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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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0:12-18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2025. 9. 8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무엇을 자랑해야 하며, 우리의 사역과 삶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고린도후서 10장부터 마지막 13장까지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내용에 대해서 기록을 했죠.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바울의 외모나 언변이 약하다고 비난을 하면서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도록 만들어 버렸어요. 그래서 바울이 자기가 세운 교회에 자기가 사도가 맞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겁니다. 
    바울은 누가 뭐래도 사도가 맞아요. 주님이 직접 바울을 지명하여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반면에 거짓 교사들은 추천서를 갖고 있어요. 주님이 주신 추천서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받은 추천서죠. “나는 베드로에게 받았다, 나는 야고보에게 받았다.” 이러면서 자랑을 해요. 주님이 세우셔야 사도가 되고 교사가 되는 거지, 사람이 추천서 써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님이 세우신 게 아니면 다 가짜예요.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교인들 중에 거기에 홀랑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바울 입장에서는 천불이 나죠. 내가 진짜고 쟤들이 가짠데, 쟤들이 진짜라 그러고 나를 가짜라 그래요. 
    그런데 저들이 무슨 근거를 가지고 말을 하는가를 들어보면, 별 거 없어요. 자기들의 언변을 자랑하고, 추천서를 자랑합니다. 쓸데 없는 것들이죠. 또 뭘 자랑하냐면, 은사를 자랑해요. 환상, 계시, 이런 걸 자기들이 본다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바울 앞에서 그런 걸 자랑해봤자 아무 소용 없는 겁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것도 아니고, 바울이 얼마나 많은 환상을 보고, 또 얼마나 많은 능력을 체험했는데, 바울 앞에서 그런 자랑을 한다고 비교가 되겠어요?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그들의 자랑을 책망합니다. 자, 오늘 본문 12절 같이 읽어볼까요? 12절 시작,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 같은 것이 어찌 감히 저들과 같이 나를 비교하겠느냐?’ 이런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남들 앞에서 나를 자랑하고 비교하고, 그럴 만한 깜냥이 안 된다’ 이런 말이에요.
    누구보다 자랑할 것이 많은 바울이,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을 해요. 이것은 바울이 겸손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거짓 교사들을 비웃는 말이에요. “아이고 예예, 저는 자랑할 것이 없어서 감히 비교를 못하겠는데, 여러분은 참 대단들 하시네요, 예.” 이런 뉘앙스의 말이에요. 어떤 뉘앙스인지 알겠죠? 이런 걸 속된 말로 ‘멕인다’ 그러죠. 바울이 지금 거짓 교사들을 멕이고 있는 겁니다. 겸손한 척 말하면서 거짓교사들을 비웃는 겁니다. 
    그러면서 밑에 13절에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자랑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아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범위의 한계를 따라서만 자랑한다. 이런 말을 하는데요. 바울도 때로는 자기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분수 이상의 자랑은 하지 않아요. 오직 정해진 범위 안에서만 자랑을 합니다. 범위의 한계라는 것은 사역의 영역의 한계거든요. 다시 말해서, 내가 사역한 것만을 놓고 자랑한다는 겁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사역 영역이에요. 속된 말로 나와바리라고 그러죠.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나와바립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이 나와바리를 침범했어요. 만약에 거짓교사들이 와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사역에 합력하여 좋은 열매들을 맺었다면, 그러면 그들도 자랑할 것이 있죠. 고린도교회가 그들에게도 사역의 영역이 된 거니까. 그들이 여기서 어떤 사역의 열매들을 봤다면, 그것들을 자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와서 한 게 없죠. 문제만 일으켰어요. 그러니 뭘 자랑할 게 있겠습니까? 없어요. 그런데 막 자랑을 하는 거예요. 사역의 열매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쓰잘데기 없는 거. “내가 이렇게 말을 잘해, 내가 추천서도 있어, 내가 환상도 봐.” 이러면서 사역의 영역 밖의 것들을 자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가 고린도교회에 온 것이 당신들의 복이다, 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말을 퍼트려요. 바울은 가짜고 내가 진짜야. 나같은 진짜가 왔으니까 앞으로 당신들은 복받은 거야. 이런 식인 거죠. 
