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그리스도인

성경과 오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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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과 민족성

젊은 사람들이 저희 나라를 부르는 말 중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옥을 뜻하는 영어인 “헬”과 조선을 합쳐서 마치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지옥과 같다, 라는 뜻인데요. 특히 청년층이 느끼는 이 나라는 마치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고, 남녀 갈등, 세대 갈등을 아주 크게 느끼는 세대다 보니 결혼도 하지 않고 취업도 하지 않고 그냥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등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대변하는 씁쓸한 말인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저도 예전에는 뭐만하면 헬조선, 헬조선 거리면서 굉장히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것이 기억납니다. 특히 제가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공익으로 일하고 있을 때,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게 다른 공익이나 아니면 장애인 이용자들이 아니라 거기 일하고 있던 사회복지사들이었어요. 잠깐 휴대폰으로 시계 본 거 가지고 막 혼을 내고 신고한다고 하질 않나, 머리를 깍두기처럼 깎고 귀에다가 볼펜 꽂고 다니는 꼰대같은 팀장이 속을 너무 썩여서, 그 때마다 “이 젊은 남성들의 노동력을 희생시키는 헬조선을 탈출하고 말거야!”라는 생각을 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진짜, 탈출할 기회가 생겼죠.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근데 미국에 여행으로 간게 아니라 아예 거기서 장기간 살게 되니까, 한국을 나가서 살아보니까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되더라구요. “아, 내가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구나” 다른 나라에 가서 잘 적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제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적응하려고 해도, 저는 그냥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어도 한국어고,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으로도 한국인이고, 사람 간에 대화할 때 예의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도 한국인으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민족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안상우, 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지만, 동시에 저를 구성하는 것 중에 하나로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 민족성이 포함되는 겁니다.

민족성

이처럼 어떤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서 자라왔는지, 어떤 나라에서 자라왔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지 등등 여러 경험들을 통해서 저희는 “내가 누구인지”를 구성하게 되는데요. 이것을 저희는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한국인, 이라고 하는 특성은 그 정체성 중에서도 특히 민족 정체성, 다른 말로 민족성이라고 불리는 것이죠.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어떤 민족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그 사람의 민족성입니다.

이방 민족성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도, 또 에베소서를 쓴 사도 바울도 이런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Philippians 3:5–6 NKRV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특히 바울의 경우는 아주 독실한 유대인으로서의 민족성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에 등장하는 것처럼 교회를 박해할 정도로 열심이고 율법으로 따지자면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아주 완벽한 유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했던 사람이었습니다.
Ephesians 2:11–12 NKRV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리고 전도의 대상이었던 이방인들도 각자가 자기의 민족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다만 유대인의 시선에서는 그들 모두가 육체로 이방인이고, 할레받지 않은 무리라고 불리는 사람들인 것이죠. 왜냐하면 이스라엘, 유대 민족 밖에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때부터 내리신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죠.

하나님의 권속

이렇게 본문 말씀은 두가지 민족성으로 구별합니다. 하나는 할례 받은 유대인, 다른 하나는 할례 받지 않는 다른 모든 이방 민족입니다. 그렇다고 이방인들이 막 인종차별을 받았다, 라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유대인들이 굉장히 민족주의적인 특성이 강하다 보니까, “우리끼리,” “우리 유대인들끼리”만 지내려는 특성이 드러나는 겁니다. 아무튼 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아주 분명한 민족적인 구별이 있었다는거예요.
Ephesians 2:13–14 NKRV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서로 나뉘었던 민족들이 가까워지고, 예수님의 육체로 민족간의 막혀있던 담을 허셔서, 예전에 둘이었던 것을 하나로 만드셨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뉘어졌던 것을 허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는 겁니다.
Ephesians 2:19 NKRV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어떤 하나입니까? 바로 외국인도 아니고, 여행자도 아니고, 성도들, 거룩한 사람들과 똑같은 시민이고,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가정 안에 속한 한 식구가 되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당시 고대 로마 시대 때에 로마 시민권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었습니다. 주로 남성들이 가지게 되었는데, 투표권, 재산권, 재판을 받을 권리 등등 오늘날 저희들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외국인들에게는 거주 외국인으로 분류해서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로마 시민권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에 미국 시민권 같이 세계적인 패권 국가의 시민권으로서 다른 사람보다 훨씬 우위에 설 수 있는 권리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이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들은 로마의 시민권자도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시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얻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이 아니라, 로마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가정의 식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사람에게는 국가적인 경계도, 민족 정체성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자 하나님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한국도 예전에는 외국인이 많이 없다보니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외국인이 지나가면 “와 외국 사람이다”하고 신기해서 쳐다봤던게 기억이 납니다. 오늘날에는 길가다가도 흔하게 외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만큼 한국도 세계화가 많이 진행됬구나 싶은데요.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외국인에 대해서 배척하는 움직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딱히 옛날의 인종차별, 그러니까 우리 인종이 위대하고 다른 인종은 저열하다는 식의 사람은 거의 없는데, 대한민국에서는 한국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지, 미국 같은 경우는 트럼프가 많이 이야기하듯이, 미국은 미국 시민권자를 먼저 생각해야지라는 식의 “자국민 중심주의”가 도리어 세계화 이전보다도 심해진 것 같아요.
저는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건 교회 다니는 거고, 한국 사람이 중요한건 한국 사람이 중요한거지”라고 하면서 나랑 다른 민족, 나랑은 다른 피부색, 나랑은 다른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환영하기 보다는 밀어내기 바쁘다는 거예요.
Ephesians 2:19 NKRV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제부터 너희는 외국인이 아니요, 여행자도 아니요, 미국인도 아니요, 일본인도 아니요, 중국인도 아니요, “한국인”도 아니라, “오직”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으십니까? 둘로 하나를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아멘 하신 모든 성도들, 지금 이자리에 있는 여러분과 저와, 또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권속으로서 화목한 형제자매임을 고백하며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자아 정체성

