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온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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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1:7-12
“해 온 그대로”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2025. 9. 15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해 온 그대로”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본문에 이어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거짓교사들을 고발하는 내용이 이어지는데요.
지난 시간에서 바울이 참다 못해서 자신을 자랑했죠. 자신을 자랑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랑했어요. 뭐라고 자랑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들을 아끼고 있다고 그랬죠. 그리고 내가 지극히 크다고 하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없고, 또 내가 말은 좀 부족해도 지식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과장이나 거짓도 없어요. 이 말 그대로 바울은 하나님의 열심을 가진 사람이고, 지극히 크다고 하는 자칭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없고, 또 지식에 있어서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거예요. 그것도 무려 1년 6개월 동안이나 머물면서 지극정성으로 전한 겁니다.
제가 예전에도 한번 말씀을 드렸지만, 헬라사회에서는 철학자나 웅변가들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지식으로만 먹고 살아요. 가장 좋은 것은 누군가로부터 후원을 받는 겁니다. 부자 스폰서가 생활을 책임져 주고, 철학자는 자기 지식을 쌓고 또 강론하는 일에 집중하는 거죠.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고요. 대부분은 광장이나 길거리에서 공개강론을 해서 그 자리에서 후원해주는 돈을 가지고 생활을 합니다. 일종의 버스킹을 하는 거죠.
이것이 헬라 사회의 철학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교회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어요. 1년 6개월이나 복음을 전하면서도 돈을 한 푼도 안 받았어요. 고린도인들이 생각하기에는 돈을 받아야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돈을 안 받으니까 의심을 하는 겁니다.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까 안 받는구나. 복음이 돈을 받을 정도로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보구나.’
이런 식으로 바울을 의심하고 복음을 의심해요. 그래서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오늘 본문에서 짚고 넘어가는 겁니다. 자, 오늘 본문 7절 봐 볼까요? 7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바울이 하도 억울해서 지금 하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복음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값없이 전해줬는데, 이게 죄냐 이거예요. 하나님의 복음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인데, 이것을 그냥 공짜로 주면 고마워할 것이지, 왜 나를 의심하고 죄인 취급을 하냐는 겁니다.
보물을 공짜로 주면 고마워하는 게 당연한데, 고린도인들은 의심을 해요. ‘어? 보물을 왜 공짜로 주지? 이거 이거 가짜라서 공짜로 주는 거 아니야?’ 이렇게 반응을 한다는 겁니다. 이게 기가 막혀서 바울이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ㄴ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그러면서 8절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아멘.
바울이 기본적으로 자기가 일을 해서 선교비를 충당을 했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해도 부족해요. 왜냐면 자기 혼자 쓰는 게 아니고, 선교팀이 있잖아요. 바울 옆에 동역자들이 있단 말이죠. 디도, 디모데, 실라, 누가 등등, 여러 명의 동역자들이 함께 있어요. 이 사람들도 같이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만약에 일을 했더라도 벌이가 좋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항상 바울이 선교비가 부족했어요. 그러면 이 부족한 것을 무엇으로 충당을 하느냐? 교회의 후원으로 충당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빌립보 교회를 비롯한 마게도냐 교회들이 후원을 해줬어요. 그리스 북부지역을 마게도냐 지역이라고 한다고 했죠. 마게도냐 지역에 있는 교회가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베뢰아 교회가 있어요. 이 교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바울에게 후원을 해준 겁니다.
바울이 이것은 받았어요. 마게도냐 교회들이 준 것은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는 안 받는 것이죠.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왜 마게도냐에서는 받고, 고린도에서는 안 받을까?
우선 바울은 복음 전파자로서 마땅히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말을 했냐면, “신령한 것을 뿌리는 사람은 육신의 것을 거둘 권리가 있다”고 그랬어요. 이 말이 고린도전서 9장 11절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1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이게 무슨 말이에요? 신령한 복음을 전하는 자는 육신의 것을 거두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에 과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들로부터는 거리낌 없이 후원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게서는 받지 않았어요. 후원금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고린도인들이 지식에 합당한 대가를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게도냐 교회가 후원금을 주는 거하고, 고린도교회가 후원금을 주는 것이 성격이 달라요. 마게도냐 교회들은 바울의 헌신에 감사해서, 사역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라고 주는 것이고. 고린도 교회는 복음을 가르쳐준 것에 대해서 복음에 대한 대가로 주는 겁니다.
