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41) 죄 의 심판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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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족하지 않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는 이유는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실족’이란 ‘넘어졌다’, ‘범죄했다’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인데, 이것이 그리 깊게 우리에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늘 넘어지고 범죄하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이 큰 화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실족이란 발을 헛딛었다는 의미인데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딛어서 넘어지는 정도의 실족이 있습니다. 그정도의 넘어짐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됩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그런 넘어짐도 매우 치명적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것으로 자기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자꾸 발을 헛딛어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그대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고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까? 그것을 방치한 채 살아간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인생에 외줄타기를 경험하는 순간에 큰 고비를 맞게 될 것입니다.
계단에서 실족하면 큰 화를 당하게 디고 외줄 위에서 ‘실족’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화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미리 이 말씀을 일러두시는 것이라고 의도를 명확하게 밝혀주셨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실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하여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성령’께서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알게 하는 것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하여 알려줍니다.
성경도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고로 성경은 성령이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하여 알려주는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 중에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이기에 콕 집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령이 하는 일 중에서 예언을 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지혜롭게 하는 등의 능력에 관심을 크게 갖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사실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죄란 무엇인가?’
몰래 먹는 초콜릿처럼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심각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좁은 생각을 부과하는 편협한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죄는 편견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 문화는 죄와 심판을 혐오 발언이라며 공격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혼란스러워하거나 당황하고 심지어 이러한 근원적인 성경적 진리를 부정하게 된다.
‘죄’에 관한 오해와 왜곡은 우리를 삶을 가장 망가뜨리는 근원이다.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 - 만들어진 신
(문제는)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의 죄에 대한 불건전한 집착이다. 그들은 그들의 책과 설교를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나 산, 푸른 숲, 바다와 새벽녘 새들의 합창을 찬양하는 데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가끔 언급되는 정도이고 기독교의 초점은 압도적으로 죄, 죄, 죄, 죄, 죄, 죄, 죄에 있다. 당신네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정말 끔찍하고 쪼잔한 집착이다. 샘 해리스는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통렬하게 비판한다. ‘당신들의 주된 염려는 우주의 창조주가 사람들이 옷을 벗고서 하는 짓 때문에 역정을 낼 것이라는 것이다. 당신들의 이 고상한 척 때문에 사람들의 불행이 매일 넘쳐 나고 있다.’
이런 주장에 세상은 점점 설득되고 있다. 마치 큰 댐이 무너져내리듯이 죄악의 큰 물결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기독교의 사상은 점점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위축시키는 비판에 직면하면, 사회 번영에 건설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심판의 교리에 대해 말하려는 목소리를 낮추고, 창조, 구속, 회복, 푸른 숲, 바다, 새벽녘 새들의 합창과 같은 더 기분 좋고 희망적인 진리를 선호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죄와 심판의 교리는 부정적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닫히게 하며, 기독교를 케케묵고 비판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과 생각들이 그것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외줄에서 떨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어떠한 동기로 그들이 세상을 향해 이런 이론을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그들의 말을 따르고 있는가?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사랑이다.
우리에게 죄에 관하여 의에 관하여 심판에 관하여 이렇게 열렬히 소개하는 이유는 한가지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동기가 인류에 대한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욕망’이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이야기 하고, 간음을 이야기 하며 사람들을 출교시키고 심지어 돌로 쳐 죽이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런 것들보다 근원적으로 중요한 것이 ‘나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인간이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내어드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인의 자리에서 자신이 내려오고 예수님을 앉게 해드리는 것이며, 이제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이것만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유일한 출구이며, 우리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실족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의에 대하여

의에 대한 내용도 우리가 깊게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세 가지를 다 깊이 다루면 너무 어렵기에 간단히 소개하자면 죄의 반대말이 ‘의’이다.
죄를 지으면 ‘죄인’이고, 죄가 없으면 ‘의인’이다.
그런데 왜 의에 대한 핵심 메시지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일까.
이것은 매우 난해한 문장이라서 정말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이 내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세상과 예수님은 ‘옳음’ 또는 ‘의로움’으로 대립했다. 둘은 서로의 의로움을 주장했고,
결국 세상의 재판은 세상의 ‘의로움’을 선언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이라는 결론을 받고,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판결이 옳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자기 오른편으로 부르셨는데 그 자리는 재판하는 권한을 가진 대상이 앉는 자리이다. 하나님의 재판 권한을 예수님께 위임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가장 ‘의로운’ 대상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부활’로 인하여 확증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죄에 대하여 왜곡하고 의로움에 대하여도 올바른 재판을 하지 못하는 세상은
의로우신 예수님께 심판을 받는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의미는 이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는 배경에 ‘세상의 임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성령은 우리에게로 보내져 이렇게 책망하는 일을 하시는데 누구에게로 보내시는가?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은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너희란’ 제자들입니다.
성령은 불특정 다수에게 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보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함께 모여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기에 힘썼던 사람들에게 먼저 성령이 보내집니다.
성령께서 먼저 그들에게 알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란 죄와 의와 심판에 관한 것이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설교
Acts 2:37–38 NKRV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스데반의 설교
Acts 7:53–54 NKRV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오늘 저는 성령의 감동으로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임금이 가르치는 내용을 인하여 죄인으로 죄책감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나타내시니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비록 연약함으로 인하여 때로는 넘어질 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우리를 붙잡아 주시기를 바라며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성령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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