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낙원에 있으리라

나의 자랑, 십자가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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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해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모두 일곱 마디의 말씀을 유언처럼 남기셨다.
“용서해 주소서, 낙원에 있으리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 나의 영혼을 받으소서.”
본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일곱마디 말씀 중에 두 번째 말씀을 하시게 된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이사야 53장 6절).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는 30년, 3년, 3일로 요약된다.
30년 동안 성장하시고 3년 동안 공생애를 사시며 섬기셨고, 마지막으로 죽으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신 채 형장이 있는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셨다.
그러나 쇠약할 대로 쇠약해 지신 예수께서는 자기의 십자가를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대신 지고 가게 해야 될 정도로 지치셨다(마 27:32).
대적자들은 예수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기 위하여, 그분이 처형당하시는 현장에 두 명의 흉악범, 곧 널리 알려진 강도들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이사야 53장 12절).

II. 네가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 두 강도가 서로 어떤 사이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모두 강도질을 업으로 삼고 살아 온 사람들이었고 그 범죄의 흉악성으로 인하여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성경이 아닌 위경 「니고데모 복음서」 제1부 “빌라도의 행전” 중 제9장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디스마스(Dismas)와 게스타스(Gestas)다.

A. 비방하는 강도들.

누가복음에서는 한 강도가 믿고 회개하여 예수를 옹호하였고 또 한 강도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채 예수를 조롱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누가복음 23장 39-40절)
그러나 마가복음을 보면 두 강도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고 욕한 것으로 나온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마가복음 15장 32절)
따라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세 복음서 곧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보도 내용을 종합해서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두 강도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예수를 욕하고 모독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중 한 강도가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면서 그의 태도는 변화하였다.
그는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함께 못 박힌 다른 강도가 예수를 모욕할 때, 즉시 그를 꾸짖으며 예수를 옹호하였다(누가복음 23장 40절).
위에서 언급한 위경인「니고데모 복음서」 에 따르면 예수를 믿고 회개한 선한 강도가 바로 디스마스이고,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악한 강도가 게스타스라는 사람이었다.
이전까지는 같은 길을 걸어왔으나, 두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갈라졌다.

