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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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예배
옷과 예배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에서 목사님이든 전도사님이든, 장로님이든 남자들은 예배 때가 되면 정장을 입고, 여성분들도 단정한 복장으로 오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저도 집에서야 편하게 입지만, 이렇게 말씀전하는 자리에서는 지금처럼 양복을 입고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해드리는 것처럼 옷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때와 장소를 구별해서 저희가 옷을 입기 마련인데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미국인 교회를 처음 갔을 때가 조금 충격이었던 것이, 그래도 교회를 가니까 양복을 입어야지 하고 갔는데, 가보니까 양복 입은 사람이 저밖에 없는거예요. 여성분들은 아주 휘황찬란한 꽃무니가 그려진 옷을 입고, 남자분들도 대부분 반팔 와이셔츠정도만 입지 저희가 정장하면 생각나는 그런 옷은 저 한 명 밖에 없는거에요. “이게 어찌된 일인가...”하고 있으니 거기서 담임하시는 안성천 목사님이 오셔서 인사드리니까 목사님도 정장을 안입으셨더라구요.
알아보니까 미국에서는 교회에서 딱히 정장을 입는 일이 거의 없다고, “전도사님 보기만 해도 더워 죽겠으니까 다음부터는 그렇게 입지 마세요”라고 하실 정도로 복장에 대해서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미국인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처음 말씀을 전할 때 반팔 반바지를 입고 갔었거든요, 근데 끝나고나서 목사님이 조용히 부르시더니 “전도사님, 미국인 교회가 후리하긴 해도 단상에 올라가는 성경봉독, 기도, 설교는 긴바지 정도는 입고 해요.”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또 드레스 코드가 틀려먹었구나 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옷이라고 하는 것은 때와 장소에 맞춰서 저희가 구별해서 입기 마련입니다. 교회에 수영복 입고 올 수 없죠, 반대로 수영장에 양복입고 갈수도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지가 바로 이 옷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제사장의 옷 수여식
제사장의 옷 수여식
오늘 본문말씀은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4절 말씀처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대로”라는 구절 이외에는 거의 출애굽기 29장의 말씀과 평행본문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저희 입장에서는 거의 복습에 가까운 내용이죠.
여기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 옷을 입히는 장면입니다.
먼저 6절에서는 아론과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깨끗하게 씻기고,
사진과 함께 보려고 하는데요, 7절에서 사진에 보이시는 11번의 속옷과 띠를 먼저 입힙니다. 그리고 9번에 나오는 청색 겉옷과 7번의 에봇을 입히고, 5번에 등장하는 12개의 보석을 박은 흉패를 가슴에 붙이고 그 안에 우림과 둠밈, 하나님께 뜻을 여쭐때 쓰는 돌인데 흉패 안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9절에 머리에 관을 씌웠다, 라고 하는데 2번에 보이는 저희가 아는 중동지방의 터번이라고 불리는 그런 관에 1번으로 가리키는 금패를 붙여서 씌웠습니다.
13절에 보시면 아론의 아들들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입혔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이렇게 번거로운 옷을 입었을까요? 저기가 한 겨울도 아니고 사막 기후가 있는 중동이었는데, 광야에서 저런 옷을 입히면 안그래도 더운데 더 더울 것 같아요.
