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2025 0000 겔43:2

에스겔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 views
Notes
Transcript
Ezekiel 43:2 NKRV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서론: 세상의 영광 vs 하나님의 영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세상은 '영광'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영광의 순간"이라고 말하고, 큰 상을 받은 예술가에게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영광은 어떻습니까? 박수갈채가 끝나면 사라지고, 더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면 잊히는, 마치 안개처럼 가볍고 찰나적인 것입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와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광'은 그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된 '실체'였습니다. 그들은 그 영광을 잃어버렸기에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 완전한 절망 속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봅니다. 바로 떠나셨던 그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시는 장면입니다.
Ezekiel 43:2 NKRV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이 '영광'의 히브리 원어가 바로 '카보드'(כָּבוֹד)입니다. 이 단어의 뜻을 알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영광이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카보드'의 본래 뜻은 '무게감', '실체'입니다. 가벼운 세상의 영광과 달리, 하나님의 영광은 실재하는 무게를 가지고 우리를 압도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실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무게감'이라는 뜻을 가진 '카보드'가 오늘날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이는가 하는 점입니다. 혹시 '콜 하카보드'(Kol Ha'Kavod)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누군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진심을 담아 '콜 하카보드!'라고 외칩니다. 직역하면 '모든 영광을!'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정말 잘했어요!', '최고예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라는 최고의 찬사로 사용됩니다. 왜일까요? 무게가 있는 존재, 실체가 있는 존재는 존경받아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변하지 않는 무게, 이 진짜 영광인 '카보드'가 성경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여행했는지를 함께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성막에 머물던 영광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걸어오시고, 마침내 우리 안에 거하게 되기까지의 그 위대한 여정을 통해,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바로 '나' 자신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본론: '카보드'의 위대한 여정

1. 장소에 머물던 영광: 거룩하지만 멀리 있던 '카보드'

하나님의 영광, '카보드'의 여정은 한 '장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만들라 명하셨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의 '카보드'가 그곳에 강력하게 임재했습니다.
Exodus 40:34–35 NKRV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여 거룩한 제사장들조차 감히 서서 섬기지 못하고 엎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 작고 초라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집'을 짓고 함께 사시겠다는 약속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광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멀리 있는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나 거룩해서, 죄인인 인간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지성소를 가로막은 두꺼운 휘장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영광이 그들 가운데 계셨지만, 그들 '안에' 계시지는 못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은 죄 때문에 이 영광마저 잃어버립니다. 에스겔 10장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 동쪽 문으로,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을 완전히 떠나버리는 비극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이 떠난 빈집처럼, 이스라엘은 능력과 소망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환상을 보았던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장소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분의 계획은 단순히 건물을 재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2. 사람으로 걸어오신 영광: 휘장을 찢고 다가온 '카보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은, 건물 안에 갇혀있던 그 영광이 이제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직접 걸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John 1:14 NKRV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말의 원어(헬라어)는 '에스케노센'입니다. 이 말은 "장막을 치셨다", "성막을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지금 의도적으로 구약의 성막 사건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성막이라는 건물에 임재하셨던 하나님의 영광, 그 '카보드'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 성막' 안에 충만하게 거하신다는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영광은 구약의 영광과 어떻게 다릅니까?
첫째, 그 영광은 '다가오는 영광'이었습니다. 구약의 영광은 너무나 거룩해서 가까이 가면 죽었습니다. 법궤를 만진 웃사는 즉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그분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피하는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만져주셨습니다. 그분의 영광은 죄인을 밀어내는 영광이 아니라, 죄인을 끌어안아 정결하게 하시는 영광이었습니다. 두려움의 '카보드'가 은혜의 '카보드'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둘째, 그 영광은 '보여주는 영광'이었습니다. 구약의 영광은 휘장 뒤에 가려져 있었지만, 예수님의 영광은 제자들의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났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을 때, 성경은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고 기록합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를 말씀 한마디로 잠잠하게 하셨을 때, 제자들은 자연을 압도하는 그분의 '카보드' 앞에서 두려워 떨며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고백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의 기적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체, 하나님의 무게감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마침내, 그 영광의 절정은 가장 역설적인 장소에서 드러납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수치스럽고 연약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가장 위대한 영광, 곧 죄인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죽음을 이기시는 생명의 능력을 온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막던 거리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멀리서 두려움으로 영광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3.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광: 우리가 바로 살아있는 '카보드'

그리고 이제, '카보드'의 여정은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은혜로우며,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장소에 머물고, 사람으로 오셨던 그 영광이 이제는 어디에 거하실까요? 바로 **'우리 안'**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1 Corinthians 6:19 NKRV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이것이 복음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멀리서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그 영광을 직접 담고 살아가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질그릇처럼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몸이, 우리의 모임인 이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카보드'가 머무시는 지성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우리는 무한히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최근에 '파인'이라는 드라마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 잠들어 있는 수백 년 된 원나라 시대의 보물선, 그 안의 도자기들을 꺼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 펄에 파묻혀 있는 도자기 조각이 왜 수십, 수백억의 가치를 가집니까? 겉보기에는 그냥 낡은 그릇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알아보는 전문가의 눈에는 그것이 그냥 그릇이 아니라, 한 시대를 담고 있는 위대한 유물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그저 흙으로 빚어진 질그릇, 바닷속 도자기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시는 최고의 감정 전문가,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당신의 형상, 당신의 영광이라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을 담아두셨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의 외모나, 통장 잔고나, 세상의 평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 그분의 '카보드'를 담고 있기에 우리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 영광스러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담은, 영광스러운 존재다!"
둘째, 이것은 우리에게 '거룩한 부담감'을 줍니다. 만약 여러분의 집에 대통령이 방문해서 하루 묵고 가신다고 해보십시오. 집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먼지 하나 없도록 쓸고 닦고, 최고의 것으로 준비할 것입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데,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9절에 이어서 20절.
1 Corinthians 6:20 NKRV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나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함부로 죄의 자리에 갈 수 없습니다. 이 눈으로 더러운 것을 보고, 이 입으로 남을 험담하고, 이 손으로 죄를 짓는 것은, 마치 교회의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얽매는 율법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가장 귀한 분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사랑의 반응입니다.

결론: 영광의 통로로 살아간다는 것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카보드'는 성막과 성전이라는 장소에 머물렀습니다. 그 영광은 예수님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걸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님을 통해 우리라는 거룩한 성전 안에 영원히 거하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진리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카보드'를 의식하며 살아가십시오. "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계신다!" 이 사실을 매일 아침 선포하며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이 진리가 우리의 자존감이 되고, 유혹을 이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둘째, 서로를 '카보드'로 대하십시오.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형제자매가 누구입니까? 때로 연약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담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카보드'를 나타내십시오. 세상은 여전히 가볍고 헛된 영광을 좇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고 성도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영광, 하나님의 '카보드'가 어떤 것인지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직, 우리의 사랑, 우리의 거룩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냥 평범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담은,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이 자부심과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통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뜬구름 같았던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안에 거하시는 실제적인 '카보드'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내 삶이, 우리 교회가,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곳이 아니라, 그 영광의 무게를 세상에 드러내는 거룩한 통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