나오고, 뒷부분엔 손해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즉 배상까지 알려 줍니다.
쉽게 말하면, 레위기 5장에서 속죄제(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는 우리 잘잘못을 바르게 알려주는 “판결문”같은 것, 속건제(성물을 범하거나 계명 또는 이웃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드리는 제사)는 망가진 것을 메우고 정리했다는 사람 사이 관계를 정리했다 알려주는 “영수증”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속죄제, 속건죄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법정처럼 ‘너희 이거 잘못했지, 너희가 이거 배상해’라고 혼내시려는 게 아니라, 올바른 판결로 올바른 진실을 세우고, 판결에 따라 올바른 배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다시 잇게 하시려는 말씀이 오늘의 5장의 내용입니다.

레 5:1–13 속죄제: 양심을 곧게 세우는 “판결문”

1절을 보시면 속죄제에 대한 것을 이어가시는데 증인이 등장합니다.
Leviticus 5:1 NKRV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침묵의 죄: 증인이면서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죄라고 하십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두세 증인을 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침묵은 종종 중립이 아니라 왜곡에 가담이 되죠. 하나님은 겉행위뿐 아니라 양심까지 다루십니다. 그래서 제사에 관한 말씀이지만 성경이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음을 보여줘요.
2. 그리고 2-3절을 보시면 부정한 것들에 대해서 등장하는데
Leviticus 5:2–3 NKRV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만일 부지중에 어떤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의식적 부정: 이때의 이 부정은 양심이나, 도덕적 타락을 이야기하는 부정이 아니라 종교 의식상 부정을 말합니다. 사체 같은 죽음과 연결된 것으로 닿으면 부정하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다음 장에도 등장할 만큼 부정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부지중에”—죄가 아닌 게 아니라 아직 죄로 자각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3절에 그것을 “깨달을 때”(5:3) 즉시 정결을 구하라는 것이죠.
깨닫는다는 표현은 4장에도 여러번 등장하는데 속죄제는 실수로 인해서, 무지중에, 또는 태만에서 나오는 죄가 핵심입니다. 반대로 고의적인 것은 속죄제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에요. 깨달았으면 바로 돌이켜 나아오라는 말씀이 속죄제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Leviticus 5:4 NKRV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경솔한 맹세:구약에서 맹세는 보통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는 언약행위였어요. 그래서 맹세는 “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참입니다”라고 하나님을 앞세우는 셈입니다. 그러나 맹세가 지켜지지 않으면 내 신뢰만 깎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성품·권위)도 가볍게 다루는 결과가 됩니다.
전도서 5:2,5는 “서두르지 말라…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아예 서원하지 않는 게 낫다”라고 경고하고,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에 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너희 말은 ‘예, 예’ ‘아니오, 아니오’면 족하다”(마 5:34, 37)고, 일상의 정직을 요구하셨어요.
한마디로: 맹세는 말에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오는 일이라, 무심코 하면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있어요.
특별히 맹세하는 상황이 진지한 상황보다도 흥분·감정·체면을 차리는 상황 때문에 “확인도 안 된 약속”을 툭 던져 놓고, 나중에야 그게 잘못이었다는 걸 깨닫는 상황을 4장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건 허물이다—그러니 자백하고(5:5) 속죄의 길로 와라(5:6–13)”라고 이야기 하시는데 그것이 5절의 내용인데
Leviticus 5:5 NKRV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5:5, 자복: 히브리어로 히크트와다—‘던져 놓다, 밖으로 내다’예요. 숨겨둔 걸, 죄를 깨닫고 알게 되었으면 그것을 밖으로, 하나님 앞에 꺼내 놓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걸로 너 잘못했어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온 것을 만지시고 고치시려고 꺼내 놓으라고 하십니다. 숨겨 둔 동안엔 썩지만, 빛으로 꺼내 놓으면 치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
5:6–13, 하나님은 자복한 사람에게 돌아올 길도 아주 구체적으로 열어 두셨어요. 형편을 따라 계단식으로 마련하셨죠.
여력이 되면: 어린 양이나 염소(5:6) 형편이 어려우면: 산비둘기 두 마리 또는 집비둘기 새끼 두마리(7–10) 극히 가난하면: 고운 가루 1/10 에바(11–13)
여기서 핵심은 제물의 값이 아니라 피와 하나님의 긍휼(히 9:22)입니. 하나님은 누구도 가난 때문에 은혜 밖에 서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피 흘림으로 죄를 덮으시는 원칙을 지키시면서도, 가난 때문에 회개 문턱에서 돌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배려하십니다. 그래서 양을 못 드리면 비둘기로, 그것마저 어려우면 가루 1/10일 에바 2.2리터 1키로 조금 넘는 분량으로도 돌아올 수 있게 하신 거예요. 은혜는 비싸야 닿는 게 아니라, 정직하게 나아오는 모든 이에게 닿습니다.

판결문인 이유

여기서 제가 **속죄제=‘판결문’**이라고 부른 이유를 잠깐 설명할게요. 속죄제에서 자백과 피가 적용된 뒤 성경은 반복해서 “사함을 받으리라”를 선언합니다(레 4장 전반 연속). 이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언적 판결입니다. “네 죄를 유죄로 남겨 두지 않는다. 사함을 선포한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는 흔들린 양심 위에 하나님의 공식 판결을 얹어 주는 제사입니다. 우리는 이 사함의 판결문을 손에 쥔 사람으로, 은혜 안에서 담대히, 정결한 양심으로 다시 걸어갈 힘을 얻습니다.