    이것은 마치 이런 거예요. 여러분, 우리 국동제일교회를 누가 개척했습니까? 김성진 원로목사님이죠. 그래서 국동제일교회를 개척한 것을 누가 자랑할 수 있냐면, 원로목사님하고 그때 함께 했던 개척멤버들이에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어디 알지도 못하는 선교사가 하나 와가지고, “내가 38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대한민국 여수 땅에 교회 하나가 개척되도록 기도에 힘써라. 그래서 내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작정기도를 했더니, 한 달 뒤에 하나님이 국동제일교회가 개척되는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 이러면서 마치 자기 때문에 교회가 개척된 것처럼 자랑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그러면 국동제일교회가 그 사람 때문에 세워진 겁니까? 그 사람이 실제로 환상을 봤는지 안 봤는지도 신빙성이 없고, 물론 거짓말이겠죠. 설령 그 사람이 진짜로 봤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세워진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고, 둘째로 원로목사님과 개척멤버들의 피땀으로 된 겁니다. 
    뒤늦게 와서 숟가락 얹으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거짓교사들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고린도교회가 세워지고 지금까지 오는 데 있어서 자기들은 벽돌 한 장 나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뒤늦게 와서 자기들이 리더 행세를 하려고 하면 되겠냐 이겁니다. 
    자랑을 하려거든 자기 분수에 맞게, 자기 사역의 영역 안에서 자랑을 해야죠. 진실하게 내가 한 것만 갖고 자랑을 해야지, 남의 것을 내 것인 것처럼 자랑을 하면 안 돼요. 
    바울은 웬만하면 자랑을 안 합니다. 거의 안 해요. 바울이 자랑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린도라고 하는 더러운 땅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교회를 세운 것만으로도 평생의 자랑거리잖아요. 그런데 바울은요,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해요. 나는 그냥 씨를 뿌리기만 한 것이고, 자라게 하신 이는 주님이시다. 모든 공로를 주님께로 돌리잖아요.
    그러니까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자랑하는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을 하죠.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바울이 자랑할 것은 십자가 밖에 없어요. 우리를 위해서 피흘려 죽으신 십자가, 그 은혜만을 자랑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바울이 또 자랑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고린도후서 7장에 봤었죠.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자랑했요. “너희가 나의 자랑이다. 내가 디도 앞에서 너희를 자랑했는데, 그 자랑한 것이 부끄럽지 않게 된 것을 기뻐한다.” 이렇게 바울은 교회를 자랑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도 보면, 바울이 이번에는 마게도냐 교회를 자랑했어요.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그들이 풍성한 연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자랑을 했죠.
    이처럼 바울은 웬만하면 자랑을 안 하는데, 자랑을 할 때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자랑하고, 교회를 자랑합니다. 이 자랑은 자신을 높이는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낮추는 자랑입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자랑을 해요. 작은 것도 크게 부풀리고, 없던 것도 만들어서 자랑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인정을 받으니까.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런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되겠죠. 우리는 뭘 자랑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우리 교회 성도들의 섬김을 자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를 몰라준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알아주십니다. 내 모든 형편을 아시는 주님이 내가 자랑하지 않은 모든 것을 아셔요.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서 칭찬하십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아멘.
    주님께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가 누굽니까?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인정함을 받는 자입니다.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칭찬을 받는 자. 그런 자가 진정으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칭찬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줘도, 주님이 칭찬하시면, 그것 만큼 좋은 게 어디 있어요? 주님이 칭찬하시고, 주님이 인정하시는 삶이야말로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삶입니다. 
    그러한 위대한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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