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영적훈련과 실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8 views
Notes
Transcript
Handout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이 시간 주악에 맞춰 묵상 기도 드림으로 수요 성경공부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시119:12]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아멘
우리의 예배와 찬송을 받기 합당하신 하나님,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의지하며, 주님의 지존하신 이름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성령님 오늘 예배 가운데 임하셔서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10장, 31장 다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기도
이 시간 우릴 대표해 서갑순 권사님께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오늘 이 저녁 함께 은혜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4장 23절부터 24절까지입니다. 화면을 참고하시어 함께 합독하겠습니다.
요한복음 4:23–24 NKRV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임마누엘 찬양대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 찬양의 고백처럼 성경을 알고, 성령을 믿고, 하늘 소망 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지난주까지 4주간 이었지만, 거의 두달여간의 걸친 대장정이었죠 / 김영선 목사님의 믿음에 대한 시리즈를 살펴보았고요 / 오늘부터 “영적훈련과 실천”이라는 주제로 4주간 말씀 나누겠습니다. / 오늘은 그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예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려분, 매주 예배를 드리지만, 누군가가 “예배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거야.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식이야,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야” 등 이야기를 할겁니다 / 물론 다 맞는 말입니다. / 그런데, “정확히 예배가 무엇인지?”라고 물으면 막상 뭐라고 대답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예배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만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 우리 대부분은 예배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예배의 자리에 있다가 은혜 받고, 하나님을 만나고, 또 예배를 통해 새힘을 얻고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게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기타를 교회 형들이 치는거 보고 어깨 너머로 배웠는데요. / 보고 따라하니까 어느 정도까지는 칠 수 있었습니다. / 그런데, 정식으로 배운적이 없으니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실력이 그대로더라고요. / 그래서, 저희 아이들도요. 기타 치는걸로 좋아하는데, “저 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며” / 돈을 주고 정식으로 레슨받게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아니겠지만, 예배도 어느정도 이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예배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예배를 통해 얼마든지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예배가 무엇인지,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이 없다면, 예배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과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죠.
예배에 관한 책 중에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라는 책이 있는데요. / 왜 예배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 예배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질 때, 그만큼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예배 가운데 풍성한 은혜를 깊이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보이진 않겠지만, 제 석사 논문 주제가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논문을 준비하면서 예배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는데, 정말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 제가 오늘 그 방대한 내용을 다 말씀드리지는 못하고요. / 신학적인 깊이 보다는 실천적인 3가지만 정리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는 예배는 무엇인가에 대해 / 두번째는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예배의 이유에 대해서 /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예배의 방법에 대해서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옆 사람 보면서 이렇게 좀 서로 격려 합시다. / “당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입니다”

1. 예배는 무엇인가

첫번째는 예배는 무엇인가, 예배의 정의입니다. / 예배에 대한 정의가 수없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어원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단어가 쓰일 때의 자주 쓰이는 헬라어 단어는 “프로스퀴네오”입니다. / 이 단어는 한마디로 윗사람 앞에 엎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하는 단어가 개념적이라기보다는 생생한 동사라는 것이 흥미롭죠.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제가 교역자실에서 편한게 앉아서 부교역자들과 농담도 하면서 일하고 있다가 갑자기 담임목사님이 들어오시면 어떻게 됩니까?
용수철처럼 바로 꽂꽂히 일어나겠죠. 이것이 “프로스퀴네오”입니다. / 자신보다 윗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사람 앞에서 합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오늘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라는 것을 믿지만, / 모두가 인식할 정도로 이곳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신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모두 자리에 일어나거나, 그 앞에 엎드리거나 할겁니다. “프로스퀴네오”입니다.
그래서 예배란 무엇입니까? / 나보다 우월하고, 뛰어나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내가 서 있다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존재 앞에 합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때
서서 손을 들고, 엎드리고, 소리를 높여,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하라고 하죠 / 하나님 앞에서의 합당한 태도를 보이라는 것이죠 /
그래서, 여러분, 예배 때, ‘일어서서 찬양하십시오. 손을 들고 찬양하십시오.’라고 말하는 이유가, 예배 분위기를 좋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의 “프로스퀴네오” / 합당한 자세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 이것이 경배이고, 찬양입니다.
또, 하나의 예배를 가르치는 단어는 워십인데요. 영어로 예배라는 뜻이죠.
이 단어는 옛 영어 단어인 가치를 뜻하는 “Worth”와 신분을 뜻하는 “ship”의 합성어인데, “존경과 존귀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이죠. / “프로스퀴네오”와 맥락이 비슷합니다. / 최상의 가치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보시면, 
가장 가치 있는 것에 합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예배라면,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것이 예배입니다. /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예배하죠.
