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함께하는 십자가 (2)

다해 연중시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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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고통에 대한 답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고통은 종교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입니다. 모든 종교가 그러하지요. 예를 들어 불교를 볼까요. 불교는 ‘생즉고’ 즉, ‘인생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다’라고 할 정도로 고통이 중요한 주제입니다. 고통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 불교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서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라고 말하지요.
십자가: 하느님의 아들께서 고통을 당하셨다 그리스도교는 어떠할까요. 우리의 답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 고통을 당하셨다. 삼위일체 하느님이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와 항상 함께 있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좋을 때, 기쁠 때도 함께 있기를 바라시고, 특히 우리가 힘들 때, 괴로울 때, 고통스러울 때에도 우리 옆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로해 주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시지만, 우리 인간과 똑같이 되셔서, 인간의 모든 고통을 몸소 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예시 예를 들어 볼까요. 저는 8월에 감마나이프라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남아있는 뇌종양 덩어리들을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머리를 열어서 하는 수술은 아니고, 강한 방사선을 뇌에 쬐서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마치 태양빛을 돋보기로 모아서 불을 피우는 것과 같습니다. 강한 방사선을 종양 부위에 집중시켜서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돋보기로 태양빛을 모을 때에도 돋보기를 움직이면 에너지가 흩어지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환자가 움직이면 에너지가 엉뚱한 데로 가서 멀쩡한 세포를 손상시킬 수도 있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맞습니다. 환자를 고정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고정을 하는데.. 네모난 틀을 씌우고, 네 군데에 나사못 같은 것으로 조입니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세게 조여야 겠지요. 말도 못하게 세게 조입니다. 살면서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고 감마나이프 받기까지 몇 시간 기다리는데, 가시관 쓰신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모든 병고를 대신 짊어지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그 고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상 말씀드리지만, 제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에 저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사람들 훨씬 많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비슷한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이 혼자가 아니며,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아무 잘못을 하지 않으셨지만 지도자들의 고발로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삶의 짐이 너무 나를 짓누릅니까. 예수님도 인간의 모든 죄악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오르셨습니다. 말 못하는 억압에 답답합니까.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박혀 꼼짝할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외롭고 불안하십니까. 예수님도 마지막에는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하실 정도로 외로우셨습니다. 누구든지 고통 중에 있다면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께 기도드리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나와 같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짐을 나눠지고, 그 곁에 있으면서 위로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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