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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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통하여 예비된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전에 너희가 들은 것 같이 진리의 말씀 복음

또한 전에 여러분들이 들은 진리의 말씀 복음으로 인해 여러분들을 위해 하늘에 예비된 소망 때문입니다.

지난 번 설교에 우리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감사를 드렸는데, 그 이유는 복음이 전파되어 복음을 들었다는 것과 골로새 교인들이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사랑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우리’ 라는 단어와 개념인데,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연결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찐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더욱 우리 옆에 있는 우리 식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처음엔 이것이 이상할 수도 있고 이해는 가지만 실감이 안 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골로새서를 여러분들께서 깊이 묵상하고 이해하실 수록 이 사실이 피부로 와 닿게 될줄로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늘에 예비된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소망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희망사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이고 확정적이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기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종의 날짜가 되면 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금액의 수표와도 같습니다. 이것이 하늘에 맡겨져 있다가 때가 되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이 소망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허공을 치고 막연한 것을 바라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허상이요 상상일 뿐입니다. 구체적인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소망하고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이 그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인들은 진리의 말씀 복음을 듣고 이 약속을 받았고 그 소망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풀어야 할 많은 핵심들이 있는데, 앞으로 골로새서를 통해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들에게 이르렀습니다. 또한 동시에 전세계에 열매를 맺고 있고 자라고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들에게 일어난 일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복음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첫날 부터

마치 여러분들에게 일어난 일과 같이 복음이 여러분들에게 이르러 여러분들이 복음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첫날부터 열매를 맺고 더욱 풍성해진 것 처럼 전세계에도 이 복음으로 인해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복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바울의 설명을 들으면 복음은 단순히 이론이나 설명이나 이해가 필요한 어떤 정보가 아닌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자라고 풍성해지고 열매를 맺는 어떤 것입니다. 바울이 경험하고 이해한 복음은 생명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복음을 들은 골로새 교회는 복음이 역사해 자라기 시작했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풍성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골로새 교회 뿐 아니라 복음이 전파된 모든 지역에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우리를 통해 복음이 증거되고 전파되어야 복음이 퍼져나간다고 합니다. 우리를 통해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맞지만, 복음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라고 열매를 맺고 풍성해 집니다. 단지 그 통로가 우리가 되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주는 통로의 역할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애써 설명하거나 자세히 풀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요즘 자율 주행 차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율 주행하는 차를 이해하거나 공부를 해야 그 차를 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순히 타고 버튼을 누르면 차가 알아서 갑니다. 알아서 가는 자동차에 나는 탑승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복음도 그와 같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은 알아서 전해지는데 나는 거기에 함께 하고 있을 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울이 이야기하는 핵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복음을 체험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경험을 해야 복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과 함께 같이 자라고 성장합니다. 복음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계속 성장하고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과 함께 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 과정 안으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은 그 과정 안으로 들어올 것이고 아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받는 종 에바브라로 부터 배운 것처럼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한

마치 여러분들이 사랑받는 동료이자 종인 에바브라에게 배운 것 처럼 말입니다. 그는 여러분들을 위한 성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다시 에바브라를 예로 듭니다. 골로새 교회에 복음을 전한 것은 에바브라였습니다. 그는 복음의 통로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 이후 복음은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에바브라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들은 생기기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단지 복음을 전한다고 우리가 복음에 대한 어떠한 권리나 책임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전하기만 하면 알아서 스스로 자랍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편지의 첫부분에 에바브라를 소개하는 것은 바울의 지혜이고 동역자에 대한 예의입니다. 또한 에바브라를 언급하면서 복음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도 바울의 지혜입니다. 만일 바울이 에바브라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골로새 교회에 어떻게 복음이 전해졌을지에 대해 상상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한편 에바브라는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감옥에 있는 바울을 방문해 골로새 교회의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뿐 아니라 그 주변의 도시에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돌보는 사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에바브라를 바울은 동료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인정하고 함께 섬기는 사람으로 골로새 교회에 그의 권위를 세웁니다. 바울의 관심은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이 확장되는 것이라면 만족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바브라는 바울의 기쁨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알도록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여러분들의 사랑을 성령 안에서

