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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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거하시는 삶 - 은혜로 가슴을 울리시는 하나님
성령이 거하시는 삶 - 은혜로 가슴을 울리시는 하나님
서론
서론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를 원하고 말씀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온전한 성도로 한 걸음 더 다가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온전하고 복된 삶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 뜻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수많은 장애물들과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내가 세운 계획이 내 마음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완전한 뜻을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 뜻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요즘 시대는 극단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작은 의견 차이가 쉽게 분열로 이어지고, 타협보다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작은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죠. SNS 속을 보면 서로 비교하고 증명하려는 삶이 넘쳐납니다. 그 과정에서 분노와 혐오가 너무 쉽게 터져 나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끌어가고, 결국 죄 가운데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듭니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의 유한한 본성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유한한 본성은 자신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결국 극단의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고 맙니다. 하나님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피조물의 차원에 갇혀 있고, 하나님은 무한하신 차원에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생각 중심으로 살아가면 극단의 상황으로 변질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없습니다.
유한한 본성을 가진 우리의 모습과 무한한 차원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우리가 그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곤하지만, 우리가 공부하는 율법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머리를 지배하는 지식은 가슴을 울리고 행동을 규정하지만, 그 지식은 늘 부족하고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애씀이 아니라, 하나님은 은혜로 믿음이라는 놀라운 선물을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머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가슴을 먼저 감동시켰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 기억하시나요? 그때 사람들이 미리 준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특별히 준비된 엘리트도 아닙니다. 단지,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믿음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그들의 가슴을 흔들었고, 그 결과 입술의 고백과 삶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은 곧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성자 예수님을 부활케 하신 그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선언입니다.”
(1) 죄의 현실 – 과거의 우리 (롬 1–3장, 8:9)
(1) 죄의 현실 – 과거의 우리 (롬 1–3장, 8:9)
본문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여기서 “육신”은 단순히 몸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죄에 지배받는 인간의 상태 전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누구나 자기 뜻과 자기 욕망을 따라 삽니다. 로마서 1-3장에서 …
이방인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며 죄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지만,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감사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들이 생겨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해 죄 아래 있습니다.
율법을 가진자들이라고 해서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율법을 가졌다고 해서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율법이 가슴에서 움직이지 않고 온전한 신앙 생활도 나아가지 못하면 그 또한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현실입니다. 죄는 단순히 잘못된 행동 몇 가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본질적인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본질의 상태, 머리로는 이해할지 모르겠으나 그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없는 상태, 성령이 없는 상태는 죄 가운데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붙들고,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의 욕망을 앞세웁니다. 그 결과 늘 부딪히고 넘어집니다.
우리 현실을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분노가 소셜네트워크에서 서로 비교하고, 분노를 쏟아내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다가, 결국 그런 분노가 현실 상황에서 드러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일들이 현실판 “육신에 속한 삶”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니면 내 뜻입니까?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십니까? 아니면 우리의 욕망이 앞서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 우리는 죄의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인 삶 속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육신에 속한 삶”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은혜의 선물 – 현재의 우리 (롬 3–7장, 8:10)
(2) 은혜의 선물 – 현재의 우리 (롬 3–7장, 8:10)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 죄의 상태에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8절은 사도바울은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서로 분노를 쏟아내며 극단적 상황 속에서 육신에 속한 우리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미십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우리의 노력과 행위, 성경의 표현대로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된다고 사도 바울을 말합니다
의로움은 율법을 지켜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믿음을 통해서 얻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노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머리로 계산하고 연구해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더 좋은 삶을 위해서 환경을 변화시키고 학문을 연구해서 더 좋은 결과를 알게 되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하나님이 우리의 가슴을 먼저 울리셨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 사건을 다시 떠올려 볼까요? 성령께서 임하시자, 사람들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들은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믿음은 논리로 설득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주신 감동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것을 경험합니다. 억지로 머리로 계산해서 하는 일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이 일어나 자원해서 하는 일은 훨씬 더 큰 결과를 낳습니다. 지식과 능력을 아무리 쌓아도 감동이 없으면 힘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동이 있을 때는 능력을 넘어서는 힘이 나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의 선물이 우리 가슴을 울릴 때, 그 믿음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삶을 변화시킵니다.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우리의 육신은 여전히 연약하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성자의 구속 사역이 우리의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는 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서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머리에서 시작되었습니까, 아니면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되었습니까?
만약 하나님의 은혜가 가슴을 울리셨다면, 그 믿음은 반드시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3) 부활의 소망 – 미래의 우리 (롬 8:11)
(3) 부활의 소망 – 미래의 우리 (롬 8:11)
마지막으로 본문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보장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적용하시며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즉, 예수님을 부활케 하신 동일한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도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여전히 고난이 있습니다. 질병, 가정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상처가 우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성자를 부활케 하신 것처럼, 그 능력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성령께서 우리의 가슴을 감동시키셨듯, 마지막 날에는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8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여러분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고난만 바라보며 낙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은, 우리의 미래가 이미 보장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 진리를 가르칩니다.
과거: 우리는 죄 가운데 있어 하나님의 뜻을 살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율법과 지식,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믿음을 선물하시고, 성령으로 우리의 가슴을 울리셔서 지금도 살아 있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미래: 성부께서 성령으로 성자를 부활케 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과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지식으로만 사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가슴이 울려 행동으로 이어지는 삶입니다. 율법보다 믿음이 우선되는 은혜의 선물을 붙들며, 지금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여전히 내 뜻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내 가슴을 울린 경험이 있는가? 나는 지금의 고난을 넘어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성자 예수님을 부활케 하신 능력이 지금 내 안에 거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확신으로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