이것에 관해 제가 좋아하는 예화인데요.
집안에 오랫동안 있었던 반지가 있었는데, 오래된 물건이라 아무도 쓰지 않아서 나중에 당근에 팔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서랍에 아무렇게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석상인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우연히 이 반지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 알고 보니 이 반지가 17세기에 살았던 어느 장인의 작품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는 반지였던 것입니다. / 그래서, 감정가가 좀 과장해서 100억이나 되는 반지였던 겁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이 반지의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우선 반지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지겠죠 / 예전에 그냥 아무곳에 두고 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매일 반지를 보면서 ‘와 이게 백억의 가치가 있는 반지구나’ 감탄을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반지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 그리고,  온통 반지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죠 / 이 반지로 인해 ‘이제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 / 삶에 대한 가치와 의미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깐 어떻게 되겠습니까? 행동도 변하겠죠. / 우선은 그 반지를 아무렇게나 서랍에 두지 않겠죠. / 튼튼한 상자나 좋은 금고를 사서 그 안에 보관할 겁니다. / 그리고, 이 반지의 가치를 더 올리기 위해 전문가들을 불러서 그 비용이 몇백, 몇천이 들더라도 하겠죠. / 100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데, 더 들더라도 투자해야죠.
여러분, 어떻습니까? / 이 반지의 가치를 발견함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변화된겁니다. / 이 전에 이 반지의 가치를 몰랐죠 / 그러다보니 반지에 대한 올바른 태도도 갖지 못한 것이죠.
그런데, 보석상 친구가 여러분을 예배로 인도한 겁니다. /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보여준 것이고, 그 가치를 보여준 것이죠. / 그로 인해 태도도 변했고, 어디에다 내 인생을 투자할지에 대한 행동도 변화된 겁니다. / 여러분, 눈치채셨죠?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까? /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무엇을 위해 인생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1 NKRV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이죠? / 내가 가장 걱정하고, 마음을 쓰고, 투자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 그리고, 그 예배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여러분의 삶이 결정될 것입니다. / 따라서, 무엇을 예배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하죠.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예배한다고 말합니다. / 여러분은 무엇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 다시 말해 하나님에게서 최고의 가치를 발견한다면,더 이상 하나님을 내 삶의 구석, 서랍 안에 아무렇게나 두지 않겠죠. / 그분이 이루시는 목적을 위해 인생을 투자하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이사야 6:1 NKRV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 선지자는 어느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보게 되는데요. / 이날 이사야가 처음 예배를 드린게 아니죠 / 평소에도 이사야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이날 예배는 달랐습니다 /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실제적으로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사야의 첫 반응이죠.
이사야 6:5 NKRV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무한한 가치 앞에 자신의 무가치함을 발견한 이사야는 “프로스퀴네오” / 그 앞에 완전히 낮아져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부정하며 회개합니다. 그리고, 8절입니다.
이사야 6:8 NKRV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자, 보세요. / 하나님께서 “나의 말을 듣지 않는 백성에게 나의 말을 전할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러자, 이사야가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 저는 지금껏 당신의 위해 내 삶을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 이제 저는 당신에게서 위대함과 최상의 가치를 보았습니다. 내 삶을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세요” / 워십이죠. 
최상의 가치가 하나님께 있음을 발견한 이사야는 그 일을 위해 자신을 헌신합니다.
우리는 헌신 그러면, “나를 보내소서” 막,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기 싫은데, 가라고 하니깐, 내가 엄청 희생해서 가는 것이 헌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죠.
헌신은 내 인생의 보물이 하나님께 있음을 발견하고, 기쁨으로 하는 것이 헌신입니다. / 헌신의 주체가 내가 아니죠 /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있는 겁니다. / 그래서 헌신도 예배로 드려져야 하는 겁니다. / 이사야가 그런 것처럼요.