또한 그는 성령 안에서 행해지는 여러분들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7절이 바울이 예의상으로라도 에바브라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이라면, 8절은 에바브라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사실상 8절은 7절과 붙어 있어도 전혀 상관이 없는 오히려 한문장이기 때문에 그것이 더 타당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굳이 절을 구분해 따로 말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는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러한 절의 구분은 후에 성경을 편집한 사람들이 한 것이지 당시에는 이러한 절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편집을 하던 사람들이 이 구절을 구분한 것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4절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사랑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그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준 사람이 바로 에바브라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골로새 교회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바울에게 골로새 교인들의 사랑이 특별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굳이 두번이나 그 사랑을 편지의 서문에 언급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특별히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헬라 문화권에서는 사랑을 크게 세가지의 단어로 구분합니다.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에로스와 탈 인간급 사랑인 아가페 그리고 친구와 동료 사랑인 필레오입니다. 물론 더 세분화하면 다섯 가지로도 구분이 가능하고 이 사랑들 사이에는 공통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정확히 아가페라고 말을 합니다. 특별히 바울이 아가페를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에바브라는 바울에게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이 아가페를 하고 있다고 전해 준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신생 교회였습니다. 몇차례 말씀 드렸듯이 골로새는 쇠락하는 중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교회가 탄생되었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래도 육체적으로 상황적으로 쉽지 않은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가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한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이 소식을 알린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회에 특별한 사랑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에바브라에게 엄청난 격려가 되었고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바울에게 이 소식을 전할 만큼 대단한 소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역시 이 소식은 특별한 소식이었기에 서문에 두번씩이나 언급한 것이고, 후에 성경을 편집하던 사람들 역시 이 구절을 따로 떼어서 적은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아가페 사랑은 특별하고 특이한 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들은 첫날부터 우리는 여러분들에 대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구하기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지도록 영적인 지혜와 이해가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여러분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첫날부터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는데 우리가 구한 것은 모든 성령의 지혜와 이해 안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기를 구했습니다.

9절에서 12절까지는 골로새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오늘 시간이 되는데까지 바울의 기도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먼저 가장 살펴보아야 하는 점은 바울이 어떤 소식을 들었느냐 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기도한 것은 어떤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고 그 소식으로 인해 이런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를 공부하면서 바울이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바울이 들은 소식의 중요한 부분은 골로새 교인들이 아가페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골로새 교회를 주장하고 있었다는 뜻이고, 이 특별한 현상에서 바울이 먼저 기도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입고 있었던 골로새 교회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게 가장 최우선의 과제였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바울이 파악하기엔 그것이 가장 급선무였다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했고 사도들이 목회를 하였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아가페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교회에 맡겼고 그 누구도 재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아가페 사랑이 충만하면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이나 근심이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은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현 상황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명하신 것이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성령님께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대로 성령님께서 오셔서 강권적으로 사람들을 주장하고 복음이 전해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풍성해 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가해지고 반 강제적으로 예루살렘을 나가 복음이 밖으로 전파된 것이고 그 핍박을 주도했던 바울조차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었던 바울이 그러한 강권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골로새 교회에 임했다는 소식을 들은 즉시 이 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하필 골로새 교회에 임했는지 바울도 한편으로는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이 감옥에 있어서 그들에게 갈수도 없는 상황이라 바울은 쉬지않고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내용을 골로새 교회에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에 임하신 성령님과 아가페 사랑은 단순히 골로새 교인들만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주변 지역에 동일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퍼져 나가기 위한 초석이었던 것입니다. 주변 지역 중 가장 힘들었던 골로새 도시에 그러한 은혜가 임하신 것 또한 우연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골로새 교회를 보며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궁금증과 경외가 생겼을 것입니다. 복음이 퍼져나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적어도 바울은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위대하심에 따라 살아 가도록 온전히 주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모든 좋은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늘어가도록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주님의 위대하심에 합당한 삶을 살며 온전히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좋은 일에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계속해서 풍성해지기 위함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이유가 10절에 나옵니다. 물론 9절에서 설명 드렸듯이 골로새 교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골로새 교인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함으로 앞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를 원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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