B. 회심하는 한 강도

이처럼 처음에는 두 강도가 합심하여 예수를 모욕하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중 한 강도의 마음이 바뀌었다.
선한 강도는 계속해서 예수를 비방하고 모욕하는 다른 한 강도를 꾸짖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누가복음 23장 40절).
이는 예수를 믿고 나서 그 선한 강도의 마음이 다음과 같은 점에서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
그도 처음에는 자신들이 강도질하다가 체포되어 십자가 사형을 당하게 된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를 뵈오며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선한 강도는 또 다른 강도에게"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도"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은 곧 죄에 대하여 변화된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즉, 자신들이 강도질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이었다.
둘째로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가 강도질이나 하면서 살던 날에는 하나님의 존재 여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시는 예수의 모습을 뵈오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선한 강도는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엄위하심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른 악한 강도를 꾸짖으며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라고 하였던 것이다(누가복음 23장 40절).
즉 그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실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은 인간의 선하고 악한 행위에 대해 상 주시고 벌을 내리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
셋째로는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게 되었다.
그래서 선한 강도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도움을 받는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누가복음 23장 41절)
이것은 놀라운 신앙 고백이었다.
그 선한 강도 역시 세간에 떠도는 예수에 관한 풍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분이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셔서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선포하신 일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런 이야기들이 단지 선한 강도의 귓전을 스쳐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그는 예수를 만났다.
가시면류관을 쓰신 채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를 뵈옵게 되었다.
선한 강도가 생각하기에, 확실히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자신들이 하는 방식과는 현저히 달랐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결코 억울해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군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비셨고(누가복음 23장 34절),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하게 교제하고 계셨다. (마가복음 15장 34절)
그리하여 악한 강도와는 달리, 선한 강도는 예수에 대해 새롭고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선한 강도는 예수가 진실로 의로운 분이시며 자기와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실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그 선한 강도는 죄 없으신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죄인처럼 죽으시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분의 죽으심의 이유는 자신들의 그것과 결코 같지 않음을 믿게 되었다.
이것은 그 선한 강도가 십자가에서, 예수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참된 회심을 경험했음을 보여준다.
넷째로는 내세에 대한 생각이 변화되었다.
그가 악한 강도와 똑같이 강도질하며 살아가던 때에는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게 되었다.
만약 그가 죽음 이후의 세계와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더라면 그가 어찌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며 살았겠는가?
죄악된 세상을 방황하다가 천국과 지옥도 나는 몰랐네
고집대로 영죽을 험한 세상이 왜 이리 더러운지 이제야 아네.
그러나 예수를 구세주로 믿게 되자 내세에 대한 선한 강도의 생각은 바뀌었다.
선한 강도는 말한다. "...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누가복음 23장 42절).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그 나라는 예수의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 말은 내세에 대한 선한 강도의 생각이 얼마나 놀랍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이제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가시면서도 지극히 평화로우신 예수의 모습을 뵈었다.
심지어 피를 흘리며 죽어가시는 중에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그 순간, 칠흑같이 캄캄했던 그의 지성에는 눈부시도록 찬란한 어떤 빛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그것은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진리의 빛이었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침내 선한 강도는 죽음 이후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를 믿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자신도 거기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비록 자신이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았지만 예수께서 허락하시면 자신도 그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선한 강도는 겸손했다.
그는 이제껏 살아온 삶에 비춰볼 때, 자신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선한 강도는 감히 예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에둘러 말함으로써 구세주와 내세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것이었다.
선한 강도는 자신이 죽고 난 이후에 있을 영원한 운명에 대한 처분을 예수께 맡겼다.
자기와 같은 끔찍한 죄인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의 긍휼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린 채,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하였다.
신학적으로 회심이란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를 가리킨다.
구원에 이르는 회심은 일생에 오직 한 번만 경험한다.
그러나 신자는 일생 동안 그 회심의 은혜를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살 수 있게 된다.
신자는 일생 동안 그렇게 함으로써 거룩한 성도가 되어 간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의 관건은 구원에 이르는 첫 회심을 경험하는 것그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첫 회심의 은혜를 보존하는 데 있다.
첫 회심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 구원받은 이후 회심의 반복적인 체험은 살면서 지은 자기 죄에 대한 용서를 확신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더욱 순수하게 사랑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며 살게 해준다(요한복음 10장 10절).
반복적인 회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현재적 체험이다.
이러한 영적 경험(spiritual experience)를 통하여 우리는 2천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히신 예수 십자가의 죽음을 현재적으로 체험한다.
그리고 이때 그 예수의 죽음이 현재적으로 지금 바로 이 시간에, 내 마음속으로 침투되어, 현재적으로 실제화(actualization) 된다.
예화 : 회개와 그리스도의 죽음의 실재화
우리는 회개할 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죄를 깨닫게 되면 그것을 슬퍼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떠오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시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생각할 때, 바로 그 죄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회개의 기도가 간절하고 깊어지면, 우리는 자신의 죄 때문에 이 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마음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한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현재적으로 실재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과거에 죄 지은 자신과 현재 예수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자아 사이에 분리 현상이 생긴다.
이때 거듭난 신자는 그분을 그렇게 십자가에 죽게 한 자신의 옛 자아에 대한 배신감과 미움으로 치를 떨게 된다.
이때 자신이 죄 지은 것에 대한 깊은 후회와 원한이 생겨난다.
바로 그 순간 회개를 통해 예수 죽음의 고통이 자기 속에 현재화되어 밀려온다.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서 실재화된 예수의 죽음은, 죄를 짓고자 하는 우리 마음속의 모든 의도를 죽여버린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한 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라디아서 2장 20절 상). 라는 말의 의미다.
그렇게 죄에 대한 마음의 의도가 죽는 것만큼 은혜가 살아난다.
그것이 바로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라디아서 2장 20절 하) 는 말의 의미다.
그렇게 예수 죽음의 실재화를 통해 우리 안에 죄와 부패한 본성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의 옛 본성이 예수와 함께 죽은 것만큼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생명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부활의 세 번째 지평이다. 곧, 성화의 부활이다.
이는 우리의 심령 안에서 성령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생명이다.
이로써 우리는 죄 가운데 살면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우리의 마음에 영적인 미각( spiritual tastes)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하나님의 영광과 용서, 사랑과 은혜에 대한 “새로운 감각”(New Sense)을 얻게 된다.
이때 지성은 수정처럼 맑고 투명해지고 정서는 사랑의 정동으로 가득해지며, 의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올곧게 된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이러한 회심이 없다면 그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다(행 2:38, 고후 7:10).
신자 안에 있는 성령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마음의 환경이 둘이 있다.
하나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음 안에서 부지런히 죄를 죽이는 것(Mortification of sin)이다.
죄를 죽이는 방식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즉,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을 끌어다가 십자가 앞에 세우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지금 네가 지으려는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의 피를 흘려 죽임을 당하셨다. 그런데도 네가 여전히 그 죄를 지으려 하느냐?"
이때 대부분의 신자의 마음에는 예수 죽음의 고통이 생각나고, 기도가 간절해질수록 그 고통은 마음 깊이 침투해 들어와서 커다란 아픔이 되는데, 이것은 진실한 회개로 이어진다.
그러면 신자는 자신이 죄를 지으려는 의도에 대해 변명할 말을 잃어버리게 되고 상한 심령이 되어 자신의 행동을 통회하며 회개하게 된다(시편 51편 17절).
그때가 바로 우리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때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죄악된 세상을 방황하면서 천국과 지옥도 모르는 채 죽어가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악한 강도처럼 회심하지 않은 채 죽어가는 불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는 그들을 위해 울어주도록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세워진 하나님의 집이다.
누가 그들에게 예수를 대신해서 죄와 하나님과 구원과 내세에 대해 전해줄 것인가?
많은 신자들은 교회 안에 있으나 십자가의 감격을 잃어버린 채 죄의 지배 아래 살아가고 있다.
누가 복음의 진리로 일깨워 살아있는 참된 신앙을 알게 해줄 것인가?
(이럴 때 설교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야지)