마태복음 13장 44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44 NKRV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여러분, 주일학교 학생들이 부르는 “천국은 마치”라는 찬양 아실 겁니다. / 제가 여기서 차마 부르지는 못하고 가사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 땅 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 이라네 / 그 보석 발견한 사람은 기뻐 뛰며 집에 돌아가 /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아 기어이 그 밭을 사고 말거야
하나님에게서 진정한 보석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 드립니다 / 워십이고, 이게 예배죠.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우심과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헌신하게 되는 경우죠
예배 없는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 워십이 없는 헌신이죠 / 여러분, 이런 헌신은 자기 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 자기가 대단한 희생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희생과 헌신으로 하나님을 빚지게 만들죠. / “하나님, 내가 다른 사람들도 안하는 이러한 헌신을 하는데, 나에게 이렇게 해주셔야죠” / 하나님의 가치가 아니라 나의 노력에 의한 가치를 가지고 하나님께 청구서를 들이내미는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항상 서운해하고 삐져 있습니다 / 하나님이 내가 한 것만큼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다보니깐,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자꾸 내 뜻을 펼치려고 하고, 자꾸 내가 의로워지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참된 헌신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그 가치를 발견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겁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임재를 경험한 기쁨 속에서 나오는거에요. / 그래서 헌신하면 헌신할수록 내 이름이 드러나고, 내가 높아지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죠.
성도 여러분, 예배 없는 헌신이 아니라, 예배 중심의 헌신이 있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렇게 예배는요.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행동과 삶을 변화시킵니다. / 이것이 예배입니다.

2.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두번째, 우리는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걸까요?
오늘 본문 2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합니다.
요한복음 4:23 NKRV
…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배를 요구하신다라는 말이죠. /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경배하고 찬양하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자주 나옵니다.
여러분, 찬양은 기본적으로 “칭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찬양하라, 칭찬하라”고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 “왜 하나님이 자꾸만 자신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지? / 하나님이 불안정하신건가? / 하나님은 이미 스스로 완전하신 분이신데, 왜 자꾸 우리에게 좋은 말을 하라고 요구하시는 건가? 그래야 안정이 되시는 건가?”
여러분은 이런 생각 안해보셨나요? / 저는 예전에 이게 풀리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이렇게 하시는 것 같죠. / “나의 백성아 어서 나를 찬양해라. 내게 예배해라, 할렐루야라고 외쳐라,내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말해라”
여러분, 솔직히 한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나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달라는 사람을 만나면 같이 있고 싶나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죠. / 그런데, 왜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배와 찬양을 요구하시는 걸까? / 이유를 알게 되니 제가 크게 오해하고 있었더라고요.
자, 보세요 / 여러분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아, 좀 힘들다’라는 사람들이 있죠. /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에서 불평할 거리를 찾아내고, 좀처럼 칭찬할 줄 모릅니다. / 좋은게 아홉이고 안좋은게 일인데, 어떻게든 기가 막히게 그 일을 찾아내서 불평하죠. / “이래서 이 영화는 별로고, 이래서 이 음악은 별로고, 이래서 저 사람은 별로야” / 표정도 항상 찡그리고 있죠.
그런데, 반대로 매력적이고,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들의 특징은 어떻습니까?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 어딜가도 감탄을 잘하죠 / 담임목사님께서 부교역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 밥을 사줄 때 반응이 좋아야 사줄 맛이 난다고 하시는데, 정말 그렇죠. / “와, 이 음식 너무 맛있다, 이 영화 너무 재미있다, 저 사람 너무 멋지지 않아?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야.” / 계속해서 칭찬합니다. / 그렇다고 해서 안좋은데, 무조건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 단점도 분명히 있지만, 이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도 반짝이는 점을 찾아내서 칭찬합니다.
자, 그렇다면, 어떠한 사람이 내면이 건강한 사람일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칭찬과 감탄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 C.S. 루이스는 “찬양은 내면의 건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드러나는 지표”라고 말했습니다. / 즉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면, 다른 모든 곳에서도 찬양할 수 있다라는 거죠.
비할 바 없이 겸손하며 균형이 잘 잡히고 도량이 큰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찬양하는 반면, 매사에 짜증을 내고 순응할 줄 모르며 불평불만을 일삼는 이들은 좀처럼 찬양할 줄 모른다. 훌륭한 비평가들은 숱한 결함을 가진 작품에서도 칭찬거리를 찾지만, 쩨쩨한 비평가들은 추천도서 목록을 끝없이 줄여 간다. 건강하고 때 묻지 않은 이들은 호화로운 집안에서 세상의 산해진미를 다 맛보며 자랐다 할지라도 소박한 밥상을 높이 평가할 줄 알지만, 소화불량에 걸렸거나 고상한 척 좋아하는 속물들은 무얼 내놓든 흠부터 잡으려 든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악조건 아래서가 아니라면, 대체로 찬양은 내면의 건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드러내는 지표가 되는 듯 하다. - C.S.루이스, 『시편사색』
찬양과 경배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좋은 것을 보고도, 느끼지 못하고, “멋지고 아름답다”라고 표현을 못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내면에 뭔가가 고장났다라는 것이고, / 그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게 참된 아름다움과 찬양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니 삶 속에서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기뻐하고, 찬양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은요.
