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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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지는 사람들
찾아지는 사람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
5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8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는데, 그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겠느냐?
9 그래서 찾으면,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말하기를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할 것이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설교문
설교문
제목: 찾아지는 사람들
본문: 누가복음 15:1–10 (새번역)
1. 낯선 곳의 편안함
1. 낯선 곳의 편안함
여행을 하다 보면, 낯선 지역인데도 특별히 잘되는 식당이나 선술집이 있습니다. 연구해 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마치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낯선 땅, 낯선 공간인데도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자리처럼 따뜻하게 받아주고, 마치 오래 살던 동네 집처럼 들어가 앉아 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곳. 그것이 그 집이 사랑받는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죄인들, 세리들,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이 예수님의 곁에서는 낯선 나그네가 아니라, 집에 돌아온 듯한 평안을 경험했습니다.
2.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하신다
2.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하신다
예수님은 사회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셨습니다. 세리, 과부, 병든 사람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앉아 식사하셨습니다.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자리가 아니라, 존재를 받아들인다는 신호였습니다. “너는 내 사람이다, 나는 너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예화: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가 처음 교회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 “어서 오세요, 같이 밥 먹읍시다”라고 말해주자 눈물이 터졌다고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식탁에 앉는 경험은 배제되던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3. 세리 마태의 이야기
3. 세리 마태의 이야기
세리는 로마에 세금을 바치며 동족을 착취하는 자로 여겨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힌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군인의 보호 없이는 길을 걸을 수조차 없었고,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더 초즌>에서 마태는 이 고통을 잘 묘사합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고, 수군거림과 분노가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자기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함께하셨습니다.
4. 바리새인의 불평과 예수님의 비유
4. 바리새인의 불평과 예수님의 비유
바리새인들은 이런 예수를 보며 불평했습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과 어울린다!” 그들의 불평 앞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잃은 양을 찾는 목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
이 두 비유의 초점은 ‘열심히 찾는 사람’이 아니라, 잃어버린 대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누가복음 11:9 “찾아라, 두드려라”라는 말씀을 오늘 이 비유로 연결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애써 찾으면 된다고 이해하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찾는 자가 아니라, 찾아져야 하는 자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 분실된 존재입니다.
예화: 놀이동산에서 아이가 부모를 잃어버리고 울고 있을 때, 아이가 부모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부모가 끝내 아이를 찾아내어 품에 안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찾기시작하면 더 위험해집니다. 아이는 그자리에서서 그냥 우는것이 낳습니다. 경찰한테 발견되어지것이 낳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경찰서로 가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가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게 예수님의 비유가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5. 우리는 찾아지는 존재이다
5. 우리는 찾아지는 존재이다
신앙생활을 우리는 종종 “내가 하나님을 찾았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으신다고 말합니다.
양은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 없고, 동전은 스스로 주인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십니다.
“하나님 나라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잃은 인간을 찾아내시는 나라다.”
6. 찾아지는 태도
6. 찾아지는 태도
그렇다면 잃은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찾아지는 대상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태도는 찾아지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는 것,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귀를 열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화: 숲에서 길을 잃은 등산객은 혼자 움직이는 대신 제자리를 지키며 구조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살 길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내가 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가셔서 길을 내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7.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말의 의미
7.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말의 의미
우리는 종종 “믿음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의 깊은 의미는 사실 “하나님께서 나를 찾았다는 확신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예화: 남여가 연예하다가“사랑을 잃었다”고 말할 때, 사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잃은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8. 세리와 죄인의 가능성
8. 세리와 죄인의 가능성
바리새인들은 자기 믿음을 괜찮다고 여기지만, 세리와 죄인들은 스스로 믿음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옵니다.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이들이었기에,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찾아주심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화: 한 노숙인이 교회 문 앞에서 “나 같은 사람도 들어가도 됩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실 때였습니다. 우리에게 보내신것보다 하나님이 그를 찾으신것이 중요합니다.
9. 비유의 두 관점
9. 비유의 두 관점
세리와 죄인들에게는 오늘 이야기가 ‘찾아짐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에게는 ‘찾은 것을 기뻐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목자는 잃은 양을 찾은 기쁨으로 잔치를 열었고, 여인은 드라크마를 찾아 기쁨을 나눴습니다.
예화: 잃어버린 반려견이 며칠 만에 돌아왔을 때, 그 기쁨은 단순히 ‘개를 찾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가 돌아왔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해야합니다. 누가 잃어버린 자인가? 세리와 죄인도 잃어버린자입니다. 바리새인도 잃어버린자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아들도 탕자이지만, 큰 아들도 사실은 탕자였습니다.
10. 하나님은 잃은 것을 반드시 찾으신다
10. 하나님은 잃은 것을 반드시 찾으신다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의 비유는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지치지 않고 끝까지 찾으십니다.
11. 성찬과 차별
11. 성찬과 차별
예수님은 잃은 자와 함께 음식을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성찬에서조차 차별을 두었습니다. 자격 없는 자는 떡을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찬은 오히려 “나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고 자책하는 이들에게 직접 빵을 떼어주신 사건이었습니다.
12. 마태의 회복
12. 마태의 회복
세리 마태는 동족에게 미움을 받고,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습니다. 그가 공동체안에 들어왔을때 제자들은 수군그렸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하려다가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찾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구원은 개인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받아내야 합니다.
예화: 입양된 아이가 진정한 가족이 되려면 법적 신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식탁에서, 일상에서, 웃음과 눈물 속에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마태는 그렇게 공동체 안에서 자리 잡았습니다.
13. 마지막 질문 – 누가 죄인인가?
13. 마지막 질문 – 누가 죄인인가?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죄인인가?”
첫째, 세리와 죄인이라 불린 사람들입니다.
둘째, 마음의 변화가 필요한 종교인들입니다.
결국 둘 다 죄인입니다. 둘 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대상입니다.
맺는말
맺는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믿음의 태도는 찾아지기를 허락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찾아내셨을 때, 하나님 나라는 잔치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스스로 물어봅시다.
나는 하나님께 찾아진 존재인가?
나는 다른 이들이 하나님께 찾아지는 것을 기뻐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