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2 새벽기도회

고린도전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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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이 새벽, 잠자는 저희를 깨워 주님 앞에 나오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분주함과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먼저 주님을 찾게 하시니 이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찾는 자에게 새힘을 주신다고 하셨사오니, 오늘 이 새벽에 저희에게 하늘의 힘을 부여주시고, 주님의 위로와 은혜로 저희의 심령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육신이 연약한 이들에게는 강건함을, 마음이 상한 이들에게는 소망을 주셔서, 모든 기도 제목이 주님의 선한 뜻 안에서 응답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주님게 일천번제와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드리는 손길들을 기억하시고 각 가정의 필요와 기도의 제목을 주님의 때에 아름답게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Corinthians 14:26–33 NKRV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서론 – 교회를 세우는 예배 (약 4분)

어제 우리는 한나님께서 주신 모든 신령한 은사가 나만을 위한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도구임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렇다면 교회를 세우는 예배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의 예배 현장을 보여줍니다. 당시 고린도교회의 예배는 오늘날처럼 정해진 순서가 있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가정에서 모였고, 참여하는 사람도 많아야 서른 명 남짓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마음에 찬송이 떠오르면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가르치고 싶으면 가르치고, 계시나 예언이 있으면 나누는 식으로 자유롭게 예배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는 은혜롭고 활기찬 예배 같았지만, 문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 방언을 말하고, 통역 없이 이야기하고, 예언이 겹치면서 예배가 혼란스러워졌다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구체적인 지침을 줍니다.
첫째, 예배를 드릴 때에는 서로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27-28절에서 바울이 권면하길, 방언을 말할 때는 꼭 통역이 있어야 하고, 만약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조용히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배 중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공동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혼자만 은혜받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은혜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고 혼란만 남기기 때문입니다. 어제 ’덕을 세운다’는 말은 ‘집을 짓는다’는 의미라고 말씀을 나눴습니다. 바울은 예배를 마치 집을 짓는 과정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데는 서로 다른 역할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초를 놓고, 어떤 사람은 벽돌을 쌓고, 어떤 사람은 지붕을 얹습니다. 그 과정에 질서가 없으면 집은 온전히 지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역 없는 방언은 그 벽돌이 제자리에 놓이지 않고 엉뚱한 곳에 던져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때 집이 튼튼하게 세워지지 못하고 오히려 무너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통역없이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를 드릴 때는 질서 있고 겸손해야 합니다.
본문 29-32절을 보면
바울은 예언에 대해서도 중요한 원칙을 줍니다. 예언을 할 때는 두세 사람만 차례대로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29절). 내 마음에 떠오른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인지, 공동체 전체가 함께 기도하며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이 예언의 말씀을 공동체가 함께 듣고,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합한 말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생각과 감정이 하나님의 음성과 뒤섞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2절에서 바울은 매우 중요한 원칙을 하나 더 말합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이것은 예언이 자신이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흥분하여 이성을 잃은 채 외치는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언제나 자유와 절제 안헤서 행사 됩니다. 그러기에 내 영적 체험이 아무리 뜨겁고 강렬해도, 그것이 공동체를 무너뜨리거나 혼란스럽게 한다면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언의 은사도, 방언의 은사도 공동체의 질서와 다른 지체들의 은사를 존중하는 겸손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교칙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우리 안에 세우는 거룩한 훈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모든 지침의 가장 중요한 근거를 33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단순히 “질서를 잘 지키라”는 인간의 규칙이 아닙니다. 예배의 질서는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거울 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혼란과 다툼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와 조화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질서를 따라 예배 할 때, 그 예배는 단순한 형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예배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가 드러나고, 그로인해 공동체는 더욱 하나가 되고, 나아가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질서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예배 순서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 앞에 증언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3. 