C.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함께 못 박혀 죽어 가면서 극적으로 회심하여 당신을 구주로 믿게 된 이 선한 강도를 향하여 선언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느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장 43절).
그리하여 한때 다른 죄수와 함께 예수를 모욕하던 선한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 회심을 경험하였다.
이 선한 강도의 극적인 구원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복음의 본질에 대해 말해준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결코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히려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딛 3:5).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인간의 선한 행실의 공로에 달린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써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직 죄가 많기 때문에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오히려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못박히신 예수님의 죽음이 나같은 죄인을 위한 것임을 믿으라.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음을 믿으라.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그동안 강도로 살아온 이 사람을 예수께서는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시면서도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셨다.
그리하여 선한 강도는 예수와 함께 낙원에 이르는 첫 열매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렇게 구원 받은 강도야말로 최고의 행운아”다.
왜냐하면 일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이 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보라.
구원 받은 강도는 일평생 하나님과 자기의 인생과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인간이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딱히 그렇게 살아야 할 의무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선한 강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칠흑같이 어둡던 그의 지성에 눈부시도록 찬란한 진리의 빛이 들어왔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과 자신과 세계에 대하여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죽음 이후에 신자와 불신자의 운명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왜 인간이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영생을 위해 무엇을 하고 누구를 섬기며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선한 강도는 짧은 시간에 그러한 놀라운 깨달음에 도달했지만 이제는 그에게는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사람답게 살아갈 시간이 없었다.
그는 주님의 손에 이끌리어 낙원으로 올라가면서도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한번도 제대로 안 적도 없었고 섬기며 살아본 적 없는 세상을 뒤돌아 보았을 것이다.
만약 그에게 단 며칠이라도 이 세상에 살아 있을 기회가 허락되었다면 그는 얼마나 기뻤겠는가?
틀림없이 그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이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그는 함께 강도질하던 무리들을 찾아가서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되고 유일한 구주이심을 피를 토하듯이 눈물로 알리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진리를 모두 알고 있는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살고 있는가?

III. 적용과 결론

복음의 진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Jesus died for us.)이다.
십자가는 이 세상의 지혜없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 1:18).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의 명예와 부, 권세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세상을 대하여 또한 그러하니라”(갈6:14).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여 보라. 당신은 진정으로 회심하였는가?
만약 당신이 아직도 회심하지 못하였다면, 오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당신이 만약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동안 예수를 멀리 떠나 불순종하던 죄를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당신의 차가운 가슴에 다시 한번 회심의 불붙듯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이게 이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교리에서 이제 매우 중요한 건데 이제 우리가 이제 죄를 짓고 회개를 하잖아.
예수 그리스도가 떠오르잖아. 그러면은 우리의 마음이 아프게 되잖아.
정상적인 회개의 기도라면 거기까지는 깊이 못 들어가니까 마음이 아프게 되잖아.
그 마음 아픈 것의 정체가 뭐냐 하면은 예수의 2천 년 전에 있었던 예수의 죽음이 지금 현재적으로 영적으로 우리 속을 타고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2천년 전에 끝났잖아.
그런데 지금 내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내가 가슴 아파하게 돼.
그거를 그리스도의 죽음의 현재적 실재화라고 부르는거야.
죽음이 들어오면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그때의 예수의 죽음이 죽음의 기운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했던 원인.
그게 뭐예요? 인간의 죄잖아요. 죄에 대한 욕구. 그 다음에 죄를 짓고자 하는 의도 같은 것들을 죽여버리는 거야.
그게 예수의 죽음의 체험이고 그렇게 죽은 것만큼 그게 끝나고 나면은 그것과 함께 자신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게 부활의 세 번째 지평이야.
그거를 경험론적으로 쉽게 잘 풀어서 설명을 해줘요.
본인의 체험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해.
우리는 회개할 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죄를 깨닫게 되면 그것을 슬퍼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떠오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시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생각할 때 바로 그 죄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회개의 기도가 간절하고 깊어진 우리는 자신의 죄 때문에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마음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한다.
그때 우리는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현재적으로 실제화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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