레 5:14–19 속건제: 관계를 다시 잇는 “영수증”

이제 후반부, 속건제입니다. 키워드는 배상의 제사에요.
5:14–16, 성물에 대한 범과: 하나님의 소유와 권리를 침해했을 때. 흠 없는 수양을 드리고, **본물의 1/5(20%)**을 더해 배상합니다.
5:17–19, 금령을 부지중에 범함: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렸을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배상 + 제사 → 사함.
제가 속건제를 ‘영수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속건제는 “죄송합니다”로 멈추지 않습니다. 되돌려 주고, 거기에 더해 갚도록 제도화해 두었어요. 그래서 상대가 “네, 정산이 끝났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증빙이 생깁니다. 이것이 영수증의 역할과 닮았죠. 결국 말(사과)과 표시(배상)가 함께 가야 신뢰가 다시 선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웃 피해에 대한 자세한 규례는 6:1–7에 더 나옵니다(본물+1/5 환급).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삭개오(눅 19:1–10)예요. 삭개오가는 최소 기준을 따지지 않고 네 갑절을 갚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서 값없이 왔지만, 그 은혜가 그의 지갑발걸음관계를 움직였죠. 문을 두드려 사과하고, 돌려 주고, 더해서 주는 삶—이게 바로 속건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속건의 모습입니다.
짧게 정리하면: 속건제 = 영수증. 은혜는 공짜지만, 책임은 성실히. 그래서 관계가 끝까지 회복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

그리고 오늘 본 속죄제와 속건제의 모습은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1) 단번의 속죄: 판결문 위에 찍힌 “사함”
히브리서 10장은 예수님은 단번의 제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히 10:10–14). 더는 짐승의 피가 필요 없습니다. 십자가로 하나님 법정의 판결문에는 이미 **“사함”**이 찍혔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그분의 피를 근거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 4:16; 10:22; 요일 1:9).
(2) 충분한 배상: 영수증 위에 찍힌 “완납”
이사야 53:10은 메시아를 우리의 속건제물(아샴)로 예언합니다. 골 2:13–14는 하나님이 우리를 거스르는 증서를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셨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다 이루었다”(요 19:30)는 말은 우리의 빚 문서에 찍힌 ‘완납’ 도장과 같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사함을 공짜로 받았지만, 그 은혜는 우리를 책임의 사람으로 이끕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감사와 질서로, 사람 앞에서는 가능한 배상으로—복음은 **사함(진실의 판결) + 배상(관계의 회복)**을 함께 일으킵니다.

예화 | “도장”

이렇게 완전히 끝났다 라는 것이 사실 참 중요합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는 영월에 저희 집이랑 몇가구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영월에 팬션이 정말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새컨하우스 처럼 별장을 두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니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땅이 아닌데 조금더 증축하고 토지를 가꾸고 사용하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땅을 넘어가는 일들이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 이웃들 끼리 실랑이도 많이하고 법정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알게 된게 이 땅은 누구의 땅이라는 증명과 행정치리상 보상을 해야한다 라는 도장이 찍힌 문서라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되었어요. 그리고 끝났다라는 종이가 주는 영향력이 엄청났습니다.
십자가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법정의 판결문에는 우리의 죄를 “사함”이 써져 있고, 우리의 빚 문서에는 “완납”이 찍히게 된 것이 바로 십자가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이상 죄에 잡힌 자가 아니라 담대하게(사함) 또 성실하게(배상)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이 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맺는 말 ― 오늘 써야 할 두 가지

오늘 하나님은 우리 손에 종이 두 장을 쥐여 주십니다. 속죄제의 판결문—예수님의 피로 이미 사함이 선포되었습니다. 속건제의 영수증—십자가로 우리의 빚에 완납이 찍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죄에 묶인 사람들이 아니라 사함 받은 자로서 오늘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속죄제와 속건죄를 통해서
말해야 할 때 말하기(진실)
깨달으면 곧 돌이키기(정결)
가능한 배상으로 메우기(화해)
이 길을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이 가능하게 하십니다(빌 2:13). 저희가 일상에서 하는 정직한 한 마디, 한 통의 연락, 한 번의 수습들이 오늘의 말씀을 이뤄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소망을 붙들며 시작하신 선한 일을 주께서 끝까지 이루십니다.(빌 1:6). 자유롭게, 그러나 성실하게 걸어가면서 사함 때문에 마음은 자유롭게, 사랑 때문에 책임은 끝까지—그 길에 주님의 은혜 안에서 걸어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레위기 5장의 말씀을 보며, 성막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제사중에서 특별히 속죄제와 속건제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우리의 침묵으로 진실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사랑과 질서 안에서 말해야 할 때 말하는 용기를 주옵소서. 부지중에 더러움에 닿았다면 깨달을 때 곧 돌이키는 민감함을 주시고, 경솔한 말과 서원을 금하여, 신중히 약속하고, 지키지 못하면 즉시 알리고, 가능한 배상으로 신뢰를 메우는 지혜를 부어 주옵소서. 또한 숨겨 둔 죄를 밖으로 꺼내 놓는 자복의 용기가 우리 안에서 시작되게 하시고, 가난과 형편 때문에 은혜 안으로 못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길을 경험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은혜의 주님, 십자가에서 단번의 제사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자유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저희 심령에 깊이 새겨 지기 원합니다. 더이상 과거에 묶이지 않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자유롭게, 그러나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살아가는 자녀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순종을 사용하셔서, 가정과 교회와 이웃 사이에 무너진 신뢰의 담이 다시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주님, 특별히 다음 주 안양지방 연합성회로 저희 만안교회에서 모입니다.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제목으로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회개의 문이 열리고, 복음의 능력이 선포되며, 성령의 위로와 치유가 임하게 하옵소서. 강사님와 모든 봉사자에게 기름 부으시고, 성도들의 마음에 사함의 확신새로운 헌신을 부어 주셔서, 지역 교회들이 하나 되어 거룩과 사랑의 부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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