시민권, 민족성 외에 또한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아 정체성, 자기 정체성, 자아 정체감 등등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앞서서 살펴본 시민권, 민족성이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내가 어떤 민족인지”를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었다면, 자아 정체성은 바로 그런 모든 것을 다 떼어놓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바울의 율법 정체성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과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 “율법”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합니다.
Acts 22:3 NKRV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
특히 자신이 얼마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엄하게 교훈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정말로 하나님께 대해서 열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Galatians 1:13–14 NKRV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정말로 하나님께 대해서 열심이었다면 교회를 박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지나치게 믿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유대교, 내 조상의 전통, 다른 말로 율법이었던 것이고,
Romans 10:2 NKRV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이러한 율법에 대한 열심은 올바른 지식을 따라서 하나님께 대해서 열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사도바울은 이야기합니다.
Ephesians 2:15 NKRV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그래서 바울에게 있어서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했다”라고 하는 이 문장은 단순히 율법을 폐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 자기 자신이 그렇게 열심을 다해서 지키고 삶의 목표로 정했던 것이 이제 “온전히 폐”하여지고, 이전의 “자기자신”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

그럼 왜 바울의 자기 정체성이나 다름없던 율법이 폐하여지고, 새 사람이 되어야만 했을까요? 왜 바울이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강조했을까요?
Romans 3:20 NKRV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것은 율법은 오직 “행위”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율법은 “죄의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이것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율법의 의는 의로운 “행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새벽기도에 레위기를 한창 읽고 있는데요, 대체로 보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러면 죽는다,” “저러면 산다” 등등 제사와 제사장 직분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행위”에 대한 내용이 죽 등장합니다.
물론 율법의 행위가 의로운 “행위”일 수는 있어요. 특히 제사에서 속죄제를 드리고 속건제를 드리고 하는 것에서 자기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행위” 자체는 의로운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행위”만 의롭지 그 사람의 마음과, 말과, 다른 평상시의 행실과 특히 그 사람의 자아, 정체성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못하다면 과연 그 사람을 의롭다고 볼 수가 있을까요?
전에도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제가 복지관에 일할 때 한때 뉴스를 떠들석하게 했던 범죄자가 와서 봉사하고 간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사람이 복지관에 와서 봉사한 “행위”는 의로울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한테, 대가 없이 섬긴 “행위”는 의로울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마음이나 다른 어린 여성들에게 행한 끔찍한 일들을 보고서도 저희가 그사람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너무나도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앞에 했던 의로워 보이는 행위들조차 “위선”이라고 이야기하게 되죠.
Romans 10:9–10 NKRV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래서 사도바울은 “행위”만 의로운 율법이 아니라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으며, 입으로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며, 새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의 행위로 살아가는 것, 즉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 자기 정체성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유명한 말씀이죠,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Galatians 2:20 NKRV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나임을 구성하는 나의 자아 정체성,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나의 정체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육체 가운데 사는것, 나의 모든 육체의 행위는 이전처럼 율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나를 사랑하셔서 자기 자신을 버리시기까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Ephesians 2:16 NKRV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화목하게 하심과 같이 저희도 서로 사랑해서 서로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와 사랑이 마음과 말과 행동을 지배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율법의 조문을 쫓아가려다가 교회를 박해했던 사울의 모습처럼, 성경을 마치 율법처럼 삼아서, “성경이 이렇게 이야기하니~”라고 하며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은 “이번주 주일 예배는 드렸으니까~”라고 하면서 그 예배 “행위”에만 만족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겉으로는 신실한 사람인 척 하면서 그 “마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Ephesians 2:17 NKRV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먼 데 있는 사람들이나,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을 전하고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만인의 평안”을 그 말과 마음과 행위 모두에 지니는 사람들, 믿음으로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율법의 사람도 아니고, 성경의 사람도 아니고, 교회의 사람도 아닙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저는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나”의 말과 마음과 행위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념