하나님의 창조 아래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찬양하는 사람이죠. / 물론 죄로 인해 깨어져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러한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창조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그것을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 다른 이들은 볼 때도 나보다 남을 낫게(높게) 여깁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요. / 삶이 깨어지고 어렵고, 내 계획이 실패하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도 /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캄캄한 감옥에서 고백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항상 기뻐하라”
사도 바울이 감옥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 바울의 육체는 어두운 감옥 안에 갇혀 있었지만, 바울의 내면은 찬양으로 넘쳤어요.
여러분, 그래요. / 삶을 옥죄는 감옥마저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은요. / 어떠한 상황과 어려움 속에 처할지라도 낙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줍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편 42:5 NKRV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까도 질문했죠 / 왜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우리에게 찬양하고 예배하라고 명령하시는가 / 1년전 주종훈 교수님의 설교를 통해 우리가 배운게 있죠 /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이다” / 왜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의 자리, 경배와 찬양의 자리로 초청하시는 걸까요?
물론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지, 인간의 만족이나 감정적 위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하나님께 올바로 예배 드릴 때, 우리는 창조 목적에 맞게 살게 되고, 참된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청교도 신학자 리터드 백스터는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경험하는 특권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는 인간의 가장 높고 합리적인 즐거움이며, 거룩한 영혼에게 지속적인 만족을 준다. - 리처드 백스터, 『기독교 생활 지침 4-5』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한 것이죠.
이러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예배에 초청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내면의 만족과 건강함을 가지고, 삶을 더 풍성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죠 / 제가 이 말을 하려고 이렇게 길게 설명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낄 줄 알고, /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을 받을 줄도 알고,  / 사람들과의 사랑의 관계, 우정과 관계를 충만히 누릴 줄 아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더 나아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송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 그리고, 이 땅에서의 예배는 천국에서 하나님을 영원히 사랑하고 예배할 준비를 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예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예배한다면, 결국 점점 비인간화되어 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는 예배의 자리에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3.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

마지막 세번째,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24 NKRV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으로만 예배 할 수 없죠. / 진리로만 예배 드릴 수 없습니다 /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린다는 것이 무엇인가. / 사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이 애매한 말이라서 해석이 분분합니다. / 그래서, 제가 모든 해석을 여기서 다룰 수는 없고요 / 성령의 역사를 중점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의 에드먼드 클라우니 교수는 “예배에는 영과 진리, 질서와 열정 모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좋아하는 비유가 있는데요. / 팀 켈러 목사님의 책을 보면 나오는 카메라 비유인데요.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가 대부분이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에는 필름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 필름 카메라의 원리는 사진을 찍으면 셔터가 열리죠 / 그러면, 빛이 들어와서 필름에 묻어 있는 화학물질과 반응해서 필름에 이미지가 맺히게 됩니다.
자, 이렇게 생각해볼께요. / 필름이 우리들의 마음이고,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위해 필름에 바른 화학약품이 성령의 역사하심이고, 빛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 아마 그런 적 있을 겁니다. / 평소에 익히 알았던 말씀이 어느날 새롭게 깨달아지고 들리는 경험, 아마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수년동안 이 말씀을 알았고, 읽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 말씀이 너무나 새롭게 들리는 겁니다. / 그 순간 이해되지 않는 모든 상황이 해석이 되기 시작합니다. / 그리고,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선하게 내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 불안했던 나의 마음 가운데 평안함이 찾아옵니다. 
자, 여러분, 어떤 일이 일어난거죠? / 셔터가 열리고, 진리의 빛이 내 마음가운데 비추이게 되고, 그 말씀의 빛이 내 마음 가운데 새겨지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이죠. / 말씀이 실제가 되는 겁니다. / 여러분, 이게 바로 영과 진리의 역사이고, 영과 진리로 예배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일이 항상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것이죠.
물론 아주 가끔 강권적으로 역사하실 때도 있습니다. / 하지만, 매번 이렇게 예배하지 못합니다. / 왜 그런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근심케 하기 때문입니다. / 에베소서 4장 30절은 말합니다.
에베소서 4:30 NKRV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여러분에게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여러분이 정말 싫어하는 행동을 한번도 아니고, 계속하면 어떻죠? / 속상하죠. / 근심하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 여러분 성령은 어떤 신비로운 힘과 능력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 성령은 믿는 모든 자 안에 내주해 계시죠. / 그래서, 우리가 그분이 싫어하는 죄된 행동을 할 때, 그분은 인격이기 때문에 근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성령을 근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 첫번째는 적극적으로 두번째는 소극적으로입니다.
