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 가운데도 섭리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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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9:16-27
여호수아 9:16-27
찬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오늘은 ‘속임수 가운데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다 보면 여러 억울한 상황을 경험합니다. 그 중 하나는 ‘사기’입니다.
인터넷 중고거래에서 멀쩡해 보이는 물건을 샀는데 받아보니 고장 난 물건인 경우가 있습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속에 숨겨둔 조항 때문에 큰 손해를 보기도 하지요. 처음에는 다 진실해 보였고, 문제없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속았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화가 나고, 또 허탈한 마음이 듭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기브온 족속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가까이 사는 족속이었기에 원래는 진멸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교묘한 속임수를 꾸몄습니다. 낡아서 해어진 전대와 찢어진 포도주 가죽 부대를 준비했습니다. 먼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곰팡이 핀 떡을 가지고 왔습니다. 신발은 닳아 해어졌고, 옷도 누더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멀리서 온 나그네처럼 철저하게 위장한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모습만 보고 “정말 먼 나라에서 왔구나” 하고 속아버렸습니다. 그들의 말만 듣고, 떡만 보고, 겉모습만 판단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서둘러 조약을 맺고 말았습니다.
며칠 뒤,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온 나그네가 아니라, 바로 곁에 살던 기브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분노했고, 지도자들은 후회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쉽게 속아 넘어갔을까?” 그들의 마음은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의 거짓은 드러나고, 우리의 실수는 드러나지만,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수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언약에 신실하시고, 그 속임수마저도 당신의 구속 계획 속에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종종 사람의 말에 속고, 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다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실수와 부족까지도 붙드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그 신실한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발견하기 원합니다.
첫째, 인간의 꾀는 드러난다 (16-18절)
첫째, 인간의 꾀는 드러난다 (16-18절)
본문 16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과 화친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자기들 가까이에 있어서 그들과 함께 거주하는 족속들임을 들으니라.”
이스라엘은 조약을 맺은 지 불과 사흘 만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브온 사람들의 연기와 겉모습에 철저히 속았습니다. 낡은 옷과 해어진 신발, 곰팡이가 핀 떡, 찢어진 가죽 부대를 보면서 ‘저들은 분명히 먼 길에서 온 사람들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진실은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살던 이웃 족속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의 꾀와 거짓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하고,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며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갈 6:7). 시편 5편 6절도 말합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은 끝내 무너지고, 그 꾀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순간적으로는 거짓말 한마디로 위기를 모면하는 것 같고, 편법 하나로 문제를 쉽게 푸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됩니다. 오히려 그 거짓으로 인해 더 큰 손해를 보고, 신뢰를 잃고, 부끄러움만 남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직하면 손해다. 정직하면 늦다.” 하지만 아닙니다.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고, 꾀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를 주님은 높여주시고, 지켜주십니다. 잠언 12장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칩니다. 사람의 꾀는 드러나고, 거짓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유익을 좇아 거짓에 기대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바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장은 돌아가는 길 같아도,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복 주시는 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다 (19-21절)
둘째,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다 (19-21절)
본문 19절과 20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온 회중이 족장들을 원망하니 족장들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세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 족속의 속임수가 드러났을 때 크게 분노했습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속았으니 언약을 깨뜨리고 그들을 쳐야 한다고 요구했지요. 그러나 족장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맹세하였으니, 그 언약은 깰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속임수에 넘어가서 맺은 언약일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걸려 있기 때문에 함부로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만약 깨뜨린다면 그것은 단순히 사람과의 약속을 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훗날 사울 왕이 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다윗 시대에 3년 동안 큰 기근이 찾아왔습니다(삼하 21:1-2). 하나님은 오래 전 여호수아 때 맺었던 언약을 여전히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며, 당신의 이름으로 세운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이자 도전입니다. 사람의 언약은 흔들리고,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넘어지고, 하나님을 실망시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맺으신 언약,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을 결코 깨뜨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하나님은 스스로 언약을 부인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속임수, 나의 실수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은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이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설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도 섭리로 바꾸신다 (22-27절)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도 섭리로 바꾸신다 (22-27절)
본문 22절 이하를 보면,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속여 이르기를 우리는 너희에게서 심히 먼 곳에서 왔다 하였느냐?” (22절)
여호수아는 분명히 그들의 속임수를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을 진멸하지 않고, **“여호와의 집을 위하여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27절)**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속았고, 지도자들은 실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실수마저도 사용하셔서 기브온 사람들을 성막을 섬기는 자리로 두셨습니다. 속임수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일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순한 아이러니가 아닙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마저도 당신의 은혜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시는 사건입니다. 본래 진멸 대상이었던 그들이 종의 신분으로라도 언약 공동체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사건을 예표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엡 2:12-13).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까지도 당신의 섭리 속에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실수마저도 사용하셔서 이방인 구원의 그림자를 보여주셨습니다. 마치 요셉이 형들의 악행을 통해 애굽의 총리가 되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살리셨던 것처럼(창 50:20), 우리의 잘못과 부족조차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서는 선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선택, 부끄러운 실수들이 있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왜 하나님께 묻지 않았을까?”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도 주권 가운데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신다.” 우리가 넘어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실패의 자리에서조차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수 가운데도, 실패 가운데도, 여전히 하나님은 신실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까지도 붙드시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완성해 가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람의 꾀와 거짓은 잠시 통하는 것 같아도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가며 속고, 순간적인 꾀를 쓰려 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우신 언약은 결코 흔들리지 않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넘어져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언약은 변함없이 우리를 붙들고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에 의지하여 오늘도 소망 가운데 서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실수와 부족조차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선으로 바꾸시는 은혜를 기억합니다. 주님, 우리의 후회와 실패를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오니, 그것마저도 사용하셔서 주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사람의 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만 바라보며, 우리의 연약함까지도 주님께 맡기는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