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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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존귀한 우리

본문: 누가복음 13장 10-17절

찬송: 394장 이 세상의 친구들

임재의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가요? 세상은 돈 많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 건강한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다. 반면에 가난하고, 힘없고, 병든 사람은 무시하고 외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 속에는 18년 동안 꼴아박혀 살아온 한 여인이 나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아무 쓸모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여인을 보시는 눈빛은 달랐습니다.
안식일, 회당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구부러진 우리를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1-12절 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3:11–12 NKRV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8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한 아이가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세월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여인은 허리를 펼 수 없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허리를 펴지 못한채 산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굽어진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도 굽어지고, 영혼도 굽어지고, 소망도 삶의 모든 것이 굽어져 버린 것입니다. 땅만 바라보며 사는 절망적인 삶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서, 세월의 아픔에 상처받아서, 마음이 지치고 짓눌린 적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향해 두 손 들고 기도할 마음도, 하늘을 우러러볼 믿음도 잃어버리고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보시고"라는 12절의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회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회당장도 있고, 바리새인들도 있고, 율법학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보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지만, 예수님은 함께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18년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았지만, 예수님만은 그 여인을 주목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세상이 외면하는 사람을, 세상이 포기한 사람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을 더욱 사랑하시고, 더욱 안타까워하시고, 더욱 애타게 찾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마음이 무너져 있고, 아무리 절망 속에 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사랑의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부르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야, 이리로 오너라."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아브라함의 딸이라 부르신다" 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3:16 NKRV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18년 동안 허리가 굽어져 살아온 이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여인을 뭐라고 불렀을까요? "저 허리가 굽은 여자", "저 부정한 여자", "저 쓸모없는 여자"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혹시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마 18년 동안 따뜻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그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허리가 굽은 여인을 향해 "아브라함의 딸"이라 부른 것은 아주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호칭의 근거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창세기 1장 27절 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8년 동안 등이 굽어져 살던 이 여인도, 세상이 무시하고 외면하던 이 여인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였습니다. 외모가 어떻든, 몸이 어떻든,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것 자체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부름받을 수 있는 근거였습니다.
그리고 "딸"이라는 호칭이 얼마나 정겨운 말입니까?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부르는 말입니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를 부르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18년 동안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던 이 여인을, 하나님의 소중한 딸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이 우리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때로는 우리 자신도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야", "나는 늙고 쓸모없어", "나는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우리 남성들에게는 "아브라함의 아들", 우리 여성들에게는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 "나의 소중한 딸", "나의 귀한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부르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존귀함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와같은 것은 세월이 지울 수도 없고, 병이 훼손할 수도 없고, 가난이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무리 없어도, 우리가 아무리 늙고 병들어도, 우리가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믿음의 가문에 속한 귀한 주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름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세상의 평가가 우리의 진짜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이름이 우리의 진짜 정체성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보든, 하나님은 우리를 주님의 소중한 자녀로 보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이 고백을 해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다. 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딸, 아브라함의 아들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셋째,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신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본문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3:15–16 NKRV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회당장이 화를 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14절)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주 명쾌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도 안식일에 소나 나귀에게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런데 18년 동안 고통받은 이 여인은 어떻단 말이냐?"
얼마나 가슴 아픈 현실입니까? 입니다. 동물의 목마름은 즉시 해결해 주면서, 18년간 고통받은 사람의 아픔은 하루 더 참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식만을 따지는 사람들의 무서운 모습입니다. 규정은 지키되 사람은 외면하는 것입니다. 제도는 소중하게 여기되 사람의 아픔은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사람이 규정보다 더 소중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픔이 안식일 규정보다 더 급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의 "합당하지 아니하냐" 는 말씀에 주목해 보십시오. 원어로는 "마땅하다",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는 고통받는 사람을 치유해 주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께는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것이 하나님께는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즉시 달려와 치유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진정한 안식일은 사람이 진정한 안식, 즉 쉼을 얻는 날입니다.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굽어진 사람이 곧게 펴지는 날입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소망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받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려고 하십니다. 마음의 안식, 영혼의 안식, 몸의 안식을 주려고 하십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들을 벗겨 주시고, 참된 쉼을 주려고 하십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8년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여인을,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당신의 소중한 자녀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나이가 들어도, 몸이 아파도, 가진 것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존귀합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도초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귀한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감사합니다.
18년 동안 굽어져 살던 한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 불러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보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존귀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백합니다. 때로 우리도 형식과 주변 사람을 의식하는 것에 매여 굽어진 이웃들을 외면했습니다. 사람보다 관례를, 사랑보다 판단을 앞세웠던 우리를 용서해 주옵소서. 회당장처럼 차가운 마음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외면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결단합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겠습니다. 마음이 굽어진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습니다. 상처받고 소외된 분들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바라보겠습니다. 서로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히 여기겠습니다.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이 들고 병들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하며 당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간구합니다. 우리 중에 마음이 굽어져 있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으로 일으켜 세워주옵소서.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굽어진 모든 부분을 주님의 손길로 곧게 펴주시옵소서.
18년 굽어진 여인이 한순간에 곧게 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듯이, 우리도 주님 안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회복되게 해주옵소서.
사랑하는 아버지, 축복해 주옵소서. 우리 모든 성도들의 삶과 건강을 축복해 주옵소서. 몸이 약한 분들에게는 치유의 은혜를, 마음이 상한 분들에게는 위로의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서 살아갈 믿음과 용기와 소망을 주시고, 서로 사랑하며 굽어진 세상을 일으켜 세우는 아름다운 중앙교회가 되게 해주옵소서.
오늘 받은 은혜와 감동이 우리 마음 깊이 새겨져서, 평생 존귀한 우리로 살아가는 힘이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고, "존귀한 우리"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8년 동안 굽어진 채 살던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 부르시며 존귀하게 여겨주신 주님, 우리도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 하나님 앞에서는 소중하고 존귀한 자녀들임을 고백합니다. 그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한 헌금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십일조로 드리는 분들을 축복합니다: [이름들 호명]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순종의 마음을 주님이 아시고, 창 1:27 말씀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로서 더욱 복된 삶을 살게 해주옵소서.
감사헌금으로 드리는 분들을 축복합니다: [이름들 호명] 받으신 은혜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그 감사가 삶 가운데 더욱 넘치게 하옵소서. 범사에 감사하며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해주옵소서.
선교헌금으로 드리는 분들을 축복합니다: [이름들 호명]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귀한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선교지의 굽어진 영혼들이 일어서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옵소서.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귀함을 깨닫게 해주옵소서.
주정헌금, 구역헌금, 성미를 드리시고 봉사로 섬기시는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크고 소중한 헌신임을 아시고 갚아주옵소서.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로 세워주옵소서.
생일감사헌금으로 드리시는 분들을 축복합니다: [이름들 호명] 귀한 생명으로 한 해를 더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복된 날들이 계속되게 하시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고 기쁘게 살아가게 해주옵소서.
성전꽃꽂이 헌금으로 드리시는 분들을 축복합니다: [이름들 호명]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정성어린 마음을 주님이 기뻐하시고 복 주옵소서. 꽃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시고, 향기로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해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모든 헌금이 하나님 나라 확장에 귀히 쓰임받게 하옵소서. 복음이 전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귀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헌금을 드리는 모든 성도들의 삶과 건강을 축복해 주옵소서.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굽어진 부분이 있다면 주님의 손길로 곧게 펴주시고, 마음이 상하거나 지친 분들에게는 새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믿음과 용기를 주시고, 서로를 존귀히 여기며 굽어진 이웃들을 일으켜 세우는 아름다운 중앙교회가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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