이게 어떤 차이인지 아시겠죠? 고린도교회는 복음에 대한 감격과 감동으로 주는 게 아니라, 마치 서비스를 받고 거기에 대해서 팁을 주듯이, 지식에 값을 매기고 비용을 지불한다는 겁니다. 복음을 생명처럼 여기지 않고,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는 후원금을 받지 않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죠?
바울은 후원금을 받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데,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다 받는 게 아니고, 상황을 따져서 받을 때도 있고, 안 받을 때도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마게도냐 교회들이 준 것도 안 받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마게도냐 교회들이 형편이 어려웠거든요. 핍박을 많이 받고 있었고, 또 가난한 성도들도 많았어요. 그런 어려운 가운데서도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보내준 겁니다. 이게 얼마나 미안했던지, 오늘 본문 8절 끝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했죠.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내가 뻔히 저들의 형편을 아는데, 그런데도 저들이 후원금을 보내줘서 내가 받는 것이, 마치 내가 저들의 돈을 빼앗은 것같은 그런 미안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보내준 건데, 안 받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그 받은 것을 가지고 사역에 충당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언제 받았냐면,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고 있을 때 받았어요. 오늘 본문 9절에 그 내용이 나오죠.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물질적으로 보충을 해줬어요. 그런데 정작 고린도교회 것은 안 받았다는 겁니다. 왜 안 받느냐?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안 받았어요. 누를 끼치지 않고, 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한 것이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조심하리라고 말을 합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서운하고 섭섭하고 해도, 너희들에게는 내가 앞으로도 계속 받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세계를 다니면서 똑같이 값없이 전달했어요. 그러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후원을 해주면 그것으로 충당을 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바울이 사역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고린도는 특수한 지역이라서 이걸 받았다가는 복음에 값이 매겨질 수가 있어요. 복음을 갈망하고, 정말 복음에 감격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돈만 주면 쉽게 사서 들을 수 있는 하나의 상품인 것처럼 취급될 염려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아무리 생활이 쪼들려도 고린도교회에는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로부터는 내가 돈을 탈취한다고까지 생각을 하면서도 마게도냐 교회들의 도움은 받을 지언정, 고린도교회의 도움은 조금도 받지 않았어요.
이것은 다시 말씀드리만, 교회를 차별해서가 아니고, 교회를 사랑해서, 교회 안에 복음에 대한 올바른 개념이 잡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에 바울이 이렇게 선언을 하죠. 12절을 다같이 읽어볼까요? 12절 시작,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아멘.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오늘 말씀 제목이죠. 해 온 그대로. 받아도 되는 곳에서는 받고, 받지 말아야 하는 곳에서는 안 받고. 이 원칙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해나가겠다는 겁니다.
사실 웬만한 사람이면,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나한테 돈을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 있나? 내가 돈을 안 받아줘서 성도들이 시험에 든다는데, 인간적으로 받아줄 수도 있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이런 식으로 타협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바울은 전혀 타협하지 않습니다. 해 온 그대로. 신념을 지켜요. 혹시라도 내가 타협을 했다가는 거짓 교사들에게 기회를 줄 수가 있거든요. 바울은 조금도 틈을 주기가 싫은 겁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끊어버리기 위해서, 앞으로도 해 온 그대로 하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우리는 해 온 그대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 그대로, 사도들의 가르침 그대로, 성경 말씀 그대로, 신앙의 본질을 지켜야 돼요.
본질이 아닌 것에서는 타협을 할 수도 있겠죠.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과거에는 설교자가 한복을 입고 설교를 했지만, 지금은 양복을 입고 하는 것처럼. 또 과거에는 풍금 하나 놓고 찬양을 했지만, 지금은 기타도 있고 드럼도 있는 것처럼. 본질이 아닌 것에서는 바뀔 수가 있어요.
하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바뀔 수가 없는 겁니다. 바울에게는 후원금을 받는 문제가 본질과 연결된 문제였어요. 물론 이 문제가 각 교회의 상황에 맞게 변동될 수는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게는 안 받았지만 마게도냐 교회들에게는 받은 것처럼, 각각 다르게 적용될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 적용되는 원칙이 바뀌지는 않아요. 받아도 되는 곳에서는 받지만, 받지 말아야 하는 곳에서는 절대로 받지 않아요. 이 원칙을 지켜야 되는 겁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원칙들이 있을 겁니다. 주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든지, 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든지, 전도해야 한다든지. 믿음의 선배들이 물려준 이러한 좋은 원칙들과 전통들이 우리에게도 있어요. 이것들을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잘 지켜나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본이 되고, 그 자녀들에게도 본이 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