지금까지 저희는 저희의 몸에 대해서, 저희 몸이 위치한 국가를 통해서 나오는 시민권, 저희의 혈통을 통해서 정해지는 민족성, 그리고 저희의 말과 마음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저희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알아볼 것은 저희의 생각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입니다.
사람들은 “혼자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생각이 비슷할 때가 참 많습니다. 애초에 저희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끼리 지내기도 하지요. 저도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다닐때는 같은 학번 친구들, 특히 같은 강의를 듣는 친구들끼리 지냈지만, 최근까지 연락하면서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게임 좋아하는 애들밖에 안남았더라구요. 풀타임 전도사인데도 게임들어가면 항상 접속중인 그런 친구들인데,
이처럼 저희가 각각 다른 생각들을 가지지만 비슷한 생각, 서로 좋아하는 거나 싫어하는 거나 정치적인 거나 그런 생각들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데, 만약에 이 비슷한 생각이 한 도시 단위로, 아니면 한 국가 단위로 모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때부터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개개인이 아니라 아예 비슷한 생각의 한 덩어리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저희가 이념, 이데올로기, 혹은 무슨무슨 주의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대표자를 투표를 통해서 정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저희가 그걸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투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나중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투표가 좋아지는 것 같은 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방인들의 이념

Ephesians 2:2 NKRV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방 사람들이었던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도 바로 그런 이념들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바울이 이야기하기를 “이 세상 풍조”를 따라갔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고, 그들이 따랐던 이념과 풍습과 생각들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 풍조에 언급될만한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습관은 아주 많았습니다.
Ephesians 5:3–5 NKRV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음행, 탐욕, 어리석은 말, 희롱하는 말, 우상 숭배 하는 모든 것이 당시 이방 문화에서는 너무나도 흔했습니다. 특히 희롱의 말, 성적이고 상스러운 농담을 뜻하는 말인데 당시의 고대 로마에서도 무언극 같은 공연들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굉장히 성적인 농담이나 유희를 선보이는 문화가 있었어요. 그런 것을 포함하는 이 세상의 풍조, 사람들의 생각을 불순종의 영으로 이끄는 일들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생각

그럼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고, 믿음으로 새 사람을 입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야할까요? 본문말씀 마지막 구절인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Ephesians 2:22 NKRV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사로잡혀야 하는 것은 세상의 이념들이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등등 세상에 좋다고 하는 것들, 좋아보이는 생각들에 사로잡혀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Ephesians 2:18 NKRV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로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성령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나아가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사로잡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그 가운데 충만해진 성령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Galatians 5:25 NKRV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성령이 충만한 사람, 성령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 그 생각이 이념과 세상의 풍조가 아니라 성령으로 이끌리는 사람은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날 “나”라고 하는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한국인 이라고 하는 시민권과 민족성이 있구요, 저희의 말과 마음과 행동에 드러나는 정체성이 있고, 많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이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여서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믿는 사람들은 더이상 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고, 한국 민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정에 속하는 것이고, 말과 마음과 행동이 거듭난 새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며,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와 같은 이념이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혀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모이신 여러분과 제가 바로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형제자매를 나누기보다 화목하기에 힘쓰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 만인의 평안을 이루는 만안의 그리스도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며, 성령 충만함으로 생각과 행동이 모두 성령의 열매로 맺어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셔서 저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이방인으로 두지 않으시고, 또한 저희의 이방인들을 이방인으로 두지 않으시고, 주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한 시민권자로 부르셔서 한 형제자매로 부르셨음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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