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용납하라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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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1:1-6
“나를 용납하라”
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2025. 9. 12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나를 용납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책망을 했는데요. 바울은 자랑을 하려거든 스스로를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교회를 자랑하라고 권면을 했어요.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특별히 이번에만 나 스스로를 자랑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바울이 한번도 스스로를 자랑한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만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좀 자랑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바울이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고 부탁을 해요. 자, 1절 같이 읽어볼까요? 1절 시작,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아멘.     용납하라는 말을 두 번 반복했죠. 용납하라, 용납하라. 제발 좀 용납하라는 거예요. 이 용납하라는 말이 헬라어로 “아네코마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참다, 견디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에요. ‘내가 정말 나를 자랑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이번에만 좀 자랑을 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너희가 좀 참아주라.’ 이런 말인 거죠. 
    자, 그러면 과연 스스로를 자랑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에 바울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이유가 뭘까요? 왜 굳이 스스로를 자랑하려고 할까?
    그 이유는 당연히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교인들의 신앙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죠. 너희가 따르는 거짓 교사들이 아니라, 내가 바로 너희가 따라야 할 참된 사도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부득불 스스로를 자랑하는 겁니다. 
    밑에 2절을 보면, 바울이 이것을 자랑하는데요. 바로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자, 2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아멘.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열심을 낸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 이 열심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젤로스” 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질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열심은 곧 하나님의 질투예요. 
    출애굽기 34장 14절에,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하나님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는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간혹 가다가 질투의 하나님이 되실 때가 있어요. 언제 질투의 하나님이 되십니까? 백성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때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면 그때 하나님이 질투를 하시고 불같이 진노하셔요.
    바울에게도 그러한 질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질투. 바울은 왜 질투를 합니까? 2절을 다시 보면, 바울이 중매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중매를 섰죠. 그러면 교인들이 정결한 처녀로서 그리스도만 섬기면서 살아야 되는데, 중간에 엄한 데로 빠져버린 거예요.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서 잘못된 길로 빠져버린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질투를 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사회나 헬라사회 공통적으로 딸의 중매는 아버지가 섭니다. 아버지가 다른 집안의 아버지랑 자녀들의 혼인을 약속하고 중매를 서요. 그러면 자녀들은 상대방 얼굴도 못 보고 결혼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그런 식으로 결혼을 했죠. 부모님들끼리 약속을 하고 결혼을 시키면, 얼굴도 모른 채로 결혼을 해요. 결혼식날 처음 얼굴을 보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아버지로서 중매를 선 겁니다. 그 전까지 교인들은 그리스도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어쩌면 늙어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를 모르고 살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버지를 잘 둬서, 아버지의 소개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겁니다. 바울이 그런 큰 역할을 한 거예요.
    자,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아직 그리스도와 고린도교회가 정식결혼을 한 것은 아니에요. 아직은 약혼만 한 겁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먼저 약혼을 하고, 1년 뒤에 정식으로 결혼을 하거든요. 그러면 그 1년 동안에 신랑이나 신부나 정결함을 지켜야 돼요. 만약에 신부가 간음을 하면, 파혼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혼이 되지 않도록, 아버지가 딸 간수를 잘해야 돼요. 딸이 엄한 데 가지 않도록 잘 지키고, 돌봐야 됩니다. 바울이 지금 그 역할을 하는 겁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깨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고, 방문을 하면서 교회를 돌보는 거예요. 무엇으로요?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질투로. 하나님의 그 질투의 마음으로 성도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면 잡아오고, 엉뚱한 일을 하면 책망해서 바로잡는 겁니다.
    바울이 바로 이것을 자랑하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그냥 내버려둘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하나님의 질투가 있기 때문에 너희를 내버려둘 수가 없다. 나의 이 마음을 자랑하니, 너희가 용납해라.’ 이런 말인 겁니다. 
    그러면서 밑에 3절을 보면, 바울에게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시키는 원인이 나와요. 3절에 보니까,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교회를 미혹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떠나 부패할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바울의 질투심이 타오르는 겁니다. 뱀은 곧 사탄이죠. 성도를 미혹하는 모든 것은 다 사탄의 계략이에요.     밑에 4절에 사탄이 성도를 미혹하는 것들이 나옵니다. 4절 다같이 읽어볼까요? 4절 시작,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사탄이 성도를 미혹하는 세 가지가 뭡니까?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이 세 가지죠. 바울이 처음에 전해준 예수와 영과 복음이 아니라,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을 거짓 교사들이 와서 전해줬어요. 누가 봐도 바울이 전해준 것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이상하게도 거짓 교사들의 것을 용납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4절 끝에 바울이 말하죠.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이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말을 하면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거짓 교사들의 말은 잘도 듣는구나.’ 
    성도들이 분별을 못하는 겁니다. 들어야 할 것과 듣지 말아야 할 것, 용납해야 할 것과 용납하지 말아야 할 것,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보이는 것에 마음을 뺏기는 겁니다. 하와처럼. 
    그래서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울의 질투심을 폭발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한번 바울이 스스로를 자랑합니다. 5절에 뭐라고 자랑합니까?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아멘.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데, 조금 교만하다 싶을 정도로 자랑을 해요. 지극히 큰 사도들이 많은데, 나는 그들과 비교해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나는 언변도 부족하고, 추천서도 없지만, 그대로 나는 꿇릴 게 없어. 나도 그들만큼 지극히 큰 사도야. 이렇게 아주 강력하게 자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거짓 교사들을 말하는 거예요. 자칭 사도들, 거짓 교사들, 뱀처럼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본인들이 지극히 크다고 자랑하는 자들. 그들에 비해서 내가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객관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합니다. 언변이 부족하죠. 그래서 밑에 6절에 보면,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이렇게 말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요. 하지만 지식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자, 6절 다같이 읽어볼까요? 6절 시작,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아멘.
    내가 말은 좀 부족해요. 하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아요. 이 지식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사람이에요.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서 사도로 세우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잘 알겠습니까, 아니면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이 잘 알겠습니까? 고민할 것도 없죠. 바울이 더 잘 알아요.
    바울은 자신이 그 지식을 아는데서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 가운데서 그 지식을 전파하고, 그 지식의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말씀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병자들을 치료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보여줬어요. 
    말을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학벌이 안 좋으면 어떻습니까? 재산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육신이 약하면 어떻습니까? 그런 것들은 부족할 수 있어요. 그런 것이 부족하다고 해서 사람 자체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본질에 있는 거예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예수를 알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 이것이 그 사람을 지극히 큰 자로 만드는 본질입니다. 바울은 언변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예수를 따르는 데 있어서는 1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데 1등 하시기 바랍니다. 뱀의 간계에 미혹되지 않고, 정결한 처녀로서 그리스도만을 따르고 섬김으로써 세상에서 제일 가는 예수쟁이들이 되어서, 이후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중매할 수 있는, 진실하고 깨끗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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