먼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죄된 행동을 하는 겁니다.
에베소서 4장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느는 것과 비방하는 모든 악의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죄된 행동을 할 때, 하나님의 성령은 근심합니다. / 이것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근심케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교제를 무시하고 멀리하는 겁니다. /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 인간 관계도 한번 맺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유지해야 하듯, 하나님과의 관계도요.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야 합니다 /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 바로 말씀 묵상과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하고, 무시하고, 멀리한다면, 하나님의 영은 근심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도 점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 그리고, 이것은 결국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까지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따라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기 위해서 우리는요.
주일 예배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교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매일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이것이 바로 영적 훈련이자 실천이기도 하죠. / 제가 이 시리즈를 준비한 이유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가장 기본이 되는 예배에 대해 살펴보았고, / 다음주에는 말씀 묵상, 그 다음주는 기도, 마지막으로는 열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오니 /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예전에 그런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주일에 모여서 예배 드리는게 중요하냐? 삶의 예배가 더 중요하지” 또 반대로 “삶의 예배 아무리 드리면 뭐하냐, 주일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않는데” / 두 가지 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말이죠. / 이 두가지는 분리될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기 원한다면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예배, 매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 각자의 삶을 점검하시면서 내 삶가운데 하나님의 영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제거하시길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죄를 범한 것이 있다면 멈추고, 소극적으로든 게을렀던 말씀과 기도를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 할 때 / 어느날 셔터가 열리고, 진리의 빛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강하게 비추는 날이 오게 될 줄 믿습니다 /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진리를 맛보고 경험하는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임하게 되길 축복합니다.
욥이 그러한 고백을 했죠.
욥기 42:3 NKRV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 나는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수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자신의 육신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죠. 하지만, 후에 욥은 이렇게 고백하죠.
욥기 42:5 NKRV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일까요? / 욥이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을 본 것일까요? 아니죠.
이전까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하나님이, 그날 실제 경험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 이것이 예배입니다 / 말씀이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온 것이죠. / 이 경험이 극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방황하다가 20대 초 어느날 교회에서 1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과 통기타 하나 들고 예배하다가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 물론 주일학교에서 귀가 박히게 들어서 알고 있었죠 / 그런데, 이 날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이었습니다. / 이 경험이 저를 여기에 있게 만든 것이죠.
성도 여러분, 욥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을 이전보다 더 깊이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기도할 때에,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주의 말씀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기 원합니다. /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옵소서. /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주를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혜성교회 가운데 드려지는 모든 예배 가운데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해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모르는 자들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해주시고, 헌신하지 못한 자들이 주님의 아름다움의 임재에 압도 되어 기쁨으로 헌신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종교적으로는 예배 드리지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예배했던 자들이 돌아와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의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찬양

지존하신 주님 이름앞에 모두 무릎꿇고 다 경배해 거룩하신 주님 보좌앞에 엎드려 절하세
지존하신 주님 이름앞에 모두 무릎꿇고 다 경배해 거룩하신 주님 보좌앞에 엎드려 절하세
예수는 그리스도 / 예수는 주 / 하나님의 영으로 경배드리네
지존하신 주님 이름앞에 모두 무릎꿇고 다 경배해 거룩하신 주님 보좌앞에 엎드려 절하세
예수는 그리스도 / 예수는 주 / 하나님의 영으로 경배드리네
예수는 그리스도 / 예수는 주 / 하나님의 영으로 경배드리네

기도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배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형식적이고 종교적으로 예배 드렸던 우리의 모습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의 태도로 / 우리 삶의 최고의 가치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기쁨으로 응답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저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고, 공예배 뿐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블레싱기도

이 시간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동기도문을 읽으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명을 가지고 삶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돌보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 혜성교회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만민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따라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예배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게 하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사람을 세워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사도행전적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통해 믿음의 다음 세대가 자라나게 하시고, 교회와 가정, 주일학교와 한아름유치원, 이야기학교, 러빙스쿨, 경신을 비롯한 기독교 사학을 통해 요셉과 다니엘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배출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역과 이 나라에 공의와 질서 안에서 평안을 허락하여 주시며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허락해 주옵소서.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를 예배자로 불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의 삶을 기쁘게 받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날마다 우리의 걸음을 예배의 자리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동행하심이
오늘 하나님을 예배한 모든 주의 백성들 위에, 그리고 일상의 자리에서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