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라 2025 0910 겔4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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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21장 내가 예수 믿고서 /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6 성전에서 내게 하는 말을 내가 듣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더라
7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8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망시켰거니와
9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 10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11 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12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예배의 중심,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십시오.
서론: '주인 없는 집'이 되어버린 예배
서론: '주인 없는 집'이 되어버린 예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주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대저택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최고의 디자이너가 설계했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재로 지었습니다. 정원에는 희귀한 나무들이 심겨 있고, 집 안은 값비싼 가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집에 주인이 살지 않는다면, 그 집을 과연 '살아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다워도 결국 생명이 없고 온기가 없는 '빈집'일 뿐입니다.
저는 가끔 우리의 예배, 우리의 교회가 그럴 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을 하곤 합니다. 교회 건물은 더 커지고 현대적으로 변했습니다. 찬양팀의 실력은 전문가 수준이 되었고, 주보에 실린 프로그램들은 빈틈없이 세련되어졌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실재적인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주 이 거대한 '빈집'에 모여 종교적인 행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 앞에 에스겔 40장부터 42장까지는, 굉장히 건조하고 어쩌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성전 건축'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벽의 두께는 얼마고, 문의 높이는 얼마인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오늘 본문의 위대한 클라이맥스를 위한 거대한 무대장치에 불과했습니다. 성전의 진짜 핵심은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아니라, '누가 그 안에 거하시는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에스겔 10장에서 이스겔이 겪었던 가장 큰 비극과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이스라엘의 진짜 비극은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이전,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셨다는 것이 진짜 심판이요, 절망이었습니다. 주인이 떠나버린 빈집이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떠나셨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시는, 에스겔서 전체에서 가장 감격적이고 장엄한 장면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과 교회가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임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머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단 한 가지 조건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영광의 귀환, 그리고 그 무게
본론: 영광의 귀환, 그리고 그 무게
1. 떠났던 그 영광이 돌아오다 (1-5절)
1. 떠났던 그 영광이 돌아오다 (1-5절)
지루하게 느껴지던 건축 설명이 끝나자마자, 장면은 완전히 압도적인 광경으로 전환됩니다.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동쪽 문,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던 바로 그 문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십니다. 그분의 음성은 거대한 폭포수 소리 같고, 온 땅은 그분의 영광의 광채로 환하게 빛납니다. 이 거룩하고 압도적인 실재 앞에서 위대한 선지자 에스겔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반응은 이것이었습니다.
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이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가장 올바른 반응입니다.
성경에서 '영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카보드'(כָּבוֹד)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아름다운 빛'이나 '명예'를 뜻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의 뿌리는 '무겁다', '무게감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 '카보드'는 하나님의 '실재감', '무게감', '실체적인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여기에 계시다는 사실이 느껴지는 그 압도적인 무게감, 그것이 바로 '카보드'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무게감'이라는 뜻을 가진 '카보드'가 오늘날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이는가 하는 점입니다. 혹시 '콜 하카보드'(Kol Ha'Kavod)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누군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콜 하카보드!'라고 외칩니다. '모든 영광을!'이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정말 잘했어요!', '최고예요!', '존경합니다!'라는 최고의 찬사로 사용됩니다. 고대의 '무게감'이라는 뜻이 현대에 와서 '존경'과 '명예'라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입니다. 왜일까요? 무게가 있는 존재, 실체가 있는 존재는 존경받아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친구들과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경호원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방 안의 공기가 어떻게 변할까요? 아마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무거운 정적이 흐를 것입니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공간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의 그 '카보드'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분의 임재는 단순히 놀라운 광경이 아니라, 우리의 온 마음과 뜻을 다한 최고의 존경, '콜 하카보드'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실체적인 무게감인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카보드', 그분의 임재의 무게감이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인간적인 즐거움과 감정으로 채워진 가볍고 피상적인 예배입니까?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실재'를 만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좋은 '느낌'을 얻으러 옵니까? 교회를 떠날 때, "오늘 찬양이 참 좋았어"를 넘어, "오늘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와 함께 하셨어"라는 고백이 터져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2. 이제 이곳에 영원히 거하리라 (6-9절)
2. 이제 이곳에 영원히 거하리라 (6-9절)
성전으로 돌아오신 하나님은 감격적인 약속을 하십니다.
7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다시는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영원한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에는 분명한 전제가 따라붙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왜 떠나실 수밖에 없었는지를 명확히 지적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 바로 곁에, 자신들의 죽은 왕들을 신처럼 숭배하는 우상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바로 옆에 자신들의 우상을 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한 공간에서 겸하여 섬기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의 보좌를 다른 것과 절대로 나누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곁에 어떤 '왕들의 시체'를 두고 있습니까? 그것은 돈일 수 있습니다. 성공일 수 있습니다. 자녀의 미래, 세상의 쾌락, 혹은 나 자신의 자아실현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그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온전한 '카보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마음의 보좌에는 여전히 다른 왕이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3. 성전의 법은 '거룩'이니라 (10-12절)
3. 성전의 법은 '거룩'이니라 (10-12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계속 함께 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전의 완벽한 설계도를 백성들에게 보여주라고 명하십니다. 그 목적이 놀랍습니다.
10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하나님의 완전하고 거룩한 집의 모습을 볼 때, 비로소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더럽고 일그러져 있는지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새 성전의 모든 율법을 단 하나의 단어로 요약해서 선포하십니다.
12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성전의 유일한 법, 유일한 정체성은 바로 '거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거룩한 성전의 완벽한 실체는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안에 하나님의 모든 영광, 모든 '카보드'가 충만하게 거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우리가 만나야 할 움직이는 성전,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놀라운 곳으로 이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새로운 성전이 되었습니다!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 삶과 교회의 유일한 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똑같이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거룩을 향한 갈망과 순종에 정비례합니다.
거룩은 단순히 주일에 교회 오는 착한 행실이 아닙니다. 거룩은 구별됨입니다. 세상의 방식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 모든 사람이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할 때, 하나님의 성전 된 나는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택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모든 사람이 음란한 농담을 즐길 때, 나는 그 자리를 피하거나 침묵으로 저항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나의 시간, 재능, 물질, 언어,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시기에 합당한 장소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결론: 영광의 임재를 사모하는 삶으로
결론: 영광의 임재를 사모하는 삶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의 가장 큰 비극이 성전 파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신 것'이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축복은 바로 그 '카보드', 하나님의 무게감 있는 실재가 돌아오시는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이 우리 안에 계속 머무시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바로 '거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빈집'을 꾸미는 일을 멈춥시다. 더 세련된 프로그램, 더 나은 시스템을 추구하기 전에, 먼저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부르짖읍시다. "주님,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의 영광, 주님의 '카보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옵소서."
내 삶의 성전, 우리 교회의 성전에서 하나님과 겸상하고 있는 우상들을 오늘 결단하고 제거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영역이 "지극히 거룩하리라"는 이 성전의 법에 다스림 받도록 우리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립시다. 그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의 무게감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인 없는 빈집 같았던 우리의 예배와 삶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실재적인 임재, 그 '카보드'의 무게감 없이 너무나 가벼운 신앙생활을 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제하여 주시고, 우리 마음과 교회를 정결케 하사, 주님의 영광이 기쁨으로 머무시는 거룩한 성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