원리의 확장 – 삶이 예배가 될 때 (약 8분)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의 원리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서로 이해하고, 질서 있게 함께하며, 서로를 세워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품, 곧 **평화(샬롬)**에서 흘러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원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드리는 예배는 마치 영적 훈련소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말씀으로 삶의 방향을 다시 잡고, 하나님의 질서와 평화를 배우며, 서로를 세우는 법을 훈련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훈련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싸움, 진짜 예배는 교회 현관문을 나가면서부터 입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삶의 터전인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 여러 관계 속에서 여전히 갈등과 유혹과, 시험을 만납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받은 은혜와 훈련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몸, 우리의 하루, 우리의 모든 선택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히브리서 13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찬양뿐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선행과 나눔도 참된 예배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배우는 예배의 원칙은 단순히 예배의 순서를 잘 맞추기 위한 규칙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삶이라는 더 큰 예배 현장으로 보내시기 위해 준비시키는 훈련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안에서 질서를 배우고, 서로를 세워 주는 법을 익히는 이유는 교회 안에서만 은혜롭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밖,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는 바로 그 자리인 것이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뜨겁게 찬양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는지 보다,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얼마나 질서 있고 평화롭게 사는지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삶에서 질서를 세우고, 평화를 이루며,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 삶을 살 때, 그런 우리의 삶을 보며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소개하는 가장 강력한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4. 삶의 적용 – 평화를 만드는 하루의 예배 (약 10분)
그렇다면 이 예배의 원칙들을 가지고 오늘 우리의 삶의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겠습니까?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권면 속에서 네 가지 삶의 지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덕을 세우는 언어로 예배하십시오. ‘덕을 세운다’는 것은 집을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절망의 오두막을 짓고 있습니까, 아니면 희망의 궁전을 짓고 있습니까? 직장 동료가 실수했을 때,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무너진 폐허를 만드는 말입니다. 그러나 조용히 다가가 “괜찮아, 같이 해결해 보자”고 말하는 것은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기둥을 세워주는 덕의 언어입니다. 오늘 우리의 혀가 사람을 살리는 언어의 예배를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내면의 질서를 지키며 예배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은 온갖 염려와 분노, 불안으로 인해 늘 무질서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무질서하면, 우리의 말과 행동도 무질서하게 튀어나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이 내면의 혼돈을 다스릴 수 있는 ‘절제’의 능력을 주십니다. 오늘 감정이 요동칠 때, 그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질서의 예배입니다. 운전하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자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언성이 높아지려 할 때, 딱 3초만 멈추고 “주님 제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세요” 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 짧은 기도가 복잡하고 분주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셋째, 평화를 만들며 예배하십시오.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온도계가 아니라 온도조절장치로 부름받았습니다. 온도계는 주변 환경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뿐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화를 내면 나도 같이 화를 내고, 분위기가 차가우면 내 마음도 얼어붙습니다. 그러나 온도조절장치는 주변 환경을 자기가 원하는 온도로 바꿉니다. 오늘 가정에서, 직장에서 긴장과 갈등이 느껴진다면, 그 냉랭한 분위기를 따라가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곳에 하나님의 평화를 가져오는 온도조절장치가 되십시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용서할 때, 우리는 화평의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예배자가 될 것입니다.
넷째, 이 모든 것을 통해 품위 있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40절에서 이 모든 권면을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하라.”여기서 ‘품위 있게’라는 말은 비싼 옷을 입거나 고상한 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보기 좋게, 잘 짜인 모습으로, 존중할 만하게’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우리의 삶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시간 관리,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다른 사람을 대하는 존중의 태도가 바로 우리의 삶을 품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품위 있는 삶의 태도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아름다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5. 결론 – 당신의 하루가 예배입니다 (약 3분)

성도 여러분 진짜 예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의 하루 전체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발을 딛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평화와 질서가 임하는 예배의 처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품위 있는 삶이 되어 우리를 통해 복음이 선포되어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평화의 주님 말씀으로 우리의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오늘 우리의 말이 사람을 세우는 덕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질서를 세워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가 가는 곳마다 평화를 만들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님의 자녀다운 품위가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이 드러나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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