사실 제사장들이 입는 옷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말씀에도 계속해서 옷에 대해서 “거룩”이라는 단어를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오늘 9절 말슴에도 보시면 저 관이 바로 거룩한 관,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거룩한 의복을 입혔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의 저희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다만 저희가 입는 거룩한 옷은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양복도 아니고, 제사장들이 입던, 저 보기만 해도 더워보이는 옷도 아닙니다. 저희가 입을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사도바울은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어서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었다는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서 이전 삶과 똑같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모인 여러분과 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들입니다. 이 옷은 때와 장소, 혹은 제사장 처럼 지위를 구별하는 옷이 아니라 바로 저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이기를 나타내는 새 삶의 옷입니다. 언제나 저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리스도를 옷입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한 회막
거룩한 회막
또 한가지 오늘 제사장 위임식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바로 성막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시면 관유, 거룩하게 하는데 쓰이는 기름을 가져다가 성막에 바르고,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서 거룩하게 하고,
심지어 제단에는 일곱번 뿌리고 제단과 관련한 기구들과 불두멍에도 기름을 발라서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5절에 보시면 수송아지를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발라서 깨끗하게 하고, 제단 밑에 또 쏟아서 제단을 거룩하게 하라, 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사실 이 피를 뿌린다는 것, 기름을 바른다는 것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저랑 이주혜 전도사님이 사는 사택에도 고기를 구우면 기름이 온 사방에 튀어서 얼마전에 에어프라이어를 샀거든요. 왜냐하면 한번 기름이 튀면 바닥이 기름져져서 닦는데 엄청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굳이 기름과 피를 뿌려서 더럽게 만들고서는 그것이 거룩하게 하는 것이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여기서 거룩하다, 깨끗하다라는 말은 당연히 위생적으로 깨끗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속죄하여서 거룩해지는 것과 같이 성막과 제단도 기름과 피로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상태, 죄와 흠이 없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의식이 필요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에도 청소팀으로 섬겨주시는 분들이 열심히 청소해주시는 덕분에 저희가 교회에서 위생적으로 깨끗하게 예배드릴 수 있어서 항상 감사한 마음도 있는데요,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게 될 때에는 청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교회에 모인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교회로서 자리잡지 않으면, 아무리 새 건물처럼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먼지와 얼룩이 가득한 교회가 되고 말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게 될 때에, 교회가 부패한다, 썩는다 라고 표현을 합니다. 교회를 더럽히는 것은 먼지나 쓰레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신실한 마음과 거룩함이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시록에서 예수님의 신부가 될 교회는 바로 옳은 행실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만안교회에 함께 모여 기도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행실로 거룩한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아들들의 몫
모세와 아론과 아들들의 몫
29절에는 모세가 숫양의 가슴 고기를 흔들어서 요제, 제물을 흔들어서 바치는 제사를 드린 후에 그것을 모세의 몫으로 가져갔다는 말씀이 등장하구요,
31절에 보시면 아론과 그 아들들은 요제로 바쳐진 고기를 삶아서 먹고 바쳐진 떡도 함께 성막 안에서 먹으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32절에 보시면 남은 떡과 고기는 어디다가 쟁여두는 것이 아니라 불사르고, 일주일 동안 위임식을 진행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회막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아라, 그래야 죽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35절에 전합니다.
사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나중에는 레위인들에게 이 성막과 제사와 관련한 직책이 맡겨져서 이들은 농사를 짓거나 품꾼이 될 수 없고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바쳐진 것들만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 보면 위임식에서 쓰여진 고기와 떡은 안그래도 자기들이 일해서 먹을 수가 없는데 남은건 버리라고 말씀까지 등장하죠. 나름 백성들이 고생해서 키운 작물과 가축으로 만든 고기와 떡인데, 아깝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백성들이 제사장들에게 자신들의 몫의 일부를 가져오는 것과 제사장들이 일하지 못하고 이 제물들에 의존하는 것은 이 백성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사실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제사장들도 살 수 없는 이 구조를 통해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야만이 사람의 영과 육이 살 수 있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치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 광야에서 백성들이 생존한 것처럼,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베푸신 것에 일부를 받아서 살고, 백성들은 또한 자신의 소유 중의 일부를 제사로 바치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날의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가 직장을 다녀서 일을 하는 등으로 저희가 돈이라는 형태로 받아서 먹고 살지만 저희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기억하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포도나무고, 저희가 가지라고 말씀하시며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저희 안에 거하실 때에 열매를 맺으니 예수님을 떠나서는 저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없이도 육신은 살아갈 수가 있겠죠. 육신은 일하고 받은 돈과 그걸 써서 물건을 사고 집에서 살고 할 수 있지만, 저희의 영혼은 예수님께 붙들리지 않으면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또한 예수님께서 저희의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처럼,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하도록 하는 생명의 떡이 되셔서 저희로 하여금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오늘 함께 기도하시는 중에 바로 저희가 먼저는 말씀이시요 사람의 영혼을 살리시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기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희의 육신은 일하고 돈을 받아서 지불하는 것으로 살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를 영생하게 하시는 것, 저희의 영혼을 살리셔서 부활하게 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을 기억하며, 부활을 믿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기도
살아계셔서 지금까지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주님께서 그리스도로 옷입히셔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고, 또한 옳은 행실로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며,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부활의 삶을 살게 하심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심을 저희가 믿습니다. 오늘 아론과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심과 같이 저희가 이 세상가운데에서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어서,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품고 세상을 살며,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삶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