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성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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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역대하 6장 12-25절
설교제목: 삶이 성전이라면…
주제: 삶이 성전이라면, 하나님의 약속과 회복은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서론]
제가 1년 전에만 해도 교회 예배당을 구하러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곳은 매주 치유집회가 열리는 장소였습니다.
그 곳을 소개해주시던 한 집사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이 공간은 꼭 얻으셔야 해요. 여긴 기도가 정말 많이 쌓인 곳이에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기도가 정말 어떤 곳에 쌓일수 있을까?’
‘기도가 많이 쌓이면 그 장소가 자동으로 거룩해지는 것일까?’
물론 치유집회를 매주 하였으니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이곳은 특별한 곳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성전은 기도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장소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전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그 분이 거하시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 절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이제 성전은 더이상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며 우리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 어느 곳도 성전이 될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예배당만을 성전이라고 여기고, 다른 삶의 자리는 성전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원론적 세계관입니다
예배당에서는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가정이나 일터에서는 세상과 똑같이 살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예배당은 여전히 소중한 거룩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예배당 못지 않게 우리 삶의 자리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 기도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내 삶이 성전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본론1]
첫째, 성전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곳입니다.
15-17절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내 아버지 다윗 임금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으며, 주님께서 친히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오늘 이렇게 손수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인 내 아버지 다윗 임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저마다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살아온 것같이 내 율법대로 살기만 하면, 네 자손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하고 약속하신 것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의 종인 다윗 임금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빕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때 처음 기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솔로몬을 통해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성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증거이자 눈에 보이는 기념비인 것입니다.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바로 다윗의 자손이 끊어지지 않고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그 약속이 성전 완공과 함께 성취되었기에 솔로몬은 감격하며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역대기를 읽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도전을 주었을까요?
그들 앞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성전이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흔들리고 있으며, 공동체는 불안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이 질문을 던지던 그 때 솔로몬의 성전봉헌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봐라,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시다. 우리가 세울 성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증거다.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증거다”
이것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성전이라면, 지금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중요한 조건 하나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늘에나 땅에나 그 어디에도 주님과 같은 하나님은 없습니다. 주님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주님의 종들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누구에게 이루어집니까?
예배당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삶에서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할수 없습니다.
삶 전체가 성전이 되어야 하고, 온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신앙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봐야 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내 삶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확신이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 마음을 원하시는데, 우리는 반쪽짜리 마음만 드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까 불렀던 찬송가 가사를 기억하십니까?
“예수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그렇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성전이 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공간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성전이라면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주님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 순종의 삶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바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자리, 기도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 공간일뿐만 아니라 기도하며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본론2]
둘째, 성전은 용서와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19-20절입니다.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의 종이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님의 종이 주님 앞에서 부르짖으며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주님께서 낮이나 밤이나 눈을 뜨시고, 이 성전을 살펴 주십시오. 이 곳은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주님의 종이 이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이 종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솔로몬의 기도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성전을 향해 기도할때 그 기도를 들어달라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두시는 곳으로서 하나님의 눈과 귀, 마음이 머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기도는 뭔가 특별합니다.
단순히 내 소원을 들어달라는 수준의 기도가 아닙니다.
21절입니다.
첫째, 용서를 구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에서 기도드릴 때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성전은 단순히 거룩한 공간이 아니라, 회개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공간이 바로 성전입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용서를 너무 당연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무조건 용서해 주셔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내가 요구할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솔로몬은 이 사실을 알았기에 회개할 때마다 하나님이 기쁘게 용서해주시기를 겸손히 구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또 한가지 기도한게 있습니다.
둘째, 회복을 구합니다.
22-23절입니다.
“사람이 이웃에게 죄를 짓고, 맹세를 하게 되어, 그가 이 성전 안에 있는 주님의 제단 앞에 나와서 맹세를 하거든,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님의 종들을 심판하시되,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죄가 있다고 판결하셔서 벌을 주시고, 옳은 일을 한 사람은 죄가 없다고 판결하셔서 그의 의로움을 밝혀 주십시오.”
먼저 솔로몬이 기도한 것은 정의의 회복입니다.
성전은 단순히 죄를 용서하시는 곳이 아닙니다.
실제로 죄를 판단하여 의로운 자를 회복시켜 주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람 사이에 억울한 일이 생겼을때 세상의 법이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구해야 합니다.
성전은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가 선포되는 공간입니다.
억울한 자가 울수 있고, 정직한 자가 명예를 회복할수 있는 자리입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의 기도가 참 많습니다.
그만큼 살면서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은 이가 없을 것입니다.
장인인 사울에게 억울하게 쫓기며 목숨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럴때마다 다윗은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을 구했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밝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억울한 일,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복수하는 게 아니라 성전된 삶의 자리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솔로몬은 땅의 회복을 요청합니다.
24-25절입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이 죄를 지어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와 주님께 회개하면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땅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삶의 터전이자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죄를 범하면 땅이 저주를 받아 황폐해지고 침략당해 빼앗기게 됩니다.
인간의 죄악은 땅을 더럽히고, 전쟁과 기근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보면 순종하면 땅을 얻고, 불순종하면 땅을 잃습니다.
죄의 용서는 땅의 회복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성전된 삶을 보면 어떨까요?
혹시 삶이 황폐해지지는 않았습니까?
무너진 관계, 상처난 가정, 지쳐있는 공동체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회복의 시작은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한 기도입니다.
기도없는 성전은 껍데기일 뿐이고, 기도없는 신앙도 껍데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자리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관계와 가정, 일터, 공동체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전은 단지 용서를 구하는 장소가 아니라, 삶의 온전한 회복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처음에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전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공동체가 성전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성전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성전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그 성전은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솔로몬의 성전봉헌 기도를 통해 우리는 두가지 진리를 배웠습니다.
첫째, 성전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곳입니다. 우리 삶이 성전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단 한가지는 온 마음으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둘째, 성전은 용서와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죄의 고백이 진심으로 드려지는 기도의 자리, 억울함이 하나님의 정의로 밝혀지는 자리, 황폐한 삶이 회복되는 자리입니다.
그것이 성전된 일상 속에서 드리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럼 우리의 삶은 지금 어떤 성전입니까?
예배당에서는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가정과 일터에서는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과연 내 삶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껴지십니까?
일에 지치고, 관계에 지쳐 마음과 삶이 황폐해지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그 시작은 기도여야 합니다.
성전은 단순히 예배드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며, 회개와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 성전이 바로 우리의 삶이자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성전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곳입니다.
진실한 기도로 하나님을 찾아야 할 곳입니다.
그럴때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무너진 삶의 자리가 회복되는 은혜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한 거룩한 성전을 이루어가는 함께걷는교회 식구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